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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사장을 대망하라 (창 03:1-15)

첨부 1


올해도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려 봅니다. 하얀 눈이 내려 상처받은 마음들, 죄악으로 물든 마음들을 맑게 씻길 수 있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은 희고 깨끗해서 눈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시므로 하나님일 수 있습니다. 죄 없는 하나님과 인간이 함께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도 죄가 없어야 합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은 가까운 만남과 사귐일수록 서로가 거짓이 없고 깨끗해야 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기본적인 예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래서 가까울수록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문제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관계가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싸움을 보통 칼로 물베기라고 합니다. 갈라질 수 없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관계도 죄가 개입하면 여지없이 갈라지고 맙니다. 죄는 갈라질 수 없는 관계도 쪼개버리는 무서운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직 대통령을 미워할 개인적인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지었기에 국민들과 그들 사이에 깊은 불신의 골이 패였습니다. 죄가 국민과 지도자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죄가 들어가면 행복했던 가정이 깨어집니다.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도 추해지고 맙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들이면서 타락했습니다. 삼손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출생의 비밀을 발설함으로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가 들어옴으로 훌륭했던 사람들도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노아시대는 죄가 관영했던 시대입니다. 하나님께 심판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가 관영하면 나라도 망합니다. 우상숭배가 가득했던 애굽, 바벨론, 앗수르, 로마, 일본이 망했습니다.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참으로 큰 위기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인을 죄인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죄인이면서도 죄인으로 자신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는 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하나님을 불신하여,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에 범죄했습니다. 죄가 개입되는 순간에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틈이 생긴 것입니다. 모든 관계에 죄가 개입하면 분리를 가져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갈라놓았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과 저주는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죄에 빠진 인간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죄는 혼자 지을 수 없습니다. 죄는 분명한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누구를 상대하여 짓는 것입니다. 죄를 말할 때 사람들은 보통 사람만을 생각합니다. “내가 부모님에게 죄를 지었다. 내가 친구에게 죄를 지었다” 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죄는 사람 이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하여 지은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요구하자 “내가 어찌 하나님 앞에 득죄하리이까” 했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하여 죄를 지었다고 하면 인간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달리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만큼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인간 쪽에서 보면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은 절망적입니다. 분명히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사망으로 다루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범죄한 인간의 운명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죄의 기준은 사람이 보는 것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사람들은 행위를 가지고 죄의 유무를 판단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령을 먼저 보십니다.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요, 형제를 보고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한 자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동기와 행위를 동일하게 보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행위는 이미 동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마음 속의 생각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근본적으로 원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죄를 그대로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 바로 그것이 심판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절망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롬 3:9-15)
이와 같은 죄와 저주의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구원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사람들이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인간의 절망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①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②이 사실을 깨닫는 자도 없습니다.
③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④선을 행하는 자도 없습니다.
⑤죄 짓는 일만 급급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2.죄의 결과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신 명령에 불순종하여 범죄했습니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 말씀을 불신하여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처럼 된다는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처럼 되려는 교만 때문에 범죄했습니다. 죄를 지었을 때 나타나는 인간의 반응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범죄한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1)아담과 하와의 태도
①벗은 줄을 알게 되었습니다(3:7).
처음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벌거벗은 채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살아도 전혀 그것에 개의치 않을 정도로 육신적인 일에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영안이 닫히고, 육신의 눈만 밝아져 육신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②무화과 나뭇잎으로 옷을 해입었습니다(3:7).
③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3:8).
④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3:10).
두려움은 죄의 결과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⑤변명했습니다(3:12-13).
마귀는 죄를 지어 놓고도 자존심을 내세워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지 못하게 합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에 급급했습니다.
2)하나님 앞에서의 죄
①죄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②죄는 변명해도 통하지 않습니다.
③죄는 노력해도 가려지지 않습니다.
④죄는 피해지지 않습니다.
3)죄의 결과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7-28)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신분과 엄청난 권세를 가진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었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하는 순간에 이 모든 관계와 축복은 다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분리를 가져왔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①하나님과의 분리는 생명을 상실하고 사망이라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②하나님과의 분리는 축복과 능력을 상실하고 죄와 저주를 가져왔습니다.

3.제사장을 대망하라
죄를 해결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범죄 이후에 인간은 다시 하나님 만나는 길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죄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길이 없었습니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분이십니다(마 1:21). 예수님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십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받게 하시는 제사장이십니다.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입니다(마 1:23). 그러면 구체적으로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죄를 용서하시는 분을 만나야 합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막 2:5)
죄를 사하는 권세는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하나님의 본체시나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입니다.
②죄인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막 2:17)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기보다는 열심히 의를 행하여 그 의로움을 하나님 앞에 자랑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태도를 하나님은 일체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의로움은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는 만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부정하는 태도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철저한 자각이 있을 때 제사장을 대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넘치는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만 용서의 십자가를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 깨달음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큰 곳에 은혜가 넘칩니다.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나를 큰 죄인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을 대망할 수 있고, 큰 용서를 받고 기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을 대망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우리 힘으로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용서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도 다 용서하시겠다 말씀하십니다. 죄는 밉습니다. 그러나 통회는 아름답습니다. 어떤 죄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살인도 간음도 하나님은 회개하면 용서하십니다. 다윗은 간음죄를 짓고, 그 죄가 드러날까봐 두려워서 우리아를 전쟁에 죽게 하는 살인죄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죄를 모두 돌이켜 죄 용서함을 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
죄인임을 고백할 때 살길이 열립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피흘림이 없으면 죄사함이 없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죄를 용서받을 길이 없습니다. 죄를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그 어머니와 형제들과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내려가 거기 여러 날 계시지 아니하시니라”(요 2:12)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마 11:23-24)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가버나움은 어떤 지역입니까 가버나움은 군사적으로 요새요, 문화도시였습니다. 그들은 교만함으로 망했습니다.
소돔은 음행 때문에 망한 도시입니다. 가버나움은 교만 때문에 망했습니다. 교만은 음행보다도 더 큰 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보다 가버나움을 주님은 더욱 저주하셨습니다. 음행은 돌이키고 용서받을 수 있으나 교만은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는 어떤 형태로든 마귀와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죄인은 숨쉬는 게 죄입니다. 먹는 게 죄입니다. 마시고 움직이는 게 죄입니다. 움직이는 모든 게 다 죄입니다.
율법은 인간의 죄를 밝혀주고,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근거입니다. 복음은 날마다 은혜로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날마다 지은 죄를 고백합시다. 그리고 용서받읍시다.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대강절 절기에 죄를 용서하시는 제사장 되신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의 삶의 저변에, 의식에 잠재해 있는 모든 죄악을 물리쳐 달라고 기도합시다. 95년도 다 저물어 갑니다. 죄와 수치, 부끄러움을 숨기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입니다. 무릎꿇고 고백합시다. 용서받은 감사와 감격으로 밝아오는 96년도를 기다립시다. 승리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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