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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지자를 대망하라! (마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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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교회 절기상으로 대강절(待降節) 기간입니다. 대강절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의미를 기억하며, 그의 재림을 기대하는 기간입니다. 11월 30일의 가장 가까운 주일에 시작하여 크리스마스 전 4주간을 말합니다.
왜 세상은 그리스도가 와야 했으며, 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처음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영원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신분 속에는 영원한 권세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신분은 생명이요, 권세는 이 세상 만물을 다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신분과 권세 중에 신분이 중요합니다. 생명과 능력 중에 생명이 중요합니다. 권세와 능력은 신분과 생명을 통해 나타나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사람은 신분과 권세, 생명과 능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유일하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시고,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 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가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은 일이 왜 그렇게 큰 죄가 되었습니까
①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므로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
하나님은 정녕 죽으리라 했는데 그 말씀을 불신하고,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한 뱀의 말을 듣고 범죄했습니다.
②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금하신 명령을 어기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③하나님이 되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품고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결국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이 영원히 하나님을 떠나버린 문제입니다.

1.하나님을 떠난 결과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단순하게 두 사람의 잘못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범죄로 인하여 엄청난 결과가 찾아왔습니다.
①전 인류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대상).
②전 역사에 영향을 끼쳤습니다(시간).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창세기 3장에서 요한계시록 20장까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마태복음 24:14, 사도행전 1:1

1.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재림의 주로 강림하시는 시간까지 인류는 영향을 받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범죄가 난무하고, 범죄자가 난무합니다. 그 죄가 크고 무서울수록 하나님을 떠난 결과가 얼마나 큰 저주를 불러왔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만 미워하지 말고 그 죄와 사람 속에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실체를 바로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람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이 없으면 무서워합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 역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속에 역사하는 사단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에 빠졌고, 죄에 빠진 인간은 영원히 사단에게 소속되고 말았습니다. 육신이 있을 때는 저주와 재앙 속에 살다가 죽어서는 영원한 고통과 심판의 장소인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졌습니다.

2.우리 곁에 언제나 있는 흑암세력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입니다. 불신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요, 마귀에게 매여 종노릇하는 자입니다. 이 사단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죄와 불행과 저주의 원인을 사단 때문이라고 지적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듣기와 말하기를 싫어해도 사단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게, 넓게 우리의 삶의 저변까지 깔려 있습니다.
①사단은 우리 나라 최고 권력자까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1960년에 우리 나라에는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박정희 소장이 군사반란을 통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청와대에 불상을 모셔놓고, 그 우상을 하나님처럼 섬겼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내는 총에 맞아 비명에 갔고, 자신도 부하의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18년으로 전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시대는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1979년에 1

2.12 사태가 일어나고, 1980년 5월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열화 같은 민주화의 열망과 광주 수천 시민의 자유와 생명을 빼앗아가면서 전두환 소장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단군 신전을 군(郡), 면(面) 단위까지 세우려고 했습니다. 그가 임기를 마쳤을 때 전국에서는 그의 죄과에 대한 처벌을 주장하는 여론이 드높았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억제할 길이 없었던 그는 종교지도자들을 불러 이때에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독교 지도자들은 국민 앞에 저지른 죄과를 속죄하고 용서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내가 지은 죄를 어떻게 다 드러내놓고 용서를 빌 수 있느냐며 거절했습니다. 천주교 지도자에게 물었습니다. 고해성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자존심 상한다며 그는 그것도 거절했습니다. 결국 전두환씨는 불교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백담사로 들어갔습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지금 감옥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며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노태우씨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는 대구 팔공산에 귀 크기만 3M나 되는 세계에서 제일 큰 불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도 지금 안양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으며, 재임 시 저질렀던 죄의 항목들이 지금도 계속 추가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1960년부터 1993년, 30년이 넘는 세월을 이 나라는 그들에 의하여 통치 받아 왔습니다. 그들이 유달리 나쁜 사람들이었다기보다는 악한 마귀는 이 나라 최고 통치자였던 바로 그들까지도 완전하게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마귀는 정사와 권세를 통해서도 역사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
지나놓고 보면 얼마나 아찔한지 모르겠습니다. 30년 세월을 이 나라 최고통치자들이 그토록 철저하게 마귀에게 붙들려 우상숭배를 했는데 이 나라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호하신 것입니다.
②사단은 우리네 믿는 가정에까지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시달립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고 굿도 하고, 점도 칩니다. 부적도 사가지고 다닙니다. 집안 구석구석에 붙여놓습니다. 그러나 마귀 사단의 문제는 단지 불신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믿는 신자들의 생활 속에, 의식 속에도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합니다. 사단의 실체를 바로 보지 못합니다. 사건이 터졌는데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게 살면 어떤 결과가 돌아올 것인지 뻔히 보이는데도 전혀 알지를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단이 그 눈을 완전히 가려버렸기 때문입니다.
③사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인 교회에까지 들어와 있습니다.
믿는 자의 수가 전체 인구의 ¼이나 된다고 하면서도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사는 모습이 불신자와 동일하거나 때로는 한술 더뜨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둠이 가득한 캄캄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어떤 시대,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솔직히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 죄인가 하는 지식 이상의 깨달음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지고, 사단에게 소속되어 버린 근본문제에 빠진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느껴 보았습니까 여기에서 구원받은 감사와 감격이 넘쳐나고 있습니까
제가 볼 때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힘들지요. 예배시간에는 졸립기만 합니다. 예배를 다반사로 빠지고, 늦어도 미안한 기분도 들지 않는 것 아닙니까 심각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①영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다 지쳐 버렸습니다. 아예 포기한 사람들도 늘어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나라, 개인과 시대를 한번 돌아보세요. 그 모습이 과거 영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이었습니다.
②종교인들이 난무하던 시대였습니다.
종교는 참과 거짓을 혼동시켜 버립니다. 다른 구원을 말하는 타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성전에서 예배하면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거짓 종교인들이 난무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바리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이 철저하게 진리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오는 사람들까지도 철저하게 막았습니다.
③정치적인 암흑기였습니다.
로마의 학정과 헤롯의 폭압적인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안을 느끼고 자기 아내들과 자식들을 무참하게 죽인 미치광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④인정이 황폐하게 메말랐던 시기였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모든 사람은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하라 명령했습니다. 베들레헴에 온 요셉과 마리아는 여관에 들지 못하고 마굿간으로 갔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임산부를 여관주인은 그들을 내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를 데리고 세번 산부인과 병원을 가보았습니다. 낮에 아이를 낳으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어도 세번 모두 밤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밤에 병원 응급벨을 누를 때 한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을 돈을 벌기 위해 열어주었겠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하고 돌아서야 했다면 제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저는 그때마다 마리아와 요셉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삭이 된 몸을 이끌고 병원도 아닌 여관마다 손님이 넘쳐서 받을 곳이 없으니 다른 곳에 가보라고 거절하는 사람들 앞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들은 밀리고 밀려서 결국은 냉기 도는 마굿간까지 갔습니다. 거기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성경에는 이 장면을 보고 하나님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의 무리를 보면서, 우리는 사람이 얼마나 나쁜가보다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밖에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한 사단이 얼마나 인간을 악질적인 존재를 만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만나는 길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게 필요합니까 모든 사람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생긴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요 14:6). 그만이 구원 얻는 유일한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3.선지자를 대망하라.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선행, 노력 등을 통해 구원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의 수고는 다 실패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에 성인은 있으나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게 하는 길이 되기 위해서는 완전한 사람, 완전한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은 훌륭한 사람이지 의인이 아닙니다. 사람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구원의 유일한 길은 하나님이 여셨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요, 공회의 관원이요, 선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방법으로는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다섯 번이나 결혼에 실패하고 지금은 남편 아닌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지만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찾아가는 방법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하지만 찾아오신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구원받습니다.
오늘 본문은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 예물을 드리고 경배하는 장면입니다. 말씀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 되신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한 사람의 노력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은 각자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하늘에 떠있는 전에 없던 큰 별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예루살렘까지 왔습니다. 헤롯에게 가서 유대 땅에 들어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물었습니다. 헤롯은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시기로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미가서 5:2을 통해 베들레헴 땅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그들은 베들레헴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는 별이 앞장서서 박사들을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별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있는 마굿간에 이르러 머물러 섰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희가 하늘의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하늘에 별이 나타나게 하시고, 박사들이 동방에서 오도록 하나님이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 그리스도가 베들레헴 땅에 나실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별을 움직이게 하사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마굿간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 만나는 길은 모두 하나님이 만드시고, 여십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이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길은 인간에게 있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입니다.

4.선지자가 났을 때 사람들의 반응
①적극적인 반대자가 있었습니다.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②무관심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그 엄청난 날에 돈 벌기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성탄절은 서글픈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탄절은 일년 중 최고로 주류소비가 높은 날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날 성적인 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Christmas baby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③심히 기뻐했던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은 기다림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동방박사, 시므온, 안나, 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얼마나 주의 강림을 기다렸던지 주의 성령이 임하여 네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약속까지 주었습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보고 이제는 주의 종을 하나님이 편안히 놓아 주셨사오며, 내 눈이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25-33)
안나라는 노파는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는 과부가 되어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주야로 기도하며 메시야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 된 지 팔십사 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들판의 목자들은 모두가 잠든 밤 홀로 잠들지 못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뜻은 모든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기 위함이지만 그를 만나는 만남의 역사는 기다리는 자들의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탄생의 장면이 비참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정성어린 경배가 있었기에, 들판의 목자들의 기쁜 찬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몇 안되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간절한 기다림이 있었기에 하늘에는 평화가 땅에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가 넘쳤습니다.
진정으로 여러분에게는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기다림이 있습니까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이 있습니까 기다리는 자는 준비하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천 년 동안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기다려 왔지만 막상 그리스도가 왔을 때 나아가 영접한 사람은 지극히 작은 소수의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과거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님이 재림해 오셔도 좋은 사람 손들어 봐라 했을 때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습니다. 이유는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동일한 질문을 다시 드린다면 제가 예상하건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맨날 지금 오시면 안된다고 말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진정으로 기다리고, 그 기다림으로 인하여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준비함으로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기 예수는 그리스도로, 구원자로 세 가지 근본문제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구원자 예수는 우리가 멸시해도 괜찮았었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시는 주님은 두려움으로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는 심판의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보고 사랑하는 주의 제자 요한이 두려워 떨었습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했습니다. 심판의 주님이 두렵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길 되신 선지자, 그리스도를 우리는 구원자로 만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판의 주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날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주님을 만납시다. 날마다 벌어지는 사건 속에서 주님을 만납시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만납시다. 그가 오늘 우리의 삶에 시간시간마다 임하시고 우리가 주인 되시는 그분을 만날 수 있도록 그리스도를 대망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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