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생명의 삶은 진실 (사 58:3-10)

첨부 1


생명의 삶은 예수가 보여 주셨다. 하나의 밀알이 썩어 죽음으로 많 은 열매를 맺는다는 교훈을 남겨 친히 본이 되어 주셨다. 삶 속에서 진리속에서 이를 시행해 보이셨고,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 되셨다. 예 수는 사생활 공생활을 통해 자신의 삶을 진실에 두고 한치의 거짓도 없이 늘상 자신을 열어 보이셨다. 그의 짧은 생활이 우리의 길이 되시 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으로 이어가게 1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예수가 그렇듯 이 자신을 내보이는 진실된 삶의 자세가 우리의 사언행이 되어야겠고 삶의 현장에 의미 부여를 갖는 뜻있는 생활이 주어져야 한다.

자기존재의 의미를 갖고 그것에 대한 대답을 찾는 것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점이다. 내가 왜 존재하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하 는 물음을 구체적으로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고 물어야 한 다. 이것은 인간의 삶,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 대답이 된다. 그리스도 인으로서 우리는 존재의 인식(Sein)1과 당위적 인식(Sollen)을 함께 지 니고 살아야 한다. 내가 "나는 죄인이다"를 인식했을때 "나는 죄를 회 개해야 한다"는 인식이 가능하고 "나는 죄를 회개해야 한다"는 인식은 왜라는 질문에 따라서 "나는 죄인이다"라는 인식도 가능케 된다. "나 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질문은 항상 삶의 현장에서 질문하며 의미부여를 가져야 한다. 오늘날 과학이 모든 사물의 이치를 밝혀주고 설명해 주지만 역시 인간 존재의 의미에는 대답을 잃고, 철학도 역시 인간 존재의 탐구로 출발했으나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 못하고 1 다.

기독교는 그 민족의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는 민족의 삶의 형태를 이 끌어 왔다. 이런의미에서 세계의 큰교회 50개중에 23개 교회가 한극에 있다고 한다. 한국교회의 물량적인 힘과 정열과 능력은 이 한국사회와 민족사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느냐 1,200만 한국교인이 있다고 자 랑하는데 한국교인들의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한국사회에서 교인들 이 해야할 일이 무얼까 이러한 자기물음이 없이 대형화만을 물량적으 로 추구하는 것은 교회로서의 존재에 심각한 병을 유발할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당1첼 유대교도 대형화되었던 종교이다. 그래서 그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법을 집행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대형화되었던 유대교 의 실상은 무엇인가 유대교의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주의자로 변신하게 되고 체재주의자들과 손을 잡아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이 다. 바로 그때 예수는 공생애를 열어놓으시고 병든자, 가난한 자를 자 유케 하시는 해방자가 되신 것이다. 그는 산위에 올라 유대교에 시달 린 백성들과 제자들을 향해 설교를 하셨다. 예수는 산아래 기슭에서 목적없이 여기저기 방황하는 무리들을 보셨다. 1 예수는 그들을 향해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있다. 주린자는 복 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새롭게 살라고 권면하셨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라.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 양하게 하여라(마태5:13-14) 생명의 삶은 이같이 진실 위에서 살아가 는 인간성의 회복이 이루어질때 비로서 하나님앞에 사명을 받은 존재 로 새롭게 시작된다.

율법주의적 삶 속에서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이사야의 1생각도 같 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포로기 이후 4일의 금식일 이 있었다. 이러한 의무적인 금식일은 예루살렘포위개시일, 도성함락 일, 도성과 성전 소실일, 게달랴의 암살일이다.그러나 세월이 흘러갈 수록 본래의 의미보다는 형식적인 금식에 치중하게 되었다. 여기에 대 한 이사야의 생각은 금식하는 사람들이 온존재를 다바쳐 하나님게 탄 원하는 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야는 금식일을 제정한 사실을 문 제 삼는 것이 아니고 금식일에 일어난 불법행위, 가식적인 행위들을 고발한 것이다.

헬라1의 높은 식견을 지닌 바울은 자신의 지식으로 예수를 전파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인간을 변화시키고 해방시키는 역사는 이론이나 말 재간이 아니고 진실한 삶임을 깨달았다. 이것을 깨닫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설교할때 나약해지고 두려워져서 몹시 떨었다. 지혜롭고 설 득력있는 자신의 언변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성령과 그의 능 력만을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비추고 낮아지고 겸손해져서 자 신의 삶 그대로를 드리는 헌신된 삶을 보여 주었다.

오늘 우리들은 이사회에 '등경위에 세운 촛불'이 되어야 1강. 우리 자신이 예수를 영접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 적나라하게 자 신을 내어놓고 태우고 녹여 진실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예수가 약속 한 생명과 통하는 삶이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오늘의 한국교인의 삶의 자리는 진실을 생명으로 여기는 곳이어야 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이었고 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고 내적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 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존재의 의미를 두었다. 이시대를 살아가면서 예수를 따라 산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며 변화를 요구한다. 현실1지향 적인 삶의 진리에 예수의 사고방식과 진실의 삶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포기하게끔 하면서 희생을 요구 한다.

서울대 모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국민 스스로가 느끼는 정직성에 관 한 설문조사 결과는 전국민의 7

3.4%가 우리국민은 부정직하다고 응답 했으며 이 중에서 10대의 80%, 20대의 83%가 부정직하다고 응답했다.

문제는 과반수를 훨씬넘는 수치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의 부정직 내지 비진실을 합리화하는 경향이 더욱 큰문제라고 한다.

서울대의 손봉호교수1는(서울대 사회학과)'이웃 일본은 세계적으로 일 본국민들이 가장 정직하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외국인들도 이에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음을 염두해 두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일 본은 기독교인이 0.7%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거의 3배에 육박하는 20% 임에도 불구하고 부정직성이 사회구석구석에 만연해 있다'고 한국복음 주의 협의회에서 강연한바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사회정화사명과 윤리, 도덕회복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갱신해야 한다. 부정부패척결은 물론 윤리, 도 덕1 회복에 앞장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권위주의적 대형물량주의, 제 도적 구조악에서 벗어나 생명의 진실을 담은 삶의 자리로 옮겨질때, 비로서 한국교회와 교인의 존재의미가 역사에 남겨질 것이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