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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 (갈 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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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석을 손에 쥐고도 그 가치를 모르면, 돌을 던지듯 던져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 자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을 좇는 불행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전국 시대의 사상가인 장자는, “자연 속에 사는 꿩은 열 걸음 걸어가서 콩 한 알을 주워 먹고, 백 걸음 걸어가서 물 한 모금을 마실지라도, 울안에 갇혀서 사람이 주는 모이로 배불리 먹는 꿩보다 훨씬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저서 ‘민약론’에서,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종인 인생
자유가 그토록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또,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라 해도, 실제로는 어떤 면에서나 어떤 사람에게 종노릇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체로 원치 않는 종노릇을 하게 되는 원인은 무지와 결핍과 죄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어떤 면에 무지하면 그 면에서는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고, 또 가진 것이 없으면 부자유스럽게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죄를 짓고 나면 완전히 죄에 코가 꿰이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하고 주석책을 쓰느라고 끝까지 읽은 영어책이 600 내지 700권이 되는데도, 회화는 전혀 못해서 성지 순례할 때에 얼마나 부자유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키가 크면 혀도 긴 건지…. 그 사람들 왜 그렇게 혀는 꼬부랑거립니까 한국말은 한 마디도 못하는 주제에….
아무튼, 무지와 결핍은 사람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외유 중인 어느 국회의원이 독일에 들렀다고 합니다.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대사관 직원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혼자 나섰다가 그만 길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영어도 독일어도 서툰 그 의원은 결국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보게, 나 의원인데 길을 잃었네.” 전화 받은 직원이, “지금 계신 곳이 어딥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의원이 벌컥 화를 냈습니다. “이 사람아, 여기가 어딘 줄 알면 호텔로 찾아가지 전화하고 있겠나” 주눅이 든 대사관 직원이 또 물었습니다. “의원님, 전화하시는 곳 주변을 잘 보시고 간판을 하나 읽어보십시오.” 그러자 의원님은, “가만 있자, 아인 반 스트라세(일방 통행)….”
무지와 결핍보다도 더 인간을 종노릇시키는 것은 바로 죄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자유케 되리라고 말하느냐고 항변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요한복음 8:34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3:10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있으며, 따라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난 어떤 인간도 자유인이라 할 수 없는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
것입니다. 속죄의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모든 인간은 다 종살이 인생입니다.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는 물론, 아주 하찮은 것에 종살이하는, 그것도 죽을 때까지 종살이하는 인생도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술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비슷한 벗과 술내기를 했습니다. 마시고, 또 마시고, 또 마시고…얼마를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계속 마시다가, 문득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벗은 더 마시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도 입원 치료를 받고 겨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이번엔 국민학교 교사인 아내가 견디다 못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술을 못 끊습니다. 교역자인 벗이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 사람이 흐느끼며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 마누라 죽었는데, 이제 예수 믿어 뭐하노. 술 때문에 마누라 죽었으니, 술로 나도 죽어야 된다.”
베드로후서 2:19에 보면,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노예의 운명이 그렇듯이, 무지와 결핍 그리고 죄와 패배로 인한 종살이 인생은 불행과 멸망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 중 도둑이요, 강도 중 강도요, 살인자 중 살인자요, 사단의 도구 중 도구가 되는 길은 남의 나라를 빼앗는 것입니다. 사단의 큰 종이 되지 않고는 남의 나라를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국민들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라를 든든히 발전시켜 세계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한 나라의 모든 자유를 빼앗아 노예로 삼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을 약탈하는 침략자들은 절대적으로 악한 족속들이고, 사단의 하수인들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야드 바셈’이라는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은 세계 제2차 대전 때, 유럽 일대에서 독일의 나치스에게 희생된 약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념하는 박물관입니다. 그 기념관 입구에,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비슷한 불행을 겪었던 우리 겨레 역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을 용서하되 결코 그들의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의 자유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참혹한 고문 끝에 죽어간 선조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장한 기개를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연합군을 들어 해방시켜 주시니까, 일부 정권욕에 눈먼 사람들이 친일파들을 등용하여 활개치게 만들고, 애국자들을 국민들의 머리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애써 왔는데…. 그들에게 예속되어 추종한 국민들도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이 풍토에서는 미국 물이나 일본 물을 먹지 않으면 행세를 못하는데, 이런 것도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미국에 다니러 간 어느 교수가 일부러 하버드대학을 찾아가서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배가 터지도록 물을 마셨겠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해서 미국, 그것도 하바드대학 물을 먹은 교수님이 되신 겁니다.

3. 자유케 하시는 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자유인, 자유로운 국민, 자유로운 나라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뿐 아니라, 죄의 종된 모든 사람이 스스로 자유할 수 없는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은,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이 놀랍고도 은혜로운 사실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국민이 자유의 가치를 알고, 목숨을 걸고라도 자유를 지키고 누릴 각오를 할 수 있도록 힘써 구주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독재자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치, 군사, 경제, 문화면에서 강대국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무지와 결핍과 패배와 죄악은 남의 종이 되는 길이고, 나라의 무지와 결핍과 패배와 죄악은 다른 나라의 종이 되는 길입니다.

4. 맺음말
자유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예속이 아니라 자유로이 당신과 교제할 수 있도록 인간의 본질적 요소로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자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소리에 복종하는 바람에 죄와 죽음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죄와 죽음의 종이 된 인간을 자유케 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주님께서 생명을 대가로 선물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우리를 대속하신 주님 안에서 늘 참 지식과 풍성한 복을 얻고, 승리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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