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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안에 있는 세상을 몰아냅시다 (요 16: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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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간의 종살이를 마치고 꿈에 그리던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은 그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거민을 남녀노소 무론하고 다 죽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는 그 땅의 거민과 어울려 행여 그릇 범죄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릴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세상 속에 존재하지만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성도와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질문해 볼 때 회의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이 교회적이기보다는 교회가 세상적이 되었고, 성도의 신앙생활은 교회 안에서의 생활로 끝나 버리고 생활로서 신앙을 사는 이들은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다른 사람을 제껴놓고 우리 자신을 먼저 살펴봅시다. 우리 자신들은 어떻습니까 나의 사고와 언어와 생활 속에 세상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있습니까 아니면 신앙적인 요소가 더 많이 있습니까
성도에게 예배와 기도와 성경 읽는 것과 전도하는 것은 생활의 기본입니다. 이와 같은 기초적인 생활이 삶의 현장에서 얼마나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학교와 직장에 가면 제일 먼저 기도하십니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기도하십니까 남이 보든 안보든 우리는 생활로서 신앙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대다수의 성도들이 남이 볼 때는 남을 의식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남이 안 볼 때는 스스로 무시해 버립니다.
여러분은 집에 홀로 있는 시간에는 무엇을 하십니까 성경을 읽습니까 아니면 텔레비젼을 보고 있습니까 바빠서 못 읽는다고도 하지만 막상 혼자만의 여유로운 시간이 있을 때 텔레비젼을 보지 성경책을 읽지는 않지 않습니까 집에 들어오면 어떤 일을 해도 텔레비젼을 켜 놓아야 안정이 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그만큼의 세상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의 그 어떤 기관과도 목적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삶의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목표입니다. 교회와 성도가 그것을 목적으로 해서 살아가는 일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쁨이기도 합니다.
세상적인 요소가 교회와 세상 안에 많으면 많을 수록 교회와 성도는 힘을 잃어갑니다.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그래야 힘을 얻고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쾨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디모데후서 3:1-5은 바울이 말세에 나타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가르쳐 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을 추방할 수 있고 새힘을 얻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자기 사랑입니다.
말세에는 고통하는 때가 이르는데 그날에 사람들은 자기만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극도의 이기주의가 팽배합니다. 이기주의라는 것은 사람들이 극도로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자기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들이 사랑의 잘못된 사랑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대상의 문제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사랑의 순서는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으로는 이웃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자기사랑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 순서를 철저하게 뒤집어서 살고 있습니다. 자기만 사랑합니다. 자기만 위합니다. 자기가 하나님 되어 자기가 피해 입는 것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는데 자기만 그렇게 사랑합니다. 그러니 언제나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모두가 자기만 사랑하니 모두가 다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지배를 받습니까 그러니 조그만 양보도 없는 극도의 이기주의로 살아가면서 자기 스스로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순서를 바로 합시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갑시다. 이렇게 살아가지 못하는 이상 우리는 세상에 물들어 세상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방법입니다.
인간은 영혼육의 존재입니다. 인간의 삶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영을 위해 육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과 육을 위해 영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는 인생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육신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하는지 모릅니다.
몸이 약하다 싶으면 온갖 보약을 다 먹으며 몸을 돌돕니다. 또 몸이 살이 쪘다 싶으면 밥도 안 먹고 다이어트에 정신이 없습니다. 더울 때는 덥지 않게 합니다. 추울 때는 춥지 않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육신적인 일에는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지한지 모릅니다. 철저하게 육신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밝히 경고합니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롬 8:13)
육신을 위하여 사는 것은 결코 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으로 달려가는 자살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도 자기 영혼에 대하여는 깊은 관심이 없습니다.사는지 죽는지를 모릅니다. 자기 육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결코 자기 사랑이 아닙니다. 자기 영혼에 대한 학대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금방 자기 영혼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습니다. 삶에 기쁨이 없으면 영혼이 기갈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신을 통해서는 결코 채울 수 없습니다. 성도는 영혼의 만족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그렇게 쫓기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육신은 갈곳없이 쫓기면서도 그에게는 영혼의 만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영혼을 위하여 살지 않으면 나는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게 지배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세상 방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2.돈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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