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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신을 살피고 정결케 하자 (시 1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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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장에서는 기도의 세번째 요소인 죄의 고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 겠습니다. 죄의 고백은 크게 자기 성찰과 죄의 고백의 두 단계로 이루어집 니다.

 자기 성찰 자기 성찰이란 자신을 하나님께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일주일에 15분 동 안 자기 자신을 검토해 보는 것이 나가서 한 시간 뛰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사회 생활을 할 때나 신앙 생활을 할 때나 똑같이 적 용됩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과 지금의 상황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해 생각해 볼 줄 아는 사람들이 사업을 해도 잘합니다. 무조건 나가서 하루 종 일 뛰고, 내일도 뛰고, 모레도 뛰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어떻게 뛰어 왔는지 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지금 잘 뛰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뛰 어 다니기에 바쁜 사람들은 어떤 큰 일을 성취하지는 못합니다.

 영적 생활에도 이러한 자기 성찰의 시간들이 반드시 필요한데, 시편 139편 23절에 나타난 자기 성찰의 모습을 봅시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좀 조사해 달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는 "search me"라고 되어 있습니다. 캄캄한 곳에 전등을 비추고 거기에 뭐 가 있는지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하나 님이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니까 저에게 빛을 비추셔서 저를 조사해 주세 요. 저의 상태가 어 떤지 살펴 주세요" 하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점차 적으로 성장을 합니다. 자기를 돌아보는 그리스도인 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 속이 깊어지고, 얼굴도 더 은은해지고 아름답게 되어 갑니다. 예수 믿는 사 람들은 자주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 읽고 서로 격려하니까 원숙해져 갈 수밖 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정기적인 자기 성찰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발전이 없습니다.

 제가 대만까지 가는 비행기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제 옆자리에 50대의 남자 한 분과 여자 한 분이 앉으셨습니다. 저는 두세 시간 동안 조용히 글 을 쓰면서 갔는데, 그 두 분은 계속 대화를 하더군요. 이야기하는 내용을 들 어 보니까 장사하러 가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열다섯 명 정도가 같이 가는 모양입니다. 남자는 조금 사기성이 있어 보였는데, 여자보고 돈을 좀 빌려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돈을 세어서 그 남자에게 건네줍니다. ` 야, 이것 하나 넘어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의 대화를 들어 보니까 저급한 차원의 대화였습니다. 그들의 대화 내용이나 말씨를 들으면 서 인생이 너무도 허무하게 보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예수 믿는 사 람들 속에서만 살다 보니까, 안 믿는 사람들의 대화를 들으면 실망을 많이 하게 되는가 봅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 아직 이륙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보니까 여자 분이 짐을 앞에다 놓고 앉아 있길래 짐을 위에 올리든지 발밑에 넣든 지 하셔야 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항공법상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안 지키면 스튜어디스가 와서 꼭 그 말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 주 부드럽게 말을 했는데, 그 부인은 "저도 그런 것쯤은 알아요. 올리고 내 리고 하는 것이 귀찮아서 그냥 여기 두는 거라구요" 하면서 퉁명스럽게 대 꾸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에 스튜어디스가 점검을 하는데, 그 여자 분이 치마로 짐을 슬쩍 가립니다. 그러나 스튜어디스가 눈치를 채고 그 부 인에게 그렇게 놓으면 안 된다고 말을 합니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 국은 그 부인이 짐을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나이가 50쯤 되었으면 인생의 맛도 다 보았을 텐데, 그동안 살아 오면서 스스로를 살펴보고 평가를 해 보면서 부족한 부분들을 자꾸 채워 갔더라면 그 분의 입에서 우아한 말들이 흘러나왔을 테고 그 얼굴에서 원숙미가 느껴 질 텐데…. 그들의 대화에서 그런 것이 전혀 안 보이니까 안타깝기도 했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행복하구나 하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자주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 자신을 비춰 보고 고치고 다듬고 하는 일들을 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다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말씀이라는 거울에 나를 비춰 보는 일을 하나의 생활 양식으로 삼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계 속적으로 성숙해 감으로써, 죽는 날에 우리 생애 최고로 성숙한 모습을 보 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보았던 시편 기자의 고백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23절 후반부 에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라고 그랬습니다. 이것은 내 가슴 속에 있는 걱정, 근심, 불안한 생각들을 다 골라내어 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살필 때 뭐가 뭔지 도대체 모르겠고 혼란스럽기만한 경 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 증세가 오래되면 병이 됩니다. "내 뜻을아옵소서" 하는 것은, 이러한 불안한 생각들을 전부 다 조사해서 맡아 달라는 뜻입니 다.

 저는 왠지 모르게 초조하고 불안하고 삶이 무료해지면 무엇이 나를 그렇 게 만드는지 제 나름대로 노트에 하나씩 적어 봅니다. 번호를 매겨 가면서 죽 적어 보면, 어떤 때는 대여섯 개가 되고 어떤 때는 열다섯 개가 되곤 합 니다. 그런 다음 그렇게 하나씩자신을 살피고 정결케 하자``당신은 확실히 동행하십니까 꺼내서 정리한 생각들을 하나님께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하 나씩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이러이러한 문제로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하면서 노트에 적힌 순서대로 다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했으면 그 노트 위에 손을 얹고 "하나님이여, 이제 주님께 이야기한 이 모든 것을 맡기오니, 이것들을 맡아 주시고 해결해 주시고 또 용서해 주실 것을 용서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 당시는 잘 모르겠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나면 이전의 어두운 마음이 밝아지고 혼란스럽던 생각들도 사라져서 평안해 집니다. 여러 번 이런 경험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자기 자신을 살피고 평가 하는 작업이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성경 구절을 하나 더 찾아 보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28절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성찬 예식 때 자기 자신을 살피고 임하라는 말씀입니다. 영어로는 "examine himself"라고 했습니다. 찬송을 할 때도 그 가사 한마디 한마디를 통해서 나 자신을 살펴보고, 내 신앙을 확인하고, 내 믿음을 하나님께 비추 어보아야 합니다. 또 누가 기도할 때도 그 한마디 한마디를 새겨 들으면서 나 자신을 돌이켜보게 됩니다. 말씀을 읽을 때 혹은 광고를 할 때에도 이러 한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적으로 자신을 살피는 사람들이 발전합니다.

 죄의 고백 자기 성찰이 있은 후에야 고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고백은 잘못한 것만 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있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드러내놓는 것입 니다. 원어에 근거해서 "고백"이란 말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그것은 "같은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실과 같은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과 똑같이 내 삶을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고백입니다. 잘못 한 것이나 실수한 것이 있으 면 얼버무리지 말고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말하십시오. 변명할 것도 없습니 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아시니까요.

 어떤 사람은 자기 몸이 아픈데도 안 아프다면서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합 니다. 진찰을 받으면 병명이 나타날 것이 뻔하니까 일부러 안 가는 것입니 다. 그런 사람은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병명을 모르는데 어떻게 치료를 합니까 자기에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치료의 첫번째 단계입니다. 병이 있으면서도 없다고 무시하는 것은 머리만 모래에 처박고 서 몸을 완전히 숨겼다고 생각하는 꿩과 같습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한 것, 잘못한 것, 좋은 것, 나 쁜 것, 걱정되는 것, 기쁜 것, 감사한 것,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 게 하나님 앞에 내놓으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들을 자기 안에 감추 어 두면 병이 됩니다. 속에 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야만 건강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그렇습니다. 속상한 것이 있는데 "꿍" 하고 있으면 결코 해결 되지 않습니다. 관계만 더 멀어지고, 자기 속에는 응어리가 생깁니다. 혼자 서 끙끙 앓으면서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한꺼번에 꽝 하고 터지면, 상대방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상대방은 잘 이해 를 못하고 뭐 그런 것 가지고 야단 법석이냐고 합니다. 그러나 당사자는 그 동안 말을 못하고 계속 쌓아 왔기 때문에 속병이 단단히 들어 있는 상태입 니다. 속병이 생기면 몸까지 아픕니다. 조금씩 조금씩 미리 이야기를 했으면 병이 안 될 텐데 말입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하나님께 다 이야기하십시오. 속상한 것 있으면 " 하나님, 제가 지금 너무 속이 상해서 죽을 지경입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 런다고 하나님이 "야, 너는 왜 그렇게 말이 험하냐"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요. 화나면 화난다고, 미우면 밉다고 그대로 이야기할 때 우리의 영혼이 다 시 살아납니다. 이것이 고백입니다. 고백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대로 털 어놓을 수 있는 훈련 말입니다. 하나님과 단둘이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비밀 이 철저히 보장될 테니까요. 이런 훈련을 하지 않으면, 인간 관계도 어려워 지고 얼굴 표정도 어두워지고 꼭 병이 납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의 글을 읽어 보니까, 정신병에 걸린 사람들을 치유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지만, 자꾸 질문을 던져서 마음 속에 잠재된 생각들을 쏟아 놓게 합니다. 그런 작업들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그때부터 그 환자가 회복이 됩니다. 우리의 정신 건강도 마 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검토해 보고 문제점들을 하나님께 드릴 때 온 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백에 관련된 성경 구절 중에 우리가 다 잘 아는 구절이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고백을 하면 그 속사람이 자꾸 깨끗해진다고 말합니다. "카타르시스"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이 용어는 심리학에서 많이 쓰이는데, 바로 요 한일서 1장 9절에서 나온 말입니다. 고민, 불안, 두려움, 걱정, 이 모든 것들 을 하나님께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옳지 못한 성품들을 씻어 주신 다는 것입니다. 이 고백의 과정을 잘 거치면 그 얼굴에 평화와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금방 알아볼 수 있지 않습니까 예수 믿 는 사람이라고 써붙이고 다니지 않지만, 그 얼굴을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조용한 시간(Q.T.)을 계속 갖고 고백을 통해 깨끗함을 받는 작업을 오래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고백, 특별히 죄의 고백을 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시편 66 편 1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내 가슴 속에 악한 것을 품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신 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손해가 큽니까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기도 하고 내 문제를 그분과 의논하면서 지혜도 구하 고 힘도 구하고 능력도 구하고 하는데, 그 통로가 막혀서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없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만한 기도 생활을 위해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깨끗함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마지막으로 시편 24편 3,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 하는 자로다." 처음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했습니다. 사실 우 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앞에 서려고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 사 람들은 손이 깨끗한 자라고 그랬습니다. 손이 깨끗한지 더러운지 어떻게 압 니까 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더러워진 손을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의 더러운 모습을 고백함으로써 깨끗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마음 이 청결하고 허탄한 데 마음을 두지 않고 거짓 맹세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이런 사람들은 결국 어떻게 됩니까 5절 말씀 입니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라." 우리가 자신을 살피고 또 회개하고 자백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말씀에 비추어 검토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주님 앞에서 해결하면서 손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정결하 게 하고, 입술로 허탄한 말을 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으면, 당당히 하 나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복되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당신은 지금 "아, 나는 참 행복하구 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참 큰 축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찬 양하고 감사하고 스스로를 살피고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며 복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자신을 살피는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죄를 고백하는 삶을 통하여 늘 깨끗해 지고 늘 전진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아버 지 하나님의 축복 속에 행복한 삶이 전개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귀하고 아름다운 자녀들에게 은혜 충만케 하시사, 성령님의 감 화와 감동이 그 마음의 생각을 밝게 하여 주시고, 변화시켜 주시옵소서. 그 래서 지금까지 배운 이 조용한 시간이 우리의 삶 속에 반드시 실현되도록 축복하여 주시고 우리를 훈련시켜 주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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