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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다에서 나온 짐승2 (계 1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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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짐승의 일시적 승리의 모습 이 짐승이 싸움에서 승리를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적그리스도의 세력이 성도들에게 승리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 은 일시적인 승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성도들의 패배 가 분명한 것처럼 보이도록 사단의 마지막 세력이 기승을 부리게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제 외한 모든 사람들이 다 짐승을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錄名)되지 못 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8절).

그리고 성도들은 핍박을 받고 순교를 하게 됩니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10절).

오늘날 이 세대는 점점 종말적인 현상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기독교 국가라고 불리웠던 나라일수록 더 그런 현상이 분명 하게 드러납니다. 점점 세속화되고 한술 더 떠서 하나님을 반대하 고 모독하고 교회를 조롱하고 핍박하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미국 을 보십시오. 처음에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정교 (政敎) 분리를 정책화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종교가 더 이 상 이 땅에 선전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구실로서 이 정책이 해 석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중 매체를 보아도 반기독교적 요소가 만연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 언어, 온 족속, 온 방언, 온 나라에 사단의 역사가 팽창되 어 가는 모습을 보십시오. 역사의 이 마지막 시점을 향해서 달려 가고 있는 지구촌의 모습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단이 정말 승 리한 것일까요? 본문에서는 사단의 승리는 일시적이며 최후의 승리 는 성도들에게 있다고 말합니다.

최후의 승리는 성도들에게 10절을 보십시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이 세상의 문화가 하나님을 반대하는 문화로 변질되어 가고 있음에 도 불구하고, 참된 성도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킬 것이라 고 합니다. 그들이 결국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해서 모두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참 성도만이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참 성도입니까 ? 8절에 답이 있습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점점 더 마귀에게 그들의 영혼을 팔고 마귀를 숭배하는 꼴로 변질되어 갈 것입니다. 여기 에서 예외가 있다면 바로 어린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 람들입니다. 이들이 참 성도들입니다. 어린양은 우리의 죄를 짊어 지고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 록된 자들, 그들은 이 시대를 분별할 것이고 사단을 대적할 것입 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끝까지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이 사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얼마나 위대한 자랑입니까?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께 전도 보고를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하더라고 기뻐 보고하는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 이것이 더 중요하고 더 기뻐해야 할 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어둠의 세 상에서 계속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존재 이유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참 하나님의 자녀로서 종말론적 삶의 승리를 위해서 견지해야 할 두 가지 자세가 있다고 역설합니다. 바로 인내와 믿음입니다. 인내라는 단어는 다소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단어입니다. 그 본래 뜻은-아래서 버틴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우리의 신앙을 박해하고 우리의 믿음을 변질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미혹시킬 때, 그 환경의 압력을 버텨 내는 것이 바로 인내입니다. 그리고 좀더 능동적인 자세로서, 내 삶의 모든 문제 를 하나님께 내어 맡기는 믿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도와 교회 를 향한 마지막 박해의 바람이 불어올 때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 사단의 공격을 버텨 내고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그분께 계속 시 선을 고정시키는 믿음의 자세를 고수하는 것입니다. 최후의 핍박 기간에 그렇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도 인내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5절에 보면 이 짐승이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고 했 는데, 마흔두 달은 삼 년 반과 같은 말입니다. 최후의 기간 중 에서 후 삼 년 반에 해당하는 기간을 가리킵니다. 그 기간을 문 자적으로 해석하든 상징적으로 해석하든, 본문의 메시지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큰 핍박의 기간에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인내와 믿음을 가진 참 성 도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이 마지막 때에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11세기에 독일에 살았던 왕 가운데서 하인리히 3세라는 왕이 있 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왕궁 생활에 대한 깊은 회의와 허무를 느끼고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도원을 찾아가서 수도원장을 만나 자신의 생각과 뜻을 밝혔습니다. 수도사 가 되기를 원하는 이유가 궁중 생활에 대한 권태라는 말을 들은 수도원장은 그것은 올바른 동기가 될 수 없다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폐하, 수도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맹세해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절대적 순종입니다. 폐하는 앞으로 하나님의 어떤 명령에도 절대적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소!』 우리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이 수도원 원장인 저나 이 수도원에서 지도하는 모든 스승들에 대한 절대적 순종을 요구합니다. 거기에 순종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겠소.』 그러면 첫번째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셔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잘하시기 바랍니다. 백성을 다스리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위한 수도사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 있는 교훈을 전해 줍니다. 하나 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자리인 지금 여기에서부터 우리가 인내하 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간다면, 장차 우리의 삶의 자리에 어떠 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 터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세상은 점점 더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적그리 스도가 발악하고 요동하는 이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하시고 우리를 이 어두운 때에 자녀로 삼아 주셨사오니, 인내하고 신뢰하며 이 마지막 시대 에 승리하는 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축복하시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입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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