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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심판의 올가미 (암 0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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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에 경험이 많은 설교자들의 간증에 의하면 성도들은 하나님이 다른 백 성들에게 주시는 말씀 듣는 일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이것은 매우 우울한 일 이다. 우리는 바깥 세상과 또 거기서 일어나는 그릇된 일들에 대하여 듣는 편 이 우리 자신의 내부 세계에 대한 지적을 듣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아모스는 지금 까지 이스라엘을 괴롭혀 온 무리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설교했다. 당연히 백성 들의 관심과 흥분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는 아모스의 다음 말에 귀기울 여야 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을 찾아가 했던 말을 기억해 보자. 다윗은 나단 의 유도 심문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나단이 말했던 악한 부자를 당장 벌하라 고 했다. 나단은 그 말을 받아서 "그 장본인이 바로 당신이오"라고 했다. 그리 고 나단은 구체적으로 다윗의 잘못을 지적했다. 주님과 부자 청년의 대화 역 시 비슷한 원리였다.

아모스 역시 이와 동일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진모를 극적으로 노출시켰 던 것이다. 그는 모압 뿐만 아니라 요단을 건너 유다의 언덕을 오른 후 "예루살 렘의 궁궐들"을 태워버릴 불들이 오고 있다고 예언하였다. 아모스는 유다 지 방 드고아에서 온 농부였다. 그의 예루살렘에 대한 메시지는 자기 동포를 위 한 것이었다.

지금 아모스는 자신의 백성들을 향해 호되게 외치고 있다. 아모스의 목표 는 결코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설교자가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전 달하는 일에 충성하였다.

I. 이스라엘은 언약을 파기했다(4-5).

메튜 헨리는 "다른 나라들은 인간에게 끼친 해악들 때문에 심판을 받았지 만 유다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멸시한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했다"고 지적했 다. 하나님을 진노케 했던 원인은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며 그 율례 를 지키지 아니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랫 동안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았었다. 그들은 애굽의 고통에서 해방을 경험 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은혜 언약에 참여한 자들이었다. 우리가 탈선할 때 하 나님의 징계를 받듯이 진리와 축복도 아모스의 백성들의 체험 속에 늘 함께 하 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든 하나님의 은혜를 값없이 내던져 버렸다. 하나 님은 네 가지 측면에서 그들의 배도를 지적하셨다.1)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의 생애에서 주인이 되시는 것을 배척하였다. 하나님 의 말씀만이 인간들에게 주어진 믿음과 삶의 권위있는 유일한 표준이다. 그들 은 이 말씀을 거절하였다. 그들의 생활 표준이었던 하나님의 계시는 이제 그 들 스스로의 망상으로 대치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바꾸 고 창조주가 아닌 피조물들을 섬겼다(롬 1:25). 그들은 이교에 몸을 던졌다. 그 리고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인간의 주권과 우월성을 올려놓았다. 그들은 인간을 만 물의 표준으로 삼았다.

2) 저희가...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이탈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래서 자기들의 눈에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행하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여호 와의 경배를 그들 자신들에게 편리하도록 뜯어 고친 것이다. 그들은 사회에서 인 정을 받을 수 있는 처신의 "가치관"을 최대한으로 낮추어 조정하였다. 그들은 그 들의 후손들인 바리새인들처럼 "하박국과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쳤을지 몰 라도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마 23:23). 그들은 죄를 그들이 편리한대로 재해 석하여 정의하였다.

3) 저희가...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그들은 우상 숭배에 빠졌다. 이것은 충성의 대상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옛 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은 성경의 영원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을 버리면 다른 종 류 신들에게 마음을 돌린다. 인간들의 유일한 구속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 게 믿지 않는 자들은 사실상 "무신론자"들이며 이들은 마치 하나님이 안계시 기 때문에 그들에게 하등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다는 듯이 처신한다.

그렇지만 모든 "무신론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유한하고 비인격적인 신들 을 섬기고 산다. 그 신들은 지식인들에게는 진화론적 유물주의일 수도 있다. 혹 은 물건들이나 권력이나 업적이나 아니면 최소한 즐기는 것으로써 현대판 드라빔 이나 금송아지들이 무신론자들의 신이다.

4)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 어제의 이단은 내일의 정통이다. 나쁜 의미에서 계시된 진리 위에 인간 의 전통이 눌러 앉아 있다. 가나안 종교는 서서히 히브리 종교의 예배 속으로 진 입되었으며 이를테면 인정된 교리로 세례를 받은 셈이었다. 자녀들은 그들의 부 모를 잘 흉내낸다. 그렇지만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너희 열조의 율례 를 좇지 말며 그 규례를 지키지 말며 그 우상들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 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는 나의 율례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행하고" (겔 20:18-19).

이 때문에 유다에 불이 내려서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게 될 것이다. 하 나님의 축복을 마치 쟁반에 받쳐서 받았던 백성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우리들 로 하여금 일루( )의 비애를 느끼게 한다. 유다 백성들은 언약의 특권들을 가 졌다. 즉, 영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제공받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망의 길 을 선택하였다. 후대의 역사는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여 실히 증명해 준다.

하나님은 언약의 파기를 매우 언짢아 하신다. 그래서 그의 백성들에게 엄중 한 경고와 함께 응보의 형벌이 온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물론 먼 저 회개와 신실을 촉구하신다. 그렇게 하지 않을 때에는 무서운 결과가 따르 게 된다. 사실상 언약을 깨는 일은 단순한 이교주의보다 더 심한 처벌을 받는 다. 주님은 이 점을 충실한 청지기의 비유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주 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 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 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눅 12:47-48).

하나님의 말씀의 빛을 더 많이 받은 자는 그만큼 더 참되게 할아야 할 책임 이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큰 특권을 가진 자들과 특히 언약의 약 속을 받은 자들과 그 자녀들은(행 2:39) 그들이 듣고 깨달은 진리를 붙잡아 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의 나중 형편이 처음 형편보다 더 못 할 것이다. 이 말씀은 너무도 실제적인 진리라서 하나님의 말씀과 부딪치는 자들 의 양심에 번번이 적용된다. 당신은 아마 교회에 다니면서 진지하게 강론되는 성 경의 말씀을 들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그 를 순종하는 제자가 되려는 간절한 생각을 가지고서 기쁨으로 그 말씀을 받지 않 는다고 치자. 그러면 당신은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고 심판을 자초하는 격 이 될 수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솔직하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 다.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 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 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 을 보임이라"(히 6:4-6).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들의 개인적인 구주가 되셔서 마음과 생활에 구원 의 변화가 생기는 내적 체험과 겉모습만 드러나는 외적 종교 사이에는 커다 란 차이가 있다. 히 6:4-6에 나오는 "타락한 자들"은 그들이 진정으로 그리스도 에게 회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 아무리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 게 선하게 보이고, 아무리 그들의 봉사가 활동적이며 열심이 있어 보이더라도 하 나님을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바르지 않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비록 아무도 밝혀 내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가짜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경우에는 잘 예시되어 있다.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 는 자들"이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보면 "연극배우"란 뜻이다. 다음 은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이다.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 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마 23:15).

언약의 파기는 각종 종교적 행사와 외형적인 열심으로 덮어서 가리울 수 있 다. 그렇지만 그것은 모두 연극이다. 마음 속에 하나님께 대한 적대심이 그대 로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롬 8:7). 이것이 곧 이스라엘과 유다의 문제였다.

II. 그들의 윤리는 위선이었다(2:6-8).

심판의 올가미는 이스라엘의 북왕국 주위로부터 무섭게 조여들었다. 아모스 는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이스라엘의 네 가지 죄목을 열거했다.1) 타락한 재판관들이 무죄하고 가난한 자들을 학대했다(6절).

사람들은 재판관들을 "은"을 주고 매수하여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조작 했다. 그들은 겨우 신 한켤레 값에 지나지 않는 빚을 받으려고 사람을 노예로 팔 았다. "신 한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아서" 채무자로 하여금 빚을 갚게 한다 는 것은 명색이 레위기 25:39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율 법의 본래 의도를 무시한채 여러가지 구실을 붙여 악용하기가 일쑤였다. 사람 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율법은 부패한 재판으로 왜곡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상 인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 박탈하는 구실이 되었다.

2) 가난한 자들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이었다(7절).

힘없는 하층민들은 착취의 대상물이 되었고 돈많은 자들의 노리개감이었 다. 마치 재정 러시아 시대의 농노제도와도 흡사했다. 이스라엘 부자들은 가난 한 자들의 압제를 일종의 스포츠로 즐겼다.

3) 성도덕이 땅에 파묻혀 버렸다(7절).

심지어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창녀와 관계를 맺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 을 더럽히는 행위이다. 어쩌면 이 창녀들은 성전의 매춘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러 나 이런 행위는 "근친상간"에 해당한다. 율법은 이러한 자를 사형으로 다스 릴 것을 명하였다(레 18:7,15, 20:11).

4)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더럽혔다(8절).

그들은 "모든 단" 옆에서 잤다고 하였다. 그 단은 여호와의 단일수도 있 고 바알의 제단일수도 있다. 그들은 빚진자들의 저당잡힌 겉옷을 제단 곁에서 깔 개로 사용했다. 율법은 이런 저당물들은 반드시 저녁에 돌려 주라고 하였다 (출 22:26, 신 24:12-13). 이들은 부당하게 거둬들인 세금으로 술을 마셨다. 이 것이 언약 백성임을 자처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었다.

III.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했다(9-12).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리는 죄를 범 하였다. 그런데 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것 은 비록 그것이 하나님의 법일지라도 근본적으로 인위적인 규칙에 메이는 율법주 의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모든 법이란 일종의 속도제한과 같아 서 인위적인 것인데 대체로 도움이 되는 하나의 가이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 다. 다만 그런 루울들을 너무 심각하게 대해서는 안되는데 그 까닭은 규칙이 란 결국 위반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나님이 성적 부도덕이라고 지적한 것은 "남 아 도는 정력의 배출" 정도로 간주되고, 무법주의는 "젊은이의 유희" 활동으 로 보아 넘긴다. 그리고 법을 적용시키면 이것은 "몰인정"하고 "너무한다"고 본 다.

같은 논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라야 한다고 말하면 그런 것을 요 구하는 하나님은 폭군이며 흥을 깨는 분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러나 사실은 하 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율법을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율법 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헌신된 나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또 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계획하셨다. 이것은 그들에게 큰 격려가 되 는 축복이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맺어진 하나님의 언약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인 간들의 삶을 우울하고 귀찮게만 만드는 지킬 수도 없는 까다로운 도덕 규범들 이 아니라 죄인들의 구원을 희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품으셨던 사랑의 목적은 주님께 대한 성 결, 즉 참된 행복을 백성들이 경험하면서 살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거 룩의 길로서의 율법은 곧 행복의 길이다. 동시에 이러한 율법은 사랑의 표현이 기도 하다. 율법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 것이고 또한 하나님 과 인간들에 대한 사랑의 응답을 가능케 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 모스는 이스라엘이 이같은 율법의 의미를 상기하도록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 의 사랑과 또 그들이 보인 반응의 실례들을 나열한다.1)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전 역사 속에서 함께 사 랑으로 동행해 주셨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킬 수가 없 는 불가능한 표준을 세워 놓으시고 그들이 스스로 처리해 나가도록 방임했다 는 증거는 없다. 이스라엘은 각 세대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체험하였 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오셨고(10절), 그들에게 가나안을 정복 하는 승리를 주셨다(9절).

2) 아모스는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꾸준히 보내셨다는 사실 도 상기시켜 준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일러주어 그 뜻을 따 라 살도록 촉구하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도 말해주었다. 모세, 여호수아, 드 보라, 사무엘 그리고 지금은 많이 잊혀진 다른 선지자들의 사역이 이스라엘 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증언해 준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실인들을 일으켜 주셨다(민 6:2-21). 이들은 긴 머리를 한 남자들로서 검약한 생활 스타일을 지녔 는데 대체로 백성들을 위한 경건한 모델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이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 "그러나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 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2절). 나실인들의 경건은 그들을 민망케 하였고 선지자들의 메시지는 그들 을 노엽게 하였다. 나실인과 선지자들은 부정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에 대 한 생생한 견책이었다.

얼마나 많은 열심있는 교인들이 세상을 따라 살도록 유혹을 받고 있는 가 얼마나 많은 신실한 목회자들이 회중들로부터 "죄"니 "중생"이니 하는 따위 의 설교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불평을 받아왔는가 진리란 그리스도에 대 한 전적인 사랑으로 수용할 때까지는 항상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매우 통탄 할 일은 그리스도인의 헌신을 가장 반대하는 자들은 소위 교인들이라고 하는 자 들이라는 사실이다.

오늘날의 선지자들이 전파하는 메시지를 회석시키려는 자들이 누구인가 권 위있는 말씀보다 "복음 록 뮤직"을 더 듣고 싶어하는 자들이 누구인가 이 세상 보다 교회가 아닌가 사실상 성경 자체가 이 사실을 증언해 준다. "또한 너 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 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행 20:30). 주 예수께서 위하여 우신 대상은 하나님 의 백성들이었다.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보냄을 받은 선지자들을 돌로 쳐서 죽였 기 때문이었다(마 23:37).

IV.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언약은 한쪽 측면만 다루지 않는다. 언약의 목표는 쌍방의 유익을 위한 것 이다. 그러나 계약 조건을 이행치 못하면 벌칙이 적용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다. 그래서 언약의 벌칙을 받아야 했다. 그들은 "곡식 단 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13절) 짓밟히게 될 것이었다. 다시 말 하면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끝장이 났다는 말이다. 이것이 주 하나님의 선언이 었다.

이스라엘의 형편은 절망적이었다. 니느웨를 향한 요나 선지자의 예언도 마 찬가지였다.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그런데 니느웨가 멸망했 는가 니느웨가 살아남지 않았는가 백성들이 주님 앞에서 회개했기 때문에 니느 웨가 존속된 것이 아닌가 우리들은 다가오는 심판의 경고마다 회개를 촉구하 는 침묵의 호소가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 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인간들에게 들려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 아무리 악으로 굳어졌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근원적인 의식 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롬 2:15). 언약적 공의에 대한 선포는 죄인들을 위한 은 혜로 메아리치고 있다. 이것은 위험이나 어떤 고통의 위협 앞에서 본능적으로 두 려워하는 인간들에 대한 감상적인 동정의 호소가 아니다. 이 호소는 하나님의 선 하심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을 받은 인간이 존재하기에 절대 요소가 되 는 창조주의 선하심을 인식해야 한다는 데에 대한 촉망이다. 물론 하나님을 대항 하는 불신자들은 이 진리를 억누르고 자기 양심을 파묻어 내어버림을 받은 "부패 한 마음"의 위험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롬 1:18-32). 하지만 하나님은 진노 중에 서도 모든 인간의 회개를 촉구하는 긍휼을 보이신다.

불행스럽게도 이스라엘은 끝장이 나버렸고 열지파가 포로로 잡혀가서 다 시 귀환하지 못함으로써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 사실은 모든 남녀들과 교 회에서 항구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긴급한 전도이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 을 들어야 한다. 그 말씀을 듣고 우리 영혼이 살아야 한다(사 55:3).

본 메시지의 촛점은 교회를 향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들은 아모스 때 의 이스라엘보다 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한가 하나님이 오늘날 우리 교회를 보 시고 크게 쟁론하실 것이 없을 것 같은가 우리들은 어떤 구체적인 교단이나 혹 은 선교 단체를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불신실하다고 지적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권리로 자기 백성들 곧 지상에 있는 가시 적인 교회가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에 신실하기를 기대하신다. 주님이 기대하시 는 내용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위해 단 한번으로 희생제사를 바치셨다는 것 을 개인적으로 믿고, 그분이 왕이시며, 그의 몸된 교회의 머리시라는 사실을 그 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 의 친구라"(요 15:14)고 하셨다.

당신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가 당신은 주님의 법을 즐거워하는가 당신 은 아마 그리스도에 대한 그같은 사랑이 없이도 안전하다고 느낄지 모른다. 이 스라엘 백성들도 사마리아의 산에서 그렇게 느꼈다. 그런데 귀신들도 떨고 있 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안전감 을 주지는 않는다(약 2:19). 당신은 교인인가 그렇다면 당신을 위한 하나님 의 말씀이 여기에 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 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 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 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 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 벌이 얼마나 더 중요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 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 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찐저 전날에 너희 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 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펀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 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 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 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 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 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 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 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 10:26-39). (부패/타락/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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