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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이 가난한 사람 (마 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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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저축을 잘하는 편이다. 비록 은행에 예금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적을지 몰라도 여러 형태로된 저축수단을 활용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그들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모아서 자녀를 공부시키고 집을 장만한다. 그리고 사업체를 일구기도 한다.

2.그러나 세계의 여러 민족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민족들도 상당히 많은 것 같다. 내일이 없이 있으면 있는대로 몽땅 써버리는 그런 민족들도 있다.

3.사람이 가난해지는 이유는 모으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으지 못한 까닭은 못벌어서라기 보다는 저축하지 않은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답일 것이다.

4.열심히 벌어서 저축을 하고 그래서 집도사고 차도사고 사업체를 만들고 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인데, 그러다보니 그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전노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인간의 마음이 “돈이 최고”라는 인생관에 지배를 당해버린 까닭일 것이다.

5.가난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하다. 그리고 가난하면 좋을 것도 없다. 일본은 나라가 부자이다 보니 전세계 어느 곳을 가나 대접을 받는다. 물론 미국은 더욱 그렇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나라도 그런대로 대접을 받는 편이다. 모두가 먹고살기에 넉넉해졌기 때문이다.6.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가난”을 칭찬하고 있다. 그런데 무조건 가난한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칭찬하였다. 그러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I.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찾으신다.
A.마음의 가난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다.

1.우리가 가난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죄를 알고 또 자신의 무능력을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비참함을 깨달아야 한다.

2.성경에서 마음이 가난했던 대표적인 인물을 찾는다면 모세를 생각할 수 있다. 한 때는 자신만만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살인자의 형편으로 광야의 목동생활을 40년이나 했다. 왕자가 아니라 이방인에게 붙어서 양이나 치는 이름없는 목동으로 전락해 있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부르셨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형편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할수 없는 형편이라고 사양했다. 여러가지 기적을 보면서도 그는 계속 사양했고, 거절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부탁과 명령을 따를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철저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었다.

3.이사야 선지자 역시 마음이 가난했던 사람이다. 이사야6장에는 그의 가난한 마음상태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기도중에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는 찬양을 들었다. 그러나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어서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탄식하였다.

4.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자세 역시 가난한 심령의 경우일 것이다. 밤새도록 수고하였음에도 그는 고기를 못잡았다. 그런 그에게 주님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순종을 하였다. 그리고 상상을 초월하는 수확을 거뒀다. 그러나 그는 두려웠다.그래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요청하였다.
B.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자.

1.단순해져야 한다. 이웃과 비교하지 말고 자랑하지도 않는 단순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물질에 욕심이 없는 마음이다. 세상을 향한 야망이 없고 따지거나 음모가 없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이런 마음일 때 가난한 삶이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삶이야말로 경건한 삶이다.

2.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가진 것 없이 단순하 공동체의 삶을 이루며 살아갔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신 것만으로 모든 문제의 해결이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한 모범적인 삶이었다. 바로 우리의 삶이 그렇게 되어야 할 것임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경우였다.
II.가난한 마음은 성도의 기본마음 자세다.
A.심령의 빈곤은 천국의 시작이다.

1.산상수훈에는 여덟가지의 복이 나오는데, 가난한 마음은 그 여덟가지 복의 첫번째 관문이다.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 때 애통하게된다. 그리고 애통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온유하다.그래서 사나운 사람을 말할 때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2.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사람들과는 무엇인가 구분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구분은 다른 것으로는 불가능하다. 주님앞에서 겸손히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구분된 삶의 출발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슈바이처)
20세기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슈바이처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읍니다. 1960년대 슈바이처가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읍니다. 파리에 내려서 노벨상을 주는 덴마아크를 향해 기차를 타고 갑니다. 슈바이처가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하기 위해서 그 기차를 탔읍니다. 기차 안에서 슈바이처와 같이 가면서 여러가지 대담을 통해 기사를 작성하려고 했는데 슈바이처를 찾을래야 찾을 길이 없읍니다.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서 오신 분, 막대한 상금을 받는 그는 박사 학위만도 정식 학위가 3개이며. 명예박사 학위는 20여 개나 됩니다. 그리고 영국 황실로부터 백작의 칭호를 받은 귀족입니다. 이런 분이었으므로 기자들은 당연히 특등실에 가서 슈바이처를 찾았읍니다. 그 곳에 없었읍니다. 1등 칸에 가보았읍니다. 2등 칸에도 가 보았읍니다. 없읍니다. 3등 칸에 가니까 가장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나무로 된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있읍니다. 그들속에 슈바이처가 앉아서 그들의 진맥을 짚어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자들은 슈바이처에게어떻게 선생님께서 이렇게 남루한 3등 칸에서 고생하며 가십니까.하고 물었읍니다. 그러자 슈바이처가 대답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나는 내가 즐길 곳을 찾아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그곳을 찾아다니며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나는 그렇게 사는것 뿐입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이와 같은 삶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야말로 바로 예수님의 삶이요,심령이 가난한 삶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화니 크로스비)
만일 큰 부와 좋은 건강과 복되고 기쁜 우리 주님과의 사귐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비록 많은 사람들이 부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날마다 구원의 기쁨을 맛보기 위하여 필요하다면 남은 인생을 기꺼이 검소하게 살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과거에 나는 불가지론자로서 내 사업을 번창시키기 위해 열심히 일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끌려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붙잡힌 바 되었습니다.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찬송가 작사가인 화니 크로스비는 무려 8,000여 곡 이상의 복음성가를 작사했습니다. 불과 생후 6주만에 장님이 되었지만, 그녀는 한번도 그 때문에 마음의 고통을 느껴본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나는 주님께서 그렇게 많은 은사를 당신에게 주셨으면서도 시력을 주시지 않는 것이 섭섭합니다하고 한 목사가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재빠르게 대답하기를내가 태어날 때 한 가지 청원을 할 수 있었다면 장님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라고는 생각 못하셨지요.라고 했습니다. 왜 그런가요라고 놀란 목사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크로스비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눈으로 처
음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 천국에서 뵐 주님의 얼굴일테니까요.
B.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이미 천국을 소유한사람이다.

1.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 축복을 하시면서 “천국”을 약속하시진 않았다. 그것은 이미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게는 천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2.심령이 가난한 자가 행복한 이유는 그가 이미 하나님의 나라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3.예수님의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었다. 빌립보 2장 5절부터 8절을 보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결론

1.주님이 원하시는 심령은 “상한 마음”이라고 하셨다. 바로 가난한 마음이다.

2.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구원이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 마음이다.

3.심령이 가난해지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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