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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선교<전도>의 자세 (막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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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자신의 몸을 전혀 가누지 못하는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하여 예 수님께 인도되어 영육간에 치료받고, 구원받는 감동적인 기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일 동안 여러 갈릴리 회당을 순회하시면서 전도 하시다가 마침내 가버나움 까지 일르렀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당도 하시자 그 소문은 삽시간 에 퍼져 나가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 몰려왔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지는 것은 빛을 어둠 속에 감추어 둘수 없는 것과 같았으며, 향기를 봉해 둘수 없는 것 과 같으며, 생명을 가두어 둘 수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길이시요, 생명 이시요, 진리 이시기 때문에(요14:6) 예수님의 소재는 알려 질수 밖에 없었으며 사 람들이 길과 진리와 생명을 필요로 하기에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곳에서는 언제나 생명과 구원인 전도의 역사가 나타 났습니다.

이 본문에서는 한 중풍병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중풍병자는 그를 운반해온 사람들 의 섬김과 믿음때문에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전도를 어떤 자세로 해야 될 것인가를 잘 보여 주는 본문입니다

1.불신자는 모두 다 전도의 대상입니다.(불신자=영적중풍병자)(3절) 본문 3절에서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권세있는 가르치심과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예 수님의 능력이 갈릴리 전지역에 걸쳐 베풀어지고 그 소문은 점점 널리 전파 되어나 갔습니다. 이같은 예수님의 소문을 몰고 마침내 가버나움에 당도 하시니 호기심과 관심 많은 수많은 사람들과 병자들이 몰려 온 곳입니다.

이때에 한 중풍 병자가 네 사람의 친구들로부터 들려온 것입니다. 중풍병은 암처 럼 치명적인 병도 아니며, 문둥병 처럼 더러운 병도 아니고, 콜레라처럼 급사하는 병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병입니다. 자기 혼자로서는 마음대 로 활동할 수가 없으며, 심한 경우에는 전적으로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병입니다.

여기서 중풍병자란 모든 인생들의 실상을 나타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으로서 의 역활을 다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가능성은 부분적인 것이며, 그것 또한 완벽 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인간이란 항상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 니다. 더구나, 인간은 스스로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 님과의 교제는 상상도 할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해서 만이 인생의 뿌리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 스도도 우리가 마음대로 만날 수 있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성령님과 전도자의 도움 이 없이는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죄는 지금까지도 고통과 질병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이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의 핵심인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죄 문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 옴으로서 만이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나아 올 수 없습 니다. 마치 반신불수 인간인 중풍병자의 모습과 흡사한 것입니다. 주위 사람의 도 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전도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는 전도자의 도움이 있을때 성령께서 전도자를 통하여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현대인들은 세상일로 분주하게 뛰어 다니며, 활동 하지마는 사실, 그 영혼은 죽음을 향해 가고있는 반신불수 중풍병자나 다름없 습니다. 영육생활이 조화를 이루어야 이 땅의 생활이 생명력있는 참 삶이 될 수 있 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없는 인생은 지위고하, 남녀노소, 빈부귀천 을 무론하고 육적으로는 성공하고 있을지 모르나 영적으로는 모두 중증환자로서 반 드시 그리스도께로 들려와야 할 중풍병 환자들입니다.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올 능력이 없는 중증환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한사람이 도와 주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전도 혹은 선교라고 일컫을수 있습니다. 나를 죄악의 중병 가운데서 건지시도록 사랑의 전도자들을 보내어 주셨 던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그 은혜를 갚아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빚을 갚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러므로 쉬고있는 전도의 사명을 다시 일깨웁시다. 전도의 대상을 다시 정하고 힘든 대상도 재 도전의 각오를 새롭 게 하십시다.

 2.관심을 통해서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4절) 복음을 통하여 한 영혼을 구원 시키려면 맨 먼저 영혼 구원에 대한 뜨거운 관심 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 일수록 자기자신 만을 위하여 살지 않고 타인의 축복을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중풍병자의 네 친구들처럼 환자에 대한 깊은 연민의 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때에 예수님께 인도하게 되는 전도의 문이 열 리게 되었습니다. 할수만 있다면 불쌍한 친구를 도울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깊은 사랑과 연민의 관심이 구원으로 인도 하게되는 시작이 됩니다.

일찌기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백성이된 우리들이 전혀 어떠한 도움도 없이 스 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과 다 른 사람들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도 그리스도 앞에 다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온갖 구원과 생명의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 개구리 올챙이 시절 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복음의 빛이 가리워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 기는 것을 우리 자신의 위안과 평안 만을 구하며, 자신 만의 보호와 도움을 추구하 는 이기심을 버리지 않는 한은 영적 중풍 병으로 죽음 만을 무료하게 소망없이 기 다리고 있는 불쌍한 자들을 더욱더 죽음의 어두운 구석으로 밀어 넣어버리고 마는 매정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까지 완전한 자도 의인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다만, 죄인을 필요로하 며, 앞 길을 전혀 내다볼 수 없는 소경을 필요로합니다.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문 둥병자들을 요구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반신불수 인생인 중풍병자들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교회 자체의 안락 만을 추구하는데 열중하지 말고 세 상을 구원하는데 더욱더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관심을 세상의 출 세나 잘되는 일 보다도 복음 전도에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의 우선 순위가 무었인가에 따라서 복음적일 수도 있으며, 복음을 거스리는 거침돌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흥회나 기도원에서 열리는 집회 등에서 강사 목사님께서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 들이 질병에서 놓임 받기를 축원합니다!'하면 성도들은 일제히 '목청 돋우워 '아멘 !'으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사업의 문이 열려 쏟아 부으시는 물질의 부요를 누리 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하면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제히 '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또한, '자녀들이 모두 머리가되며 위대한 인물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하면 '에멘! 아멘!'을 연발하며 간절히 그 축복을 사모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강사 목사님이 헌금에 대한 광고를 하고 지금 이시간 최고 의 정성으로 헌금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하면 그렇게 우렁차고 갈급해 하던 아 멘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찬물을 끼얹은듯 입에서 아멘이 멈추어지고 마는 것을 보 았습니다. 강사 목사님의 책망과 재촉에 못이겨 억지 아멘을 하게되는 것을 봅니다 우리 학생들도 '여러분이 모두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되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했더니, 일제히 기다렸다는 듯이 아멘 하였습니 다. 그런데, 이어서 '여러분이 학교에 가서 열심히 친구들을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 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했더니 아멘 소리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변하 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무었을 의미하는 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복 에 대한 개념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입증해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별로 힘들이지 않고 입으로 아멘 잘하고 마음으로 쉽게 믿어서 나의 계산에 맞아 떨어지는 복을 축복으로 여기는 저 의가 그 바탕 깊은 곳에 깔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계산에 손해 나고 피곤해 지고 고통과 어려움이 생기는 복이라면 거져 준다고 하더라도 다시 재고해 보고 추춤거리다가 꽁무니를 감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을 일류학교를 나오는 것, 좋은 결혼을 하는 것, 사업에 성공하는 것,죽 을 병에서 낫는 것, 자녀들이 잘되는 것, 유명해 지는 것, 오래 사는 것 등을 복이 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와같은 것들이 나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도 이러한 복들을 싫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께서도 좋아 하실 것입 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무서운 함정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떤 함정입니까 껍질 을 가지고 알맹이라고 착각하고 마는 함정입니다. 장가 잘가고 좋은 신랑을 만나며 일류대학 가며, 오래살며, 유명해지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그리고 나아가 교인수 가 늘어나고 교회 건물을 증축하며, 교회 기도원을 짖고, 교회 묘지를 구입하는 등 의 일들은 모두 복 그 자체가 아니라 진정한 복의 외형적인 형상에 불과한 것입니 다. 즉 복의 알맹이 씨로 부터 파생되어 나온 열매요, 부산물이지 복 그 자체는 아 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었이 진정한 복이며, 알맹이 복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께 인정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아서 파생되어진 복이 진정한 복의 열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 즉 알맹이 복이란 무었일까요 그것은 마5장의 예수님의 팔복에서 말씀하신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 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복을 받 을 수 있습니다. 여기 예수님께서 소개하신 복에는 건강하며, 승리하며, 출세하며, 만사형통이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며, 바보같 이 당하기만 하며,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복이 되는 이유는 이같은 자세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형통한 자가 되는 나타나는 복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 이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며 만족을 드리면서 세상의 복 을 받았느냐 하나님을 제쳐 놓고 자신의 수단과 방법과 생각으로 성취한 복인지를 구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드리지 못하면서도 온갖 세상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 님을 기뻐시게 하는 복인지 마귀를 유리하게 하는 복인지는 인간의 눈으로 그냥 보 아서 알 수 없습니다.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의 과정을 밟고서 얻은 축복인지 주님의 팔복의 핵심이 빠진 축복인지를 살펴 볼때에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축복인지 인간으로 말미암은 축복인지를 검사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고하고 넘치는 축복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팔복의 복음적 인 축복이 아닌 복은 공중 누각과 같은 축복이요, 솜사탕과 같이 쉽게 없어질 복인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진정한 복은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 받으며 심령의 평안과 만족이 따르는 축복인 것입니다.

EX> 일본 이와꾸니 에서 바다가 오염되어 생선을 못먹게 되었습니다. 오염의 근원 지인 동양 방직 회사에서는 이 오염된 생선을 어부들에게서 무제한으로 사서 버리 기로 했습니다. 어부들은 처음에는 돈 받는 재미로 열심히 생선을 잡았습니다. 그 런데 그것이 얼마 안가서 모든 어부들이 고기잡이 하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었인가 하면 어부들이 처음에는 생선을 돈으로 환산만 하면 만족되리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그렇지를 못했다는데 원인이 있었습니다. 결국, 어부들 은 그들의 보람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잡은 생선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 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부들이 돈버는 문제는 이상이 없었지만 그들의 고기를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없었으므로 점차 그같은 일에 보람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보람은 자기 혼자 복받아 만사형통 평안하는 것에 있지 않습 니다. 교회의 보람은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유복하게 살더라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 않고 인정해 주시지 않는 복이라면 허무 한 축복으로 끝나고 말 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리는 복이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복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복이라면 영원히 보람된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드리는 보람된 복이 될수 있 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아 가게 될때에 하나님을 기뻐시게 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팔복이 세상적으로 볼때에는 그렇게 드러나는 축복이라고 는 하나도 없고 모두 무기력하고 당하기만 하는 하는 고생 이라고 여겨 질지 모르 나 그것이 복음을 위해 사는 자의 삶이기에 가장 복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찌하던지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일이야 말로 하나님을 크게 기뻐시게 해드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안락을 추구 하는데 열중하지 말고 세상을 구원하는데 더욱 힘써야 할 것입 니다. 다시말해 복음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 아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고난과 고통을 통과한 성도들에게 세상에서 좋은것 들을 주시되 백배나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교회에 김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목사님을 모시고 이사 감사 예배를 드리면서 예날 판자촌 시절을 기억하며 눈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집사님은 옛날 에 비하여 너무도 축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히 생긴 기적이 아 니라 김집사님의 한평생 삶의 결과였습니다. 집사님은 항상 가난했습니다. 남들처 큰 것을 달라고 해본적도 없고 그저 우리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 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김집사님은 항상 애통해 했습니다. 교회건축을 위해 적은 적금이나마 드리려고 품 팔이를 하시며 몸부림치셨고, 목사님을 몰아내려는 세력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하 나님께 기도할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또한 집사님은 항상 온유하였습니다. 어느날 이라도 그 얼굴에 그늘진 적이 없었 습니다. 그리고 항상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셨습니다. 남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하 시면서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도 목말라 하는 표정은 어미 새가 물어온 먹이를 받아 먹으려는 새끼새들과도 같았습니다.

집사님은 항상 긍휼에 흘러 넘쳤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닮아 가려는 듯 그에게 도 움을 청하러 온 사람들에게 빈 손으로 보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자기에게 없으면 남에게 빌려서라도 도움을 주었습니다.

집사님은 항상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회 생활에서 성경에서 이탈된것 이 있으면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무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아니었습니 다. 그러나, 교회의 세력자들로부터 항상 무거운 핍박과 조롱을 받았습니다. 수년 이 지나 김집사님은 권사님이 되셨고, 남편은 장로님이 되셨습니다. 남편이 투표에 서 피택되었는데도 장로 장립을 시키지 않으려는 무리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기름부음 받은 종으로 교회 앞에 세우셨습니다. 그후, 육신적으로도 너 무나 큰 축복을 주셨고, 자녀들도 모두 부러움의 대상이 될만큼 믿음도 훌륭하고 사회적으로도 크게 쓰임받고, 사위감 며느리감도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인정 받는 것 만이 복이라고 고집하던 무식한 여종은 신앙의 싸움 에서 결국, 하나님의 팔복을 통한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복음적인 축복입니다. 복음적인 축복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촛점이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영혼에 대한 관심은 구하게하며, 찾게 만들며, 두드리게 해 줍니다. 그러므 로 기도는 곧 관심입니다. 다시말해, 기도하는 자에게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내부 모 형제 친척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정말 있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 도해야 할 것입 니다. 그 기도의 관심이 전도의 문을 열어 놓게 될 것입니다.

 3.섬기는 행동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힙니다.(3-5절) 중풍병자의 4 친구들은 친구의 불쌍한 처지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표시하는 것 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친구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었 인지를 분명히 알 고 있었으며, 그것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복음전파는 말과 생각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희생 적으로 행동하며 섬김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주님께서도 우리 구 원을 위하여 하늘 보좌에 앉아 머물러 말로만으로 하시지 않고 친히 인간의 몸으로 내려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며, 섬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전도의 열매를 원한다면 주님처럼 낮아지고, 희생하며, 섬기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 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 하는 것이 생각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본문 4절에서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에 지붕을 뚫 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은 상을 달아내리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일을 해결해 보려고 했을때 실제적인 난관과 어려움이 가로 막고 섰 습니다. 이것은 단지 동정을 베푸는 그 이상의 요구하는 현실입니다. 우리가 도정 하며 관심을 갖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하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 다. 오히려 수많은 어려움들이 기다리기가 일쑤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성 도들이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도의 열매가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전도 의 아름다운 열매가 나타나기 까지는 수많은 난관과 고통과 부르짖음과 눈물과 땀 이라는 섬김의 과정이 따른다는 사실을 잊지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 다가오는 여러가지 난관 과 어려움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신실한 인내로 섬김으로 전도의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도는 사탄의 가 장 싫어하는 일이기에 여러가지 방해의 난관이 있을 수 있음을 사전 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은 사탄과의 싸움이요, 전투입 니다. 싸움과 전투가 쉬울리가 없습니다. 어려움과 난관이 다가올때에 그것을 이상 하게 여기고 사기가 떨어져 쉽게 포기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군사된 성도의 자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단의 시험을 사용하셔서 우리의 신실성을 시험하시며, 총명을 일깨워 주심으로 주님께서 함께 하심을 체험케 하시며, 능력있 는 성도로 성장 시키시고자 하시는 더 깊은 섭리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전도의 난관은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극복해야 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 들은 반드시 예수님께선 친구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에 흔들리지 않고 난관의 장벽 앞에서도 끝까지 굴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반드시 고침 받을 수 있을 것이기에 어떠한 난관과 장 애가 나타나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여 주님께 나 아 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 힘들고 여러가지 난관에 부딪친다고 할지라도 신실한 인 내로 전도 대상자를 섬기기로 작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반드시 주님께서 구원 하실 수 있으며 구원 받게 되리라고 믿는 믿음을 포기하지 말고 굳게 믿으시기 바 랍니다.

그리고 중풍병자의 믿음도 있었겠지만 친구들의 믿음이 결정적으로 한 영혼을 구 원받게 만들었으며 살려 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불 쌍한 한 영혼을 살려 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쉽게 포기해 버리는 이 나약한 믿음 때문에 우리의 주변에 수많은 장기 결석자들이 세상의 늪에서 헤어 나올 줄을 모르고 있으며, 우리의 포기 잘하는 인내하지 못하는 믿음 때문에 전도의 열매를 맺히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반드시 이 영혼을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 음으로 생명을 구원하고 살려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우리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일 평생을 영혼 구원의사역을 위하 여 충성해야 할 사명을 주님께 받은 자들 입니다. 우리가 선 위치에서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에서 가정에서 복음전도의 열매를 맺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불신자들을 반드시 전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도할 뿐 아니라 생각하며, 기도한 것을 희생이 되더라도 섬기는 자세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 있는 믿음으로 승부를 걸어야 할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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