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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혼과 배교 (말 0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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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말 중에는 중요하지 않은 말이 없습니다.
말이란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말을 조심하고 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 됩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는 말 가운데 특히 결혼식장에서 서약한 결혼 서약은 신성하다고까지 합니다.
결혼은 교회에서도 하고 예식장에서도 하고 목사가 가서 주례도 하지만 다른 분이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 특별히 미국 사람들은 목사와 변호사 외에는 결혼식 주례를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혹시 변호사가 주례를 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믿든지 안 믿든지 축복을 받는 예식을 다시 행하는 것을 규례로 삼고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성레식이 세례식과 성찬식의 두 가지로 되어 있지만 카톨릭 교회에서는 일곱 가지가 있으며 그 가운데 결혼 예식도 포함이 됩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예로부터 결혼을 매우 신성시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많은 성도들을 증인으로 하고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맡기는 예식이 결혼 서약입니다.
주례하는 목사는
“신랑 아무개는 그대 옆에 있는 이 여자를 그대의 아내로 삼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생명이 이 세상에 있는 한 이 여자를 사랑하고 이 여자를 아내로 받아들이겠느냐!” 신랑에게 서약을 하고 아내에게도 같은 서약을 합니다.
서약이 끝난 다음에 목사는 결혼을 선포하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느니라” 하고 못을 박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이 말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결혼식장에서 매번 듣는 말이고 쉽게 지나치는 말이지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은 결혼을 한 사람들이 평생 가슴에 두어야 하는 중요한 말인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약속과 서약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충성의 서약을 합니다.
또 학생이 학교에 가면 입학식날 입학생 대표가 총장 앞에서 교칙을 지키겠다고 서약을 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서약들은 모두가 일시적인 서약입니다.
세상의 모든 서약들은 잠정적인 서약들입니다.
군인이 제대하고 나면 그 서약은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서약은 다릅니다.
결혼 서약은 죽는 시간까지 이 세상에 생명이 있는 한 지켜야 됩니다.
그래서 결혼 서약을 신성하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신하는 죄와 결혼 서약을 깨뜨리는 죄는 같은 것으로 취급이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마치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과 같은데 그 약속을 깨뜨리는 것은 마치 이혼하는 것과 같다고 할만큼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소중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결혼 상태가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보면 미국의 경우를 예로 들어서 1920년대에는 일곱 명 중의 한 명이 이혼을 하고 1940년대에는 여섯 명 중의 한명, 1950년대에는 네 명 중의 한 명, 1970년대에는 세명 중의 한 명이 이혼을 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두 명 중의 한 명이 이혼할 것을 예상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이 통계를 보면서 설마 하며 믿지 못하는 분도 있지만 이것은 현실인 것입니다.
요즘엔 결혼을 장난처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이혼도 쉽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도 비행기를 빌려서 타고 가다가 낙하산을 타고 떨어지면서 서약도 주례도 없이하는 결혼식이 있는가 하면 등산복 입고 산꼭대기에 가서 결혼식 하는 사람, 수영복 입고 수영장에서 결혼하는 사람, 통일교 에서는 몇백 명씩 모아 놓고 합동결혼식을 합니다.
예식 시간이라야 15분 정도나 되고 주례도 돈 몇 만원으로 해결하는 정도니 그런 결혼식들이 신실할 수 없으며 결혼 서약을 신성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라기서 2장 본문은 특별히 결혼에 관하여 두 가지 무서운 죄를 지적합니다.

1.혼음
“유다는 여호와의 사랑하시는 그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 신의 딸과 결혼하였으니 ”(말2:11하)
본문에는 예루살렘 사람이 성결을 욕되게 해서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과 결혼을 한 사실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혼음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혼음이 무엇입니까. 믿는 사람은 반드시 믿는 사람과 결혼하도록 되어 있는데 요즘엔 장로님이나 권사 님들도 신랑감, 신부 감을 고를 때에 건강하고 똑똑하고 직장이 튼튼하면 불신자들도 괜찮다고 합니다.
데려다가 전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지붕 밑에 같이 사는 사람들이 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한 사람은 사탄의 종노릇을 하니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그러니 매일 전쟁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믿는 사람은 반드시 믿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주례를 부탁해 옵니다.
내일 모레면 미국을 가야 하는데 꼭 믿게 할 터이니 주례를 서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서약하게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서약하는 것이 아니고 목사 앞에 서약하는 것이 되는데 목사가 그 결혼을 책임질 수 있습니까. 야속히 생각해도 그 결혼의 주례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최소한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학습을 해야 목사의 결혼 서약이 가능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끼리 결혼을 해야 됩니다.

2.이 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말2:16상)
성경을 보면 이혼에 대한 교훈이 몇 가지 나옵니다.
먼저 마태복음 19장 8장에는 모세가 이혼을 허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세는 인간의 완악하고 더러우므로 다른 여자와 사는 사람과는 이혼을 하라고 합니다.
또 고린도전서 7장 15절에서 사도 바울은 신자의 배우자가 불신자일 경우 믿음이 맞지 않아서 도저히 살 수가 없는 사람, 한 사람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한 사람의 주인은 마귀여서 함께 가정을 이루면서 화평을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헤어지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혹시 배우자의 믿음으로 인하여 불신자가 신앙을 가질 수도 있으니 이혼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32절에서 배우자가 간음하였을 때에는 헤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이혼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라기서에서는 이혼하는 것을 주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2:16).
세상에는 이혼을 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혼을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구별을 해야 할 문제입니다.
같이 살고 싶으데도 불구하고 상대편에서 쫓아낸다면 그건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같이 살 수 있는데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헤어지는 것은 덕스러운 일이 못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제도인데 성격이 나빠서, 돈이 없어서, 시어머니 때문에 못살겠다고 이혼하는 것을 본문에서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혼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순결입니다.
본문에서 어려서 취한 아내, 처음 결혼한 여인을 혹은 남자를 버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결혼 생활에는 시어머니라든가 친청아버지라든가의 제삼자가 개입되어서는 안됩니다.
순결에 삼자 개입은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한국 가정은 얼마나 순결합니까. 우리는 참으로 많이 속고 삽니다.
남자들이 가는 이발소를 가보면 그 곳은 이발소가 아니라 창녀 소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타락할 대로 타락해서 죄가 안방에까지 기어 들어옵니다.
우리 한국의 가정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무너졌는지 양심껏 살펴보아야 합니다.
가정의 순결이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제일 먼저 우리의 영혼이 무너집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고 교회가 무너지면 이 사회는 끝이 나고 맙니다.
고린도전서 5장 17절을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습니다.
이전의 우리는 사탄의 자식이고 이제 우리는 모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이혼을 했든지 무슨 짓을 했든지 상관하지 말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혼을 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믿기 전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된 후에는 그것을 가지고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주밖에 있을 때에는 그 보다 더 악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예수님을 믿고 새사람이 된 사람이 전에 이혼했다고 해서 교회에서 결혼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결혼은 첫 번 결혼식 같이 축하해 주어야 할 결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부가 다 잘 믿는 가정이라면 제일 행복한 가정인 줄로 아시기 바랍니다.
돈이나 권세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영원합니다.
아내와 남편이 신앙생활 잘하는 것은 인간의 가질 수 있는 최고의 행복입니다.
가정이 편안하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한 편이 안 믿으면 어찌하든지 가장 먼저 기도해야 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남편의 실직이 문제가 아니고 아내의 육신적 결함이 문제가 아니고 그들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배우자의 불 신앙이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이혼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잘못된 결혼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결혼을 우상 숭배하는 것과 같이 취급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정을 신성하고 거룩하게 지켜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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