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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어지는 삶 (요 1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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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속에서 도적과 선한 목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의미와는 좀 특이하게 정의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적이라고 하면 남의 물건을 빼앗아가는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여 기서는 그보다 좀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도적을 삯군 목자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라는 것도 단순히 좋은 목자라는 개념만이 아니라 목숨을 버리 기까지, 즉 양을 위해 '지키는 자만이 아니라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주는 자'라는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의 본문에 나오는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들인 도적과 강도들을 주의깊 게 살펴봄으로써 우리 신자들의 특권과 책임들에 대해서 깊은 깨우침이 있기를 바 랍니다.

<본론> 선한 목자라는 말에서의 '선하다'는 말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다른 뜻으로 번역 되어 있습니다. 마3:8-10절을 찾아 보시겠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 어 불에 던지우리라" 이 말씀의 끝부분에서 '좋은 열매'의 좋다는 말과 '선한 목자'에서 선하다는 말의 원문 표현은 같습니다. 왜 선하다는 원문의 단어가 좋다는 뜻으로 번역이 되었나 를 말씀드리는가 하면 좋은 열매가 무었인가 하는 데서 이 뜻을 추적할 필요가 있 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좋은 열매를 요구한다는 뜻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열매는 늘 나무를 증거하는 외적 증거로써 말해집니다. "포도나무에서 엉컹퀴를 따겠느냐 아니면 가 시떨기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열매 를 도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열매로 나무가 어떤 종류의 나무인지를 분별하고자 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열매를 맺 자는 뜻이 아니라, 그런 열매가 맺힐 수 있는 나무가 되자는 뜻으로 사용이 되었습 니다.

이 말씀은 세례 요한이 천국을 말하고 있는 중에 한 말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이미 도끼가 나무 밑에 놓여 있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 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여기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는 '좋은 나무 가 아니면'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좋은 나무란 물질 세상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고 영원한 세계를 위하여 존재하는 자를 말합니다. 다시말해 영원한 나라와 신령 한 것에 대하여 준비되어 있고 그 목표를 가지고 있고 거기에 맞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 자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지금 선한 목자가 자신을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시며 내 목숨을 주어야 한다고 함도 그래서 등장합니다. 즉 우리를 영적인 세계에 초대하기 위하여 우리 죄를 대 신해서 그 분이 돌아가시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분 이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다른 목자들이 선한 목자가 아닌 이유가 무었입니까 그것은 예수님 이 외에는 남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다른 목자들이 예수님과 비교될 때 도적이며 강도들입니까 저들은 생 명을 준비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처럼 대신 죽어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일은 오직 예수님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단지 그 삯군들은 생명에 관한 것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그 일 에 걸리는 이익때문에 일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다시말해 삯군이란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해 주기 때문에 일하는 것 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발생하는 부수적인 이익에 목표를 가지는 자들을 말합 니다. 그래서 그 일에서 발생하는 이익보다 더 큰 위협을 받으면 그 일을 포기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목자이신 이유는 이 세상에서 주는 이익보다 더 큰 이익을 우리 에게 주기 위해서 목자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목숨을 주어 그 이익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와의 대표적인 차이는 이것입니다. 선 한 목자란 양을 위해서 있는 자이고, 삯군 목자는 근본적으로 자신을 위해서 있는 자입니다. 그러면 목자가 양을 위해서 수고를 하였는데 그 일한 댓가를 누구에게 받습니까 양의 주인에게 받는 법입니다.

삯군이란 다른 자가 아니라 양 주인을 따돌려 놓고 양을 목표로 오는 것입니다.

그 삯군에게는 양이 수입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양을 치고 그 대가를 주인에게 받 는 것이 아니라 양 자체가 그 삯군이 노리는 이익인 것입니다. 그들은 기왕에 일을 해도 토실토실한 양이 있는 곳에서 일하려고 하는 법입니다.

양을 잡는 대로 자기의 것으로 하려는 자는 양무리들을 대할 때 어떤 것에 관심을 갖겠습니까 토실토실하고 복스러운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만 일 양떼를 어떤 주인에게 부탁받았다면 부었에 신경을 쓰겠습니까 그것을 겔34:7-16절에서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에스겔 34장의 전 내용이 악한 목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 말씀 중에서 중요하 게 쓰여진 단어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 은 목자가 없음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 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 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 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여기에서 거듭해서 나오는 몇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내 양'이라는 단어입니 다. 다시말해 이 양들에게 따로 주인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목자들은 누구에게 월급을 받고 고용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입니다. 주인되 신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에게 네 실력껏 양떼들을 모아오라고 명하신 적이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따로 자기 양떼들을 미리 다 준비해 두시고서는 목자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에게는 이 일이 양과의 일이기 이전에 주인과의 계약 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을 먹이지 않고서 자기네들만 먹고 있습니다. 양에게 먹일 풀을 목자가 먹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10절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 내어서 다시는 그 식물이 되지 않게 하리라"는 말씀을 볼때에 양을 치러 온 것이 아니라, 양들을 그들의 음식물로 취하러 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목자들은 양을 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양고기를 취하고자 온 자 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삯군인 것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고 목자들을 몰아 내시며 친히 그 양을 치겠다고 하 십니다.

이 사건 기록을 현실적으로 적용해 보면, 물론 그 일차적인 적용은 교역자들에 대 한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책임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는 양떼를 먹여야 합니 다. 맡겨진 양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목사가 목회라는 공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두가지 꼭 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목사는 언제나 그의 직분을 개인적인 인기만으로는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그를 목자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할 일은 양떼들이 그 마련된 초장 에서 딴 짓을 하지 많도록만 보살피면 됩니다. 양이 길을 잃지 않게 하고, 험한 곳 에 가지 못하게하며, 무슨 악한 것이 오면 막아 주는 것입니다.

목자는 물을 가꾸고 베어서 양에게 주는 등의 일은 하지 않습니다. 방목을 하는 목축 방식하에서 목자들의 하는 일이란 이침에 양떼를 몰고 나갔다가 저녁에 데리 고 오면 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에 곁길로 나간 양들만 잘 몰고 돌아오면 되는 것 입니다.

그 일을 신자와 교회와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고마운 직책입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목사들이 종종 오해를 하곤 합니다. 개인적인 인기가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오해는 자주 치명적인 것이 됩니다.

목사는 종종 설교를 잘못하고는 합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설교를 잘못 하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셔서 듣는 자들에게 감동이 되게 하는 수가 있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착각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 해도 감격들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종래에는 드디어 무례하게 되는 것입니다.

목사가 말씀을 증거할 때 무례하게 되면 그 사람은 참 목자가 아닙니다. 이 무례 함이란 말을 거칠게 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말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목사가 말씀에 심각성에 대하여 열내며 거칠게 마하는 것과 말씀 을 신중하게 대하지 않고 쉽게 감동하여 쉽게 전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준비하지 않고서 나왔다는 것을 뜻합니다. 자기가 하 는 일을 쉽게 생각하여 경솔하고 나태함을 드러내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것은 아주 큰 문제로 제기 됩니다.

또 하나 넘어서야 할 것은 목사는 양이 많아져야 자기의 식생활이 보존된다고 하 는 유혹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이 문제에서 실수를 합니다.

은퇴할 때에는 교회와 계약을 맺습니다. 이제 물러날 터인데 앞으로 수년간은 담 임 목사와 똑같은 본봉을 내라는 식만큼 스스로의 함정을 파는 것은 없습니다.

목사의 급료는 누가 준다고 했습니까 주인이 주는 법이지 양떼들이 주는 것이 아 닙니다.

지금부터 15-20년 전에는 여대생들의 조사한 설문에서 목사가 배우자 직업 순위에 서 17위였습니다. 이 순위는 이발사 다음이었습니다. 지금은 4위가 되었답니다. 그 래서 요즘은 '목사라는 직업도 괜챦다'라는 말을 겁없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 으로 나쁜 말인 것입니다.

목사가 먹고 살만한 직업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가 어 렵게 산다면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입니 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목사나 교회를 어렵게만 하시지 않습니다. 큰 교회로, 아름다 운 교회로 들어 쓰실 때에도 있습니다. 한 신자의 개인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 질적인 축복, 권세, 지위를 신자들에게 허락하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야말로 온 천하 만물의 주권자이시며,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하신다면 삯군이 붙을 위험성이 너무도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더니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일류 대학에 가게 되고, 예수를 믿었더니 성 대가 좋아지며, 예수를 믿었더니 병이 낫는다고 하면, 모두들 예수를 믿기 때문에 모이는 것이 아니라, 이에 부수되는 이익들 때문에 모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얼마나 많은 쭉정이들이 모여들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몽땅 삯군이 되는 것 입니다.

이 세상에서 인사 행정만큼 어려운 것도 없습니다. 기업체나 어떤 단체든지 한 사 람의 능력을 적재 적소에 배치시킴으로 모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만드는 것만 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그랬습니다만, 제일 좋은 자리란 무었이었느냐 하면 그것은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었고, 지위도 아니었고, 오직 부수입이 많이 생기는 자리라고들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선 우리가 불만할 이유가 없습니다. 워낙 세상 사람들은 그것밖에 모르니 당연한 것입 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성직자가 양을 자기 식량 창고로 알고 모으는 경우가 문제입니다. 그러니 영혼을 바라보지 않고 교인의 주머니 속에만 관심을 가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삯군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신앙을 바르게 가지고 있는 자와 신앙이 바르지 않는 자가 있는데 신앙이 좋지 않는 자가 물질적으로 목사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때마다 선물을 보내고 초대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는 사람 을 신앙이 바른 사람보다 더 대우하게 된다면 그는 삯군인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신앙 상태가 동등한 수준인데 한 사람은 때마다 잊지 않고 인사 를 다니나 또 한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럴 때 목사는 누구를 더 좋아하게 됩 니까 이것은 굉장한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문제입니다.

개인적인 교류가 있는 것은 인간적으로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참 좋고 기 쁜 일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에게는 다릅니다.

목자는 근본적으로 양들을 살찌우기 위하여 있는 것이지 가깝게한다는 것으로 인 해서 내 일을 다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즉 교제나 아름다운 관계에서 얻어지는 기 쁨들은 부수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하여 주시는 부수적인 축 복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러한 교제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 교제가 우리가 해야하는 책 임들을 대신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만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교역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이라는 양우리에서 여러분들이 목자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모든 신자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이 제사장이 란 중보자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죄인들을 데리고 가서 죄를 씻게하고 하나님과 화 해시키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목자들입니다 여러분이 세상 앞에서 기독교를 소개할 때 무었으로 소개합니까 이익으로 소개하 고 있다면 여러분이 바로 삯군인 것입니다. 교회에 갔더니 이런 이익이 있더라, 자 녀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더라, 그리고 병도 낫더라고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 입니다.

이것들은 훨씬 부수적인 것들입니다. 이 말이 '양떼를 맡았더니 아침에도, 저녁에 도 매일 양고기를 먹게 되었더라'는 말과 무었이 다릅니까 그러면 도대체 기독교 를 무었으로 설명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예수님께서 자신이 선한 목자이심을 무었으로 증명하셨는 지를 살펴봄으로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자신의 목숨을 양떼들을 위하여 버림으로 선 한 목자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 왜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나타납니까 물론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하여 이렇게 요구하고 계십 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 니라"고 하십니다.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쫓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목자로서 한 시대 와 한 인생을 걸으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한 목자의 직분을 완성하여 양들 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하는 그 방법은 죽음이라는 것 이외에는 없다고 선언하고 있 으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세상의 문제들 중에서 내가 증명되어진 것이 있다면, 그것들은 부 수적인 것들이지 핵심적인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서 잘된 일이 물질계에 있다 면 부수적인 것이지 그것이 결단코 본론은 아닌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인 것입니다. 삯군 신자들을 배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죽음 밖에는 목자의 사명을 감당할 다른 길이 없겠습니까 인간의 죽 음에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자존심이나, 명예나, 존재의 의미 등 이런 것 이 사실은 죽음과 연결되어집니다. 우리가 물질계의 가치기준에서는 죽은 자들입니 다. 우리는 자존심도 없고, 명예욕도 없고, 부귀영화에 대한 미련도 없는 그야말로 세상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오장육부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영원을 준비하는 방법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하나님께서 물질이나 명예를 주심으로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의 주권자인 것을 증명하십니다. 또한 동시에 주신 것들을 빼앗아 가심으로 그것으로 인해서 우리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다른 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을 증명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생애에 있 었는가를 정검하셔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잃어버린 힘과 신자가 잃어버린 힘이 있다면 그것은 그 교회와 그 신자로부터 영원과 생명으로 연결되어지는 분위기를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없고 맛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최대의 약점이자, 심각한 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가 제일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설교나 말씀이 연결되는 부분에서 신자들이 어려워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것은 자존심이기 이전에 목사의 사명이며,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목사의 설교를 듣는 자가 그 목사의 뒤에 계시는 영원하신분 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연결되는 어떤 분위기에 뜨끔한 것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 다. 이것은 자신을 증명하자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목사의 책임이기 때문입니 다.

이것이 비단 목사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요 모든 신자들에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인생이 이렇게 다시 점검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롬10:9-15절을 보십시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 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 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 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자를 어찌 부르 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여기서 믿음은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만 전달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전파하는 자가 무었을 전파할까요 이익을 전파하는 자는 삯군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믿음까지 연 결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은 누가 나를 보냈다는 사명에 관한 얘기가 아닙니다. 보고 온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자는 '내 양을 위하여 내 목자'라는 식으로 그의 주인이 있다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의식이 없이 양들을 만나는 자는 기독교라는 횡재를 만났다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모든 것이 잘 됩니다'라는 말처럼 맞으면서도 틀린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말 처럼 기독교에 해독을 끼치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서 잘된다는 그 말의 뜻은 대개 물질의 축복이 넘치게 되고, 질병이 낫고, 자 녀들이 성공하고, 사업이 번창해진다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 니다. 예수를 믿어서 잘되어질 것을 기대했던 일들이 좀처럼 잘 되어지지 않자 믿 음을 포기하고 주춤거리고 떠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잘못 소개 되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고 잘되는 것은 영원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물질의 손해를 보아도 영생을 잃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었을 전파해야 되겠습니까 '나와서 내가 만난 예수를 만나 보라 네가 가진 모든 것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 분을 만 나야 된다'는 것이 전파되어져야 할 절대적인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것이 없어졌다는 것이 심각함입니다. 기독교의 목표와 방향 자 체가 세상의 번영과 축복이라는 미명하에 지워 버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의 신앙을 다시금 똑바로 정검해 보아야 합니다. 무었이 진정한 기독교인인 지 바로 아셔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죽어서 증명하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위하여 적자생존의 싸움을 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린 죽기 위해서 사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모든 고 백들입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나는 매일 죽노라!" "우리 중에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 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 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러한 말씀들이 그래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선한 목자가 되십시오. 죽음으로 여러분의 길을 가십시오. 우린 생 존 경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린 영원을 준비하는 자들입니다. 오늘 주어진 인생 속 에서 내게 부닥친 모든 싸움들 가운데 영원을 준비하며 영원을 향한 방향과 방법과 근거를 동원하여 그 나라의 사람으로 커 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는 우리를 가 리켜 미련한 자이고 어리석은 자이고 웃기는 자라고 희롱합니다.

그러나 다시는 기독교를 나누어 먹을 이익금 때문에 증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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