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나와 이 민족이 사는 길 (출 03:1-14)

첨부 1


모세는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한 민족적인 지도자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혼탁한 현실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다시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시대에도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세워 주시고 또 위기에서 건져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이 이 민족의 지도자로 역사 앞에 서야 합니다.
기도는 그 사람입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한대로 하나님은 각 사람을 쓰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기도한 분량만큼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모세를 쓰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가 드려야할 평생의 기도제목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1.누구에게나 구원이 필요합니다.
모세는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바로는 끊임없이 늘어만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핍박을 가했습니다.
산파에게 이스라엘 가정에서 사내 아이를 낳으면 무조건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산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여인들은 너무 건강하여 자신들이 가기 전에 벌써 아이를 출산한다고 변명하였습니다. 화가 난 바로는 다시 사내 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도록 명령했습니다.
모세는 그 위기 가운데서 레위지파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몰래 숨겨서 아이를 석달동안 길렀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숨기지 못하고 역청을 바른 갈대상자에 넣어져 나일강에 모세를 띄웠습니다. 마침 목욕하러 나온 바로 공주가 모세를 발견했고 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40년 세월을 궁중에서 보냈습니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입니다. 국고성을 지으며 온갖 고역에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나일강에 던져지는 모습을 보면서 울부짖던 이스라엘 여인들에게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모세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인정받으며 궁중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바로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뒤를 이어 애굽의 왕이 될 엄청난 지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세에게도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미래의 메시야를 바라보면서 창세기 3:15의 언약을 붙잡고 기도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십자가에서 피흘리사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은 누구에게나 차별없이 필요합니다.
모세에게 젖을 먹여 키운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를 낳은 친어머니 요게벳이었습니다. 모세는 요게벳으로부터 “너는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자라가고 있지만 실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너는 언젠가 이 백성을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내는 엄청난 일을 해내야 한다” 하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모세는 갈등에 시달렸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내 백성과 더불어 고난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백성들이 고역하고 있는 장소를 나가보았습니다. 어떤 애굽 사람이 자기 백성을 몹시 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를 때려서 죽였습니다. 다음날 그 사실이 탄로 났습니다. 그는 왕궁을 떠나 미디안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우리는 단순히 모세가 죽을까봐 두려워서 도망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4-26)
그가 애굽의 호화로운 궁궐을 떠나 광야로 나간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 위해서였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더 큰 재물로 여겼습니다.
모세는 빠지기 쉬운 세상이라는 함정에서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세상 많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현세적인 것에 너무 매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것에 우리의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그와 같은 것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하고 만일 그렇지 못하면 아굴이 드렸던 기도를 우리도 드려야 합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 30:7-9)

2.모세가 드린 기도는 모세 자신을 먼저 구원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인적인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지옥갈 영혼이 천국가게 되는 영의 구원과 자신의 인격과 삶이 구원받고 육체가 질병과 고통 속에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즉 영혼육의 완전한 구원입니다.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서 건짐 받는 구원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구원과 건설구원으로 나누어집니다. 은혜구원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의 구원을 말합니다. 지옥갈 영혼이 천국으로 옮겨지는 구원을 말합니다. 마귀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는 신분의 구원입니다.
건설구원은 구원받은 자녀가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과 은혜를 자신의 육체와 인격 속에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불신자들이 구원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쉽게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활의 방법과 구습을 믿는 순간부터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갈등합니다. 취미도 버려야 하고, 습관도 버려야 하고 잘못된 인간관계도 끊어야 합니다. 이것이 잘못된 일인 것은 알지만 버리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믿는 것 자체를 망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알콜중독자가 술에 매여 사는 것이 자유입니까 어린 나이에 담배와 마약의 환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자유입니까 아무런 규제없이 방종을 일삼는 생활이 자유입니까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철저하게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것입니다. 신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술, 담배, 방종의 생활에서 보호받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의미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삶을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께 드릴 때 이루어집니다. 불신자들이 눈에 보이는 것들에 정신을 빼앗기고 마귀에게 속한 삶을 살아간다면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드린 만큼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지 않으면 그 시간과 삶을 마귀에게 바쳤거나 빼앗긴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그의 생애를 드렸습니다.
인간은 생명이 있는 한 영과 육과 혼이 각각 분명한 자기 소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 자녀라는 신분의 소속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마귀의 인도를 받고 있는가 인간의 마음도 순간순간 자기 소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신도 하나님이 원하는 장소에 있든지 마귀가 원하는 장소에 있든지 분명한 소속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언제나 이와 같이 무엇엔가 속한 삶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모세는 자기 평생에 이 민족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내가 그 일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 일에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로 지내는 40년 세월 한시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고 듣고 배우는 모든 것들이 이 민족 건지는 일에 귀하게 사용되어지게 하옵소서” 기도했습니다. 민족을 위한 기도였지만 실상은 이 기도를 그가 가슴에 품고 평생을 살았기에 그의 생애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기도가 없었다면 그의 생애는 애굽의 궁궐에서 영화는 누렸을지 모르지만 보잘 것 없는 불신자의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민족을 건져달라는 평생의 기도가 모세로 하여금 자신의 전생애를 하나님을 위하여 드리게 했고, 그 헌신이 모세를 건지게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어떤 기도가 있습니까 그 기도의 응답을 위하여 또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3.이 민족을 구원하여 주옵소서!
사람은 누구든지 믿고 의지하는 바가 있습니다. 자신을 믿는 것을 신념이라 합니다. 신념은 신앙과는 다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모세는 어떻게 하든지 자기 힘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진 열심은 막상 일이 벌어졌을 때는 하루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요, 우리 모두의 한계입니다. 베드로는 주와 함께 죽기를 소원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세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40년 동안 드린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는 못합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여 주옵소서. 그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친히 구원해 주시도록 기도했습니다. 다시 40년을 그는 이 기도만 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리스도에 관한 비밀을 알았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공주의 아들로 평생을 살아도 민족의 구원은 불가능하구나 생각하고 하나님께 매어 달리기 위해 미디안 광야로 나간 것입니다. 40년 동안 그 기나긴 세월을 그리스도의 비밀을 붙잡고 하늘을 바라보며 기도한 것입니다. 모세의 일평생 기도제목은 민족의 구원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애굽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가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것은 결코 교만이 아닙니다. 작은 것은 시시해서 기도하지 못하고 큰 것은 엄두가 안나서 기도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대로 그 사람을 쓰시게 됩니다. 기도하면 본인 스스로도 그 기도를 따라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인생을 걸만한 평생의 기도제목을 붙잡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그 기도를 시간을 정해서 기도하고, 무시로 잠시 틈만 있어도 기도하고, 함께 여러 명이 모여 합심으로 그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우리에게는 평생의 기도제목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평생 몸바쳐 헌신할 만한 기도제목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기도제목을 붙잡은 사람은 왕자에서 하루 아침에 양치는 목동으로 바뀌어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야 할 이유와 어떻게 죽겠다고 하는 마음의 각오가 있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도 바울의 신앙이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는 그리스도를 안에서 자기를 죽은 자로 여겼습니다. 이제 내가 사는 것은 자기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위하여 살다가 예수님을 위하여 죽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평생에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 기도제목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살다가 주님을 위하여 죽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가장 축복된 생애였습니다.
모세 또한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죽어야 할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평생 소원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그 기도제목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상숭배를 할 때에 하나님이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때에 모세는 그 백성의 죄를 혼자 다 뒤집어쓰고 기도합니다.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 32:31-32)
내 이름이 하늘 나라 생명책에서 지워질지라도 이 백성만은 구원해 주옵소서! 기도했습니다. 모세의 이 기도가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모세가 이 기도를 드렸기에 기도의 사람 모세를 들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아야 합니다. 가정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 사회와 민족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들을 위하여 일심으로 기도하며 평생을 기도할 때에 사실은 그 기도가 나를 구원해 주는 것입니다. 민족과 역사를 가슴에 품고 드린 평생의 기도가 나의 일생을 이끌어줍니다. 부귀와 영화도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닫지 못하면 불행하지만 우리는 일평생 고생을 해도 인생의 의미를 깨달으면 행복합니다.
이 민족을 생각합시다. 내 평생의 기도제목을 정합시다.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시대 속에, 이 역사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가 우리의 일생을 이끌어줄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는 자신을 구원하였습니다. 모세의 기도가 자기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평생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몸부림쳤던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한나는 제사장이 부패하고 그들의 아들들이 썩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시대를 살릴 수 있는 자녀를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응답으로 얻은 자녀가 사무엘입니다. 우리도 기도합시다. 우리가 가르치는 어린이 가운데서, 우리 가정 가운데서 모세와 같은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책임질 일꾼이 나오도록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