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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판의 소용돌이 (암 0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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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BC 786-746)가 통치할 때에 큰 번영을 누렸 다. 솔로몬왕 이래로 2세기 동안 그처럼 경기가 좋았던 때는 없었다. 웃시야왕 (BC 783-742)이 다스리던 남부 유다도 일종의 황금 시대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 은 예언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온에서 안일"하고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 든한"(6:1)자들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아직도 가난과 억압에 시달리는 백성 들이 적지 않았다. 의심할 나위없이 믿음을 계속 지녔던 신앙인들은 전국을 휩쓰 는 타락상을 보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탈선을 막아 달라고 부르짖었 을 것이다.

오늘날 서방 기독교 국가의 경우처럼, 이스라엘의 국외적인 평온과 국내적 인 번영은 탐욕과 향락을 추구하는 물질주의와 양심을 무마시켜 주는 형식적 종 교를 배태시켰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종류의 악들을 물 마시듯 행하며 그 들의 시간과 정력을 소진시켰다. 그러나, 백성들은 채워지지 않는 관능적인 쾌락 을 만족시키기 위해 끝없이 더 많은 향락을 원할 뿐이었다. "우리로 마시게 하 라"(4:1)는 것이 당시의 사회가 내걸은 현수막이었다. "상아 침상에서 딩굴 며" 마시고 흥청거리면서 온갖 향락을 누리는 짓은 순간적이며 육감적인 만족 을 위해 사는 자기 중심적인 문화의 영구한 표식이다(6:4-6).

한편 백성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을 노엽게 한 일을 무마시켜야 한다는 부 담감과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또한 그들의 영원 한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처지였으므로 죽음의 그림자가 서서히 한 발씩 다가온다는 불길한 생각도 깊어졌다. 그래서 이같은 꺼림칙한 마음들을 달 래기 위해 수많은 의식들로 짜여진 안일한 예배가 등장케 되었다. 그런 수다 한 의식들은 하나님이 명령하신 적이 없었지만 사악한 백성들의 구멍 뚫린 양심 을 임시로 메꾸어 주기에는 충분하였다.

외형적인 예배의 준수는 현대인의 의례적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혹은 이 따금씩 나오는 주일 낮 예배의 참석까지 포함해서 인간 양심의 내면에 자리잡 고 있는 억눌려진 불안이나,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제쳐놓고 살기 때문에 머지 않아 그 하나님께 잡히고 말 것이라는 두렵고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는 진정제 역 할을 한다. 공허한 의식은 인간이 손수 만들어 낸 인위적이고 종교적인 특징이 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런 인조풍의 예배를 인정치 않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 는 경배를 원한다(참조 시 51:16-17; 암 4:4-5, 5:4-6; 마 23:23; 요 4:24).

하나님은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너무도 흡사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드고아로 부터 한 선지자를 보내셨다. 이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 나님의 계시된 뜻을 져버린 죄와, 하나님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죄에 대 한 진노와, 그들의 부도덕한 국민생활에 대한 판결과, 껍질만의 종교와, 그들 의 문화와 국가에 대한 임박한 멸망을 선포하였다. 그렇지만 이같은 부정적인 말 씀 속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회복시킨다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 다. 하지만 구원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다가온 심판의 선언만 들 렸고 따라서 하나님의 종을 한갖 "파멸의 선지자"로 몰아 붙였다. 벧엘의 제사 장 아마샤는 "그 모든 말을 이 땅이 견딜 수 없나이다"(7:10)라고 불평하였 다. 현대의 풍자가들은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는 아모스 4:12의 구절 이 적힌 샌드위치 광고판을 곧잘 익살로 그려 놓고 사람들을 웃긴다. 듣기에 불 편한 심각한 진리를 농담으로 웃어 넘기는 것처럼 양심을 더 잘 무마시켜 주 는 일이 어디 있겠나 인간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반대하다가 지옥으로 가면서 도 웃어 댈 것이다.

인간들은 스스로 직면할 수 없는 일은 비웃어 버린다. 그런데 어떤이들 은 진리를 보면 화를 불끈 내면서 이를 배척한다. 그리고 만약 메시지를 조롱 할 수 없으면 이를 하나의 헛소리로 몰아 붙인다. "파멸의 선지자"라는 호칭 자 체가 참 선지자는 "파멸"을 외칠 수 없음을 전제하고 있다. 그같은 견해에 의하 면 파멸은 원치 않는 일일 뿐만 아니라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러한 논조 는 무신론자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이 세상에 너무도 많은 불행 과 고통이 있끼 때문에 하나님이 존재할리가 없다고 주장한다. 무신론자가 말하 는 "하나님"은 물론 자기 상상에서 나온 추상적인 허구에 불과하다. 성경에서 말 하는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이시며 왜 이 세상이 악한 대로 존속되도록 허락하 는지를 설명해 주신 분이다. 무신론자들의 "하나님"은 넘어뜨리기 위해서 고안 해 놓은 허수아비이다. "파멸의 선지자"라는 개념도 심판과 구원이라는 실제 의 사실들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로 만든 사상이다. 심판이 있다는 것은 옛날이 나 지금이나 죄인들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일런지 몰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 씀으로 기록된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는 아모스의 예언 첫마디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지닌 진실성을 우롱하 는 일이 얼마나 우매한 것인지를 실감케 된다. 아모스는 "지진 전 이년에" 예언 하였다. 그런데 스가랴는 250년 이후에 이스라엘에게 내렸던 이 첫번째 심판 을 기억하고 바벨론에서 귀환된 백성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가 그 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 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 리라"(슥 14:5). 하나님은 우롱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분이다! 그의 말씀은 확실 하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보복은 그의 절대적인 공의처럼 조금도 빈틈이 없 다. 인간 역사 자체가 이 엄숙한 진리를 반복해서 확증해 준다!

1. 주님이 시온에서 부르짖으신다.

하나님의 심판 소식은 개인에게든 국가에게든 결코 환영받지 못할 말이 다. 그러나 벌을 받는 "상대편"이 응분의 대가를 받는다고 고소하게 여기는 경우 에는 예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악의적인 보복심은 당치 않 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운 일"(히 14:31)이다. 확 실히 하나님의 심판은 "온 땅"(시 105:7)에서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히틀 러 시대의 독일 패망이나 영국의 정치 및 경제력의 하락은 하나님의 심판이라 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역사상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은 아무리 작고 개인적 인 것이라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면에서 혹은 구체적으 로 "하나님의 권능"(출 8:19)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들을 다루시는 성경의 원 칙들에 비추어 평가되어야 한다. 사건들을 해석하는 일은 퍽 어려울 때가 많 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정확한 식별은 일반적인 상식적 범위를 넘기가 쉽지 않 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이 인간들의 문제를 처리하실 때에 드러내는 모든 환 경적인 특징들과 주권적인 행위들로부터 사건의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한다. 옛말 처럼, 일을 계획하는 것은 인간들이지만 성패를 결정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아모스는 특정 국가들에 대한 구체적인 미래의 심판들을 선언키 위 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였다. 이 심판의 예언들은 역사가 오랫동안 그 정 확성을 증명해 주었다. 하나님이 인류를 대하시는 이같은 측면들은 아직도 그 성 취를 기다리는 신약예언들에 비추어 시급히 숙고되어야 할 심각한 사실이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며", 여기서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이 강조되어 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언약과 밀착된 성명이다(출 3:14-15, 19:3-6). 이 이름은 하나님이 자기의 언약과 백성 그리고 인류 전체와 갖는 관계 를 의미한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누릴 미래의 영광 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 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 (사 54:5).

여호와는 주권자이시다. 그분은 "부르짖을" 권리가 있다. 그의 율법은 "시 온에서부터" 발효된다. 다시 말해서 시온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의 예배처로 지 정하여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바치게 한 곳이었다. 또한 이곳은 하나님이 이스 라엘과 온 인류에게 자기의 영광을 드러낸 곳이기도 하다. 여호와는 사자처 럼 "울부짖는다." 그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이다. 사자의 울부짖음이 먹이를 삼키 려는 것은 예고하듯이 여호와의 울부짖음도 인간과 국가들의 악행에 대한 의로우 신 보복의 전조이다(암 3:8, 렘 25:30-38).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여호와의 절대 주권은 그의 공정하신 심판의 집 행으로 더욱 강조된다. 갈멜산 꼭대기까지도 마르게 된다. 이곳은 전세기의 3년 반 동안의 가뭄 속에서도 엘리야를 지켜주었던 물샘이었다(왕상 7-18장). 이 말 씀의 교훈은 간단 명료하다. 즉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공정하신 보복이 전세계 위 에 내린다는 것이다. 모티어(J. A. Motyer)는 다음과 같이 극명하게 지적하였 다. "전세계는 하나님의 감찰을 받으면서 그의 평가에 아무 소리 못하고 그가 내 리는 심판 앞에서 피할 길이 없어 무릎을 꿇는다."

2. 뇌성이 다가왔다.

구체적인 각 심판마다 다음과 같은 동일한 기본형식으로 시작된다. "여호와 께서 가라사대...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1:3, 6, 9, 11, 13; 2:1, 4, 6)). 이 어구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항을 들추 어 볼 수 있다.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이 주변 국가들 위에 내리는 일렬의 심판들이 선 포된다. 이 심판의 소용돌이는 주변국가들을 차례로 치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뇌 성 소리와 함께 점점 이스라엘로 접근되고 있다. 이 각 나라들의 심판은 하나님 의 백성들과 그릇된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받는 것이었다. 다만 모압의 경우 만 예외적인데 모압의 죄는 에돔을 향한 것이었다(2:1). 이러한 심판 이유는 우 연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근본 목적과 직결된 것이다. 다 시 말해서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 백성들의 구속과 밀착되어 있다. 아무리 하나님 의 백성들이 신실치 못하고 신앙 생활의 실패를 거듭할지라도 그들은 역시 이 세 상에 있는 하나님의 대사들이다. 그들이 잘못하면 하나님이 바로 잡으시고 때로 는 탈선에 적합한 매를 호되게 때리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의 의식 속 에 잠겨있는 하나님의 목표와 나라를 떨쳐 나가기 위해 불신 세계를 다스린 다. 아모스의 예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드러내 준다. 심판의 불가피 성은 은혜의 메시지가 점차 앞으로 당겨져 나오면서 구원의 약속으로 연결된 다. 그리고는 마지막 장에 가서 가장 웅장한 계시의 언어로 이 약속은 영광스러 운 절정에 이른다(3:2, 4:10-13, 5:4-8, 24, 9:8-15).

정죄와 구원은 하나님의 양면적인 사역이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의 메시 지에서는 이 두 활동들이 동등한 비중을 차지 하지는 않는다. 아모스는 불과 몇 년 후에 있게될 요나 선지자의 예언 못지 않게 멸망을 전한 선지자였다. 심판 은 반드시 있다. 그렇지만 "다윗의 무너진 천막"(9:11)이 니느웨의 회개처럼 다 시 세움을 받게 될 것이다(욘 3:6-10). 물론 가장 큰 은혜는 주 예수 그리스도 의 구원 사역에서 밝히 드러났다. 주님은 이 세상을 정죄하려고 오시지 않고 죄 인들을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 하려고 오셨다(요 3:17). 하지 만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요 3:18) 것이다. 그리스도께 서 불신자들의 정죄를 성취시키기 위해 어떤 일도 행하실 필요가 없다. 그렇지 만 그리스도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수난을 겪고 심지어는 십자가 위에 서 못 박혀 죽기까지 해야 한다. 또 확실한 것은 주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를 심 판하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런데 버림 받은 자들이 지옥으로 가는 것 은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사역을 이루는 주된 목적에 꼭 수반되어야 하는 사건이 다. 메시야 사역의 핵심적인 목적은 하나님이 성도들 속에 머무시고, 새 하늘 과 새 땅에서 모든 칭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의로 다스 리는 것이다. 이 구속의 원대한 목표들은 장차 계시될 미래의 영광들이다(롬 8:8-21, 계 20:11-22, 21장).

2) "서너가지 죄" 이 말씀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불법과 불의의 잔이 채워져서 하나님이 악 인들의 회심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창 6:3의 말씀은 각 세기 를 거쳐 메아리치고 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 께 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인간들의 악행을 분량을 재고 계신다. 그러므 로 절대적인 공의가 집행될 심판의 때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진노 의 때를 미루신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이 쉽사리 노하지 않는다는 점을 오히 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내세우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다. 시 편 기자는 이같은 악인들이 계속 번창하는 것을 보고 번민하였다.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 소에 들어 갈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시 73:16-17).

인간들과 국가들은 죄의 분량을 번번이, 날마다, 해마다 채워가지고 있 다. 만일, 그리스도가 당신의 구주가 아니면 그분은 반드시 당신의 심판자 가 될 것이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그들의 원수 나라들이 망한다는 예언 을 듣고 기뻐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당해도 마땅하지 않겠는가 아마 당 신도 아프리카나 아시아나 중앙 아메리카의 여러나라들을 파괴하는 기근과 전쟁 들에 대해서 같은 심정으로 느낄지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의 다 른 국가들에서는 일어나지만, 우리나라는 교회도 크고 경제도 잘되고 또 앞으 로 전망이 좋다고 자위할 수 있다. 나는 정말 다가오는 천둥소리를 듣고 있는가

3. 열국의 비문들(1:3-2:3).

국제적인 규모의 죄가 실린 목록과 이에 따르는 심판이 이제 적나라하게 드 러났다. 하나님의 진노는 거두어질 수 없는 상황이다.1) 수리아(다메섹)는 이스라엘 영토의 일부인 길르아 백성들을 잔인하게 압 박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는다(1:3-5). "이는 저희가 철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 을 압박하였음이라." 이 표현은 아마 당시의 타작기와 비슷하게 생긴 기구로 포 로들의 사지를 잘라낸 악행을 두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죄 때문에 수리 아의 통치자들과 다메섹 수도와 왕들의 별궁이 있는 아웬 골짜기와 벤하닷이 파 괴되고 백성들은 원래 그들의 원산지인 길(키르)로 붙잡혀 갈 것이다(9:7).

2) 블레셋(가사)은 노예 장사를 하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을 에돔(1:6-8)에 다 팔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이 숙적들은 국가로서의 명맥이 끊어지게 될 것이 다(습 2:4-7). 그들은 인간을 물건처럼 팔아 치울 수 있는 하나의 노예 상품으 로 밖에 생각지 않았다.

3) 두로는 이스라엘과 맺은 조약(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잡 아 에돔의 노예로 팔아 넘겼다(1:9-10). 언약의 관계에서 인간들을 대하시는 하 나님은 언약파기를 매우 언짢게 보신다. 모든 죄는 언약을 깨는 것이다. 국가 들 사이의 언약(조약)파기는 인간들의 죄를 드러내는 한 측면이다. 두로의 죄 는 빛을 가리는 죄였다. 두로는 형제의 신뢰를 저버렸고 하나님과 인간들 앞에 서 맺은 엄숙한 약속을 어겼다. 그래서 두로도 망하게 된다(겔 26-28장).

4) 에돔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뿌리 깊은 인종적 편견에 집착되어 있었 다(1:11-12).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었는데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겼다는데 대 한 약감이 온 나라를 분노로 떨게 하였다(창 25:19-34; 민 20:14-21; 욥 1:10-14). 에돔 역시 열국의 명단에서 삭제될 것이다.

5) 암몬은 학살 정권이었다(1:13-15). 이들은 롯의 후손들이었다(창 19:30-38). 암몬은 국토를 확장키 위해서 온 주민들을 대량으로 학살시켰으며 임산 부를 칼로 찔러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까지 살해하였다. 암몬 역시 망하게 되 고 그 백성들은 잡혀가게 될 것이다.

6) 모압은 암몬과 에돔 사이에 끼인 나라인데 죽은 자들을 욕되게 하였 다. 모압인들은 에돔 왕의 시체를 파내어 화장을 하고 그의 뼈들을 갈아서 건축 용 횟가루로 사용하였다(2:1-3). 이들도 암몬처럼 롯의 후예들이었다. 그들이 자 행한 이같은 야만적인 악행은 빙산의 일각이었을 것이다. 모압도 멸망케 될 것 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4. 결론(우리가 배울 교훈들) 구약의 교회는 이스라엘 국가였다. 물론 아모스 당시에는 구약교회가 이스 라엘과 유다라는 두 왕국으로 대표되었다.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심판 들은 당시의 구약교회가 그릇된 안보관 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도록 하기 위 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은 더 큰 벌을 받아야 할 나라였 다! 교회라고 해서 불의 정화로부터 면제되지 않는다.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 나 하나님의 원칙대로 살지 않는 교회는 징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아모스 시 대의 교회는 "세속화" 되었다. 그래서 상실된 인류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자신으 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이스라엘 교회는 개혁되어야 했고 갱신되어야 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영적 이스라엘은 신약교회이다(갈 6:16). 현대 교회 의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맡은 예언적 증언의 내용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드 러내 보이는 실제적인 경건이다.

첫째, 하나님이 열국 중에서 자신의 법이 준수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이 분 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이든 국가이든 만인의 복종을 요구한다. 현대인들 은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인 입장에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래서 복음이란 순 전히 개인 생활의 경건이나 윤리에만 상관된 것이지 대중이나, 단체나 국가들 의 윤리와는 무관하다고 보기 쉽다. 하나님은 소수의 의인들을 위해서 소돔을 멸 망시키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창 18:32). 그렇지만 소돔은 그들의 죄에 대 해서 하나님의 책임을 져야 했다는 것이 본 사건의 한 핵심이다(창 18:32). 국가 란 성경의 윤리적 교훈들에 대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할 수 없다. 아모스가 우 리들에게 지적하는 사항들은 국가들이 포악한 정책을 쓰거나 하나님의 백성들 을 핍박하거나 조약들을 깨거나 심지어 이교국의 왕들이라도 그 뼈들을 욕되 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왕 중의 왕이며 주인 중의 주인 으로 계시하셨다. 그분은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되신 분이다(엡 1:22). 국가 정 책의 윤리적 표준은 오늘날 서구 정치의 강령이 된 마키아 벨리의 실용주의가 아 니고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물리치는 나라들은 아모스의 예언 을 절급한 심정으로 경청해야 한다! 둘째, 따라서 교회는 사회나 국가 및 국제 문제에 있어서 성경에서 계시 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해야 할 예언적 임무를 띄고 있다. 주님의 음성은 타당 한 견해의 표현을 억누르는 "정치배들의 압제"나 무관심이나 혹은 불신 대중 의 반대에 의해서 묵살될 수 없다. 또한 주님의 음성은 국가가 도덕적으로 "중립 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성경적인 국가의 의무라는 사상에 의해서도 침묵되어 서는 안된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창하는 미국식 교리는 현대 사회에 널 리 퍼진 사상이다. 이 교리는 공공 정책에서 종교적인 편견을 막고 현대 사회 의 종교적 다양성을 보호하는데 필요하다고 내세운다.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개 인의 견해들이 어떻든지, 하나님의 교회는 모든 사람들과 그리고 국가들에게 개 인 및 국가 생활에서 성경의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에 복종할 것 을 증거하라는 것이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이다.

세째, 국가들에 대한 교회의 예언적 증거는 죄인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 신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얻어지는 구원의 복음과 분리될 수 없다. 삶 이 변화되어야 하고, 사고 방식이 개혁되어야 하며, 행실이 달라져야 하고, 죄 가 고백되며 회개되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영원한 구속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 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므로써 이뤄지게 된다.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다. 이것 은 사회적인 어떤 정책도 아니고 하나의 정치적인 이론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 는 것은 "사회 복음"의 오류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아는 것 이다. 여기서부터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간 생활의 구석구석에 적용시키는 믿 음 생활이 시작된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구원을 받 을 것이다"는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 의 골자이다.

하나님은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시지 않는 분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에스 겔 선지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시는 다음과 같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 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 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 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교회와 국가/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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