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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탕자인가 (눅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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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큰 아들을 아버지를 도와 늘 순종하 여 집안일을 했다. 참으로 믿음직하고 가업을 이을 만한 아들이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독립심이 강했다. 집안에 있기에는 따분햇다.성공에 대한 비젼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재산권 상속을 요구했다. 자신의 몫을 받았다. 그리고 가슴을 펴고 당당히 집을 나아갔다.

"이제 해방이다. 아버지와 형을 떠나서 마음대로 살아보자. 무슨 일이든 지 할 수 있다. 꼭 성공할거야. 성공하기 전에는 오지 않을 거야..." 굳은 결심을 햇다. 둘째 아들은 먼 나라로 떠났다.

드디어 세월이 지났다. 둘째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잘은 모른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했다. 한마디로 허랑방탕하여 가산을 탕진한 것이다.

실패도 이만저만한 실패가 아니다. 먹고 살 길이 막연한 것이다. 그 나 라에 흉년이 들엇다. 생존 자체가 힘들엇다.그는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 게 되엇다. 내가 왜 이럴까 자존심이 상했지만 남의 집 일꾼이 되엇다.

돼지를 치는 일을 한 것이다. 돼지는 불결한 짐승이다. 돼지 치는 일은 참으로 불결하고 추한 일이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는 할 수 없었다 그가 먹을 것이라곤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였다. 쥐엄열매는 콩의 일종으 로 열매가 크다. 돼지의 사료로 사용되는 것이엇다. 배고픔을 생각하면 가릴것이 없엇다. 그러나 쥐엄열매도 없엇다. 어떻게 하나....

둘째 아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엇다. 내가 왜 이럴까 "우리 아 버지는 부자인데... 아버지의 집에는 먹을 것이 많을 것인데... 아! 못 살겠다. 돌아가자! 그러나 자존심이 있지. 성공하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어. 아버지 앞에 이렇게 추한 모습을 보일수 없지..." 온갖 생각이 지 나갔다. 후회와 배고픔 그리고 뒤범벅된 자존심. 어려운 고민의 시간이 지났다. 다행히 서서히 마음을 정리할수 있었다. "아버지의 집에 돌아갈 면목은 없다. 하지만 여기서 남의 집 종으로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은 가... 차라리 아버지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자. 나의 모든 것을 버리자.

실패는 과거이지 현재는 아니다. 나에게는 미래가 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 보았다. 육신은 초라했다. 남루한 의복, 창 백한 얼굴,일그러진 앞이마...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지금까지 무언가 짖누르던 것이 사라졌다. 실패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죄책감이 없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도 없어졌다. 나의 모든것을 텅비울 때 뭔가 새로 운 것이 채워졌다. 그것이 무엇일까...

아버지는 아들을 환영하여 영접했다. 아들이 아버지을 부르기 전에 아 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고 달려왔다. 아들을 측은히 여겨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는 종들을 시켜서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 손에 가락찌 를 끼웠다. 발에 신을 신겼다. 가장 귀한 손님으로 영접했다. 아들의 권 리를 회복시켰다. 종이 아니라 자유한 아들임을 확인시켰다. 아버지는 아들을 다 용서했다. 모든 권리를 회복시켰다. 과연 오늘 이야기의 둘째 아들은 누구일까 하나님을 떠난 우리들이 아닐까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아도 다 기록할수 없는 사랑이 바로 이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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