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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적을 이루어내자 (막 06: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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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공관복음서 모두에 아주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말씀입 니다.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죠. ( 같은 성경 8:1 부터는 7병2어의 기적이 나옵니다.) 오늘 저는 성서의 말씀에 의지하여 도저히 불가능한 일들, 즉 적은 것을 통해 서 많은 사람이 먹고 또 남은 것이 12광주리나 되는 이 기적의 사건을 돌아 보 면서 우리 시대에 이룰 기적은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합니다. 특히 추수감사절을 한주간 남겨두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의 가진 것을 돌아보건대 우리의 가진것은 가장 보잘것 없고 누추한 보리떡과 물고기 몇마리 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이 설교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가 가진 이 것만으로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소중히 쓰여질 때 많은 사람을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기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돌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기적(기적)이라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은 거부반응(거부반응) 을 느낍니 다. 기적은 신이 일으키는 것이지 인간의 역사에는 기적이 아닌 인간승리가 있 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기적, 무슨 기적이라는 말 속에는 인간의 오만한 업적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들어 있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면서 신의 자리에 인간이 앉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온갖 인간성이 좌절되고, 사람의 의지와 뜻 보다는 신의 뜻이라는 미명하에 치러졌던 온갖 부정과 부조리의 반향(반향)으로 나온 이와같은 현상 뒤에 나온 인간중심 의 문명의 시작은 가히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가 기적을 만들어 내게 되었습니다. 지혜를 창조하고, 의술, 과학, 철학이 발전하였습니 다. 모든 가치의 중심에 인간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신이 원치 않으면 하지 말아야 했던 많은 것들도 이젠 서슴치 않고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간의 문명과 과학이라는 것은 결국은 물질과 자기 만족에 찌든 인간상을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물질에 의해 좌우되고 인간이 창조한 물질로 인해서 상처입고 물고 뜯기는 그런 비참한 인간의 모습이었을 뿐입니다. 서구사 회를 지배한 물질의 사상이 퇴조되고 전 세계적으로 동양의 지혜와 사상을 연구 하는 책과 출판물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물질의 분량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습니다. 적어도 모든 판단의 기준을 오늘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본의 많고 적음으로 평가 하지 않았습니다.

5천명이 넘는 군중들이 예수님의 주위를 따라 다니면서 배가 고파 함을 안타 까워 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마음을 읽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 이곳은 빈들입니다. 시장도 없고 물건 살 곳도 없는데 이 사람들은 배가 고파 지쳐 있습니다. 동네에 들어가서 음식을 사먹도록 해야 하지 않습니 까" 그 말을 들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 참으로 엉뚱한 대답이 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세상에, 이렇게 황당할데가 어디 있습니까 돈을 맡기신 일도 없으신 주님께 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제자들더러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다니...

오늘 이 기적의 기사를 생각하기 전에 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평범한 것을 가지고 기적이라고 얘기하기 않습니다. 될 수 없는 것이 되었을 때에 우리는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오늘 이 적은 음식으로 몇 명의 사람이 먹었는가 라는 숫자놀음에 저의 설교의 힘을 쏟아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린왕자를 보니 어른들의 공통점은 숫자를 좋아한다는 것이었습니 다. 통계와 숫자를 정확히 얘기해야만 권위가 서고 잴 수 있는 것이 어른들입니 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은 이만한.. 것이라고 얘기만 해도 서로 통하는 것입 니다.

오늘의 기적은 왜 일어났습니까 기적의 중심에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아야 합니다. 작은 소년을 보아야 합니다. 질서 정연하게 지켜 보았던 군중들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1. 드려짐의 기적 성경에서 제자들이 말한대로 이 사람들을 먹이려면 200 데나리온이 필요하다 고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한 사람의 일당이 1 데나리온이라면, 오늘날 하루 일 당을 2만원만 쳐도 4백만원이 됩니다. 돈으로는 이 상황을 해결할 아무런 기미 도 보이지 않습니다. 해야할 일은 많고 써야 할 일은 많은데 돈은 없습니다.

제자들은 안타까워서 예수님의 얼굴만 미안스레 쳐다보면서 말합니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가서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 말의 분위기를 보니 좀 항의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말투는 우리가 언짢을 때에 많이 쓰는 말투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너희가 먹이라 하셨는데 제자들은 반문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요 어떻게요" 라고 말입 니다.

제자들의 약삭빠른 계산이 끝나자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너희가 떡 몇개나 있는냐 가서 보라.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냐" 라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제자들이 수소문해 본 결과 가지고 있는 것이라 고는, 아니 엄격히 말하면 자신이 가진 것을 선뜻 내 놓은 사람은 겨우 한 소년 이 가진 도시락 하나, 즉,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였다는 것입니다. 보리떡 은 이스라엘의 노동자들이 즐겨 먹은 음식입니다. 아마도 이 소년의 가정형편은 그리 부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평범한, 아니 어쩌 면 어려운 가정의 형편을 가졌음이 분명합니다. 물고기는 갈릴리 사람들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까 어떻게 이 많은 사람을 다 먹일 수 있습니까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 작은 것 은 작은 것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사람은 많고 적음으로 판단할 수 밖 에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 만으로 판단의 기준을 삼을 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적은 드림, 한 소년의 정성 속에 들어있는 엄청난 힘을 보십니다.

네덜란드에서 바닷물을 막는 방파제를 온몸으로 막다가 죽은 한 소년의 이야 기를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한 소년의 희생과 헌신 속에 숨어있는 한 마을의 죽음과 삶은 우리를 감동케 합니다. 오늘 성서에서도 이름도 알 수 없는 한 소 년이 드린 도시락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는가를 보십시 사람들이 배 가 불렀고, 도리어 그 부스러기가 남는 역사를 ...

주님께서는 한 개인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과 당신과의 맴 하실 것입니다.

주님과 여러분과의 기적은 둘의 합작품이 될 것입니다. 이 기적을 이루기 위 해서는 작은 드림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삶의 소중한 그 무엇인가가 주님께 바쳐져야 합니다.

먼저 작은 시간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주님과 대화할 수 있는 최소한 의 시간도 드려짐이 없이는 결코 삶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작은 정성이라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작은 절제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내 입에 뭔가가 들어가야 뿌듯한 그 욕심 을 소년이 어떻게 눌렀겠습니까 참으로 놀라운 절제입니다. 개인의 삶에도 절 제가 있어야 합니다. 절제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릴 것도 아낄줄 알고,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드려가뭄이 끝나도록 차고 넘치는 축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2. 주님의 안타까움이 있는 기적 예수 그리스도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중에 돌로 떡을 만들어 보라는 사 탄의 시험을 ,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으로 살 것이다.'라는 구약의 말씀으로 분명히 사람의 삶이 떡에 있지 않음을 온 세상에 천명한 분이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가난한 우리의 유대백성을 떡으로 는 구원치 않으리라는 결심을 시험을 받으시면서 굳히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하셨을까요 그의 결심이 변한 것일까요 일단 먹여놓 고 보자는 심산이었을까요 먹어야 양반이라는 속담이라도 생각이 나셨을까요 이 기적의 밑바탕에는 먼저 굶주린 군중을 바라보는 주님의 그 안타까움이 스 며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둠의 세상을 안타 까읖릴저지 받아 들입시다. 주님의 불쌍히 여김을 받아 들여야 합니님께 고백하고 우리의 배고픔과, 쓰라림 과, 아픔, 그리고 외로움과 탄식의 한숨을 주님께 아뢸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기적의 역사 속에는 먼저 "불쌍히 여기시고..."라는 말이 따라 붙습니다. 주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십니다. 목자없는 양같이 이세, 죽 음 에서 생명으로 옮 겨지는 기적의 역사를 행하시는 것입니다. 문둥병 들린 자를 안타까이 싸 안으 실 때 그의 흉칙한 병이 쫓겨나고 나사로의 죽음을 안타까이 여기시며 눈물을 흘리실 때 죽은지 사흘이 된 자가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의 믿음도 안타까이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영혼을 안타까이 여기는 것에서 전도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교회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 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 불쌍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3. 뭉쳐 앉는 군중을 통한 기적의 역사 50명, 100명씩 뭉쳐 앉게 하였는데 모든 군중은 질서정연하게 그러한 제자들 의 지시를 잘 따랐습니다. 교회의 모습을 이 뭉쳐 앉는 모습에서 찾아보는 사람 들이 많습니다. 서로 연합하여 삼삼오오 정다운 이웃들이 섯람 떡과 고기를 받으려 고 아우성을 치고 외치는 모습은 아니었습니 다. 자기의 것을 차지하려고 눈치 보는 그런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나눔의 준비 가 되었습니다. 내것을 나누어 먹으려는 희생이 정신응 내용을 가장 합리적으로 풀 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해 가 없기를 바랍니다. 이 기적의 내용에 의미를 더해주는 내용이기에 소개합니 다.

모든 군중들은 이미 도시락 하나 정도는 다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 입니다. 그 러나 이 많은 군중들 속에서 자기 혼자 꺼내 먹었다가는 다 뺏겨버릴것만 같아 서 서로 눈치를 보면서 재고 있을 때, 한 소년이 자기가 먹을 것을 예수님께 갖 다 바칩니다. 이 소년의 순수한 마음을 보고 감동을 받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고 50명씩, 100명씩 모여 앉아서 음식을 나눠 먹부스러기가 남았습니다. 서로 나눌 때 이 기적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굳이 이렇게 해석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 기적의 이야기의 중심을 크게 벗어나 지 않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나눔의 삶은 정말로 큰 기적을 이뤄 냅니다. 나 혼자 써도 모자랄 것 같은 물질이 모여서 이웃의 생명을 살리기도 합니다. 나 혼자 먹어도 부족할 것 같은 먹거리를 서로가 나눠 먹기만 하면 지구촌의 굶주 린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답니다. 오늘날 지구촌에서 매일 굶어서 죽어가는 3만명 의 어린이와 기아에 빠진 사람들이 우리가 버리는 음식 찌꺼기만으로도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누지 않고 자기만 독점할 때 공동체는 무너지 고, 인간의 삶은 황폐해지고 결국 그곳 추수감사절은 공동체를 생각하면서 드려 지 는 축제의 절기입니다. 여기저기 모 여 앉은 곳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이 모여앉은 것은 교회라 표현해도 좋을것입니다. 이 곳에 모인 자들이 서로의 삶 가운데 느껴졌던 감사의 기억들 을 나누면서 그 기쁨들을 나늅 시다. 무엇을 가졌습니까 보잘것 없는 것이 들려져 있어서 감사할 것이 없 습니까 겨우 이런것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기 전에 이 작은 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릴 때 주께서 축사하시고 그 작은 드림 위에 무한한 축복으로 같이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와 감격의 감사절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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