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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사신 주의 명령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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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95년 신년이 밝았습니다. 새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 마음, 새 각오로 새롭게 시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후에 어떤 분은 도대체 해가 바뀌어 신년이 되고, 나이 한살 더 먹고 했다는 것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달라졌습니다. 느끼고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여야 합니다.
시간, 신분, 장소의 변화가 왔으면 그 모든 조건에 바르게 대처하는 마음의 새로운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와 같은 사고방식, 생활양식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95년 새해를 맞이해서 우리가 가슴에 품어야 할 비젼이 무엇입니까 민족과 세계복음화의 원대한 꿈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적고, 오늘 우리 현실은 미약할지라도 나중은 심히 창대케 하실 주님을 믿으며 힘차게 전진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살아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오늘 본문은 다시 사신 주의 명령을 기록합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기록합니다. 이것은 그분의 지상명령입니다. 한 마디로 이 명령은 세계 복음화의 명령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오늘 여러분 가운데 11명을 모아 놓고서 이렇게 말한다고 가정을 해보십시오.
“여러분, 저까지 포함해서 우리 열두 명은 앞으로 세계를 혁명할 것입니다. 전세계에 우리와 함께 삶을 같이 하는 무리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금세기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이 지구가 운명을 다하는 날까지 우리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이 위대한 혁명을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선포를 했다면 우리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건이 여기에 일어났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마 28:16-17)
부활하신 주께서는 다시 사신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나타나셨습니다. 디베랴의 바닷가에 나타나셨습니다. 다락방에서도 다시 사신 그의 영광스러운 임재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도 그분의 살아 계신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부활하신 주를 바라보면서도 더러는 의심하며 더러는 회의에 뒤덤벅이 된 상황 속에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을 다시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이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헌장입니다. 본문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여기 모든이라는 단어가 세번씩이나 강조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사를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먼저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나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내게 주었다”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이것은 세계 복음화의 동력입니다. 세계선교의 동력을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복음화를 생각할 때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난제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실로 이 세계가 복음화 되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동원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여기 친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그가 세계 복음화의 명령을 주십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은 분명한 세계 복음화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시한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장악하고 계시기에 이제는 이 권세를 배경으로 우리를 보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창조의 권세를, 섭리의 권세를, 보존의 권세를, 만들고 부수는 권세를, 무너뜨리고 세우는 권세를, 문을 열고 문을 닫을 수 있는 권세를, 죽이고 살리는 권세를, 용서하고 정죄 하는 권세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주셨다.”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다. 하늘의 권세를.” 그분은 하늘을 두루마리처럼 말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저 하늘의 해와 달을 다스리는 권세를, 은하수들의 움직임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그분이십니다. 태양과 바람의 가는 길을 작정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분이십니다. 그는 하늘의 무수한 피조물들인 천사들을 다스리십니다. 스랍들과 그룹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정사와 권세의 주인 되시는 분입니다. 하늘의 천천만만의 군사들의 주인 되시는 그분, 천군의 사령관 그분은 진실로 하늘의 모든 권세를 지니고 계신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땅의 권세를 지니십니다. 땅을 지으시고, 땅을 섭리하시고, 땅을 물로 정케 하시고 땅을 불로 태우셔서 심판하실 수 있는 심판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땅의 열왕들과 거민들의 목숨들과 삶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질병을 다스리십니다. 그는 삶을 다스리시고 죽음을 다스리십니다. 그가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매 그 나무는 주의 명령 앞에 복종합니다. 그는 식물계의 주인이십니다.
그가 귀신을 저주하시매 돼지떼들은 그 귀신들을 끌어안고 물속으로 질주합니다. 그는 동물계의 주인이십니다. “파도야 잠잠하라!” 그가 명령하시매 파도는 그분의 명령 앞에 복종합니다. 그는 자연의 주님이십니다.
“야이로의 딸이여, 달리다굼! 여인이여, 일어나라!” 주의 말씀 앞에 죽었던 생명도 복종합니다. 그는 인간의 주인이십니다. 그는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시고 장악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배경으로 해서 주님은 주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계정복의 꿈을 꾸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폴레옹은 나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불가능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용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여기서 말하는 권세를 단순한 능력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주십시오.
여기서 권세라는 단어는 ‘듀나믹스’라는 단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희랍어로 ‘에쿠샤’ 이것은 권리라는 단어로 쓰여졌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리를 가지신 그분, 하늘의 주인이시며, 땅의 주인이시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가 받았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그분은 말씀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세계 복음화의 이 위대한 비젼은 가는 것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주께서는 이 명령을 누구에게 베푸십니까 다시 1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계복음화의 주역은 누구입니까 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제자 삼는 일을 해야 합니까 주께서 여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여기 너희는 누구입니까 보잘 것 없는 주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어부들이었습니다. 더러는 하급공무원이었습니다. 더러는 민족운동을 하던 열심당원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회에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존경을 받는 인물도 못되었습니다. 그는 유수한 대학의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
주께서는 이 위대한 과업을 아테네의 철학자들에게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는 위대한 과업을 예루살렘의 랍비들에게 맡기신 것도 아닙니다. 주께서는 이 위대한 과업을 애굽의 천문학자들과 과학자들에게 맡기신 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가서” 보잘 것 없는 어부들, 하급 공무원들, 민족운동을 하던 열심당원들, 그러나 그들에게 세계를 복음화하는 숙명적인 과제를 맡기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묵상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주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쓰셨을까 왜 주께서는 저 히브리 대학을 찾아가 많은 교육을 받은 기라성 같은 가말리엘의 제자들을 선택하지 않으셨는가 그는 히브리 대학에서 유수한 교육을 받은 유태인 학자들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그는 아테네를 방문하고 아테네의 수많은 철학자들을 동원하지 않았는가
만약 주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 이 말씀을 받는 수많은 지극히 평범한 여러분과 나는 어떻게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것은 아테네의 철학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그것은 저 예루살렘의 랍비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그것은 저 애굽의 과학자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야.’
주께서 이런 사람들을 쓰시지 않은 사실을 감사하야 합니다. 주께서 물론 그런 사람들을 쓰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서 더러 더러 그런 사람들을 쓰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주께서는 지극히 평범한 저와 여러분 같은 사람을 쓰십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나도 할 수 있는 과업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는 어부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여러분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무소에 앉아 세금을 걷던 세리 마태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다면 저와 여러분도 그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당신과 나도 할 수 있다는 뚜렷한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열한 명의 제자를 모으시고 그들에게 세계 복음화에 대한 위대한 권능을 맡기시고 그들에게 복음화에 대한 과제를 명령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라!” 너희들에게 지식이 없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나를 근거로 해서 가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배경으로 해서 돈이 없지만 너희는 가라! 지식이 없지만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지만 평가하지 않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나를 배경으로 해서 가라!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에게는 아카데믹한 지성의 협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그분의 일을 이루기 위해 베니스의 그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이루기 위하여 로마 원로원의 정치적인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졌다면 그는 이것 없이도 하실 수 있습니다. 베니스의 갑부들의 경제적인 지원이 없이도, 원로원의 정치적인 도움이 없이도 아카데믹한 희랍의 지성인들의 도움이 없이도 그는 이 일을 능히 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그 일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시고 있습니다. 전세계의 민족마다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바라보십시오. 수많은 민족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체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호흡마다, 수많은 장소마다 일어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무리들을 보십시오. 그분이 이 역사를 하시고 있습니다. 그는 돈을 가지고 이 일을 하시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식을 가지고 이 일을 하시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지식을 가지고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이 일을 하시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창조의 권능을 가지고 지금도 그 일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가라. 이 너희 중의 한사람이 나 자신임을 이 말씀을 통해서 보십니까 그러면 나도 할 수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 것도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었던 나,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던 나, 그러나 이 어부들이 일어나 세계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었다면 우리도 일어나 한국과 세계를 바꾸는 위대한 일을 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가 우리의 것이라면. 가서 주께서는 우리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보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최초의 선교사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선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성령님은 다시 사도들을 보내십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선교사라는 말의 뜻도 ‘보내심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보내십니다. 예수님도 보내십니다. 성령님도 보내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이 저와 여러분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의 가는 이 발걸음을 막을 수 있을까요 나를 거절하는 사람은 우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나를 박대하는 사람은 주님을 박대하는 것입니다. 나를 경멸하는 사람은 주님을 경멸하는 사람입니다. 나에게 도전하는 것은 주님께 도전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제자들을 보내십니다. 여러분들도 이와 같은 확신에 근거해서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주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고 나가고 계십니까
이와 같은 주님의 선교전략에 도전과 방해가 없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지옥과 음부의 권세들, 열방의 권세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선교의 전략을 망치기 위해서 저들은 도전해 왔습니다. 끈질긴 지옥의 도전은 역사를 통해서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어이 이 프로그램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하십니다. 지금도 하십니다. 한 사람이 실패하면 또 다른 사람을 보내십니다. 또 실패하면 또 보내십니다. 사람이 갈 수 없으면 주께서는 전파를 보내십니다. 미디어를 보내십니다. 세계 복음화의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 그는 역사 속에 도전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그는 하시고야 말 것입니다.
그가 제일 먼저 제자들을 보내신 장소가 어디였습니까 사도행전 1:8의 명령을 기억하시지요. “오직 너희에게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이 제일 먼저 가라고 명령을 받은 곳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던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침을 뱉고 그를 경멸하고 그를 피흘리게 만들었던 예루살렘의 거리로 주께서는 제자들을 먼저 보내십니다. 세상이 우리를 냉대했지만 우리를 박대했지만 그들이 우리 주님을 박대하고 우리 주님을 냉대했다는 사실 때문에 주님은 이 세상을 냉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못박았던 예루살렘 거리로 제자들을 다시 보내십니다. 그 거리로 다시 가라! 가서 무슨 일을 하라고요 이 위대한 복음화의 프로그램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19절의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세 가지 세계 복음화의 방법, 프로그램이 이 말씀 안에 나타나 있습니다. 첫째는 제자를 삼으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세째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을 주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제자를 삼고, 세례를 받고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도록 그들에게 역사하라. 이것이 교회의 방법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프로그램입니다. 이것이 세계선교의 프로그램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 모든 족속 가운데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이 목적을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께서는 동원하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주님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이 말씀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면 외람된 적용입니다만 제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침뱉음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경멸을 받고 질시를 받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혔다면 그런데 내가 다시 사는 그 순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내게 하늘과 땅을 다스릴 수 있는 이 엄청난 권세를 내게 주셨다면 나는 이 권세를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제일 먼저 예루살렘에 가서 빌라도를 처치해 버리고 나를 괄시한 모든 예루살렘 거민들을 불태워 죽이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을 권세를 들려서 그의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하여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사용하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살해한 그들이 살고 있는 그 장소, 그 거리를 찾아가 그들을 나의 제자로 삼으라. 이렇게 주께서 명령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해야만 할일, 그것은 첫째로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단순히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족속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을 세워야 합니다. 공산권 안에서도, 회교도의 문화권 안에서도,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세워야 합니다. 오늘날 선교에 관한 여러 가지 방법론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선교란 단순히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방법만으로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문화를 바꾸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사는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오늘의 신학이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기서 기독교의 영향력을 파급시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문화만을 파급시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함께 사는 삶의 도덕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들로 나의 제자를 삼으라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으라. 모하메드의 제자로 하여금 나의 제자가 되게 하라. 부처의 제자로 하여금 나의 제자가 되게 하라. 주께서는 변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는 이 명령을 나에게 주십니다.
나의 제자를 삼으라. 오늘 기독교의 양적팽창의 열심에 제동을 거는 수많은 소리들이 매스 미디어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와 전도를 비판함으로 영웅이 되려는 영웅적 의식이 기독교 지식인들 가운데 번져가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은 어떤 의미에서는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선교의 의욕을 좌절시켜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선교의 열정을 빼앗아가서는 결코 안되겠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십니까 주님의 방법을 보십니까 주께서 1세기에 복음을 가지고 역사 하셨던 방법은 어떤 방법이었습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질적인 변화를 강조하면서 양적인 팽창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의 질적인 변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기독교의 양적인 팽창에 똑같은 값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도행전 2:41에 삼천 명의 부흥의 역사가 예루살렘 교회에 더했습니다. 4:4에 보면 말씀을 듣는 사람 가운데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6:1을 보면 제자들의 숫자는 더욱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6:7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왕성하여 제자의 수가 더욱 많아지더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5을 보면 숫자가 날마다 더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1:20에 보면 믿는 자가 수만 명이나 예루살렘에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구원받는 사람의 숫자가 예루살렘 교회에 더하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 제자들을 만들기 위해 오셨다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구원받는 사람의 수가 날마다 더하게 하는 선교의 의욕을 좌절시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자람을 방해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은 좌절될 수 없는 선교의 프로그램입니다. 가라! 그 다음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세례는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옛사람의 장례식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살았던 나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았던 나의 모든 삶이 예수를 만나는 순간 죽어버리고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을 선포하는 예식이며 신생의 예식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의 마음 속에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내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마다 이 역사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에게 변화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이제는 선포하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물 속에 들어갈 때 우리는 나의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 속에서 나올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새 삶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어디에 쓰여졌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역사는 죽어있는 사람을 살리는 외적인 능력으로 과시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위대한 권세는 신생의 역사 속에 집중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살았던 사람들, 주님없이 살았던 사람들, 죄와 허물 가운데 죽어 있던 한 영혼을 건지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을 동원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오, 예수님 없이 살고 있는 영혼들, 사탄과 음부의 권세가 얼마나 그들을 포박하고 결박하고 있는지요. 이 영혼을 자유케 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권세가, 땅의 권세가 동원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주께서 이 모든 권능을 가지고 하시고 싶어하는 일, 그것은 새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생의 거룩한 역사를 나타내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가장 위대한 기적은 인간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죄사함 받고 구원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거룩한 역사를 주께서는 원하십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동원하십니다. 이제 네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면 선포하라. 옛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라.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선포하라.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들에게 주의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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