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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 행복을 얻으려면 (창 02: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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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지내기가 어떠십니까 오랜 가뭄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낮에는 수십 년만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새벽에도 열대야(熱帶夜) 현상으로 인하여 기온이 떨어지지 않고 땀이 줄줄 흐릅니다. 남부 지방은 낮 최고 기온이 40℃를 육박하고 오랜 가뭄으로 인하여 사람과 대지가 다같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더워서 못살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사람은 추워도 못 살고 지나치게 더워도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내가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사는 것입니다. 40년 가까이 비전향 장기수로 복역하던 이인모 노인을 남한에서 일전에 가족이 있는 북한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신문에 보니까 그 이인모 노인이 김일성 장례식장에 휠체어를 타고 와서 ‘40년을 더 사신다고 하시더니 이렇게 허망하게 가십니까’ 하면서 오열했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40년을 더 살겠다고 살아집니까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분이십니다.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부하게도 하시고 가난하게도 하십니다. 주기도 하시고 빼앗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는다면 우리에게는 염려 걱정이 필요 없습니다.
전쟁에 있어 백전백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에 승리하려면 우리는 하나님을 잘 알고 나를 잘 알고 마귀 사단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바른 신앙에 대한 지식과 믿음으로 신앙생활에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우리 인간존재에 대하여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적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내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혹시 이런 질문을 해보셨습니까 이런 질문에 답하는 것이 철학이라는 학문입니다. 수많은 학자들이 수천 년 동안 다양한 연구를 통해 그때마다 인간을 여러 가지로 정의해 왔는데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오늘도 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모습이 그들이 말하는 정의 그대로이고, 그 말이 진리요 사실이라면 오늘날 인간은 어찌해서 계속적으로 고통을 겪으며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요 인간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아무리 오랜 세월을 걸려 연구해도 그 답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의 학문적 연구가 하나님이 인간은 만드신 목적과 섭리에서 철저하게 어긋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에 대한 모든 해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창세기 1장은 인간을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다음의 몇가지 의미를 가집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①인간은 하나님의 자연적 형상을 닮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영적 존재임을 말하며, 하나님과 불가불리의 관계를 지닌 존재로 지음을 받았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②인간은 하나님의 정치적 형상을 닮았습니다. 이것은 다른 피조물을 관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③인간은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닮았습니다. 도덕적 형상이란 인간이 이웃과 더불어 사랑을 나누고 살도록 만들어진 특성을 말합니다. 이 관계는 바로 사랑의 관계, 정의의 관계, 자비의 관계, 순결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학문은 인간의 정치적인 형상, 즉 자연을 다스리는 면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도덕적 형상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해야만 한다는 사실 하나만은 완전히 망각하고 또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서 어긋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누구인가가”에 대한 물음에,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관계를 가지고 살고 자연과의 관계를 가지고 살고, 이웃과의 관계를 가지고 사는 존재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버린 인간의 모습을 성경은 죄라고 말합니다.
죄는 남을 때렸거나 도둑질, 또는 간음했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죄는 “목표에서 빗나갔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목적, 즉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교제하며 살도록 만든 데에서 하나라도 파괴되면 그것을 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모든 관계의 회복을 위해 애쓰면서 유독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창세기 1:26에서 인간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이며, 왜 갈등하고, 고통하고, 죽음을 두려워 하고 사랑해야할 자를 미워하고, 정당하게 살기를 원하면서도 방탕합니다.
왜 이럴까요 그 수많은 물음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답변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등을 돌리고 사는 인간에게는 마땅히 갈등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있습니까 목자의 보호없이 양이 살 수 있습니까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부모를 잃은 아이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회복,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인간의 모습입니다.

2.인간의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만 살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내용이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어떻게 다릅니까
1징에서는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2장에서는 인간이 육체적으로 흙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이 된지라(창 2:7)”
흙에는 무엇이 제일 필요합니까 물, 수분입니다. 우리 몸의 70% 이상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프리카 지역에 엄청난 기근이 몰아 닥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비만 내리면 땅에 있는 식물들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대지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모든 식물이 죽고 먼지만 날리게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창 2:5-6)”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에도 땅에 비를 주시지 않으니까 들에 초목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밭에는 채소가 없었습니다. 땅과 흙에는 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간이 어디에 주로 생존했는지 아십니까 강가에 살았습니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를 보면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작은 촌락도 시내를 끼고 마을이 형성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 기간 중에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둘러 보았습니다. 땅 자체로 보면 거의 비슷한 땅입니다. 이집트는 우리 나라 남북한을 합한 면적의 11배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나라 남북한 강원도 땅만 합니다. 그런데 이집트는 그 엄청난 땅의 대부분이 물이 없는 사막입니다. 이스라엘은 지하수를 개발하고 요단강 물을 끌어들여 전국토에 물을 공급했습니다. 사막에서 꽃이 피었습니다. 식물들이 자라납니다. 열매를 맺었습니다.
아무리 넓은 땅도 물이 없으니까 사막이 되었지만 척박한 돌밭에도 물이 공급되니까 만물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흙덩이인 이 땅에 제일 필요한 것은 물이었습니다. 아무리 넓어도 물이 없으면 그 땅은 사막입니다. 아무리 좁은 땅도 물만 충만하면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신이 흙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에 네개의 강을 두셨습니다.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창 2:10-14)”
인간의 생활, 삶 가운데는 하나님이 주시는 이 강물이 흘러야 합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잘났어도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이 흐르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수고해서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남보다 노력하고, 수고하고 애쓰면 문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밤잠을 줄이고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보다 귀중한 하나님이 주신 영적 생활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 대로 믿음 생활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할 때 믿음 생활에서 승리하여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이루어서 문화 생활 뿐만 아니라 생명에 관련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던 네 개의 강은 인간에게 영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네 가지를 말씀해 줍니다.
▣비손강
비손은 “풍요, 부요”이고 히브리어로 강은 “흘러 넘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
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
구하노라(요삼 1:2)”
▣기흔 강
이것은 “은혜”란 뜻입니다.
▣힛데겔 강
“힛데겔”은 결실이라는 뜻입니다.
▣유브라데 강
유브라데는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의 풍요의 강이 넘쳐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열매를 맺게 해주시는 것이지 인간 스스로 맺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능력을 공급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흙으로 빚은 육체의 형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흙에 물이 반드시 필요하듯 인간의 삶에는 풍요와 은혜와 결실과 능력이라는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이 흘러야 합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비가 내리지 않아 대지가 목말라 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제 제 아들과 같이 한 시간 가량을 비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포기할까요
내가 이 땅에 비가 오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존재라면 기도를 멈춰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와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마다 내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이 없어도 살 수 있는 존재라면 축복의 강물을 찾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내 힘으로 넉넉히 이 세상을 살 수 있고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예수 믿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팽개치고라도 축복 받는 일에 전념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삽니다. 만물은 물이 있어야 삽니다. 사막에 가면 사막초라는 풀이 있습니다. 사막에 있는 풀들은 모두가 선인장과에 속합니다.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함입니다. 그 사막초의 뿌리는 짧은 것이 지하 20Km입니다.
어려운 조건일수록 더 깊은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것만이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만이 살길입니다. 그걸 포기하는 순간에는 이미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삶에 넘쳐나게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인간은 말씀에 순종하여야만 살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풍요로운 곳이었습니다.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네개의 축복의 강이 흐르고 각종 나무와 사철 풍성한 열매를 맺는 축복의 땅이었습니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발달하면서 생활의 편리는 가져 왔으나 더 귀중한 가치들은 잃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나도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인간은 에덴 동산의 축복과 행복은 재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그 축복의 땅을 왜 잃어 버렸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창 2:17)”
하나님이 주신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을 부정했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마귀의 유혹을 받아 죄와 사망 가운데 빠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순간 그들은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축복을 잃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대적했듯 만물이 인간에 대하여 대항한 것입니다. 땅이 엉컹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인 죽음이 찾아왔고, 육신적인 죽음이 찾아오고 결국은 영원한 지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어 인간이 추구하는 모든 행복의 길은 무화과 나뭇잎으로 부끄러운 수치를 가리우는 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잠시 후에 햇빛이 나면 말라 부스러지고야 맙니다.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지 않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물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엄마 잃은 아이는 엄마 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탕자는 아버지를 떠남으로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때 모든 행복이 회복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라 하십니다. ‘나의 말을 듣고 청종하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십니다. 마귀는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 하나님이 되라’ 속삭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여러분! 물론 여러분이 범죄해도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마귀의 말을 듣는 순간부터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선악과를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말씀은 ‘마귀의 말을 듣는 그날에는 죽으리라.’ 그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행복과 불행이 여기에 달렸습니다. 살고 죽는 문제가 여기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시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방법과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누구의 말을 듣고 계십니까 불신자들은 마귀의 말을 듣기에 자꾸 망해갑니다. 믿는 자가 마귀의 말을 들으면 롯과 같이 망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어떻게 지음 받은 존재인가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흙으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이 흘러 넘쳐야만 살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무더위 가운데 고통 받는 여러분!
대지가 물이 없어 목말라 하는 것보다 더 큰 갈증을 호소하는 영혼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과만 교제하시고 그에게 축복의 강물을 구하십시오.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여러분의 살길입니다. 하나님이 원치 않는 길에 서 있을 때, 죄의 자리에 있을 때, 오만한 자의 자리에 서 있을 때 여러분은 반드시 망할 것입니다.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 이것이 믿음의 첫 발걸음이요 신앙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결단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받아들이는 결단입니다. 이 시간에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결단하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창조된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갈등하는 것, 하나님의 축복의 강물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하는 것. 이것이 신앙의 첫 발걸음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시고 축복의 강물을 구하셔서 풍성한 열매가 넘쳐나는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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