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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명을 감당하는 생애 (출 0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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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뜻과 섭리를 가지고 축복된 낙원 에덴동산을 이 땅 위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범죄함으로 모든 피조물은 다 저주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하나님은 저주 받은 모든 피조물들을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실 것입니다.
존 번연은 스코틀랜드 감옥에서 16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천로역정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장차 망할 장망성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땅이 망할 장소이므로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하고 천성을 향해 가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영원한 천국에 혼자 가지 말고 친구를 데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태도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는 잠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도 소망은 하늘에 두어야 합니다. 언제 하나님이 부르셔도 미련없이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려 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축복이 넘쳐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과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우리는 그 삶을 살아갈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성공과 승리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모세의 생애를 통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120년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의 생애는 정확하게 40년씩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처음 40년은 애굽에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그후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마지막 40년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습니다. 각각의 40년 생애는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모세의 생애를 통해 우리 인생의 온전한 목표와 계획이 수립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살아 계신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세상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애굽의 궁궐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당시 애굽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로 최강의 국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가장 뛰어난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배운 것입니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애굽에 있는 동안 ‘에스페리오’라는 대학을 다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즉 처음 40년은 사람에 대하여 배우고 경험한 세월이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에 대한 바르고 많은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기 위해 세상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모르고 하나님만 찾으면 신비주의입니다. 바울은 수제자였던 베드로보다도 주의 일에 더욱 크게 쓰임 받았던 사람입니다. 베냐민 지파로, 로마 시민권자로,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뛰어난 학문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엄청난 학문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 때는 예수님을 핍박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주님의 손에 붙들린 후에는 더욱 확실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신약성경의 ⅔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책입니다. 세상을 바로 알고 많이 알 때 세상에 대하여 정확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바로 전하고 크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 많이 배워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에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이 세상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는 것이라도 나는 그 일에 있어 최고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양치는 일에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돌 던지는 일에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 연습해 두었던 돌던지는 일이 골리앗을 꺾고 이스라엘을 구할 줄은 본인도 몰랐던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바로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때 가장 요긴하게 쓰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내가 맡은 그 일에 최고가 되고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종살이 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건지기 위해서는 애굽의 궁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바로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분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매년 대학입시를 치르는 사람이 100만명 가량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합격하는 사람보다는 낙오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내 힘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소원해야 합니다. 매일 5분이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지식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최고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어 동족들이 성을 쌓고 있는 지역에 나갔다가 동족을 때리는 애굽인을 쳐 죽였습니다. 그 일과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이때는 하늘만 쳐다보고 하나님에 대하여 배웠습니다. 어찌보면 이때는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 양도 아닙니다. 남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애굽에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 살던 때와 비교해서 얼마나 비참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시절이야 말로 모세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시절이었습니다. 자신의 부족과 한계를 인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을 찾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바로 아는 지식과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을 무시하고 하나님만 찾는 사람은 신비주의자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인간의 이성과 지식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세속주의자, 인본주의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바르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바벨론을 잘 알았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도 잘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우상숭배 때문에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와 있는 입장에 다시 우상숭배를 강요받게 됩니다. 그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불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똑같은 원리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이 땅이 어떤 세상인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땅은 나날이 문화는 발전되어 가지만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가르치는 곳은 교회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몸담고 있는 우리들도 하나님을 아는 일에 얼마나 게으른지 모릅니다.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물어도 할말이 없는 것입니다.
호세아는 이 시대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니까 세상 운명 가운데 빠져 죽어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로 29절을 보니까 수고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니까 죽은 자요,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신앙적으로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정신적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야 합니다. 물질은 풍요롭지만 영적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본질상 하나님께는 진노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재물이 많이 있는 가운데도 실패합니다. 이 세상은 장차 망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참 행복을 몰랐습니다. 술친구는 있었지만 진실을 함께 나눌 친구는 없었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참 소망이 없었습니다. 내세에 대한 지식도 없었습니다. 아는 것이라고는 먹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짐승과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인분제조기였습니다. 먹고 싸는 것, 이것이 불신자의 세계입니다. 자신의 불행으로 끝내지 않고 영적으로는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세상 속에 여러분이 살아갑니다. 세상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시기 바랍니다.

3.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사명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세는 바로 궁전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디안 광야 40년 생활을 통하여 간절히 하나님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세상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드디어 나이 80에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모세 80년 가슴에 맺힌 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일치했습니다. 때가 일치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만 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출3:8)”
처음에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강권하심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서게 됩니다. 모세가 이 일을 거절했다면 모세 자신과 가정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모세의 말대로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였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깨달으니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감당할 때에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능력을 공급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동행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의 증거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평범한 지팡이가 능력의 지팡이로 변했습니다. 홍해를 갈랐습니다. 반석을 치니 물이 넘쳐 흘렀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불기둥 구름기둥이 언제나 동행했습니다. 매일같이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렸습니다. 40년을 걸었지만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나이가 많을지라도 하나님을 바로 알고 사명을 깨달으면 아무도 막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20세에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모세는 죽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다하기까지는 생명을 거두지 않으신 것입니다.
모세는 세상을 알았고 하나님을 알았던 인생입니다. 하나님이 준비시켰고, 하나님이 사명을 주셔서 붙잡아 쓰신 인생입니다. 행복한 인생은 하나님을 아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붙들려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사명을 깨닫고 사명에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입니다. 생명까지 버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먼저 아십니다. 우리를 축복하시기를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우리가 전능자를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땅을 바라보는 눈을 바로 갖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준비되어진 사람만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준비하는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일을 할 계획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세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그를 갈릴리 바닷가로 주님은 찾아오셔서 ‘내 양을 먹이라’ 당부하셨습니다. 그의 잘못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명을 자극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죄와 잘못을 가지고 살았을지라도 베드로처럼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죄가 있어도, 허물이 있어도 사명이 있는 인생은 비굴하지 않습니다. 방황하지 않습니다. 남에게 가장 귀중한 것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구원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의 사건이 나오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되었다 이것은 운명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았습니다. 자리를 잘 잡은 것입니다. 구걸하기로 했습니다. 직업 선택을 잘한 것입니다. 그를 성전 미문에 앉혀준 사람은 육신 봉사자입니다. 동전을 던져준 사람들은 물질 봉사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이 무어라 말을 합니까 “은과 금은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했습니다. 그는 성전에 뛰어 들어 갔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평생에 성전에 들어가 보지 못한 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길을 제시했던 것입니다. 예수생명이었습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나를 주장하던 마귀가 떠나갑니다.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분을 바꿀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내주와 동행과 축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응답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경찰관과 함께 다니면 도둑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면 나는 무능해도 주님은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권세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천사를 보내사 보호하십니다. 시민권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는 것을 타인이 보고 깨닫는 것이 전도입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보니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감옥에서도 증거를 보였습니다. 주님이 내 속에 계시면 남이 당연하게 보게 되어 있습니다.
사명 때문에 살고 사명을 위하여 준비하는 인생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모세는 세상을 아는 일에, 하나님을 아는 일에 지독스럽게 철저했던 사람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이제 그 하나님은 여러분이 준비된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사명에 여러분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모세 120년 간의 멋진 역사가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다시 재현될 수 있기를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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