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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롭게 하소서1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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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약 2,000년전 우리 예수님께서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이스 라엘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시고 놀라우신 권능으로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쪼짜아내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여리고 성을 방문하게 되 고 그곳에서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세상속에서 세상의 방법대로 살면서 세상의 기준으로 소위 성공했다고 자타가 인정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예수님의 사랑하심으로 새 사람을 만드는 놀랍 고도 아름다운 일을 수행합니다.

바로 이런 내용이 / 바로 이런 예수님의 역사하심이 이번 수련회 기간동안 우리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이제 본 설교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 모두의 이해를 돕기위해 오늘 본 문의 무대가 되는 여리고 성에 대해 잠시 알아보고자 합니다.

여리고 성은 우선 그 기온이 고 지대에 위치한 예루살렘성의 뼛속까지 시리는 음 산한 겨울 날씨와는 달리 겨울에도 온화한 기온을 가진 아열대 기온의 저지대에 위 치한 성이었습니다.

따라서, 여리고 성은 예수님 당시 헤롯왕의 겨울철 수도로 정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미꽃들과 종려 나무들로 단장되고 훌륭한 건물들이 많이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부적인 아름다운 모습과는 달리 여리고성의 속사정은 범죄와 타락 으로가득찬 죄악의 도시였다고 알리어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양면적인 모습의 도시에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삭개오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학생 여러분 ! 이런 환경속에 살고 있었던 삭개오와 오늘 우리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어떠한 공통 분모를 찾을 볼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겉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지만 그 속이 이루 말할수 없이 타락했던 여리고 성 과 비슷한 거대 도시 부산속에 우리들 역시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옳바른 진리가 통하지 않고 비 진리가 진리인양 판을 치는 사회속에 우리 역시 살 고있고 그 속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삭개오와 비숫한 상황속에 우리들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그 옛날 예수님을 만남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나쁜상황속에서도 새 사람이 된 삭개오처럼 우리 역시도 예수님을 만남으로 새롭게 되어지는 역사를 체험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 절을 읽어보면 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은 세리장이요,부 자 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세리장이요 부자였다는 사실이 오늘 본문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습니 다.

왜냐하면,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 세리라고 하는 직업이 백성들에게 큰 불 쾌감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는 직업이었고, 더군다나 그런 불쾌한 직업으로 인 해 생긴 돈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역시 백성들에게 더 큰 적대감을 주는 요 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세리들은 로마의 제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도급맡은 자였습니다.

그러니까 세리 한명당 일정한 세금액을 할당받아서 그 금액을 정부에 내고 그 나 머지는 다 자기가 가지는 그런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 당시 세리들은 저들이 거두는 세금에 따라 저들이 부요하게 살수도 있고, 가난하게 살수도 있었 기 때문에 국민들의 원성을 들어면서까지 국민들의 재산을 착취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 삭개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바로 그런 원성을 듣는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세리장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런 삭개오를 얼마나 미워하고 싫어했겠습니까 아마도 같이 있는것 조차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했을 것입니다.

권세를 가지고 있었지만 물질적인 부가 있었지만 그 사회로 부터 철저하게 소외 당한사람이 바로 세리장인 삭개오였던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사회속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의 축적이 세상에서의 최고의 행복인양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력이 세상에서의 최고의 축복인양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오로지 돈을 많이 벌기 위해,권력을 얻기위해,명예를 얻기 위해 공부를 죽으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학생 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은 돈이,권력이,명예가 인생의 전부가 결단코 아니라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우리나라에서 최고 재벌그룹의 회장이 입원한 병실에 병문안을 갔 다고 합니다. 그 목사님은 평소에 그런 그룹의 총수인 회장같으면 이 세상을 살 아가면서 아무런 부족함이나 불평같은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기에 병문 안을 간김에 그 문제에 대해 물었다고 합니다.

"회장님 ! 회장님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지요 회장님은 행복하지요 " 이 물음에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하는 말이 "나는요 아침에 눈을 뜨면 불안해요"라고 하더랍니다.

돈은 / 물질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부터 약 5,6년전에 우리나라에서 앞에서 몇번째가는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사람의 말을 빌리자면 , 그렇게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불안해서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권력이 명예가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2. 이제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삭개오는 사회적인 지위로는 여리고성의 세리장이 요,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부자로서 살았지만 그는 3절 말씀에 보 면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가하여 보기를 원합니다.

왜 이 세상에서 부족함이 없이 풍족하게 살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만나 려고 합니까 단순한 호기심이 발동을 해서 예수님을 만날려고 했겠습니까 도대체 예수라는 양반이 누구이길래 이스라엘의 각 동리를 다 돌아다니면서 귀 신을 쫓아내고 병을 낫게해 주고 회개하라는 등 이상한 소리를 하고 다닐까 라는 호기심 이 발동을 해서 예수님을 만날려고 했겠습니까 그렇지가 않습니다.

4절에 나오는 삭개오의 모습을 보면 이러한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나무에 올라가는 것은 원숭이나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일입니다. 그저 철부지 어린 아이들이 장난을 치면서 놀기위해 나무를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고을의 세리장이 요즘같으면 세무서장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 간다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 이끌려서 나무에 올라간것이 아니라 자기 의 체면을 다버리고 염치불구하고 오직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꼭 보아야 되겠다는 불타는 열정이 담겨져 있는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 삭개오가 왜 이렇게 그의 사회적인 체면을 100% 무시한체 에수님을 만나 야만 되겠다고 발부둥을 쳤겠습니까 삭개오의 경우는 부자였지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못하고 오히려 사람들로 부터 미움을 받았습니다. 사회적인 권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멸시를 받았습니 다.

자기의 양심도 옳바른 정도의 길을 걷지못하고 있는 자신을 정죄했습니다.

그래서 웬지 두려웠고 외로웠던 것입니다.

사회적인 부와 명예와 권력이 삭개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런 삭개오였기에 그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뽕나무 위로 올 라간 것입니다. 마치 오늘 우리가 사회라는 집단 공동체속에서 살면서 답답하고 메말라진 심령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이 수련회에 참석한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3. 그런데 이런 간절한 소망앞에 한가지 장애물이 등장합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저가 예수께서 어떤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 람이 많아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삭개오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날려고 했지만은 키가 작다는 내적인 장애물과 사 람이 많다는 외적인 장애물이 그를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상하고 갈급한 마음으로, 찢어지는 마음으로, 안타까운 마음 으로 찾아갈려고 했을때 무엇이 우리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로 막습니까 무엇이 우리의 그런 결단을 막는 내적인 외적인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까 공부입니까 아니면 이성입니까 아니면은 돈입니까 아니면은 친구입니까 아니면은 불신 가정에서의 부모때문입니까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학생들이 이런 요소들이 너무나도 막강한 장애물이 되어서 저 들의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물리칠수 없다고 아예 포기를 해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날려고 하는 시도를/ 예수님곁으로 가야겠다는 시도를 하지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삭개오는 유전적으로 키가 작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려고 이미 몰 려와 있는 그런 상황속에서는 예수님을 볼려고 해도 볼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꿈치를 들고 사람들의 어깨너머로 볼려고 했지만 역시 볼 수가 없었습니 다.

그러나, 삭개오는 이런 키가 작다는 내적인 장애물과 사람이 많다는 외적인 장애 물로 인해 결단코 예수님을 만날려고 하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염치불구하고 사회적인 모든 체면을 송두리채 내 버리고 아이들이나 올라 가는 그 뽕나무에 올라감으로서 그 모든 장애물을 극복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 마귀는 그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볼려고 만날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역사 이래 최고의 적입니다.

여러분이 만약에 이 시간 어떤 유명한 가수나 배우를 만나볼려고 마음을 먹으면 사탄 은 어떤 태도를 취하겠습니까 사탄은 그런 당신을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입 니다.

오히려 격려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에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면 사탄은 그 즉시 그의 모든 능력과 책략을 총 동원해서 당신을 집요하게 괴롭히고 방해를 할 것입니 다.

이런 사실에 대한 좋은 예화 한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느날 사탄은 그의 부하들을 땅에 내려 보내기전에 회합을 가졌습니다. 그 회합에 서 사탄은 그의 부하들에게 묻습니다.

"너희들은 땅에 내려가서 무슨 책략으로 인간들을 사로 잡겠느냐 " 한 악령이 대답하기를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의심을 불어 넣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탄은 말합니다. " 우리는 그 전략을 오랫동안 써 왔는데 이제는 그것이 잘 통하지 않는다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종교를 부인하면서도 신을 부인할 수 없는-종교적인 본능이 있기 때문이지.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 깊은곳에서는 아직도 하나님을 찾고있는 열정이 더욱 더해 가고 있다네. 때문에 그 방법으로는 인간들을 공략할 수 없을걸세." 또 다른 악령이 말을 합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지옥이 없다고 할것입니 다. 그래서 인간들을 안심시켜 놓고 지옥으로 끌고 오겠습니다." 사탄은 이 말을 듣고 대답을 합니다. "그 전략도 통할 수가없네 인간들은 저들이 살고 있는 세상 자체를 무서운 지옥으로 생각하므로 지옥을 믿기에는 그리 어렵지 가 않으니 그 전략도 통할수가 없다네" 이 말을 들은 또 다른 악령이 다른 전략을 발표합니다. "그렇다면은 나는 기독교 인들 을 공격하겠습니다. 그들에게 고난을 주어서 예수를 믿으면 재앙을 받는다라 는 의식을 불어 넣을 것입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저들을 죽여버릴것입니다." 사탄은 이 전략을 듣고 극구 만류하면서 ,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착각을 했던 전략 인데 사실은 가장 사용하기가 어렵고 또 사용해서는 안되는 전략일세. 우리 는 지난 역사를 통해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죽여보았는데 그때마다 선교사들과 그 리스도인들은 소리를 높혀서 말하기를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저 성도들을 보 라 주님을 위해서 죽는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이냐'라고 하면서 더욱 더 그리 스도를 위하여 죽기를 결심을 하는 모습을 보았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구석에 있던 악령이 손을 들어 말하기를 "저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전 략을 사용하겠습니다. '서두를것 없다.천천히 믿으라.'"라고 말입니다.

이 말이 끝나자 말자 갑자기 지옥에서는 큰 박수 소리가 터졌습니다.

"바로 그것이다." 사탄이 파안대소하면서 "우리가 그 전략으로 지금까지 수없이 많 은 인간들을 포박해 왔다네"--물론 이 이야기가 하나의 지어낸 우화이지만 사탄이 우리 인간들을 삼킬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여러가지 전략중에서 가장 많이 쓰여지고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오 는 것이 인간 들로 하여금 "서두를것 없다. 천천히 믿으라" 라고 하는 신앙의 결 단을 미루는 것임을 우리 모두다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이번 수련회에 은혜받기 위해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 다. 여러분이 은혜받는데, 여러분이 새롭게 되어지는데 방해가 되어지는 요인이 무엇입니 까 혹시 미루는 것이 아닙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새로와지는 은혜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는 그가 예수님을 만날수 있는 그 기회를 자기앞에 있는 장애 물때 문에 미루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가 키가 작다는 장애물과 앞에 사람이 많다 는 장애물 을 극복하고자 바로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결단임에 틀림이 없는것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새로와지고 은혜받고 구원받는데 세상의 체면이 문제가 될것이 없 었던 것입니다.

 4. 이렇게 모든 사회적인 체면을 다 버리고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는 어떻게 되 었습 니까 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느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리라."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는 그 열정과 그 열망과 그 간절함으로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 오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인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와 자비와 긍휼하심입니까 여러분 ! 이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를 여러분은 오늘 이 자리에서 체험해보지 않겠습니까 이 놀라우신 주님의 자비를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에 맛보지 않겠습니까 이 놀라우신 주님의 긍휼하심을 바로 이 순간에 느껴보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을 찾기전에 먼저 우리곁에 와 계신다는 사실을 말 입니 다. 로마서 5:8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 사 우리 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항상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의 이성으로서 이해가 되는 한도내에서 우리가 용서함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채 알지도 못하면서 자기 노력 으로 죄 사함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무궁무진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머리에서 이해되어지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요 3:16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라고 했 습니 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실 만큼 당신을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바로 이 성경구절을 읽던 성 아우쿠스티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하다.놀라운 사실이다. 내가 만약 창조주 하나님이라면 나는 이 세상을 벌 써 박살을 내 버렸을 텐데...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다 니 사랑하시되 한사람 밖에는 사랑 할 사람이 없는 것 처럼 그분은 날 사랑하셨다.

아니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유일한 생존자라고 하여도 ,내가 이 세상에 혼자 살아 도 그 분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렸을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신앙고백입니까 여러분 ! 이런 신앙의 고백을 오늘 저녁 우리 역시도 해 보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이 부분에 있어서는 저 역시도 여러분 역시도 마찬가지이기때문인 것입 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오늘 삭개오의 사건에서 삭개오가 언제 회개 하고 죄 사함을 받았는가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삭개오가 언제 죄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1)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무위에 올라가기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아니면은 나무위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본 그 순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아니면은 나무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후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그 자체에 대한 시기를 논하기는 무엇합니다만 우리 의 새로운 삶에 대한 촉구를 위해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삭개오가 새사 람이 되어지는 그 획기적인 분기점은 제 생각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내려 오려 고 결심을 하는 그 순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눅 15장에 보면 탕자 이야기 가 나옵니다. 아버지로 부터 분깃을 미리 다 받고 아버지곁을 떠나 방탕생활을 하다가 아버지로 부터 물려 받은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남의 집에 하인으로 전락하 여 너무나도 배가 고픈 나머지 돼지가 먹는 지엄 열매를 먹다가 탕자는 자기의 잘 못을 깨닫고 눅 15:18에 보면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라고 자기의 잘못을 스 스로 고백하고 결심하는 장면이나옵니다. 탕자가 회개하는 순간은 그리고 죄 사함 을 받는 순간은 6절에 나오는 "내가 내려가겠습니다."라고 생각하고 행동에 옮긴 그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결정하는 그 순간이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 는 영광스러운 순간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어야 되겠다는 마음의 결심을 하고 있습니까 지금이 바로 설교를 듣는 이 순간이 바로 새 사람이 될수 있는 순간입니다.

만약 삭개오가 나무에서 내려오다가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래도 죄사함을 받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의 회개를 뒤로 미루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우리가 우리의 잘못을 고백하는 그 순간 에 곧 바로 죄사함을 허락해 주시는 줄로 새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었을때 그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반성하면서 하나님께 그 죄를 고백하면서 회개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혹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영광된 순간을 맞이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저녁 저와 여러분은 우리가 지은 죄를 고백하는데 주저해서는 안됩니 다.

(1) 바로 이 자리가 회개하는 귀한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바로 이 장소가 우리의 마음의 결정을 내리는 거룩한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바로 이 시간이 우리의 죄를 전부 자백하는 귀한 참회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 다.

(4) 그리하여 이 자리가, 이 장소, 이 순간이 우리의 일생에 있어서 결코 잊혀지 지 않는 날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5절에서 삭개오에게 내려오되 속해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순간에 갑자기 들어 닥칩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신속하게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그 은혜와 , 그 자비가 여러분에게 임하시는 것을 느낀다면 , 여러분의 마음에 어떤 감정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히 행동에 옮겨야 합니다.

여러분의 결심을 막는 방해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결단을 막는 장애물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여러가지 요소들을 극복해야 됩니다.

고후 16:21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은혜 베풀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 여러분 ! 우리는 이 말씀대로 지체하지 말고 삭개오와 마찬가지로 마음의 결단을 내려서 오늘 저녁이야말로 여러분의 생애에 두번 다시 찾아 올 수 없는 뜻 깊은 날이 되어 서 우리 의 삶이 변화되어 정말로 새롭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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