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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로 부터 난 지혜를 (약 03: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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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생활에 있어서 지혜로운 삶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이는 지혜로운 생활을 잘 해 나가므로 행복을 창출 하기도 하고 그와 반대로 지혜롭지 못한 처세를 하므로 인하여 결국 불행의 수렁에 빠져서 혜여 나오지를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이러한 현상을 잘 대변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얼마든지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행복과 불행의 원천은 지혜로운 삶을 얼마나 잘 살아가고 있는냐에 달려 있는 것 이기도 합니다.
옛날 우리의 선조들은 살아가는 방법을 오랫동안 여러 실험을 거쳐서 좋은 지혜 격언과 금언, 혹은 여러 속담 등을 남겨놔서 후손들에게 많은 유익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훈들은 때로는,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서도 귀중한 교훈을 많이 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 잘못되게 사용이 되어지는 지혜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데 쓰여지기도 했습니다.
예컨데
타인과 다투어서 이기기를 좋아하는 지혜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혜들은 그 근본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지혜를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지혜를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람의 됨됨이가 잘못 되어져 있으면 다른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들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옛날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가 등장하기 전에 철학자들을 말하여 궤변가 라고들 말합니다. 이 궤변 철학자들은 어떻게하면 기발한 말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의견을 꺽을 수 있을까 하는 것 만을 연구하던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지혜롭고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바른 의견이라 할지라도 그럴 듯 하게 꾸며놓은 궤변가들의 말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 쓸데가 없게 됩니다.
이런 궤변가들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많이 있습니다.
①남과 다투어 상대방을 어떻게 해서라도 기를 꺽어서 눌러 이기려는 사람들,
②행동 보다는 우선 말이 앞서서 앞뒤가 맞지 않는 사람들,
③처음부터 악한 생각을 가지고 남에게 해로움을 주기 위하여 감언이설로 꾀이고 중상모략을 일삼는 사람들 등등, 바로 이러한 사람들은 지혜를 잘 못 사용하는 사람들 입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적인 지혜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지혜가 아닌 것들은 마귀의 유혹에 빠지기 쉽고 인간적인 악한 본성을 나타내는 원인이 되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1.지혜롭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1)야고보서 3:1에 나타난 자칭 선생이라는 자들 입니다.
(약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약3: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선생이 되지말라’ 이 말은 “①아는데만 그치지 말라, ②아는체만 하지말라, ③남을 가르치되 몸소 너 자신도 실천해 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선생들은 지식을 자랑하고, 논쟁을 즐기며, 남을 비판하며, 진리를 바르게 세운다는 겸손한 생각보다는 상대방을 이긴다는 데만 열중하는 사람들 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도 마찬 가지 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려해도 말만 많아지고 해결해야 될 일은 젓혀놓고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서로 헐뜻는 것만 일삼게 됩니다.
어떤 모임을 가 보아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본래의 문제는 생각지 않고 말의 꼬투리를 잡고 오해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면서 쓸데없는 말까지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2)진정한 가르침을 주는 선생이 되려면 "선한 행위로 믿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3:13)
이것도 다투어 이기기 위해서 하지말고 "온유함으로 하라"고 말씀 합니다.
이 온유함 이라는 말은 부드럽고 유순(柔順) 하다는 말입니다. 나약한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의 실력에 대하여 확신이 있는 강한 사람만이 참으로 온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온유한 성품으로 자신을 남에게 보일 수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만이 참된 승리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많이 있을때에 사회는 밝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백마디의 말 보다 한마디의 헌신과 희생 그리고 믿음의 실천과 행동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때에 그가 속한 집단은 발전 하는 것 입니다.
예화
미국의 왕년의 백화점왕 존 워너메이커(1838-1922) 는 그가 출석한 교회의 담임 목사로부터 신 앙훈련을 훌륭하게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였다. 12살 때 이미 어머니와 벽돌공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살았다. 빈민가에 있었기 때문에 그가 다니는 교회는 언제나 비가 오면 마당에 물이고여서 교인들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한 주일에는 목사님이 교회에 가보니 벽돌이 몇장 깔려있었다. 왜 몇장만 깔아놓았을까 다음 주일에 보니까 또 20장 정도의 벽돌이 더 깔려 있는게 아닌가! 셋째 주일에는 목사님이 일찍 가서 기다렸다. 누가 하는지 알아 보려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니 한 소년이 벽돌 20장을 지고 와서 조심스럽게 깔고는 교회로 들어갔다. 그가 바로 워너메이커였던 것이다. 그는 자기의 급료로 벽돌을 사서는 매 주일 깔아서 마당 전체를 깔려 했던 것이다.
이에 감격한 목사님은 그날 설교 때 이 이야기를 하였다. 이 감격스런 이야기를 들은 교인들은 즉석에서 교회개축의 안을 내 놓았고 일년 뒤에는 훌륭한 교회가 세워졌다.
이 소년의 삶은 그대로가 신앙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렸다.
얼마 뒤에 큰 실업가로 성장해서 십의 오조 십의 구조까지 드리고도 가장 큰 부자였다. 그는 자신의 돈을 몽땅 선교사업과 자선 사업에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옛날 ymca 건물도 그가 세운 것이다. 이 건물을 아깝게도 6.25때 불이 탔지만 그 땅은 그대로 남아서 지금의 건물을 세웠다.
그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운동에 재산을 많이 바쳤는데 세계 주일학교 연합회의 초대회장이 되었다. 그는 체신부장관까지 지내면서 평생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우리 앞에는 이러한 예들이 허다하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들 인류에게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은 모두가 지혜로운 신앙인들 이었다.
3)비록 정의를 위하여 싸운다 할지라도, 악한 감정의 나타냄 이라면 그 지혜는 거짓에 속하기 때문에 자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3:14)
(약3:14)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마음은 정의를 가장한 진리의 왜곡된 행동 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동들은 땅에속한 지혜라고 말 할 수가 있습니다.

2.위로부터 오지 않는 지혜란 무엇 인가요(3:15)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1)"세상적인 것" 이라고 말 합니다
이 "세상적"아라고 하는 말은 세상적인 지혜에 국한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세상적인 것에만 제한 되어져 있어서 그 이상의 것,즉 신령한 하나님의 세게와 주님의 뜻은 바라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세상적인 표준에 의존 하므로 저마다 옳다 하는 기준을 세워놓고 있어서 바른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동기에 일치되기 때문에 때로는 악하고, 편협되고, 시기와 미움, 욕심에 끌려서 하나님의 신령한 지식과 계시된 진리에는 온전히 반대되는 지혜를 가지게 됩니다.
2)"정욕적이다." 라고 말 합니다.
이 정욕적이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적인 것만 아니라, 영적으로 거듭나지 못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①육체의 욕심에 이끌려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가운데 살지 못하는 사람,
②육체의 소욕에 따르므로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는 사람,
③육신의 장막에 가리워져서 하늘의 비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
④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
⑤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지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사람 들을 말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거룩한 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바울 선생은 말 합니다.
(갈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3)"마귀적이다." 라고 말 합니다.
마귀가 제일 좋아하는 행동이다 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 지혜는 때로
①종교적 진리를 토론하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②기독교 교리의 정통성 부정 하는데도 활용되기도 합니다.
③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진 것을 부정 하는데 이용이 되기도 합니다.
④하나님 위주의 신앙을 인간 중심적 신앙의 잘 못된 현상으로 끌어 내리기도 합니다.
⑤사랑의 공동체를 파괘하고 반목과 질시 시기 다툼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교회안에 이러한 일들 때문에 오히려 교회가 갈라지고 교단이 분열되고 서로 반목 질시해 온 사건이 교회 역사에 남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데 있어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이곳 저곳 에서 비일비재 하게 나타 납니다.
4)이러한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인 지혜의 결과는 혼돈과 요란함과 모든 악한 일들이 여
기서 생겨납니다.(3:16)
(약3: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어느것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가치가 다르고, 기준이 다르므로 서로 옳다는 주장만을 하게 됩니다. 자기의 이익이 걸린 문제는 옳고 그르고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이기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혼돈이 오고, 요란하고, 악한 일들이 여기에서 생겨날 수 밖에 없습니다.

3.우리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3:17)1)위로부터 오는 지혜는 성결합니다. 화평합니다. 관용합니다. 양순합니다.
"성결"은 모든 악한 자세나 동기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화평"은 싸우거나 다투거나 변박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타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관용"은 남을 생각해주는 지혜입니다.
"양순"은 완고함과 이기적인 추구와는 반대로 쉽게 남의 의견에 순응할 수 있는 성품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는 그러므로 편벽과 거짓이 없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일이 없습니다. 인간적인 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는 일도 없으며 자기가 볼 손해 때문에 거짓된 판단을 하는 일도 없습니다.
2)그러므로 그 결과는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합니다.
그리스도인 지혜롭고 향기로운 행동은 모든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선한 쪽으로 일이 잘 맺어져 풍성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습니다.
예화
처칠과 플래밍고
런던에 사는 어느 부유한 소년이 스코틀랜드 (Scotland)에 갔읍니다. 그런데 어느날 호수에서 수영을 하다가 빠져죽게 됐읍니다. 소년은 사람살리라고 소리를 쳤읍니다.그때 밭에서 일하던 한 농부의 아들이 그 소리를 듣고 그를구해 주었읍니다. 얼마후, 이 소년은 자기를 살려준 은혜에보답하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그 농부집을 찾았읍니다.그리고 그 아들의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읍니다. 그는의사가 되고 싶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할 수없다고 했읍니다. 그러자 부자집 소년은 가난한 농부의아들에게 학비를 대 주었읍니다. 마침내 그는 소원대로의사가 되었읍니다. 그리고 연구를 거듭해서 곰팡이를연구하다가 1928년 페니실린을 발견했읍니다. 그가 바로풀래밍 (Alexander Flaming) 박사입니다. 한편 런던의부자빕 소년은 나중에 정치가가 되었읍니다. 그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재상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경입니다. 후에 처칠이 죽을 병이걸렸었으나 플래밍 박사가 만든 페니실린 덕으로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남이 어려웠을대에 서로서로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랑의 정신이야 말로 아름다운 열매를 얻개 되는 것 입니다.
3)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사람의 행동에는 언제나 화평이 있습니다.(3:18)
화평의 씨를 심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화평한 의의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의의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모종의 풍토가 있어야 합니다.
의의 열매는 악독스럽고 이기적인 열망의 풍토에서는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의로움은 오로지 화평의 풍토에서만 자랄 수 있습니다.
의는 "화평케 하는 자들"에 의해서만 심어지고, 재배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오로지 화평만을 사랑하고, 화평속에 살아갈 뿐만 아니라 화평의 여건들을 창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결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므로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고 진정한 인간 삶의 승리를 누리어 복받는 성도들의 생애가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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