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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개혁하는 신앙 (롬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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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아니면 불행 속에서 행복을 원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오늘 어떤 위치에 있든 관계없이 행복은 모든 인간이 다함께 소원하는 똑같은 공동의 목표입니다.
왜 사느냐 물으면 사람마다 행복하고 싶어서라고 말합니다. 행복을 위해서 돈을 벌고, 행복을 위하여 공부도 합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습니다. 행복하기 위하여 고난도 참고, 어려움도 인내합니다. 그러나 행복을 위하여 그 숱한 일들을 다 해보았으나 결론은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또 어떤 노력들을 하고 또 얼마나 애를 쓸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영원히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이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면 그들은 “나는 지금 이 문제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없었던 과거에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그 문제가 해결된 미래 어느 시간에도 그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그는 그 문제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사람을 찾아가 “행복하시죠” 물어보면 “아니오”라고 말을 합니다. 실상 그는 우리보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상황 때문에 불행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인간은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만나고 있는 불행의 모든 조건들은 하나님을 떠남으로 생겨난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아무리 주변상황을 바꿔가며 행복을 찾아보아도 그는 여전히 행복하지 못합니다.
엄마 떠난 아이는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서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나님을 만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물을 떠나 죽어가던 물고기가 물로 되돌아온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있는 우리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문제가 없어야 하고 문제가 극복되어야 하고 우리는 행복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여전히 불행과 고통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원인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구원 얻은 신분으로 구원 얻은 자답게 나를 바꾸는 개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살 때 가졌던 의식과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해 신앙생활을 하면서 상황을 아무리 바꿔도 행복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스스로를 바꿔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뜯어고치는 신앙개혁을 이루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예수 믿으면서도 내 마음대로 내 형편대로 신앙생활을 해 왔다면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는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자기 수정, 자기 개혁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도 더 큰 불행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종교 개혁 477주년을 맞는 뜻깊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에는 3대 원리가 있었습니다. 이 종교 개혁의 원리를 따라 다시 한번 신앙의 개혁을 이루어야 할 때라 생각되어집니다. 말씀을 듣고 그 깊은 의미를 깊이 생각하는 하는 가운데 신앙이 달라지고 삶이 달라지는 축복이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오직 믿음(Sola Fide)
구원의 길은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얻는다’ 이론적으로는 쉽게 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도들의 신앙의 구조를 보면 이 원칙에서 많이 빗나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율법주의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해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있을 때에 갈라디아 교회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의 신앙이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믿음으로만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고 구원함을 얻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갈라디아를 떠난 뒤 예수님을 믿었어도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유대주의의 주장이 들어와 교회를 어지럽혔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도 믿고 율법도 지키면 더 완전하게 구원을 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 때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9)”
구원 얻은 자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을 얻은 자로서 그 은혜가 감사하여 지키는 것입니다. 감사하여 지키는 것과 구원을 위한 조건으로 지키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은 율법으로 구원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얻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부인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비록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루터가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길을 가다가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나무 밑으로 피했는데 벼락이 떨어져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충격을 받고 수도사가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카톨릭 교회의 교훈을 따라 고행과 선행에 힘썼지만 도무지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도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번민 속에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를 가르치며 연구하던 중에 로마서 1장 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읽고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 이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첫 번째 원리가 되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 요한 웨슬레는 목회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습니다. 그는 얼마나 엄격한 신앙생활을 했는지 모릅니다.
19형제 중에서 15번째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무릎에서 기도를 배웠습니다.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외우고 배운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쳤습니다. 옥스포드 대학에 다닐 때는 신성구락부를 조직하여 실천하는 신앙에 힘썼습니다. 12명의 멤버가 너무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함으로 별명이 붙었는데 바로 메도디스트(methodist)란 말입니다. ‘규칙쟁이’라는 말입니다. 후일에 감리교의 명칭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신앙생활을 했으나 웨슬레는 구원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없었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케이트 거리의 모라비안들이 모이는 기도회에 나갔을 때 사회자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는 것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중생을 경험한 것입니다. 성령체험을 하고 난 뒤에 요한 웨슬레는 영국 전역을 돌며 평생 전도하여 20만 이상의 영혼을 주님께 돌아오게 했고 18세기 타락에 빠진 영국 사회를 구원하였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루터를 변화시켰고 요한 웨슬레를 사로잡았습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도 이 방법으로 구원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믿음이 우리를 살려주셨다는 뜻입니다. 또 이 말씀은 구원 얻은 자들은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삶의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얻은 자들입니다. 구원 얻은 자는 우상도 버리고, 자기를 믿는 신념도 버리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오직 믿음으로만 살리라” 귀한 결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루터와 우리 신앙개혁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2.오직 성서(Sola Scriptural)
올바른 진리의 가르침은 오직 성경밖에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이성의 눈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난도질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에 의하여 인간이 쪼개져야지 합니다. 모든 믿음의 내용은 바로 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죄와 죽음 가운데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주신 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기록된 대로 말씀에 순종할 때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3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있다” 말씀했습니다. 인간은 죄인인지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지키라 하신 것은 지키기 싫고 하지 말라 한 일은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부인하며 오직 성서의 가르침만을 따라야 합니다. 내가 볼 때 아무리 옳아도 하나님이 틀렸다면 틀린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거부하면 멸망합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령하셨을 때 불순종하여 먹었을 때 찾아온 결과가 사망이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말씀대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말씀을 듣고 안 듣는 것은 죽고 사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성경말씀대로 믿어야 합니다. 생명과 사망이, 축복과 저주가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이 성서의 가르침만을 따라야 합니다. 성경이 가라는 곳으로 가고 서라는 곳에서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 22:18-19)”
그런데 천주교는 성경 외에 신구약 성경 외경을 추가하여 정경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와 교황의 무오설을 주장하고 그들의 중보를 주장합니다. 십계명을 변개시키기도 했습니다.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라며 기독교인들에게도 제사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면죄부를 판매하여 죽은 사람의 죄도 그 표로 사해진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성경대로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더하지도 빼지도 말아야 합니다. 유대교는 구약성경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합니다. 통일교에는 원리강론이 있습니다. 몰몬교에는 몰몬경이 있습니다. 안식일교는 화이트 여사의 저서를 성경과 같은 내용으로 인정합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경화하고 성경을 보조자료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두 잘못된 이단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믿을 때 구원을 주시고, 말씀대로 살아갈 때 축복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믿고 지킬 때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오늘까지 내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돌이켜 회개하여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수 1:7)”
성경에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면 안됩니다.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의 설교 패턴은 ‘성경에 이르기를’입니다.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는 바를 전하니까 수많은 영혼들이 그의 설교를 듣고 예수님께 돌아왔습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성경이 말한 것을 좇아가야 합니다. 세상 이론과 성경이 다르면 세상 이론이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성경적인 방식대로 생각하고, 성경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성경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이 시간부터 수정하기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이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지 않았는데 축복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준 축복이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축복하셨다면 하나님도 성경도 다 틀린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과 성경은 틀릴 수 없습니다.
믿는 자의 삶의 원리는 오직 성경입니다. 그 말씀을 내가 쪼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쪼개져야 합니다. 성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틀린 것입니다. 성경에 맞게 나를 고치는 것 개혁하는 신앙의 두 번째 원리입니다.

3.오직 영광(Sola Gratia)
이사야 43:7에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 목적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2:8에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
인간은 저마다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자기 영광만을 구한 사람들의 최후는 얼마나 비참합니까 평생 영광을 얻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한 자들이 대부분이고, 얻었어도 그것으로 인하여 그들의 마지막은 더욱 비참했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집니다. 이 땅 위에서의 잠시 영광을 위하여 욕된 이름을 남겨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의 영광을 취하면 타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가면 하나님이 그를 높여 주십니다.
자기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을 대적한 천사는 마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에게는 사망이 왕노릇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 영광을 위하여 달음박질하지만 그 결과는 불을 본듯 뻔한 것입니다.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안 게임에서 수많은 예수님을 믿는 선수들이 승리 뒤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텔레비젼 화면을 통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뛰었더니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고, 자기도 영광을 받았습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한국 여자 배구가 중국을 꺾고 4강에 올랐습니다. 여자팀 감독이 광림교회에 나가는 김철용 집사입니다. 그는 모든 선수를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아시안 게임의 신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다시 세계 선수권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뛰고 있고 또 기적을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잘못된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합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롬 1:23).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영광입니다. 이사야 60:19에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하셨습니다. 시편 16:9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에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피로 값주고 사신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것이 내가 사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은 이 목표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가 되지만 겸손은 끝없는 행복을 보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희생함으로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더러 주일에 이런 일을 해도 되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이런 일을 기독교인이 해도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러나 답은 간단합니다. 신앙양심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하십시오. 그러나 아니라면 포기해야 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개혁하는 신앙의 세 번째 원리입니다.
천주교는 개혁을 포기했습니다. 그러므로 개혁하는 신앙을 부르짖으며 개신교가 탄생한 것입니다. 잘못된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이만하면 됐다 고집하며 개혁을 포기하면 성도도 버림받게 됩니다.
내가 바뀌면 상황도 바뀝니다. 언제나 문제는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의 삶에 만족하십니까 아니라면 그 불행과 불만의 원인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도의 삶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나 그 원인은 내 신앙의 태도에 있습니다. 나를 바꿔야 합니다. 내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또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상황을 바꿀 힘은 없지만 나는 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신앙개혁의 원리를 좇아 바뀌면 하나님은 나의 삶의 상황을 바꿔주실 것입니다. “오직 믿음! 오직 성서! 오직 영광!” 우리가 이루어야 할 신앙개혁의 방향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은 날마다 죽고 날마다 다시 사는 신앙 개혁의 축복된 삶을 누렸습니다. 날마다 죽고 날마다 부활하는 신앙의 개혁, 저와 여러분이 축복 받으며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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