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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 (행 2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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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8은 주님의 명령이지만 우리의 소원이 되기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땅끝까지 보내기를 원하시지만 땅끝까지 보내달라고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기도대로 그 사람을 쓰십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1:8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대로 스데반은 쓰임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땅끝으로 전도자들을 보내기도 하시지만 급할 때는 땅끝에서 사람들을 불러오시고 전도자를 그 자리에 보내시기도 하십니다.
사도행전 2:9-10에 15개 나라가 모였을 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그는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6:9에 스데반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모여있는 리버디노, 구레네인들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합니다. 헬라 사람들이 모여있는 알렉산드리아인들의 회당을 찾아갑니다.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길리기아 회당을 찾아갑니다. 아시아인들이 모여 있는 회당을 찾아갑니다. 마지막에는 공회에 올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장렬하게 순교의 잔을 마십니다. 그는 땅끝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그는 땅끝에서 온 사람들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를 그렇게 받으셨을까요 그가 그렇게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빌립 집사는 사도행전 1:8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한 결과 사마리아 성으로 내려가 그 성을 완전 복음화를 이루었습니다. 광야로 가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구원하였습니다. 아소도라는 도시에 나타나 복음을 전하고, 여러 성을 거쳐 로마의 첫 성인 빌립보와 가이사랴에까지 이르러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기도했기에 그 기도대로 하나님이 그를 쓰신 것입니다.
기도는 그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우리를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또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가기를 열망하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정말로 간절히 동족의 구원을 소원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리는 것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사도행전 19:21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증거한 이후에는 로마에 가서도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마게도냐 아가야를 거쳐서 로마도 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행 19:21).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23:11입니다. 주님이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했습니다.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에서 자기를 죽이려고 살기등등한 유대인들, 제사장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 가이사 등 로마의 관리, 총독, 황제 앞에서도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죽는 일이 확정되어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복음 전하다가 죽고 싶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어디를 가든지, 누구 앞에 가든지 주님이 나를 그곳에, 그 사람에게 보냈다고 믿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역사는 기도한 자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이 시대를 주옵소서!” 기도한 사람의 것입니다. “하나님 다음 세대는 나의 것입니다.” 기도하며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음 세대를 맡길 것입니다. 기도는 그 사람입니다. 그가 기도한 대로 하나님은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한 개인이 기도하는 것을 보면 그를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9:15에 하나님은 바울을 이방인을 위한 나의 택한 그릇으로 쓰기를 원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그렇게 나를 그렇게 써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은 바울이 만난 풍랑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어떻게 이루시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배가 출항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게 됩니다. 로마 황실 근위대의 백부장 율리오의 보호하에 있는 여러 죄수들과 함께 276명이 서쪽으로 항해하는 알렉산드리아호를 타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 배는 사도행전 27:2을 보면 아시아 각처로 행선하는 배라고 했습니다. 비록 포로가 되어 이 배를 타고 가지만 이 배를 타게 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말씀은 아시아 전역에 전파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배는 구브로 해안을 끼고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와 루기아의 무라성을 지났습니다. 바람이 반대로 불므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배는 그레데 해안을 끼고 행선하여 겨우 미항에 이르렀습니다.
때는 늦가을이었습니다. 고대에는 9월 14일부터 11월 11일까지의 기간 중에 항해를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 기간 중에는 공해상의 모든 항해는 중단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또한 세번 이상의 파선을 경험했던(고후 11:25) 바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장은 뵈닉스로 가서 거기서 월동하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미항은 좁고 지내기에 여러 가지로 불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때마침 순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하였습니다. 그들이 뵈닉스로 자신 있게 출항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①경험 많은 선장이 그 배를 운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알렉산드리아호의 선 장은 지중해 항해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므로 대중은 안심하고 갔던 것입니 다.
②그 배가 알렉산드리아호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호는 애굽에서 제일 가는 배입니다. 그러므로 안심하고 출항할 수 있었습니다.
③남풍, 순풍이 솔솔 불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떠나자마자 그들은 곧 유라굴로라는 흉악한 겨울 태풍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2.풍랑 가운데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배는 바람에 밀려 바다 멀리까지 나가게 되었고 전혀 통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두려워진 선원들은 선체를 고정시키기 위해 배를 밧줄로 묶었습니다. 다음날에는 파도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에 그들은 짐을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모든 연장과 가벼운 물건들까지도 던져 버렸습니다. 그래도 파도는 여전히 거세었고 형편은 조금도 나아질 줄을 몰랐습니다. 절망과 공포의 14일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행 27:20)
외부적 조건을 가지고 안심하고 자신 있게 출발했지만 광풍을 인하여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낮에는 해가 보이지 않았고, 밤에는 별빛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다 죽었다 싶었고 다시 살 것이라는 기대는 아무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두려움을 모르는 하나님의 사도가 나타나 앞뒤로 흔들리고 물에 잠긴 갑판 위에 서서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1-25)
바울이렇게 이 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분명히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리라”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 죽을 상황을 당하고 있지만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만류를 뿌리치고 배가 출항한 일과 감당할 수 없는 이 광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된 일입니까 무슨 뜻이 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될 것입니까” 그리고 분명한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이 배는 분명히 부서진다. 그러나 한 사람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너는 가이사 황제 앞에 설 것이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는 구명보트를 내리려 하지 말고 배에 붙어 있으라 모든 사람에게 말합니다. 바울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고는 그들에게 먹으라고 권고합니다. 열 나흘을 굶었던 276명이 그제야 안심하고 먹기 시작합니다(행 27:36). 모두가 배부르게 먹고는 배 밑창에 있는 밀을 버렸습니다.

3.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었습니다.
날이 새자 배는 모래톱에 부딪쳐 좌초되었습니다. 율리오는 죄수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을 죽이자 제안하는 병사들의 의견을 거부하고 멜리데 섬으로 헤엄쳐 가라고 모두에게 명령합니다. 곧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무사히 해변에 이르렀습니다(행 27:44). 멜리데의 주민들은 추위에 떨고 있는 생존자들을 극진히 대접하였고 해변에 몸을 녹일 수 있도록 불을 지펴 주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거두어 들이던 장작더미에 숨어 있던 독사에게 물렸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않았습니다(행 28:6). 이 사건은 마가복음 16:18과 누가복음 10:19에 기록된 예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막 16:18)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멜리데 섬에 머무르는 3개월 동안에 바울은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중에는 열병을 앓는 그 섬의 총독 보블리오의 아버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른 봄이 되어 그들은 새로운 배를 타고 로마를 향했습니다.
말씀의 결론을 맺습니다. 바울이 가는 길은 복음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그리스도 이름으로 가는 길은 구원의 길입니다.
누구도 인생의 풍랑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풍랑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선장은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유라굴로 광풍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풍랑은 인간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만이 막을 수 있습니다. 대풍랑을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0절의 말씀을 보면 구원의 여망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행 27:20)
여망이 없도록 낮추시는 분도 하나님입니다. 낮추사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27절을 보면 14일 동안 헤매였다고 했습니다. 그후에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역사 하셨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받은 메세지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276명,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게 했습니다. 그가 탄 배에 불어닥친 풍랑은 276명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풍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독사에 물렸으나 죽지 않는 기적을 통해 2,3차에 걸쳐 그들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목이 잘려 순교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울 이후에 계속해서 지중해 지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자들로 276명을 세우신 것입니다.
바울은 생사를 넘나드는 풍랑 가운데 다락방을 열어 구원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멜리데 섬에 3개월을 지내면서 다락방이 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특별히 그 섬의 총독 보블리오의 아버지의 열병을 고쳤습니다. 그로 인하여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날 지중해에 불었던 풍랑은 지중해를 건질 사명자들을 세우기 위한 구원의 풍랑이었습니다. 지중해에 아직 예수 그리스도 모르고 죽어가고 있는 영혼들을 건지기 위한 풍랑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 이후에 지중해 전지역을 다니면서 바울을 통해 만난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배 안에서 겪었던 엄청난 시련을 통해 자신들이 만난 예수를 전했습니다.
사명자들이여 힘을 내십시오.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뜻대로 되지 않고 반대로 가다가 풍랑을 거기에는 또 다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생의 고난과 풍랑은 사도행전 1:8의 약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시고 승리하시기를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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