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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요 04:20-26)

첨부 1


오늘 우리가 만나는 현실 속의 모든 고통과 불행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불신자들의 불행의 원인이 그러하고 믿는 신자들의 삶의 아픔도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 국가 나아가 한 시대가 행복하고 불행한 것은 반드시 신앙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을 축복도 하셨고 심판도 하셨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식물이 흙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이렇듯 자기가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조건을 떠나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은 불행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내가 살고 있는 시대가 불안하고 고통을 겪고 있고, 나의 삶이 고난을 만나고 있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불행한 현실을 만났다면 다시 행복을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께 되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들은 돌아가기는 커녕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온갖 저주와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인간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도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귀로부터, 세상으로부터 그렇게 강요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한 결과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을 당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등 젊은 인재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우상숭배 때문에 포로민이 된 입장에서 이들은 또 다시 우상숭배를 강요받게 됩니다. 왕의 신상에 절하도록 강요받습니다. 거절하면 풀무불 속에 들어가거나 굶주린 사자굴에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믿음의 선진들이 외부의 압력이나 핍박을 통해 하나님을 떠날 것을 강요 받았다면 오늘 우리는 외부가 아닌 나 자신의 염려 근심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염려, 건강에 대한 염려, 때로는 세상일에 빠져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만난 형편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 하지만 그 일로 인하여 그의 형편은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의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면 그 이유가 어떤 것이든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마귀의 일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인간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인간의 교만을 부추겨 하나님과 같이 되라고 했습니다. 미혹에 빠져 인간은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온갖 죄와 저주 가운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만납니까 예수님을 통해서만 만납니다. 예수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은자’ 세상의 왕 마귀를 꺾으신 만왕의 왕 예수,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을 여신 선지자,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제사장. 그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 4:12에 베드로는 뭐라고 했습니까
“천하 인간에 구원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예수 외에 주신 일이 없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를 만나는 유일한 길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도식이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나는 구체적인 현장이 어디냐 그게 예배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 시간에 참석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당신이 받으실 만한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어떻게 드리는 예배만을 주님이 받으시는가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할까요 례배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말씀을 통해 같이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마귀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방해합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이후 하나님은 곧바로 인간이 다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창 3:15에 여인의 후손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인하여 구원얻고 생명얻게 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만나기 위하여 양을 잡아 옷을 만들어 입고 그 피를 뿌리면서 예배하라 하셨습니다. ‘피를 뿌리는 것은 양의 피를 뿌려라’ 예수에 관한 예언입니다. ‘양의 피를 뿌리면서 메시야를 기다려라. 그 믿음을 통해서 마귀에게서 빠져 나올 것이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길을 열어 주신 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마귀는 전략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이 마귀는 사단에게서 빠져 나오는 길을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어쨌든 이것만 모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다 하게 하고 하나만 못하게 합니다. 여러분에게 생명만 모르게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집도 망하고 여러분의 미래가 망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모든 것을 요구하지 않았고 이것에서 빠져 나오는 길만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8:44에 너희 아비 마귀는 거짓말장이라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을 속입니다. 여러분이 망하도록 마귀는 자꾸만 속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흑암에 빠져 여러분이 죽도록 마귀는 자꾸 유혹합니다. 절대 여기서 못 빠져 나옵니다. 그러면 죽는 것입니다. 이게 마귀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여기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빠져 나오는 길을 하나님은 간단하게 하나만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기 위하여 구약에는 피, 그런데 마귀는 다른 것은 다 해도 좋은데 이것만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피, 이것만은 절대 잊어버리지 말아라. 이것만 알면 네가 산다’ 하시는데 마귀는 ‘이것만 잊어버려라’ 합니다.
이래서 창 4:1-20에 가인이 피를 잊어 버렸습니다. 가인은 곡식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으나 실패했습니다. 히 11:4 ‘그 예물이 증거함이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잊어 버립니다. 마귀는 여러분도 자꾸 잊어 버리도록 만듭니다. 얼마안가 또 망해 버립니다.
네피림, 우상숭배의 시대. 다시 여기에 또 잡혀 버렸습니다. 마귀는 피능력만 모르도록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창 6장을 보니까 전부 다 망해 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방주를 만들어 놓고 부르십니다. 그런데 또 잊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밖에 나가면 ‘돈을 벌어야지’ 하고 속입니다. 사실은 돈 벌 길이 여기 있는줄 모르고 자꾸 잊어 버립니다. 이게 마귀 전략입니다. 이래서 또 몽땅 잊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도 답답해서 창 12:1-10에 보니까 아브라함을 보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몽땅 우상에 또 빠져 버렸습니다. 사단에게 또 빠져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피를 또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데리고 나왔습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만 모르면 됩니다. 여기서 못 빠져 나와 버리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생명만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생명의 피입니다. 피, 이 안에 사업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다 들었는데 모르도록 자꾸 만들어 버립니다. 또 잊어 먹도록 합니다. 사단의 능력은 대단합니다. 몽땅 잊어 버리도록 합니다. 하나님이 이 사실을 아니까 이제는 출애굽을 시키십니다. 애굽에 들어가 실컷 고생시키고 끄집어 냅니다. 딱 나올 때 하나를 가르치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 피를 바른 그날에 바로왕은 무너지고 애굽은 무너져 빠져나온 것입니다. 실컷 고생시키면 안 잊어 먹을 것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피재앙, 개구리 재앙,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하나만 됩니다. 피 바른 날, 애굽의 모든 장자는 사망하고 바로왕은 손을 든 것입니다.
마귀가 언제 손을 드는지 아십니까 바로 알아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그때 손을 드는 것입니다. 알았습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것처럼 보이죠 모릅니다. 얼마만큼 모르느냐 전도면 다냐 그럽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수준을 높여 전도하자 그럽니다. 그만큼 그리스도에 대하여 모릅니다. 이건 수준과 다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빨리 나와야지 무슨 수준을 따집니까 안 그래요 빨리 줄을 던져 끌어내야 합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데 공자,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하다가 빠졌느냐 왼발부터 빠졌느냐 오른발부터 빠졌느냐 다 헛소리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의 목탁을 두드려도 헛소리입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힘센 사람 누군가 들어가 건져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줄을 잡을 힘도 없습니다. 내려가 끌어 올려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사단의 손에서 빠져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수준이 없습니다. 잊어먹지 말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그리고 마지막 더는 안 잊어먹도록 홍해를 통과시켰습니다. 홍해도 피바른 사람이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짐승도 사람도 피를 바르지 못하면 다 죽는 것입니다. 그날 바로왕과 애굽의 전 군인이 장사됩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또 잊어 먹습니다. 이게 사단입니다. 바리새 사상으로 꽉 들어찬 사람들이 유대인입니다. 이게 무서운 사단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보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단에게서 못 빠져 나오도록 율법으로 얽매이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마음 속은 마귀가 준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니까 바리새인들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단이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단에서 빠져 나오는 길은 믿음이다. 행위가 아니다’ 하니까 예수님 보고 이단이라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부 행위를 주장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걸 다 알아도 피만 모르면 마귀는 되는 것입니다. 아리우스라는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과 하나님과는 삼위일체가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왜냐 그래야 예수 영접 안해 구원을 못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좌우지간 수준은 높은데 생명만 없애는 것입니다. 아리우스는 요즘 여호와 증인과 같습니다.
여호와 증인은 착합니다. 다른 것은 다 하면서 하나만 부정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여러분을 멸망시킵니다. 사단이 전부 못 빠져 나오도록 합니다. 그래서 피, 이 사실 하나만 알면 여러분은 문이 다 열립니다.
오늘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로 알고 구주로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 속에 성령이 역사하게 됩니다. 그때는 힘이 생기고 응답이 오고 여러분에게 자꾸 축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2.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21절 말미에 .....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23절에도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
으니(요 1:1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8:44에 불신자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는 마귀다’ 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불신자들은 마귀에게 예배합니다. 굿하고 점하고 부적 사다 붙이고 마귀가 원하는 대로 시키는 대로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자녀된 자가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22절에 예수님은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이게서 남이니라’ 하셨습니다. 불신자들은 자신이 섬기는 신앙의 대상이 마귀라는 사실을 모르고 섬기고 있습니다. 마귀는 인간에게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 것이 아니라 너 스스로 하나님 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인간의 교만을 부추켜 스스로 하나님 되게 하거나 종교를 만들어 버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에는 알지못하는 신을 섬기는 장면도 나옵니다.
불신자들이 더러 억지로 교회에 끌려 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만나는 것. 그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보지 말고 드려야 한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나의 찬송, 기도, 물질 등을 믿음으로 드리며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이지 참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배라는 영어 단어 ‘worship'이라는 말에는 ‘하나님을 뵙는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에서는 이 말도 대단히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는 길 예배를 마귀는 자꾸만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고, 참석해도 형식적으로 드리게 하고, 졸음을 통해서 말씀과 은혜를 받지 못하게 역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예배이기에 어떤 이유에서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은 마귀가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참석해서도 은혜받지 못하도록 졸립게 하고, 잡념을 가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사적으로 예배 참석하는 일에, 은혜받는 일에, 하나님 만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를 살려주신 아버지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축복하시는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물고기가 물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저주받은 인생이 영원한 사랑의 아버지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멀리 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며, 우리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예배의 장소와 시간이 중요합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자 예배의 장소를 물었습니다.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침략한뒤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피가 섞였습니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을 이방인과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와서 예배하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 따돌림을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심산에서 드린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배를 예배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불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선지자로 깨닫고 수가성 여인은 제일 먼저 질문을 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요 4:21)”
이 질문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여기 이 장소에서만 드려야 된다는 유대인들의 말과 하나님은 모든 장소에 다 계시니 아무 데서나 예배를 드려도 된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말은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다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여기, 혹은 저기 장소나 교단, 교파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무 곳에서나 다 드려도 된다는 그런 말은 아닙니다. 먼저 장소의 문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어떤 목사, 어떤 교회, 어떤 교파에만 구원이 있는 양 말하는 것은 철저하게 잘못입니다. 구원은 어떤 목사, 어떤 교회, 어떤 교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매주 화요일 제가 천안에서 3개 다락방을 인도하는데 오후 4시에 다락방에는 강진순 집사라는 분이 혼자 참석합니다. 시온교회 목사님이 우리 교회 사명자인데 그 시간밖에 안되니까 혼자라도 해달라고 부탁해서 하고 있습니다.
이분이 남편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남편이 총각일 때는 청주 신흥성결교회 청년회장까지 했던 사람인데 부인이 감리교회에 나간다는 이유로 교회출석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성결교회로 옮긴다면 교회를 나가겠다고 말을 한답니다. 남편과 가족들이 성결교회로 옮기도록 핍박을 하니까 이분이 그럴까 하는 생각으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분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건 성결교 감리교 장로교 교파를 믿어서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교파도 믿어서 구원받을 교파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남편의 문제는 교파의 문제 이전에 구원을 받았는지의 유무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이 교회를 버리고 성결교회로 옮긴다면 그것은 이 교회와 이 교회 목사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교회에 대한 목사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그러므로 절대 떠나면 안됩니다.”
예배는 이곳에서도 가능하고 저곳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이곳을 무시한 저곳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모든 곳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교파, 사람, 교회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곳을 부정하는 저곳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지곳을 부정하는 이곳도 잘못입니다. 타 지역으로 이사를 한 사람에게 자기 교회를 계속 출석하도록 요구하는 것도 잘못되었습니다. 이사한 그 지역의 교회도 하나님이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보편적 구원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는 바로 이때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을 다음으로 미루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마땅히 할일임을 인정하면서 다음으로 미루는 일은 치밀한 마귀의 작전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장소와 시간은 여기 이 시간입니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장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선 자리. 몸담고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은 이 다음이 아닌 지금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4.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 4:23-24)’
①신령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만을 받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속에는 성령이 내주하게 됩니다. 믿는자의 예배만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만을 열납하십니다. 불신자들은 예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없이 바리새인이 드린 숱한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였기에 하나님은 하나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시는 예배만을 받으십니다.
②진정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예배에 있어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과 태도의 문제입니다. 우상을 하나님 섬기듯 하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섬기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진정이란 자신이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정은 마음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최선의 예배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영이 통하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롬 10:10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셨습니다.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임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반대로 마음을 마귀가 주장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참된 지식을 가지고 드리는 최선의 예배가 아니면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고 그 예배는 마귀가 가로채는 것입니다. 예배의 성공과 실패가 창세기 4장에서 얼마나 큰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의 예배, 성령 안에서 최고의 정성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시간 예배하는 여러분, 어떤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말씀에 기초해서 예배의 삶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예배, 단순히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내 신앙, 내 삶의 기초 뿌리가 달린 문제입니다. 내가 예배를 소홀히 여긴다면 나의 구원 유무까지 되돌아 볼 만큼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삽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그렇게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대지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같이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게 우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 예배입니다.
마귀는 그 비밀을 알기에 결사적으로 예배를 막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예배를 잃으면, 하나님 만나는 길을 포기하면 개인이 망합니다. 가정이 망가집니다. 사회가 무너집니다. 국가가 위태롭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예배의 성공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기억해서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 그가 주시는 축복과 은혜의 삶을 누리십시오.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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