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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편에 설건가? (왕상 18:3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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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듯한 폭염이 연일 계속 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비가 오지 않아 물난리를 겪고 있습니다. 지하수를 파고 물줄기를 논밭으로 끌어들이고자 농부들은 밤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매스컴에서는 목타는 농민들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할 일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과연 얼마나 가뭄 해소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가뭄은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셔야만 끝이 납니다. 우리는 그렇게 믿어야 합니다. 엘리야처럼 하나님이 비를 주실 것을 믿고 끝까지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폭염 때문에 창문에 설치한 모기장이 망가졌습니다. 본드가 녹아 모기장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보기에 흉했습니다. 차라리 없애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없애 버렸습니다. 저희가 이 건물에 6년 동안 입주해 있으면서 이런 더위,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입니다.
더위, 가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시간들입니다. 여름은 무더위가 있기는 하지만 한차례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가 있을 때 제맛이 납니다. 여기 저기 약간씩 비소식이 있지만 그래도 가뭄 면적이 늘어만 간다는 소식들이 우리를 더욱 갈증나게 합니다.
어느 교단에서는 이번 주간을 ‘엘리야 주간’으로 선포하고 전교인이 비오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 행여 우리가 그릇 범죄한 일이 없는가 살펴보고 하나님께 돌아와 어려운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어떤 일을 만나도 늘 기도하는 것,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은 6월부터 9월까지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고 10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약간의 비가 내릴 뿐입니다. 일년 강수량이 600㎖ 안팎입니다. 이런 땅에 3년 반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의 고통이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 문제는 왜 생겼으며 어떻게 해결되고 극복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떠난 불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혹독한 수십년 만의 가뭄을 앞에 두고 엘리야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단지 목타는 대지의 목마름 만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삶의 원리를 같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인간의 고통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시작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 순서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축복의 조건 위에서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하나님 안에 살며 하나님의 은혜를 야곱처럼 간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아합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독한 왕으로 철저하게 하나님을 떠났던 왕입니다. 그는 남왕국 20명, 북왕국 19명 왕중에 가장 악독한 왕으로 일컬어집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잘 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개인이나 가정 국가가 잘 되는 법이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삽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축복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살 수 없습니다.
이디오피아, 소말리아, 르완다, 루마니아 등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신앙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근을 그 땅에 내리신 것입니다. 오늘 인간의 모든 고통과 비극은 하나님을 떠난 결과입니다.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왕상 17:1)”
“저가 대답하되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을 좇았음이라(18:18)”
아합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 땅에 3년 반 동안 우로를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한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고, 밤에는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만큼 인간은 손해입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남으로 쥐엄 열매도 먹지 못하는 기근이 왔습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고, 포도나무를 떠난 가지가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축복의 회복은 인간의 노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감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여러분의 육신이 아닌 여러분의 마음이 어느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의 보좌에 누가 자리하고 있습니까

2.불신앙은 하나님의 심판을 더욱 가중시킵니다.
바알 신상은 남자 성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아세라 신상은 여자 성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종교들은 성교를 통해 농산물의 풍요를 비는 우상종교입니다. 갈멜산상에서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목상을 섬기는 선지자 400인과 숙명적인 대결을 벌입니다.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엘리야의 승리, 아니 하나님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①우상은 소리 높여 외쳐도 아무 응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엘리야와 우상숭배자들은 나무 위에 송아지를 잡아 놓고 각자 자기 신에게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850명의 우상숭배자들이 바알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한낮이 될 때까지 외쳤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너희가 믿는 신이 묵상을 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 ” 하며 놀렸습니다. 조급해진 우상숭배자들은 그들의 규례를 따라 칼과 창으로 찌르면서 저녁까지 부르짖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우상은 불러도 이름없는 이름입니다. 그 우상 앞에 한나라 왕이 수많은 백성이 현혹되어 재앙을 불러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를 때에 여기있다 응답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②불의 응답은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은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일년을 통해 평균적으로 600m 안팎의 비가 내릴 뿐입니다. 그 땅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으니 얼마나 고통이 심했겠습니까 그런데 불의 응답을 위해 기도하는 엘리야의 모습을 보십시오. 우상숭배자들이 온종일 외쳐도 불의 응답이 없었는데 엘리야는 불과는 상극인 물을 네통씩 세번 12통을 번제단 위에 부었습니다. 물이 단에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 ....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 (왕상 18:36-37)”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어 그 불이 번제물을 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불이 내려서 나무와 돌, 흙과 도랑의 물을 태워 버렸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3년 반 동안 우상숭배의 결과로 비 한방울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땅에 과연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 황폐한 땅이 그 혹독한 저주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으면 마른 땅에 불을 내리듯 쓸어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재앙에 재앙을 더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 거덜났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그것까지도 하나님은 끝장을 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가장 미워하십니다.
우상숭배를 깨버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3년 반 동안 비 한방울을 내리지 않고 저주하실 만큼 우상숭배를 미워하십니다. 불의 응답 후에 엘리야는 우상숭배자 850인을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고는 기드론 시내로 끌고 가서 거기서 다 죽였습니다.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입니다. 우상숭배는 마귀와 통하는 가장 밀접한 길입니다. 고통과 저주의 지름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버리도록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저주,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두려워 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남으로 만난 오늘의 고통은 돌이키지 않으면 지금 현재의 고통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입니다.

3.하나님은 순식간에 모든 저주를 회복시키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말이 3년 반이지 저주와 고통의 시간은 길고도 긴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은 다같은 시간이 아닙니다. 행복한 시간은 어쩐지 짧게만 느껴지고, 저주와 고통의 시간은 갑절이나 길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 길고도 길었던 가뭄의 시간이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자들을 다 처단하고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 백성들이 외치고 엘리야가 기도할 때 끝나 버렸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할 때 소낙비가 쏟아지고 그 비는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그 마른 땅을 해갈시키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지극히 짧은 순간에 모든 것은 회복되어 버렸습니다. 저주와 고통은 길고 길었지만 회복은 순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건천(乾川)이 있습니다. 일년 내내 비가 내리지 않다가 일시에 많은 비가 쏟아질 때 홍수로 범람하는 물로 인하여 생겨진 하천입니다. 일년 내내 메마른 땅을 물로 가득 채우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순간이면 됩니다.
여러분, 길고 지루한 시간들을 하나님을 떠나 무지개를 찾고 행복을 얻기 위하여 방황했다면 이제는 하나님께 돌아 오십시오. 하나님이 순간에 여러분의 삶을 행복으로 돌려 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천연 조건이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땅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땅입니다. 우리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되겠습니다.

4.하나님은 기근 때에 주의 사람들을 축복으로 돌보아 주십니다.
-주는 나를 기르시는 목자요 나는 주님의 귀한 어린양 푸른 풀밭 맑은 새냇물
가로 나를 늘 인도하여 주신다. 주는 나의 좋은 목자 나는 그의 어린양 철을
따라 꼴을 먹여 주시니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
453장 찬송처럼 아버지 되신 하나님, 목자되신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양들을 먹이고 입히십니다. 그 혹독한 기근의 때에 주의 백성들을 어떻게 먹이고 입히셨을까요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왕상 17:6-7)”
엘리야는 아합의 범죄를 인하여 하나님이 그 땅에 수년간 비를 내리지 않을 것임을 경고하였습니다. 화가 난 아합은 엘리야를 잡아 죽이고자 했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내가로 숨기시고는 까마귀를 통해 먹이셨습니다. 오랫 가뭄으로 인하여 그릿 시냇가에 물이 마른 뒤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르밧의 과부를 통해 그를 먹이셨습니다. 마지막 끼니로 먹고 죽으려고 하는 양식으로 엘리야를 먹이셨습니다. 또 엘리야를 공궤하였던 그 가정은 기근이 끝나는 날까지 가루통에 가루가, 기름병에 기름이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도 여전히 믿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아합의 궁내대신 가운데 오바댜가 있었습니다. 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바댜는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 하나님을 섬기는 선지자 100인을 오십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였습니다. 오바댜가 한일이라기 보다는 오바댜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오.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엘리야를 먹이셨듯이, 사르밧 과부의 가정을 축복하셨듯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의 자녀를 먹이십니다.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그 넓고 깊은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말씀의 결론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불어 버리면 설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놓고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 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 18:21)”
천국과 지옥, 축복과 저주 바로 이 신앙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구를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주의 백성은 아무리 큰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오늘 그들이 당하고 있는 현실의 고통보다도 더 큰 고통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그 혹독한 기근의 때에 알뜰하게 엘리야를 먹이시던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100인의 선지자를 오바댜를 통해서 먹이시던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오. 엘리야가 낙심할 때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000인을 남겨 두었다며 위로하시던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오.
온종일 바알에게 머리 숙이며 그 이름을 소리 높여 외쳤던 우상숭배자들의 비참한 최후를 잊지 마십시오. 의로운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았을 때 그의 핏소리를 들으시고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그 자리에서 이세벨의 생명을 거두신 하나님의 심판을 잊지 마십시오.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에서 아합의 생명을 끊으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어느 편에 설 것입니까 어느 길에 서겠습니까
찌는 폭염, 타는 목마름, 인생의 고통의 순간에 여러분은 왜 머뭇거리고만 있습니까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영원한 삶을 결정해 줄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 축복과 저주를 선택에 따라 가져다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삼상 2:10)”
여러분 앞에 길이 있습니다. 주의 길을, 엘리야의 길을 여러분도 선택할 수 있기를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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