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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며 사십니까? (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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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사랑입니다. 사람은 사랑을 할 때 행복을 느끼고, 사랑을 받을 때 행복을 느낍니다. 그래서 사랑할 사람이 없고 사랑을 받을 사람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줄 수 있으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쌀 한톨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남녀가 결혼할 때 제일 우선 순위는 사랑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고 더 사랑하기 위하여 결혼합니다. 그래서 부부는 서로 사랑하면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미워하면 한순간에도 남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 인간의 모든 문제는 사랑의 결핍에서 옵니다. 사랑만 있다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됩니다. 상대방에 대하여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이해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하나도 용납이 안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사랑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십계명을 쉽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요,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씀에 이론이 있을 수는 없겠지만 그 정도에 대하여 우리는 부담을 느낍니다. 즉 대강 사랑하고 대충 넘어가려는 태도를 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누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말을 들으면 우리는 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를 사랑해야 합니다”하면 부담스러워지고 도망가고 싶어 합니다.
이와 같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왜 그렇게 강력한 사랑의 원리를 말씀하셨을까요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약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오늘은 왜 인간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보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나를 이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잘못이 그를 찔렀습니다. 거기다가 그는 다른 제자 여섯을 동행하고 갈릴리 바닷가로 도망와 있는 처지입니다.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에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작은 소리로 고개 숙이며 말했습니다.
베드로에게 물으셨던 질문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나에게 “지금 이 순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다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와 동일하게 말씀하실 수 있으십니까 정말로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만나도 사철 푸른 상록수처럼 변치않고 사랑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랑하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살펴 봅시다.
①네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형식과 위선의 거짓된 마음으로 하지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사랑하라 명령하십니다.
②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죽음을 각오하고 죽을 때까지 사랑하라 명령하셨습니다.
③뜻을 다하여 사랑하라
모든 지혜를 다 동원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데서 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함으로 마귀에게 속하여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운명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수록 우리는 마귀의 영향하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마귀의 영향권 안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느냐 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사랑의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자세가 아니면 아무리 사랑한다 말하여도 그것은 사랑일 수 없습니다. 사랑에 대충 사랑한다는 중간지대는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출석하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세상을 더 사랑합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돈과 세상 사랑에 막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과 나를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이 아침에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지금까지 못하셨다고 해도 지금부터라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님의 명령입니다. 왜 사랑하라 하십니까 이것이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삶의 최고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이웃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 말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 어떻게’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할 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내 형편이 나진 다음에, 이 일을 마쳐놓고” 이것이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사람마다 자기 몸을 얼마나 위하는지 모릅니다.
얼마 전에 TV에 남편이 자기 몸을 너무 챙기는 일에 짜증이 난 부인이 나와 말하는 것을 들어 보았습니다. 조금만 어려운 일도 안 할려고 하고, 몸에 좋은 약이 있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닥치는대로 마시고 복용하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기를 그와 같이 아끼는 것이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무관심하고 냉혹하기 그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얼마나 큰 짐이 될까요 그러나 사랑은 상대방을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귀하면 남도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배고프면 남도 배고픈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하기 싫은 남도 하기 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자기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가 귀한 만큼 남도 귀하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일 뿐입니다. 나에게 하나님이 아버지이듯 이웃에게도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만드신 그분이 이웃도 만드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를 사랑하신 분이 저도 사랑하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신앙인이 버려야할 두 가지 의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남보다 내가 낫다는 우월의식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교만을 불러 일으킵니다. 둘째는 내가 남보다 못하다는 열등의식입니다. 열등의식은 상대방을 향해서는 시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자신을 자학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는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줄 모릅니다. 나를 사랑하기에 남도 귀한 줄 아는 것입니다. 성도의 자기 사랑의 형태는 먼저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데 있습니다. 남을 사랑함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신앙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한 가정에서 자녀가 여럿이 있으면 그들은 한 부모님을 같이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웃을 향해 한 하나님을 함께 섬기고 있다는 철저하게 형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선지자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한 것이요, 물 한그릇을 대접한 것도 결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물어 봅시다. 여러분 곁에 있는 성도를 내 몸을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하십니까 못했다면 이제부터라도 그렇게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이웃이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대접하라”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심는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상대방에 의하여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내가 사랑하지 않은 연고입니다. 사랑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주심같이 이웃을 위하여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십시오. 당신이 심은대로 하나님은 이웃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3.하나님과 이웃 사랑의 최고 결정체는 복음전파입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이 두 가지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실 때 성경은 구약성경 뿐입니다. 구약성경을 둘로 나누면 율법서와 선지서입니다. 이 두 계명, 즉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성경 전체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성경 전체의 명령이요, 첫째와 둘째가 될만큼 중요한 명령입니다. 이 말씀을 순종할 때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하나님 사랑의 최고 표현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대우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지상 최대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복음전파입니다. 복음전파는 하나님의 최고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복음서마다 마지막에 이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직전에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 24:46-4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이루신 사랑의 구원, 모두가 나아와 이 사랑 안에 거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복음전파입니다.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영원히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 이것이 전도입니다. 복음전파와 전도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최고의 결정체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날 인간의 비극은 사랑의 부재에서 와 집니다. 사람들을 돌아보면 사랑이 없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더 더욱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비극입니다.
오늘 현실의 문제는 이 두 가지 사랑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돈과 세상을 사랑합니다. 돈과 세상 사랑으로 행복을 얻어 볼려고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풍요를 얻을 수는 있겠으나 영적으로는 점점 말라져 버립니다. 영으로 살지 않으면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철저하게 육신적으로 살았던 롯의 가정이 얼마나 철저하게 망했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 읽어 봅니다.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딸들은 패륜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했던 다윗왕 시대에 이스라엘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영국과 미국, 독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부흥을 향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의 기독교가 쇠퇴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기 사랑 이 순서가 바뀌면 타락합니다.
사랑이 떠난 시대,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기치를 높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지 않는한 이 시대는 희망이 없습니다. 94년 5월 6일자 국민일보 만화에 이런 만화가 실렸습니다. 교회 집사인 엄마 아빠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 공부는 열심히 해, 학원공부는 철저히 해, 입시 공부는 코피 터지게 해, 성경공부는 알아서 해”
오늘날 교인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실천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입니다. 내 가정과 이 시대가 사는 길입니다. 진정 사랑하며 사십니까
오늘 이 시간부터라도 진정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이웃이 여러분에게 베푸는 사랑이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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