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고난으로 오는 하나님의 축복 (막 0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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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받기를 자처하며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찾아왔을 때에 고난을 피하여 도망갈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면, 고난이 우리에게 넘 치는 축복을 안겨다 주기 때문입니다. 그같은 사실을 오늘 본문 말씀이 잘 입증해 주고있습니다.
그러면 고난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과 축복을 안겨다 주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고난은 사람마음의 완악함이 제거되는 축복을 안겨줍니다.(1-2절) 오늘 본문속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병을 고쳐주셨 습니다. 이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신 이후에 사셨던 곳입니 다(마4:13). 그러므로, 가버나움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영적인 특권들을 누리게 되었던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모였던지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될때까지 가득 찻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행하셨던 그 이적과 말씀에 이곳 주민들의 마음이 회심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한낮의 타오르는 태양같은 의의 빛 이 비춰지고 있었건만, 이들의 마음의 창과 문은 어두운 커튼과 무거운 빗 장으로 굳게 걸어 잠그고 열줄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마음이 심히 굳어 완악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완악 함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무서운 원수 입니다. 회개치 않으면 정죄 당 하며, 정죄는 곧 파멸입니다. 그런데, 이 완악함이 회개치 못하도록 사람 의 마음으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하며, 미련하게 만들며, 교만하게 만들 어 버립니다.
완악한 심령 앞에는 오직, 파멸을 위한 심판 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 래서 이 가버나움은 주님께로 부터 가장 무서운 정죄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마11:23-24)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 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 까지 있으리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 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완악한 심령들이 많이 모여사는 이 가버나움 가운데서도 완악하지 않는 심령이 살고 있었으니 곧, 중풍으로 몸과 마음이 찌들려 상할데로 상 한 한 심령 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제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무기력 한 병자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내려 갈수 없는 밑바닥에 다달았습 니다. 모든 자존심도 명예도 교만도 뿌리채 뽑혀 나간지 오랩니다. 네 친 구들이 와서 예수님께 가면 나을수 있다는 말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습니 다. 흉악한 몰골하며, 나무둥치 같은 몸둥아리를 많은 사람앞에 보여 구경 거리가 된다더라도 나을수 있다는 소망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친 구들이 무거운 자신의 몸을 달아메고서는 남의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 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우길 정도로 자아가 살아있지는 않았습니다.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들이 완악하여 듣고도 믿지 못하고, 보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서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친구에게 전해 듣기만 했는도 믿고서 예수님께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고난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고난은 대개 완악한 심령을 겸허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난은 교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바꾸어 놓습니다. 고 난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심령으로 준비시켜 줍니 다.
2.고난은 영육간에 큰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4-9절)1)고난은 영적인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5절) 2)고난은 육적인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11절)
3.고난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고난이 도대체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과 축복을 안겨다 주는 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고난은 사람마음의 완악함이 제거되는 축복을 안겨줍니다.(1-2절) 오늘 본문속에서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말씀을 전하시며 병을 고쳐주셨 습니다. 이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나사렛을 떠나신 이후에 사셨던 곳입니 다(마4:13). 그러므로, 가버나움에 살고있던 사람들은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영적인 특권들을 누리게 되었던것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사람들이 어찌나 많이 모였던지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될때까지 가득 찻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이적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행하셨던 그 이적과 말씀에 이곳 주민들의 마음이 회심 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 한낮의 타오르는 태양같은 의의 빛 이 비춰지고 있었건만, 이들의 마음의 창과 문은 어두운 커튼과 무거운 빗 장으로 굳게 걸어 잠그고 열줄을 몰랐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마음이 심히 굳어 완악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완악 함은 우리를 파멸로 인도하는 무서운 원수 입니다. 회개치 않으면 정죄 당 하며, 정죄는 곧 파멸입니다. 그런데, 이 완악함이 회개치 못하도록 사람 의 마음으로 하여금 깨닫지 못하게 하며, 미련하게 만들며, 교만하게 만들 어 버립니다.
완악한 심령 앞에는 오직, 파멸을 위한 심판 만이 기다릴 뿐입니다. 그 래서 이 가버나움은 주님께로 부터 가장 무서운 정죄를 받게되는 것입니다 (마11:23-24)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 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 까지 있으리라.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날 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같이 완악한 심령들이 많이 모여사는 이 가버나움 가운데서도 완악하지 않는 심령이 살고 있었으니 곧, 중풍으로 몸과 마음이 찌들려 상할데로 상 한 한 심령 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제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무기력 한 병자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더 이상 내려 갈수 없는 밑바닥에 다달았습 니다. 모든 자존심도 명예도 교만도 뿌리채 뽑혀 나간지 오랩니다. 네 친 구들이 와서 예수님께 가면 나을수 있다는 말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습니 다. 흉악한 몰골하며, 나무둥치 같은 몸둥아리를 많은 사람앞에 보여 구경 거리가 된다더라도 나을수 있다는 소망 앞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친 구들이 무거운 자신의 몸을 달아메고서는 남의 지붕위로 올라가 지붕을 뜯 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으니 그냥 돌아가자고 우길 정도로 자아가 살아있지는 않았습니다.
가버나움의 많은 사람들이 완악하여 듣고도 믿지 못하고, 보고서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서 이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소문을 친구에게 전해 듣기만 했는도 믿고서 예수님께 가는 것을 허락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고난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고난은 대개 완악한 심령을 겸허 하게 만들어 줍니다. 고난은 교만한 마음을 겸손하게 바꾸어 놓습니다. 고 난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수 있는 심령으로 준비시켜 줍니 다.
2.고난은 영육간에 큰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4-9절)1)고난은 영적인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5절) 2)고난은 육적인 축복이 될수 있습니다.(11절)
3.고난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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