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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특권과 책임 (암 03:1-15)

첨부 1


아모스는 호세아 선지자와 마찬가지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주로 북왕국 이스 라엘에 대해 예언하였다. 아모스 3장은 "이 말씀을 들으라"는 외침으로 시작되었 다(같은 말씀으로 된 3:13, 4:1, 5:1을 보라). 에브라임이 특별히 주목되고 있으 나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부터의 인도하여 낸 모든 족속, 즉 온 이스라엘이 아모 스 3장 예언의 대상이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다 들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인가 하나 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 중에(3:1의 "족속"과는 달리 쓰였음을 주시하라) 오 직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만을 알았다고 말씀하신다. 이 귀절에서 그들을 알았 다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들을 택하여 성별하셨다는 뜻이다. 하나 님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그 증거로써 특별한 은혜를 주셨다("알았다" 의 의미에 대해서는 시 1:6, 144:3, 요 10:14을 읽고, 이스라엘을 특별히 선택 하신 것에 대해서는 출 19:5, 신 4:20, 7:6, 시 147:19-20을 보라). 우리는 선지 자 아모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잘못과 죄를 눈감 아 주실 것이라고 선포하기를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 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종종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편파적 인 처사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한다.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누 가 범죄하더라도 그 가혹한 성품을 억제하셔서 심판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하 나님은 이같은 인간의 추론과는 정반대 되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스라엘을 자 신과의 친밀한 관계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보다 분명하게 이스라엘 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보응하실 것이다.

성서 어디에도 이보다 더 힘차고 근본적인 원칙은 선포되어 있지 않다. 선 지자는 징벌은 은혜에 비례한다고 말하고 있다.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많 은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벧전 4:17). 우 리가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갈수록 더 많은 충성이 요구된다. 다른 성 도들의 방종함이 우리의 기준이될 수 없기 때문이다.

선지자 아모스는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의 사악함 을 덮어 감추어 주려는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신약시대 의 교회를 택하셔서 이 은혜의 시대에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를 만드셨다고 해 서, 우리의 사악함이 드러날 때 하나님께서 그 사악함을 심판하시지 않는 것 은 아니다. 행 5:1-11에 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를 보라. 빛되신 하나님 께 범죄한 하늘의 천사들은 결코 구속을 받지 못한다(벧후 2:4, 유 6:1). 하나님 께 가까이 가는 축복도 크지만 그 빛에 일치하여 살아가야 하는 책임 또한 큰 것 이다.

 1. 죄에는 심판이 따른다.

3-8절에서 아모스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할 권리 가 자신에게 있음을 주장한다. 여기에 계속되는 일곱가지 질문의 목적은 백성에 게 선지자의 예언과 그 시대에 발생한 사건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있다. 자연계 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은 결코 우연히, 혹은 어쩌다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마 찬가지로 하나님의 행위의 영역에 있어서도 모든 결과에는 항상 그 원인이 있 는 것이다.

3절에 기록된 첫 질문은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 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걷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당연히 그들이 미리 어떤 약 속을 했고, 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결과이 고, "미리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이스라엘 의 영적 상태에 비유해서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죄 가운데 행하 는데 어떻게 이스라엘과 함께 걷고 이스라엘에게 호의를 보이겠느냐를 물으시 는 것이다. 어젠가 뜻이 합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동행하신 일 이 있었지만(렘 3:14) 지금은 하나님의 길과 이스라엘의 길이 너무도 달라 그 사 이에 서로 사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질문은 "사자가 움켜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느냐" 는 것이다. 아모스는 사자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고 사자가 부르짖는 것은 곧 먹 이를 잡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것 은 오직 벌을 준비하고 계실 때 뿐이다(욜 3:16, 암 1:2). 똑같은 생각이 마 24:28에 다른 비유로 표현되어 있다.

앞의 질문과 연결되는 세번째 질문으로 "늙은 사자가 먹이를 잡지 못했다면 (굴에 남아 있는) 젊은 사자가 어찌 그 굴에서 소리치겠느냐"라는 것이다. 실 제로 늙은 사자가 먹이를 가지고 가까이 오면 젊은 사자는 흥분을 한다. 여기 서 함축된 진리는 다음과 같다. 즉, 이스라엘이 심판 받을 이유가 없고, 심판 을 불러 일으키지 않았다면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대해 외치지 않았을 것이라 는 의미이다. 선지자의 위협적인 예고는 하나의 결과이며, 그 원인은 그 민족 의 죄 많은 상태인 것이다.

네번째 질문은 매우 신랄한 것이다. "덫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는데도 덫 이 땅에서 튀어 오르겠느냐"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는 그 대상물을 이 미 찾아낸 것이다. 그들이 죄의 길로 행했기 때문이다. 5절의 첫 부분과 둘째 부 분은 똑같은 내용의 질문을 표현만 달리한 것이다. 따라서 두 질문은 모두 죄 를 짓고 있는 이스라엘을 염두에 둔 질문으로써 그에 대한 대답도 똑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그 땅에 전쟁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리라는 암시가 다음 질문 에 들어 있다.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 하지 않겠느 냐"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 나팔 뿐만 아니라(민 10:9, 욜 2:1) 절기의 모임 을 위한 나팔 소리에도(민 10:27, 욜 2:15) 익숙해 있었다. 전쟁을 알리는 경보 가 울렸을 때 두려움과 불길한 예감으로 가득차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 가 아모스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빠르게 접근하고 있다는 경보를 울리고 있 는 이때 이스라엘 백성 중 그 누가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는 잘못된 해석이 있다. 그러한 해석을 따르면 하나님 이 악의 원인, 즉 도덕적 악의 원인이라고 가르치게 된다. 그러한 주장은 성 서의 모든 가르침과 어긋나는 것이다(약 1:13,17). 질문의 내용은 성읍을 휩쓰 는 그 모든 재앙은 하나님께서 내리신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경우에서와 마 찬가지로) 악이라는 말이 그 용법에 따라 한 가지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악"은 도덕적 악이 아니 라 재앙을 뜻한다(창 19:19, 44:34, 출 32:14, 사 45:7, 겔 7:5). 간단히 말해 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에게 시련과 재앙을 내리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행할 일의 비밀을 하나님의 종들인 선지자들에게 계시 하신다. 그런 까닭에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정신과 목적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홍수에 대해 경고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 라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셨다(창 18:17, 요 15:15). 요셉에게도 7년간의 기근 에 대해 미리 알려주셨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대 대로 그 종들에게 이같은 능력을 주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도 사도들에게 닥쳐 올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해 경고하셨다(눅 20:20-24).

사자가 부르짖으면 거기에 공포가 따르는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는 예언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선지자는 예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백성들 이 그의 메시지에 어떻게 반응하든지 오직 하나님께 순종해야만 한다. 모든 하나 님의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아모스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도록 강권적으로 강 요하셨기 때문에 예언했다. 선지자에게 있어서 이보다 확실한 권위가 또 어디 있 겠는가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권위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친히 부 여받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확실한 권위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2. 사마리아에 압제가 임했다.

9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말을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에 널리 전하라고 친 히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옛부터 동양에서는 평평한 지붕 위에 모이는 것 이 관습이기도 했고, 또한 지붕 특히 궁궐의 높은 지붕에서 외침으로써 알려 야 할 소식을 모두에게 전할 수 있었다.

열방들은 사마리아의 산들에 모여 그 성읍에서 일어나는 소돔과 압제를 보 라는 명령을 받았다. 여기에서 아스돗은 블레셋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사마리 아는 산 위에 세워졌고(왕상 16:24), 그 성읍 주위에는 다른 산들이 있었다. 사 마리아를 둘러싼 이 산 위에서는 성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볼 수 있 었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교도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비난한다면 의로우신 하나님 은 얼마나 더하겠는가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였기 때문에 큰 폭동들이 일어났다(사 5:7). 이러 한 일들 중에서 슬픈 것은 백성들이 더 이상 의를 행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들은 죄로 인하여 분별력을 잃은 것이다(렘 4:22). 너무 오랫동안 선을 행치 않 았으므로 그 일이 서툴러진 것이다. 죄는 실제로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한 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눈을 뜨게 된 모든 사람들이 아는 사실이다.

사마리아의 궁궐들은 폭력과 약탈로 얻은 것들로 가득했다(잠 10:2). 이 제 갑작스럽고 생생한 말로 심판이 선포된다.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다." 예 언 도중에 갑자기 이러한 말을 함으로써 돌발성에 대한 개념이 생기게 하 고 그 위협을 보다 더 생생하게 선포한다. 약탈물들을 쌓아 두었던 바로 그 궁 궐들이(10절) 이번에는 약탈을 당할 차례이다. 인간의 죄는 그에 따르는 벌을 수 반한다. 이 모든 경고가 성취된 것이 왕하 17:5에 기록되어 있다.

진노하시는 중에도 하나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셔서 사마리아에서 편하게 살 고 있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약간의 남은 자들-본절에서는 두 다리나 귀 조각 으로 비유되었다-을 파멸로부터 구하신다.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사 치와 방종 가운데 살고 있던 사람들 중에(6:1,4) 이처럼 적은 무리만 남게 될 것 이다. 소파나 긴 의자의 모퉁이는 가장 안락한 곳으로 영예로운 자리이다. 비 싼 재료로 만들어진 비단 방석에 대한 언급은 무절제한 방종에 대한 묘사를 더 하여 준다. 12절의 마지막 부분을 "다메섹의 침상에서"라고 해석할 수도 있 다. 원문에 "damask"이라고 쓰여진 이 낱말이 다메섹의 비단 혹은 다메섹 성읍 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다메섹이라는 이름을 사마리아와 동일 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면 북쪽 지파들의 백성이 어떻게 다메섹으로 갔었는 가 왕하 14:28에 나타난대로 이 성읍은 앗수르가 침공하였을 때 이미 여로 보암 II세에게 정복되어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는 의견이 있다. 이 성읍 이 북왕국에게 정복된 후 아마 많은 북쪽 지파 사람들이 그곳으로 이주 해 간 것 같다.

 3. 재앙의 날 9절에 언급되었던 사람들이 13절에서도 야곱의 족속, 열 두 지파 모두에 게 증거하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선포의 장엄성과 그 성취의 확실성을 나타내 기 위해 여러 가지 하나님의 명칭을 열거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들의 도피처 로 생각되던 벧엘의 제단들이 먼저 하나님의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여기서 는 황금 송아지를 염두에 두고 있다(왕상 12:32, 13:2). 아모스도 호세아처럼 모 든 재앙의 원인을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데서 찾고 있다. 우상들 이 베어지는 것과 동시에 그들의 개인적인 가정생활도 파괴될 것이다. 왕족 뿐 만 아니라 귀족과 부유한 자들의 별장용 겨울집과 여름집들이 다른 많은 집들 과 함께 슬픈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벽, 문, 상아 등으로 호사스럽게 장식 된 집들도 다른 것들과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이다(아합의 상아궁에 대해서는 왕 상 22:39, 시 45:8을 보라). 번영이 남용되고 오용되어 결과적으로 회복할 수 없 는 손실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책임/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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