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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나안으로 가라, 세계로 가라2 (창 12:1-3, 행 01:8)

첨부 1


처음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렸습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말들은 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을 저는 가정을 통해 자주 연상을 해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충만한 행복을 느낍니다. 안고, 업고, 볼을 비빌 때면 이 아이들을 주신 하나님께 눈물이 나도록 감사함을 드립니다. 저는 대부분 늦게 잠자리에 듭니다. 엄마 곁에 나란히 누워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저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내 생명을 주어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행복은 상대방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때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를 위해서라면 내가 죽어도 좋은 사람을 소유했을 때 행복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인하여 그 행복을 느낍니다. 아이들도 동일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이따금 만일 이 아이들이 내 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을 해봅니다. 반대로 이 아이들 곁을 우리가 떠나간다면 아이들은 얼마나 불행할까 생각합니다. 행복은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함께 있음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행복, 이것이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입니다. 이 이상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행복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행복을 회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행복을 우리만 소유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온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기를 소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행복을 깨닫고, 우리와 같은 축복을 만민이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깨닫는 복된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립니다.

1.하나님의 전도와 선교사상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생명이 유한하고, 능력이 극히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처음 인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지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가장 뛰어난 피조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임마누엘의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이것을 가리켜 성경은 생명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는 어떤 능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 생명 안에 있는 능력이라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갈빗대를 뽑아 하와를 만드사 가정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 하셨습니다. 하나나 둘을 가지고 생육, 번성, 충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수가 많고, 자손이 번창하며 온 땅에 가득한 것을 충만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처음부터 전도와 선교사상을 가지고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이 온 땅에 충만하여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광을 돌리는 것, 이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2.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예수 그리스도
창 1:27-28을 두 단어로 압축하면 생명과,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임마누엘의 축복을 누린 아담에게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습니다. 세상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넘치는 부요가 있었습니다. 부족함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단이 와서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림으로 이들은 생명의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안에 있을 때 받았던 모든 축복을 상실했습니다. 만물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 하나님께 예배하며, 함께 교제하는 인간이 온 땅에 충만하게 되어지는 것, 이것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떠나자 창세기 6장에 정반대의 결과가 인간을 찾아왔습니다. 무엇입니까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1-7)
①사람들이 온 땅에 번성하기는 했습니다.
②그들이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육신만을 위해 사는 육체가 되었습 니다.
③네피림, 즉 사단이 가득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④세상에는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⑤사람들의 마음의 생각과 모든 계획은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
⑥하나님의 창조목적에서 완전히 빗나가 버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때 하나 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⑦이 모든 것을 하나님은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곧 생명을 잃어버린 인간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께는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도 귀중한 존재가 아닙니다. 형상을 닮은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모든 동물과 육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홍수로 쓸어버리셨습니다.
아담과 노아시대, 노아와 우리 시대는 많은 시간상의 차이가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현대를 가리켜 불신의 시대, 불행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전직 대통령이 불의한 방법으로 수천 억의 재물로 모았다가 들통이 나서 부끄러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신문기자가 왜 그렇게 많은 비자금을 모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답변이 어땠는지 아십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에 몰락하는 모습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부정축재 때문에 쫓겨가듯 백담사로 갔습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해야 할텐데 오히려 자신은 한술 더 떴습니다.
그런 전직 대통령을 바라보면서 한없는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그 자신 한없이 불행한 사람이요, 배신감에 분노하다 못해 허탈감에 빠져 있는 이 백성들이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자, 이와 같은 총체적인 불행은 과연 어디서부터 온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남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번 사건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삶의 구조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를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떠난 자는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찾아와 천하만국을 줄 테니 단 한번만 내게 절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마귀는 대통령까지 높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철저하게 망하게 합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종말은 하나님 떠난 자의 종말입니다. 하나님 떠난 자는 지식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참합니다. 높은 권력, 많은 재물이 있으면 인간적으로는 큰소리 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마지막에는 더욱 불행에 빠집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탓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 이름이 예수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셔서 인간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인간의 근본문제를 점검하겠습니다.
①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범죄 이전의 인간은 하나님과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하나님의 생기, 즉 생명을 상실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하나님이 선언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창 6:3에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②모든 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죄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서 빗나간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적극적으로는 하나님께 도전하며 죄를 짓습니다. 소극적으로는 어쩔 수없이 죄를 짓습니다. 죄의 결과는 저주요, 사망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탄식했습니다(롬 7:24).
③모든 인간은 사단에게 장악되었습니다.
사단에게 장악된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의 뜻과는 정반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온 땅에 주의 백성이 퍼지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불신앙의 사람들은 노아 홍수 뒤에도 하나님의 뜻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온 땅에 충만하도록 창조된 그들이 모여서 성을 쌓되 하늘 꼭대기까지 닿도록 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고 나아가 흩어짐을 면하자고 했습니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이와 같은 인간에게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 줄 분이 필요했습니다. 인간은 이 비참함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이 세 가지 문제를 염두에 두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담 하와에게 주신 금지의 명령은 그들을 사랑하사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명령을 어기고 그들은 따먹고 범죄했습니다. 범죄 했음으로 죽음의 결과 속에 고통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하나님 자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육체를 입으시고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할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오직 그만을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약시대의 피, 제사, 유월절, 방주, 도피성, 놋뱀 등은 모두 그리스도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3.흩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시는 분입니다. 처음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은 전도와 선교사상을 가지고 창조하셨습니다. 비록 인간이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어도 하나님은 이 계획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실 때도 노아를 통하여 믿음의 후손이 퍼져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바벨탑을 쌓고 다시 타락했어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그로 한 민족을 이루어 온 세상을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 계획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계획에 우리를 쓰시길 원하십니다. 우리 마저 거절한다 해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성경에 나타난 전도와 선교사상을 찾아보겠습니다.
①노아방주
홍수를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셨지만 방주에서 나온 믿음의 후손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②아브라함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2)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한 민족을 이루고 그 민족을 통하여 세계를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입니다. 열국은 전세계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서 그를 부르실 때 이미 그의 후손들로 세계를 살릴 계획을 염두에 두셨습니다.
③이삭
창세기 26장에 이삭이 농사하여 백배를 얻고, 샘의 근원을 얻은 이야기는 단순히 믿는 자가 받은 축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 땅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전도와 선교 사상이 그 배경에 깔려 있습니다.
④요셉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감옥에, 애굽 전역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기근 때문에 전세계 사람들이 요셉에게 양식을 구하러 왔습니다. 요셉은 그들에게 쌀만 팔지 않았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에게 사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⑤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으나 그 땅에 살아 계신 하 나님을 전하고 돌아왔습니다.
⑥사도행전 1:8은 창 1:28의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수난의 역사를 통해 전세계에 흩어놓으셨습니다. 행 2:9-11에는 오순절에 15개국 나라 사람들이 모여왔습니다. 이들이 과연 누구입니까 앗수르, 바벨론이 이스라엘에 쳐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전 세계의 노예시장에 팔아버렸습니다. 이들은 애굽으로도 가고, 로마로도 팔려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느 곳에 살아도 1년에 한번 이상은 예루살렘을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와 오순절까지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들이 성령 받은 제자들에 의하여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무리들이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예언했던 여인의 후손이 예수요, 자신들이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그 숫자가 3000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4:4에는 5000명이 또 주께도 돌아왔습니다. 이들이 자신들이 사는 땅으로 돌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했습니다.
바울의 사역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흩어져 있는 유대인 중에 일꾼을 찾아 세우고 확립함으로 그들로 세계를 살리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찾아낸 인물들이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가운데서 태어난 디모데요, 로마서 16장에 나와 있는 일꾼들입니다.
⑦강제로 흩으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아버지의 약속하신 바 성령을 받기까지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뒤에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때 밀어닥친 것이 핍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베드로가 공회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7장에서는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로 핍박은 끝나지 않고 예루살렘 각집에도 밀어닥쳤습니다. 이 핍박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빌립이 깨달았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로 내려갔습니다.
사마리아가 빌립을 통해 복음화되었습니다. 아프리카까지도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가장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나왔습니다. 가장 위대한 교회 안디옥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야고보를 순교를 통해 하나님은 더욱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 흩어지게 하심의 역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을 구원했습니다.
전도와 선교는 하나님의 소원이요, 창조 때부터의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십니다. 어떻게 보면 부담스럽고 어려운 것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통해 친히 이루시는 사역입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는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이 되게 하십니다. 주님의 계획을 깨닫고, 그 소원에 나를 맡겨버리면 모든 역사는 주님이 하십니다. 이 역사에 기쁜 마음으로 헌신하고 충성 다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노아로 하여금 방주 안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집요하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120문도는 마가 다락방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으실 때는 힘써 모여야 합니다. 모여서 무엇을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언약을 더욱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러내셔서 형성된 교회를 에클레시아라 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보내기 위한 교회입니다. 교회의 꽃은 흩어지는 교회 디아스포라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두 가지 일을 잘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행 5:42)
모이고 흩어지게 하시는 일은 철저하게 성령의 역사입니다.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복음화, 예수 그리스도라는 언약을 붙잡고 기도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됩니다. 그가 권능을 주십니다. 권능이 함께 하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보다 앞서가면 교만입니다. 성령보다 뒤쳐지면 나태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길을 갈 때에 철저하게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 성령께서 사도들을 통해서 이루신 구원사역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모일 때입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요, 권능을 받을 때입니다. 나아가 증인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사도행전 성도들은 오직 예수만 믿고, 오직 성령의 권능 받아, 오직 증인되는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①말씀(오직 예수) ②기도(오직 성령-능력) ③증인(오직 전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세계복음화라는 언약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로 가야 합니다. 그게 사도행전의 역사요, 성경 66권을 통해 보여주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입니다. 우리 생애 붙들어야 할 언약,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 세계복음화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어도 하실 수 있습니다. 꼭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을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저와 여러분을 사용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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