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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나라와 사회봉사 (사 53:4-6, 마 0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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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 한 것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다." 그는 오셔서 말씀으 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에 나타난 산상설교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치 신 말씀들입니다. 또한 비유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이며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의 말씀과 가르치 심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달랐고 권위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천국을 전파하시지 않고, 이적을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이적 가운데서도 특 별히 병든 자들을 고쳐주시는 이적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가 이 적을 행하시는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하려하기 보다는 "목자없는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무리"들을 민 망히 여기셨기 때문에 저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데 있었습니 다. 하난님의 나라는 바로 고통당하는 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데 서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이적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구약에 예언된 고난받는 종으로서 사람들의 고통을 짊어지셨다는 점에 대해서 강조 하면서 예수님의 병고친 이적들을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걸음 더 나아가 모든 인간의 죄악을 완전히 담당하 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히 순종할 수 있게 하시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예수님은 세가지 방법 즉 말씀과 이적과 십자가를 통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선포하시고 또 이루셨습니다. 이것 은 곧 오늘의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택하 여야 할 방법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복음 전파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르치고 전하였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전도라고 하였습니다.

이제까지 교회들은 이 전도를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을 하고 다른 어떤 일보다 우선적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명은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신 것처 럼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사회봉사에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사회봉사는 결코 전도의 한 방편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한 차원입니다. 전도만 가지고는 우리가 온전히 하나 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킬 수 없습니다. 말씀에 따르는 눈에 보이는 사랑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는 말이나 환 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현대 신학 분야에서는 사회봉사가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신 예수 마태복음 8장과 9장에 보면 열 가지 이적이 나오는데 바다를 잔잔케 하신 이적을 빼면 모두가 병고치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나열된 이적은 예수께서 행하신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만 기록이 된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말씀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마태복 음 9장 35절에는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 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보면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모든 병든 자들과 모든 약한 자들을 고치시고 돌보아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복음 서에 기록된 이적들은 지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것입니다. 요한의 말대로 만약에 예수께서 행하신 모든 이적을 일일히 다 기록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을 쌓아놓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적을 어쩌다 한번 보면 그것은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 될 것 입니다. 그러나, 매일 같이 찾아오는 병든 자들을 모두 고치시는 예수님을 뵈올 때 그에게는 더 이상 이적은 이적이 아니라 평상적 인 행위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복음서 기자들도 예수님의 이적을 신기하고 놀라운 일로 기록하기 보다는 그것은 모든 사람의 고 통을 짊어지시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예수님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병고침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서가 전하는 이적들 은 이적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의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적을 행하셨기 때문에 위대한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적은 예수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행하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적을 행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텔레비젼에 어떤 일본사람이 행하는 초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숟가 락이 휘고, 책상 위에 놓은 유리컵이 손을 대지 않고도 깨어지게 하 고 손 안에 잡고 있는 시계의 바늘을 돌려놓기도 하였습니다. 병 고치는 것과는 또 다른 초능력이긴 하지만 어쨋든 이적임에는 틀림 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적을 행하였다고 해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 다 라고 증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서들은 결코 예수님의 이적을 부각시켜 그를 그리스도로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것 은, 귀신들린 자, 병든 자, 약한 자들을 민망히 여기시고 그들을 도와 주려 하신 예수님의 그 사랑입니다. 그 긍휼히 여기심이 중요 한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은 모든 약한 자를 긍휼 히 여기시는 마음을 가지고 저들을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긍휼이란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아플 때 그 아픔을 대신하고자 하는 마 음, 자식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기 희생을 통하여 그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긍휼입니다. 오늘 죄악된 인간의 구원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긍휼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바로 하나님의 긍휼을 몸으로 직접 보 여주신 것입니다. 마태는 특히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구약 이사야 서에 나타난 고난받는 종으로 표현하면서 그가 모든 인간의 고통을 짊어지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이 적은 능력의 과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들을 택하여 세우신 후 그들을 선교 파송 을보내시면서 역시 자기가 행하신 것과 같은 일을 하도록 명하셨습 니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 되 너 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7-8).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말씀은 병고침의 이적이 결코 대가를 바라는 어떤 의 료행위가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몸으로 보여주는긍휼의 행위 여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로 비롯된 교회가 어떻 게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여야 할 것인지를 보여주신 말씀 입니다. 교회의 사회봉사,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긍휼의 표현

이 되어야 하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이기도 합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바로 이런 하나님 나라의 실현으로서의 사회봉사에 대하 여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사회봉사를 통하여 천국을 실현하는 교회 우리 한국교회는 지난 백년의 역사를 통하여 많이 성장하였습니 다.그것은 전도에 힘쓴 결과입니다. 그러나 전도에만 힘쓰다 보니 사회봉사는 부수적인 일이요 하면 좋고 안해도 무방한 것 정도로 인 식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사회봉사에 대한 인식은 지극 히 미미하고 보잘 것이 없습니다. 우선 교회예산 편성에 있어서 순 수한 사회봉사비로 책정한 예산은 전체 예산의 불과

2.3에 불과하 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예산은 주로 교회 안에서 쓰여지고 있고, 교회 밖에서 쓰여지는 것도 주로 개척전도나 농촌교회 지원에 쓰여 지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봉사를 실시한다는 교회는 전체 한국교회 의 2

3.2밖에 되지 않는다는 조사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 가 사회봉사에 대해서는 그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 인 것입니다. 그나마 하고 있는 사회봉사도 상당수가 일시적이고 전 시효과적인 경우가 많고,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로 구색 갖추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가 일수입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사회봉사 활동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는 이유 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복음에 대한 이해를 잘못한데 원인 이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는 것은 오직 전도하는데만 있다고 가르쳐온 과거의 잘못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인간영혼을 영원한 형 벌에서부터 구원하는 것이 교회의 사역이기 때문에 교회가 그외의 일 에 개입하는 것은 교회의 본분을 저버리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 다. 교회가 구제나 교육 등,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은 악이 아니나 교회가 이같은 일에 힘쓰는 과정에서 영혼구원에 전력을 다하지 못 하게 되기때문에 사회봉사 활동은 권장할만한 일이 아닌 것으로 가 르쳐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핀대로 복음 전파를 통 해서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자들을 긍휼로 감싸안는 일을 통해서 보다 구체적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활동 가운데서 사회 봉사 활동을 빼어버린다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병자들을 고 치신 이적들을 모두 생략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봉사를 하지 않 는 교회는 참다운 교회라고 할수 없습니다.

<둘째로> 한국교회가 사회봉사 활동을 잘 하지 않는 이유는 개교 회주의 성향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대체로 자기 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만 인적, 물적 자원을 집중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밖 사회봉사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특 히 이것은 성장위주의 목회에 치중하게 만들고 사람을 끌어모아 대 형교회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받은 것을 거저 주라고 하신 예수님의 긍휼의 정신을 잊어버린 행위입니 다.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개교회 위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나타나는 곳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한 국교회는 속히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져 봉사하는 교회로 전환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절실하게 사회봉사를 요청하는 시기에 교회들은 발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가 사회봉사를 소홀히 하게 된 이유는 이분법적 사고에 있습니다. 세상은 단순히 악이 지배하는 영역으로서 교회가 구원할 대상일 뿐이지 섬길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신 앙생활이란 영적이고 내면적인 것으로 저 세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지 는 생활로서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관심을버리고 오직 자기의 구원의 완성만을 위해서 노력하면 된다는 개인주의 신앙으로 몰입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에서 한국교회 교인들은 그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못하고 둘로 나뉘어 신앙 따 로, 생활따로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근본적으로이 세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비록 타락하여 더러 워진 세상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러기에 그 세상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을 피할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섬겨야만 하 는 것입니다.

사회봉사에 대한 우리의 자세 이제 우리는 사회봉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우리의 신 앙의 삶을 전환시켜 가야 하겠습니다.1) 사회봉사는 바로 하나님 나라의 실현임을 알아야 하겠습니 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따라 교회가 이루어졌기에 교회는 이제 그 긍휼을 나타내는 기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말로는전도를 잘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이 아니라 정말 내 자식의 아픔을 아파하는 심정으로 내 이웃의 아픔을 나누는 긍 휼의 삶을실천해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전도와 다릅니다.

물론 전도와 함께 하여야 할 일입니다. 전도와 봉사가 병행될 때 거기에 진정한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봉사 없는 전도는 한쪽 바퀴가 없는 마차와 같아서 굴러갈 수가 없습니다. 전도와 섬김 이 두바퀴가 온전할 때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실현되는 것 입니다.

2) 따라서 사회봉사는 단순한 구제와도 다릅니다. 내게 있는 것을 베푸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이웃의 고통을 걸머지는 것을 의미 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게 여분이 있는 것을 가지고 남 을 돕는 정도가 아니라 내 몸을 던져 그 고통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회봉사에 대한 개념을 근본 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몇가지 프로그램을 증설하는 선에서 만족할 것이아니라 우리의 우선적인 예산편성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 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자기를 희생하신 것처럼 우리 자신을 내어주어야 할어떤 시기가 올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하나님 나라 가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긍휼을 나누는 차원에서의 사회봉사를 이룩해 가는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우리의 생각을 전환해 가야 하겠습니 다. 약한 자들의 고통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이 사회의 약한 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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