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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살리라 (요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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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숙제를 내드렸는데,예수님의 이 설교에 나타난 세개의 강줄기를 한번 더듬어 보셨는가 사실 동작 빠른 분들은 어제 설교들으면서 다 표시 해버렸을 것이다.한번 기억을 더듬어 볼까요 어제 설교의 첫째 대지가 무엇이었지요생명떡을 먹어라 둘째다시 살리리라, 셋째-하나님게서 오게 하신자들 어제는세번째 강줄기였던 하나님게서 오게 하신 자들을 좀더 중점적으로 다루었고,오늘은 두번째 강줄기인 다시 살리리라란 주제를 제목으로 삼아 말씀을 드리겠다.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먼저 다시한번 그 성구들을 더듬어 찾아 읽어 본다.

39,40,44,54, "다시 살리리라"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하신 말씀 중 첫 경고의 말씀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 먹는날에는 정녕 네가 죽으리라"라는 것이었다. 창2:17 인간의 대표 아담에게 주셨던 이 경고는 곧 저주로 바귄다."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3:19 그런데 오늘 우리의 본문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내리셨던 그 저주에서의 해방을 약속하고 계신다.내가 너를 다시 살리리라=네가 정녕다시살리라 이것을 바로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죄와 저주와 사망과 심판에서의 해방을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다시 살리리라" 당시 무리들이 예수님의 설교가 다 끝난 다음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었다. 생명떡을 먹으라-하나님이 예수님께 오게 하신 자들마지막날 에 다시 살리리라 라는 말씀등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이었다.

사도 요한과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던 제자들도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하나님이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아 둔 것이었다.

사도 요한이 이 진리를 언제 이해하게 되었는지 추적해봅니다.

20:1-9을 봅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예수님은 드디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가롯유다와 로마군인들에게 잡혀 갔다. 그리곤 순식간에 재판이 진행되고 두 강도와 함게 십자가형에 처형되어 버렸다.축늘어진 그의 시체는 부자 요셉이 미리 가족을 위해 준비했던 동굴형 무덤에 묻히고 그 문은 큰돌로 굴리워져 막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대한 체포령도 내려졌던 것 같았다. 예수님의 능력을 잘 알고 있던 요한은 그래도 마지막 소망을 품고 재판 받는 동안 예수님 먼발치를 따라 다녔던 것 같다.

여차하면 예수님을 버릴 것이요,혹시 예수님이 기적의 능력으로 힘을 발휘 하면 에수님 앞에 착 나설려고 기회를 봤던 것 같다.

재판을 받는 당시 대제사장의 집에까지 따라 갔던 제자는 단 두명 베드로와 요한 자신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의 집 앞에서 베드로는 제지당 한다.그러나 요한은 대제사장과 잘아는 사이라 통과해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고 자기 자신이 요한복음에서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문을 지키던 게집종에게 말하여 베드로도 안으로 들어오게 한다.

이 대목에서 참 요한이 의심스럽다. (1)어떻게 항상 예수님의 대적이었던 대제사장과 이리도 잘 아는 사이가 되었을까 하는 점(친척이란 암시는 없다)이다. 사실 잠시 후 그의 형제 야고보는 제자 중 첫 순교자로 잡혀 죽는다.

어떤 사람은 요한이 출세를 위해양다리걸치기 작전을 쓴 증거 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뭏든 찜찜한 대목이다. 대제사장 측에서 그러면 요한이 갈릴리 예수의 제자였다는 사실을 몰랐거나,알았어도 가롯유다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원수로 알지 않고 자기들의 친구로 알았다는 말이 될 것 이다.요한의 처신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2)두번째는 문지기 계집종이 베드로 보고는 너도 그의 제자가 아니냐 하면서 시비를 거는데 왜 요한은 무사통과인가 하는 점이다.

계집종에게도 안전장치를 다 해놓았던 것이다.자기 신분을 모르게 했건 알아도 자기편으로 알게 했건 간에 말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 믿음 때문에 세상에서 받는 미움이나 핍막이 전혀 없는 신자들처럼 말이다.

아뭏든 그는 예수님이 무덤에 묻힌후 에루살렘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안식일 이튿날 새벽에 무덤에 갔던 여인들로부터 에수님의 시체가 없어졌다는 보고를 받는다. 베드로와 요한 이 두명은 무덤으로 달음질쳐 뛰어간다. 이 둘은 아마 이날 날만 세면 고향 갈릴리로 돌아갈려고 그랬을 것이다. 안식일이어서 못돌아가고 예루살렘에 머물렀 던 것 같다.

그 둘은 헐떡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정신도 없이 빈무덤 속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20:8를 찾아 읽어보자.

요한이 에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은 바로 그 때이다. 빈무덤을 보고 있을때 비로소 자기들과 다니실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나고 믿어지게 된 것 이다.

내가 마지막 날에 너희를 다시 살리리라 라고 이날 회당에서 설교하신 말씀 들이 깨달아 진것도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믿고 난 다음이었다.

예수님이 말씀대로 죽음에서 부활하신 사건은 요한에게 너희도 부활하리라 "내가 다시 너희를 살리리라"하신 에수님의 말씀에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자마다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에수님은 자기를 믿는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자이시다.

마지막 날에 무덤에서 성도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실패하고 쓰러진 성도들을 다시 붙잡아 일으키십니다.

믿는다하면서도 우리가 얼마나 여러번 넘어지고 자빠짐니가 그러나 아버지께서 예수님게로 오게하신 자들은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 여러분들에게 저주와 사망에서 해방시키시는 주님의 역사가 이미 있은줄로 믿으시기 바란다.

그런데 마지막날 우리를 살리시는 그 능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우리를 이미 죄와 사마의 저주에서 해방하신 그 능력 보다 조금도 크지 않다 이처럼 오늘 매일 실패와 좌절로부터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다시 살리시는 그능력보다도 조금도 크지 않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여러분들에게 실패와 좌절과 절망 속에서 다시 살려 내시는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오늘도 내일도 충만히 임하시길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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