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 힘을 얻으리라 (사 40:27-31)

첨부 1


현대는 강한 것을 좋아하는 시대입니다. 약한 것은 사람이나 물건이나 관계없이 무시되고 대우받지도 못하고 인기도 없습니다. 모 가전제품 회사에서는 강한 제품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탱크주의를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TV에서 어느 회사의 작은 승용차가 육중한 트럭을 끌고 가는 장면을 봅니다. 강함을 요구하는 구매자들의 욕구에 잘 부합하는 광고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해 키가 크고 몸집이 커졌지만 체력은 전체적으로 약해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의 육체적 노동도 견디지 못하고, 뙤약볕에 몇 분만 서 있으면 쓰러지는 사람들이 속출합니다. 마음은 또 얼마나 약해졌습니까 부모님에게 야단 맞았다고 해서 자살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결혼의 굳은 서약을 한 부부가 작은 것도 이해하고 양보도 하지 못하고 갈라서는 모습도 봅니다. 체력이나 의지력, 신앙심 모두가 너무나 나약해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평가하십니까
강하다고 본다면 당신은 교만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약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교만도 나약함도 다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나약한 자’이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강한 자’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자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자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중구조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날마다 새 힘을 얻으며 승리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세상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그렇습니다. 강력한 신앙만이 모든 삶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힘을 얻기보다는 잃어가고 있습니다. 팔팔 힘이 넘치는 사람보다는 시무룩하게 풀이 죽어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또 어떻게 그와 같은 무력함은 극복될 수 있을까요
말씀을 통해 힘과 용기 희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비결들을 얻으시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는 새 힘을 얻을 수 있을까요

1.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신앙을 가질 때 새 힘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야곱아, 이스라엘아 부르고 계십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같은 이름입니다. 간교한 사기꾼 야곱이 변하여 새 사람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또 그 이름은 야곱이라는 한 개인을 떠나 믿는 성도 개개인을 가리키기도 하고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과 전체 성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야곱이 변하여 분명히 이스라엘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신앙을 떠나 방황할 때는 “너 지렁이 같은 야곱아!”라고 다시 부르십니다.
지렁이는 어둔 땅을 열심히 헤집는 연체동물입니다. 지극히 미천한 보잘 것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더러 야곱을 그렇게도 부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야곱으로 불리울 때는 분명히 그의 신앙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때입니다. 베드로도 낙심했을 때 과거의 이름으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부르시기도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거리가 멀다고 느껴질 때 그 원인은 나에게 있습니다.
멀어지는 것은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 자신은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가까워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부르신다면 여러분의 이름은 야곱입니까 이스라엘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마귀는 불신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함께 하시며 부르십니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사 41:14)”
지렁이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 해도 너를 도울 것이라 하십니다. 내가 너의 구속자라 말씀하십니다.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이 수도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8)”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믿는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잘못하고 범죄했어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힘을 잃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여러분이 동행하십시오. 동거하며 동역하십시오. 그러면 힘을 얻습니다.

2.능력의 하나님을 확신할 때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 대하여 확고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신이 믿는 바가 흔들리면 불안합니다. 자식이 볼 때 부모가 미덥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서로 바라볼 때 미덥지 못하면 불안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는 비교도 안될 만큼의 엄청난 것들을 쌓아두고도 불안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땅, 그 엄청난 재물, 그리고 사회적 신분과 명예를 가지고도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믿고 의지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이 되지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게는 변하지 않는 불멸의 대상이 믿음의 대상으로 남아야 합니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 40:27)”
이사야의 책망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신앙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은 함께 하시며 보고 듣고 계시는데 내 사정은 하나님께 숨겨졌고 나의 원통함이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껴졌을 때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안은 어디에서 옵니까 불신앙에서 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사 40:28-29)”
그는 창조주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를 믿으면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힘을 얻습니다. 그는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고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불안한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이 흔들려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심, 신실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내용대로 믿음의 분량만큼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연약한 인생, 불행과 고통 속에 허우적거리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능력자 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십시오. 그의 능력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어느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중간쯤 왔을 때 태풍이 불어와 배는 흔들리고 물은 배안까지 밀려들어 왔습니다. 제자들은 죽겠다고 소리칠 때 예수님은 뱃머리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사색이 되어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예수님은 성난 바다를 향하여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막 4:39)”
바다는 일순간 잠잠해졌습니다. 풍랑이는 바다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문제가 아닙니다. 불같은 시험, 산 같은 장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라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 안심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면 그의 능력을 확신하면 우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여호와를 앙망하는 자가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자도 한계는 있기 마련입니다. 약한 자의 한계는 일찍 오고 강한 자의 한계는 남보다 더디 올 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사 40:30-31)”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한계가 없습니다. 한계를 극복하고 또 극복하고 그 이상의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계속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사철 푸른 나무를 가리켜 상록수라 합니다. 신앙은 그래야 합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사철 푸른 상록수의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레바논의 백향목을 가져다가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백향목은 하늘로만 향하여 끝없이 자라가는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늘 푸르고 시들지 않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만을 향하여 나아가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상록수의 신앙, 백향목의 신앙은 여호와를 앙망함으로 가능하고 그와 같은 사람은 매일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앙망이라는 뜻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우러러 보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자가 축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사모함이 있습니까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니이다(시 42:1)”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시 130:6)”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과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집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하늘과 땅과 만국을 진동시키사 도와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은 내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고백하는 자에게는 당신의 모든 사랑을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십니다.
신앙 때문에 울고 신앙 때문에 웃는 사람에게 주님은 축복하십니다. 주님 때문에 살고 주님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사람을 주님은 축복하십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 이것이 여러분이 새 힘을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화 한 가지를 듣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지난 해 향군종 훈련에 들어갔을 때 부대장의 간증을 들었는데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소대장 시절 그는 월남전에 참전해서 싸웠습니다. 당시 월남은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인지를 모를 만큼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아군 지역과 적군 지역이 특별하게 구분지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대 주위에는 철조망 울타리를 치고 지뢰밭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부대 근처에는 가난한 월남 어린이들이 자주 와서 구걸을 했습니다. 과거 미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나라 군인들은 아이들에게 울타리 너머로 과자, 사탕 등을 던져 주었습니다.
어느날 작전에 참가했다가 돌아와 부대에서 축구 시합을 하고 있는 ‘펑’하는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소리나는 곳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철조망 지뢰밭에는 군인들이 사탕과 과자를 던질 때 넘어가지 못하고 떨어져 있는 것이 많이 있었는데 한 어린 아이가 그 과자를 먹고 싶어 철조망 밑을 파고들어 온 것입니다. 과자를 집으려는 순간 지뢰가 터져 아이의 다리가 끊겨 나가고 피흘리며 아이는 사색이 되어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사단장이 오고 의료진이 달려 왔습니다. “빨리 들어가 저 아이를 구해와” 사단장은 명령했지만 그러나 누구도 지뢰밭에는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자칫하면 자기가 죽을 판이기 때문입니다. 마침 지뢰 탐지반은 작전에 투입되고 부대에는 없었습니다. 아이는 죽어가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술렁이고만 있었습니다.
이 때 군인 하나가 달려왔습니다. 상황을 감지한 그는 지뢰밭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가 아이를 안고 나왔습니다. 바로 그 부대의 군목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목사님으로 인하여 생명을 구했습니다. 이 소대장은 그 때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사선을 넘나드는 수많은 전투를 했습니다. 자기는 누구 못지않게 용기있는 용감한 군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생명을 위하여 생명을 걸어야 할 순간에는 뒤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강하다고 자부해왔던 그는 목사님의 신앙의 용기에 탄복했습니다.
불신자였던 그는 그 군목의 용기가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했습니다. 결코 그것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으로만 가능했던 용기였습니다. 그후 불신자였던 소대장은 하나님을 믿게 되었고 작년에는 대령으로 진급하여 그 부대의 부대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얼마 있으면 자신은 별을 달고 장군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에게 군복을 벗고 주의 종이 되라고 강권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그 어린 아이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목사님과 같은 목사님이 되기 위해 군복을 벗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빛나는 장군의 계급장보다 귀하고 땀에 찌든 평생의 군복보다 더 자랑스럽고 소중한 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빛나는 계급장도 장군이라는 호칭도 버리겠다는 그 부대장 앞에 우리는 아낌없는 찬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자리에는 천주교 신부도 있었고, 불교계의 스님도 있었지만 모두 한마음되어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진정한 힘은 끊임없는 용기는 신앙에서만 나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을 통해서만 날마다 새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삽니다. 강해야 삽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하십시오. 날마다 여러분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마음 중심으로 주님을 사랑하시고 여호와를 앙망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힘있게 살 수 있고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넘치는 성 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넘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