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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겟세마네동산의 예수님 (마 26:36-46)

첨부 1


인류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몸부림의 현장이 바로 겟세마네의 동산이다.
예수님의 제자 마태는 예수님의 고민하시고 슬퍼하시는 모습의 현장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마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쌔 고민하고 슬퍼하사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당대의 의사였던 누가는
(눅22: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이 우리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통
하여 주님의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1.왜 주님이 이 고난의 아픔을 느끼시는가1)죄없는 주님이 죄짐을 지시는 고통이 너무도 크기에 그렇다.
원래 주님은 흠도없고 죄도 없이 하나님의 성품 그 자체대로 신적 성품을 가지고 이땅에 오셨다. 모듬 인
간은 죄인이지만 주님은 그 속에 죄악의 유전의 피를 받지 않으셨다. 때문에 사람에 의해서 잉태된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동정녀로서 아주 순결한 마리아의 몸을 사용하셔서 잉태가 된 것이다. (마1:18,20)
히브리서기자히4:15-“저는 모든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죄는 없는 분이시니라” 고 했다.
예수님 자신도 요7:18에서 나는 참되니 불의가 없느니라. 고 하셨다.
당대의 로마의 군대 지휘관으로서 백부장 이었던 사람도 십자가에서 수난을 당하신 그 현장을 목격하고 그 주변의 상황을 지켜본 진심의 고백은 “이사람은 정녕 의인 이었도다”라고 감탄을 했다.(눅23:47)
바울선생은 예수님을 일컬어서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한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다” 고 고린
도후서 5:21에서 언급을 했다
2)온 인류의 죄악의 짐이 너무도 가중하여 그 짐을 지시려니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베드로는 (벧전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이사야 선지자는 일찌기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 하기를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53:8)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니 그 세대중에 누가 생각 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3)하나님의 공의의 형벌이 지엄하시기에 그 공의를 실천함이 어찌그리 쉽겠는가
바울선생은 로마서 6:23에서 죄의 값은 사망임을 깨닫고 선포한다.
에스겔도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범죄하는 영혼마다 죽느니라“고 겔18:20에서 선포한다. 여기에서 죽는다
는 말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 영혼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무서운 형벌을 받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무서운 벌을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지시게 된 것이다. 때문에 바울선생은 당당히 선언을 한
다. (롬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롬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 주님의 애절한 기도의 모습을 보라
마태의 기록을 보면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누가는 예수님의 기도의 모습을 묘사하기를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우리는 여기에서 두가지의 사실을 발견하게된다.
①고뇌와 슬픔의 지대함을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서서”!
이 잔이 무엇인가
이 잔은 십자가의 무서운 고통이다.
피 흐르는 고통
극심한 갈증 속에서
주님은 아 목마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다.
내가 흘려야 할 그 피를
내가 목 말라야 할 그 갈증을
나의 허물 때문에
주께서 상 하셨다고 이사야는 선언한다.
우리는 이제 주님 덕분에 평화를 얻었고,나음을 입었고 갈증을 해소 했고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으니
예수님이 얼마나 고마운가
②예수님의 겸손한 기도의 모습을
③기도의 지극한 간절함을
④사역에 대한 수행을 담당키위한 결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3.겟세마네의 주님의 모습은 주님의 위대한 순종의 결단이 있음을 발견하게된다.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세번에 걸친 기도속에 나타난 결론은 아버지의 뜻을 순종하는 것 이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6:42) 다시 두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마26:44)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자신의 고통도
수치스러움도
아픔도
누명을 쓰고 , 멸시를 받아도 오직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 진다면 기꺼히 죽겠다는 것이다.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결론:주님께서걸어가신 이구원의 길이 우리에게는 생명의 원컨이 되었다.
바울은 그래서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고백을 한다, 왜냐하면 이십자가가 생명이기에...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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