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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게 산 요셉 (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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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행복하게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행복은 좋은 환경에서 온 것도 아니 고 소유가 넉넉한데서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면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부모님께 효도했고 형제 들과 우애를 나누었지만 형들의 시기에 의해 애굽의 대상들에게 팔리어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슴살이를 하고 있었음에도 오늘 본문 말씀 에 보면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옥살이를 하고 있었음 에도 그를 가르켜 불행한 자라고 기록하지 아니하고 형통한 자, 행복한 자라고 성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깨달을 수 있는 진리는 행복이란 아름다 운 환경이나 좋은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밝혀 준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종노릇을 하고 감방에 갇히면서도 왜 행복한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행복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는 꿈이 있었기에 행복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꿈을 갖고 사는 동안은 고난을 참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이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셉은 어린 시절부터 꿈이 많았습니다. 세계 제일인자가 되어 남을 도우며 세 계를 살려내야 되겠다는 높은 꿈을 가졌기에 잠을 자다가도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의 보리단이 자기의 보리단에게 경배하는 꿈을 꾸었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아뭏든 요셉은 높은 이상과 목표가 있 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꿈을 향하여 달려갔기 때문에 고달픈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고 괴로운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높은 이상과 꿈을 갖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 습니다. 보편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루어져서 잘사는 나라가 되면 사람들은 꿈을 잃어버냔탐 2백만명 이상이 살고 있습니다. 공부하기 위해서 도미한 학 생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에서 한번 잘 살아보려고 건너간 사람들입 니다. 그들이 열심히 사는 가운데 대부분이 영주권과 시민권을 얻어서 살고 있습 니다. 왜 미국으로 건너왔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교육 때문에 건 너왔다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말 미국에서 올바른 자녀교육을 시킬 수 있느냐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지금 미국에는 200만명 이상이 마약중독자가 있는데 은평구민을 50만으로 어림 잡는다면 은평구민의 4배가 되는 수많은 사람들이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 다. 그리고 천만명이 알콜중독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서울시민 만한 사람들이 알 콜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처럼 자식들이 부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의 영향권 밖에 있습니다. 또한 학교선생님 들의 영향권 밖에서 김잃은 양과 굴레벗은 망아지와 같이 잃어버린 세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젊은 세대들을 실제로 이끌고 가는 것은 섹스와 범죄내용으로 가득찬 TV프로그램, 비디오 등 방종과 찰나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퇴폐문화입니 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미국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데 어떤 면에서는 미국보다 더한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폭력사건, 살인사건, 강간사 건, 사기사건이 지금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청소년범죄가 날로 증가하 고 있습니다만 청소년범죄를 부채질하는 것은 바로 TV요, 비디오입니다. TV에서 칼로 총으로 사람은 찔러죽이고 쏴죽이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어린아이들이 이것을 보고 장난감 칼과 총을 사달라고 졸라댑니다. 그것을 사주면 아빠 엄마에 게 총을 쏘아대고 언니나 동생이나 형들에게 칼로 찔러댑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 들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어려서부터 남을 찔러 죽이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죄를 범하게 되어집니 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청소년을 병들게 만드는 주범이 TV요, 비디오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뿐만아니라 대학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습니다. 또 그렇게 어렵게 대학에 들어가서 공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취직이 보장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 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고학력 실직자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청 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청년이 무엇이냐 정의를 내려보라고 있는데 한 청년이 "청년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대답을 하겠습니다. 사실 대 학을 졸업해 보아야 눈물밖에 쏟을 일이 더 있겠습니까"라고 대답을 했다는 것 입니다. 황금만능주의와 퇴폐문화 속에서 과연 고상한 꿈과 높은 이상을 갖고 살 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높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살아가 야 될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 서 그리스도를 존귀히 여기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도 리기 위하여 산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크고 높은 이상과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대학에 합격하고 불합격한 것이 아무런 문제 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높은 꿈과 이상을 갖고 사는 사람이라면 감방에 갇히고 안갇히는 것, 사업에 성공하고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의 꿈과 목표를 현세적인 것, 육체적인것, 물질적인 것 등 너무나도 낮은 것에 두고 살기 때문에 너무 쉽게 낙망하고 실망하고 원망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셉처럼 남의 나라에 끌려가서 종노릇한다 할지 라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웃에게 봉사하며 그 영혼들을 살려내겠다고 하는 높은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지기를 축원드립니다. 사도 바울처럼 감방 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할지라도 나의 목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있다는 꿈을 가지고 산다면 감방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행복감을 느끼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그꿈을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던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하면서도 나는 지금 하나님의 꿈을 이루어나가 는 과정에 있다고 믿었기에 조금도 낙심하지 않고 조금도 피곤을 느끼지 아니하 고 오히려 기쁨으로 머슴살이를 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냄새나는 캄캄한 감방에 갇혀 자유를 잃어버리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해 내시겠다는 꿈을 실현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낙심하지 아니하 고 그 고통을 참고 견디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행복이란 결과(result)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정(process)에 있는 것입니다. 흔 히 사람들은 어떤 목적이 달성되고 꿈이 성취되어야 행복하리라고 생각을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착각입니다. 행복이란 어떤 어려운 일을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인 것입니다. 만일 어떤 목표가 달성되어 버리면 그때부터 허전함과 허탈 감에 빠지게 되고 행복이라 하는 것은 멀리멀리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나폴레옹이 어린시절 어느날 뒷동산에 무지개가 아름답게 펄쳐져 있는 것을 보 고 너무도 신기해서 그 무지개를 잡을 결심으로 집에 있던 나귀를 타고 뒷동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무지개는 그 언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너편 언덕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나귀를 몰고가서 건너편 언덕에 올라갔는 데 거기에도 없었습니다. 굅낫 언덕 아래 넓은 바다 건너편 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나귀를 타고서는 그 바다를 건널 수 없음을 깨달은 나폴 레옹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 야기는 우리에게 꿈이 있을 때는 피곤함을 모르지만 꿈이 사라져버리면 허탈감에 사로잡힌다고 하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의 현실이 고달프고 구질구질해 보이지만 사실 꿈을 갖고 살면 그 구 질구질한 것이 인생의 재미이고 그 고달픔이 바로 인생의 맛입니다. 사람이 결혼 할 때 행복을 느끼고, 득남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성적이 올라갈 때 행복을 느 끼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 행복을 느끼고, 아파트를 마련했을 때, 좋은 직장에 취직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하면 일생동안 행복했던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 까 음악가가 무대에서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는 순간도 행복하겠지만 그 연주를 위 해 피땀흘려 연습한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가대가 성가 를 잘 불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성도들에게 칭찬을 듣는 것으로 행복을 느 끼려고 할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성가연습을 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등산가가 산정에 올랐을 때 기쁨을 느끼겠지만 실은 등산배낭을 매고 위험한 산언덕을 오르는 과정에서부터 기쁨을 느끼게 되어 집니다.

우리 교포들이 미국의 대도시 구멍가게나 세탁소들을 거의 차지하고 있다고 합 니다. 과일가게, 채소가게, 생선가게를 경영하는 분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도매 시장으로 달려가서 물건을 도매로 가져와 물건들을 깨끗하게 정돈해서 진열해 놓 습니다. 그리고 온가족이 총동원하여 밤 8시까지 하루 16시간 열심히 장사합니 다. 너무나 힘들고 고달프지만 즐거움으로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왜 냐하면 그들에게는 잘 살아보아야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삶의 목표 즉, 꿈 비젼이 있으면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피곤함을 느끼 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장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하루의 일과를 계획 하고 밤늦게까지 사업의 번영과 회사의 번창을 위해서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닙 니다. 이에 반해서 사원들은 제 시간에 출퇴근을 하면서 자기시간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사무실에 앉아서 별로 할일없이 시간만 보내다가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원들은 피곤을 느낍니다. 그러나 사원들보다 뮌 일을 계획 하고 추진해나가는 사장은 피곤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사장은 주인의식을 가지 고 꿈을 갖고 일하기 때문이지만 사원들은 주인의식이 없고 꿈이 없기 때문입니 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그것이 얼마나 인생 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한분한분에게 이 해에도 큰 꿈과 목표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교회에 금면에 4대목표를 주셨는데 그중에 하나가 교인배가운동 및 질적 향상 도모입니다. 지난 주일에 각자가 전도목표를 정했는데 그 목표를 정하고 목표달성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사람은 날마다의 삶이 즐겁 고 주일에 교회 달려나오는 것이 즐겁고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목표를 정하지 않고 아무렇게나 교회가자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발걸음이 무거울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여인에게 열심히 전도하셨는데 점심시간이 지나도 시장하신 줄 모르고 열심히 전도하셨던 것입니다. 안타깝게 여긴 제자들이 마을에 들어가 점 심을 마련하여와서 예수님께 잡수시기를 권했지만 너희가 알지 못하는 음식이 내 게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전도하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으셨던 것을 요한복음 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한해도 우리는 전도의 목표를 정하고 또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존귀하게 해드린다는 놀라운 꿈과 목표를 가지고 그 목표를 향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열심 히 뛰어감으로 말미암아 그 과정에서 여러분의 삶 속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충 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셋째로 요셉은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신다고 하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한 삶 을 살았습니다. 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더라고 하였고, 3절에도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요셉의 형편을 살펴보면 그는 너무나도 고독하고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타의에 의해서 부모님의 곁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형들의 시기질투애 굽의 대상들에게 팔려갈 때 아마 장사군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요셉의 손을 쇠 사슬로 꽁꽁 묶어서 끌고 갔을 것입니다. 그는 그 정황에서 얼마나 비참하고 기 가 막혔겠습니까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너무나 갑작스럽게 환경이 달라져서 부모님 슬하에 있을 때는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너무나 복되게 살았는데 이렇게 종으로 팔려서 아침 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강제노동을 해야하니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겠습니까 그 럼에도 그는 외롭지 않았고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부모형제 고향 산천을 멀리 떠나왔던 것입니다. 다정했던 친구들 곁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혈혈 단신으로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였습니다.

이런 불행하고 외로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는 결코 외롭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요셉은 얼마나 괴롭고 비참했었습 니 까 그러나 요 셉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을 모 시고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며 하나님을 믿고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홀로 갇혀있었지만 주님과 함께 계심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 마음속에 슬픔대신 항상 기쁨이 충만하였고 행복감이 차고 넘치게 되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할 때 우리가 행복할 수 있습니까 고상하고 위대한 높은 꿈을 가지고 살아갈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목표달성을 향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기도하고 힘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행복을 맛보게 됩니다. 그리고 좌절 하고 낙심하고 고달프고 외롭고 답답할 수 밖에 없는 어떤 환경에 놓여 있을지라 도 나 홀로 인생을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며 주님의 손에 붙잡혀 주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결코 외 롭지 않고 불행하지 않으며 항상 행복감에 사로잡혀 복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 게 되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려분, 이 한해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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