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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생각하라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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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부터 우리는 대형 사건들을 연달아 겪으면서 생명의 안전에 대하여 매우 큰 위험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행기도, 배도, 열차도, 지하철도,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땅 위에 있다고 해서, 땅 아래 있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안전하겠거니 생각했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일이 터져서,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될 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이렇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사고 노이로제에 걸려 버렸습니다. 어떻게든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찾아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오히려 마음만 더욱 불안하게 할 뿐 실제로 위험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은 모두 사고를 당하더라도, 믿는 사람들만큼은 살려달라고 기도해야 할까요 아닐 겁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무언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요청을 들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통해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라는 하나님의 요청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안에 그 어디에도 안전지대가 없다는 이 공포스러운 사실은, 역설적으로 우리로 하여금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도록 요청을 합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사실 알고보면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우리는 죽음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든지 올 수 있습니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면서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요청하는 삶의자세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의 비유를 봅시다. 왜, 이 부자가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죽음을 잊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언제까지든지 지속될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어리석음의 원인이었습니다.
이 밀을 반대로 하면, 죽음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 생명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지혜자라는 말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최근에 잇따른 대형 사건들은 우리를 지혜자가 되게 해줍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그러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자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살 때, 두 가지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비유의 부자는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에 대하여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땅의 것만을 생각하고, 재산을 확보하는 것으로 생명이 안전지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소중하고 절실하게 만들어 줍니다. 지금 당장 죽음을 앞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믿지 않는다면 모르되,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제일 먼저 관심을 두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하나님을 찾겠다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 생명이 끝이 난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해 나가게 됩니다.
둘째는,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웃이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어 줄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자연히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등한히 하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침에 집을 나서면서, 저녁에 분명히 집에 돌아 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지금 나가면 다시는 집으로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십시오. 아내를 바라보는 것이 새롭고, 자녀들을 바라보는 눈이 새롭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서로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가능합니다. 어느 편이든 한쪽에서 먼저 죽고 나면,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 죽음의 시간이 언제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서로 미워하고 시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습니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비유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는 죽음을 생각하지 못했고, 그리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시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는 데 게을리했습니다. 오늘 밤에라도 당장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더라면, 이 부자는 이렇게 어리석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진 것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는 데만 쓰지 않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을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루살이처럼 살아야 합니다. 내일을 기약하지 말고, 오늘이 전부인 양,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오늘, 아직 시간이 주어졌을 때,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주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하루 하루를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참된 생명을 확보하게 되며, 참된 영원을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영원을 사는 하루살이'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죽음의 사면초가 안에서 진정한 '안전지대'를 얻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 화

1. 죽음에 대한 인식
고등학교 다닐 때, 매우 가까웠던 선배가 연탄가스로 죽었다. 가스사고에 대하여 많이 들어 보았지만, 내 옆에 있던 선배가 죽고 나니, 나도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우리 집도 연탄을 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선배의 죽음 이후, 매일 밤 나의 기도의 대강은 이러했다. "주님, 내일 내가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나를 받아 주시옵소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절실하게 해준다는 경험을 이 때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예 화

2. 사랑할 수 있을 때
지난 4월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폭파 사건 때, 중학생 아들을 잃은 어떤 부인의 절규이다. "소풍을 가는데, 초밥을 싸 달라고 졸랐어요, 돈이 없어서 김밥을 싸서 보냈지요. 아침에 나가면서 투덜거리길래, 혼을 내서 보냈어요. 그런데 이렇게 죽었어요. 우울하게 죽음의 길을 가도록 한 이 에미의 가슴이 한없이 미어집니다." 사랑은 살아있는 동안에만 가능하다.
 기 도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우리의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깁니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주십시오. 살아 있는 동안, 아버지와 하나되는 일에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가슴을 열어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 주십시오. 하루하루 주어지는 시간들을 귀하게 알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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