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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마 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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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신앙생활의 원동력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실족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가정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 기도하는 자녀는 망하지 않는다. 기도하는 교회는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고, 기도하는 나라는 번영하고 발전한다.

기도는 성공과 승리의 비결이고,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보고를 여는 열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기도의 중요성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까닭이며, 기도의 비결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루이 에블리는 “기도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예술이다.”, “현대인에게는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 너무나 없다”고 지적을 하였다. 형대인에게 가장 큰 비극이 무엇인가 경제전쟁, 에너지 부족, 핵의 위험, 에이즈의 위험, 민족이기주의 등 많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도할 수 있는 마음을 상실한데 있다. 기도를 상실한 현대인들은 삶의 무의미성과 공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기도문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는 동안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기도의 능력을 회복하며, 기도의 승리자가 되는 모든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먼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말씀이다. 우리가 바른 기도를 드리려면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그 분이 어떤 분이며, 무엇을 원하시며, 어떤 것을 기뻐하는지 바로 알아야 한다. 본문은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신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기도의 내용을 갖고 있다할지라도, 아무리 기도를 열심히 드린다 할지라도 그 대상이 잘못되었다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무의미한 기도가 되어버리고 만다.

예) 엘리야와 바알의 450명의 선지자(왕상 18:20-40) 엘리야가 아합에게 온 이스라엘과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으로 데려오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엘리야는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백성에게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기도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각각 단에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올려놓고 불은 놓지 않은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이 내려오는 쪽이 참 하나님임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사람이 많으니 먼저 기도하라고 하였고, 그들이 열심히 기도합니다. 소리를 지르고, 단 주위를 뛰놀며, 창과 칼로 자기의 몸을 상해하며 기도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단에 물을 세 번이나 갖다 붓고, 단 주위에 도랑을 파서 물을 고이게 하고 저녁 소제 시간에 하나님게 기도했더니 불로써 응답해 주셨습니다.

기도의 대상을 잘못선택하면 미신 우상숭배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의 대상입니다. 사람들은 기도의 대상을 여러 가지로 삼고 있습니다.

① 자신의 양심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나는 내 양심을 향해 기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② 광명에 기도하는 이도 있습니다. 퀘이커교도들은 “내 속에 있는 광명을 찾기 위해 광명에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③ 자연에게 기도하는 이도 있습니다. 범신론자들은 “인간이 하나님이며, 자연이 곧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며 잔연에게 기도했습니다.

④ 귀신에게 기도하는 이도 있습니다. 무당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⑤ 알지 못하는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17:23에 보면 아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분명히 우리의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이 짧은 말씀속에 하나님은 어떻게 계시되어 있는가

1.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신다.

지상의 통치자들은 가능한 자신이 높여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대제여!”, “황제 폐화”, “각하”, “주상전하”, “상제” 등 최대의 경어로 불러 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만왕의 왕이 되신 하나님은 “아버지”라고 불리우기를 원하십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왕과 백성의 관계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금할 정도로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 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육신 하신 후에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산상수훈에는 아버지라는 말이 17번이나 사용되고 있으며, 심지어는 공생애 전인 어린 시절에도 성전에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눅2:49) 하셨고,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에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더 명백하게 나타납니다. 십자가 상의 기도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를 제외한 모든 기도가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기도임을 알 수 있다. 부슈엘이라는 신학자는 “예수의 모든 행적과 교훈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가 우리에게 하나님이 아버지임을 가르쳐 주신 것만으로도 인류 최대의 스승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기도에서 절대적인 새것은 바로 이 아버지란 칭호” 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어떤 신학자들은 복음서의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을 축소하며 ‘아멘(믿음)’과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 아버지가 되는가 ① 창조주 하나님 인류는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 되었기에 하나님은 인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사 64:8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 2:10 “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까닭은 그가 우리를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으셨고, 그가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② 구속의 하나님 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일반적인 차원을 넘어 구 속의 차원에서 이해되야 합니다. 인가에게 죄가 들어왔을 때 더 이상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길이 없었습니다. 요8:44에 보면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기는 커녕 마귀에게 이끌려 죄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저주와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과 지위를 회복하게 계획하셨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8:15-16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으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③ 섭리하시는 하나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섭리적인 차원에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셨을 뿐만 아니라 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자녀된 나를 가르치시며, 사랑하시며, 보호하시며, 혹시 잘못된 길로 나갈 때 사랑의 매로 징계하시고 채찍질 하십니다. 그는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내가 부족할 때 공급하시며, 안타까와하는 내 손을 잡아 주시며, 나를 인도하시고, 내 길을 섭리하시며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고,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자이시고, 우리를 인도하는 섭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근거를 분명히 깨닫고, 확실한 믿음 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를 부르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다.

이 말은 천문학적이나 물리학적으로 말하는 별과 달과 태양이 있는 저 높은 공간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신적인 차원, 신적인 공간과 장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신적인 공간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전혀 다른 곳을 말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런 공간까지 포함하면서도 구별되는 공간을 말합니다.

예) ‘청와대의 대통령’ 이라고 하며 대통령이 청와대에 갇혀 있다는 말이 아니라 한국을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클린턴이 백악을 차지했다고 하면 백악관 공간을 점령했다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온 세계를 다스리는 자리에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성경에서 하늘이란 뜻은 우주의 핵심,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으로 거기서부터 우주의 통치가 실현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하나님 자신의 주권과 통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115:3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원하시는 모든 것을 주권적으로, 능동적으로 행하시는 전능자 하나님,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대하 20:6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시편 11:4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또 시편 33:13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감찰하사 모든 인생을 보심이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모든 표현들은 나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인생의 모든 것을 아시며, 역사의 숨겨진 모든 상처와 인생의 내면을 통찰하시고 감독하시며 그리고 섭리하시는 그 하나님, 초월하신 하나님, 자유하시며,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어떤 면에서 땅에 있는 우리와 동떨어진 하나님으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살아계셔서 우리 앞에 계시며, 우리와 함게 하시며, 우리의 곁에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하나님을 믿고, 미래의 하나님도 믿는데 현재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믿음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게 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임마누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와 함게 하셨고, 그가 떠난 후에는 성령으로 함께 하셨습니다.

요 14:16-20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성령 하나님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초월의 하나님을 말하며, 그 우리의 기도의 대상임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라고 하지 않고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① 선교적인 의미 하나님은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와 너의 즉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기도입니다. 나 하나만 잘살고 복받겠다는 이기적인 기도가 아니라 모두 함께 잘되고, 모두 함께 승리하고, 모두 함께 구원받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함께 복을 받고, 함께 구원 받고, 함께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소외되고, 병들고, 가난하고, 외롭고, 헐벗고, 영혼이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그들의 아버지도 되십니다. 그러므로 먼저 깨달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여 하나가 되어서 함께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하는 선교적인 의미가 그 안에 있습니다.

② 친교적인 의미 우리 하나님이라는 의미안에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라는 공동체 속에 속한 가족임을 확인하는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안에서 형제와 자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 형제의 교재가 깨어졌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슬퍼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아버지라고 기도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친교의 거룩한 사명이 주어졌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창조주, 구속주, 섭리주 하늘에 계신-전지전능, 무소부재, 초월, 능력의 하나님 우리 아버지-선교적인 의미, 친교의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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