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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 0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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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마태를 어떻게 부르셨는가 하는 내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예수님은 길을 지나가시다가 마태를 보셨습니다.예수님이 보신 것은 마태의 영혼의 상태를 보셨습니다.따라서 우리도 이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가를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마태라는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이제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마태를 부르심
예수님은 우리들을 부르시는 분이십니다.주님이 우리들의 구주이시기 때문에 우리들을 부르셨던 것입니다.흔히들 마태복음,마가복음,누가복음을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공관복음이라고 한 이유는 그 복음서들이 공통적인 관점에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 공관복음에는 모두 마태를 부르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그러나 요한복음에는 이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태가 부름을 받았던 이 소명은 세 가지 중요한 성격이 있습니다.
첫째는 주권적 소명입니다.주님께서는 마태를 부르실 때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지 않으시고 부르셨습니다.성경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를 부르실때 대개 어떠한 기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마태를 부르실 때에는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예수님은 주권적으로 마태를 부르셨던 것입니다.마찬가지로 주님께서 우리들을 부르실 때 우리들을 주권적으로 부르셨습니다.“나를 좇으라”는 말은 예수님을 계속적으로 좇으라는 말입니다.그것은 곧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은혜의 소명입니다.마태는 아무런 자격도 없었습니다.그는 세리였습니다.당시 세리는 지금의 세리와는 다릅니다.그들은 로마의 정권에 붙어서 치부를 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사람들은 세리를 가리켜 “로마의 개”라고 불렀던 것입니다.당시의 죄인이라는 말은 지금의 죄인과는 약간 다릅니다.그 당시는 나쁜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세리,창기,도적,목자,피장이(갖바치)등을 죄인으로 불렀습니다.그러한 죄인을 주님이 부르셨습니다.우리 역시 주님께서 은혜로 불러주셨던 것입니다.우리들은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주님께서는 은혜로 우리들을 불러주셨습니다.
셋째는 사랑의 소명입니다(요일3:1).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사랑의 부르심을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마태는 가버나움 지역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당시의 세금은 토지세와 인두세였습니다.여기서는 인두세란 일종의 통행세로서 길을 지날 때 징수하던 세금입니다.마태는 그 세금을 징수하던 세리였습니다.그러한 마태를 주님이 부르셨던 것입니다.주님께서는 우리 역시 사랑으로 부르십니다.

2.부름받은 마태의 태도
부름을 받을 때 사람들은 세 가지 형태로 태도를 나타냅니다.
첫째는 거절입니다.두번째는 냉담입니다.세 번째는 믿음입니다.마태는 세 번째의 순종을 하였습니다.지금도 주님께서는 우리들을 부르십니다.우리들은 일어나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의 응답입니다.
그는 결단의 응답을 했습니다.그래서 그는 즉시 일어났던 것입니다.사람들은 선한 일을 행할 때 주저합니다.그러나 악한 일은 즉시 행하고 맙니다.주님의 뜻을 행할 때는 주저해서는 안 됩니다.회개도 마찬가지입니다.죄인의 길에 서며 악인의 길을 따르며 오만한 자리에 앉을 때에는 재빠르게 행하는 것이 사람들의 습성입니다.그러나 착한 일을 하는 데는 더딘 것이 일반적인 일입니다.
마태는 자기 희생의 응답을 하였습니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는 잔치를 배설했습니다.마태가 잔치를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감사입니다.나같은 죄인이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두 번째는 간증을 위해서입니다.과거의 자기 친구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고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간증은 예수를 증거하는 것입니다.세번째로 마태는 더 이상 자신이 세리가 아님을 선언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들은 주님을 따르려고 할 때 공적인 선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신자인 것은 숨기고 있습니다.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공적으로 선언할 수 있어야 합니다.마태는 많은 손해를 보았을 것이지만 자기를 주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것을 감사하며 공적인 선언을 하기 의해서 잔치를 배설했던 것입니다.마태는 믿음으로 살 것을 보이기 위해서,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3.예수님을 비난한 바리새인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악인들과 사귀는 일을 범법행위로 규정했습니다.죄인이나 악인과 같이 생활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당시에 천민계급이 있었습니다.바리새인들은 그들과 교제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이 살던 곳을 지난 다음에는 발에 먼지를 떨어버림으로써 결례를 했던 것입니다.손을 씻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예수님은 외모보다는 내면을 중시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두번째로 그들은 전통에 어긋난다고 해서 비난 했습니다.악인과 함께 있으면 동참죄를 적용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했던 것입니다.여기서 우리들은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우리들이 예수님과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불신자들과 같이 행하다보면 그들과 어울려 죄를 짓게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으신 분입니다.우리들이 불신자들과 같이 있지 않으면 전도를 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대두됩니다.또 전도를 위해서 그들과 같이 있다보면 불신자들과 같이 행동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합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게,비둘기 같이 순결하게”라는 교훈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실생활 속에서 예수님같이 행동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니라.내가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죄인과 같이 생활할 수는 없지만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만 합니다.우리들은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구체적인 지혜를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에는 여러 종파가 있었는데,그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종파가 바리새파였습니다.그들은 지도층에 있으면서 지도적 역할을 하지 않고 오히려 외식했던 것입니다.그들은 예수님이 영혼의 의사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자신들을 예수님과 동등한 입장에 놓고 보았던 것입니다.그들의 그러한 행태는 잘못된 것입니다.자칭 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필요없습니다.자신이 죄인인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죄라는 말은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첫째로 ‘벗어난다.떠난다’라는 뜻이 있습니다.표적과 같은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그것을 어기거나 그것에 못미치는 일을 죄라고 합니다.두번째로 ‘허물’이라는 뜻이 있습니다.금지된 장소를 말합니다.가서는 안될 곳에 가는 것이 죄입니다.세번째로 ‘범한다’는 뜻이 있습니다.한계를 넘어간다는 뜻입니다.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어떤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 곧 죄입니다.고의적인 죄를 말합니다.네번째로 ‘불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태도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법을 어기고 사는 것이 죄입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죄를 자주 범합니다.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4.본문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이 세상이 우리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가 문제입니다.죄 때문에 고통과 환란이 옵니다.이 문제를 누ㅍ가 해결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예수님만이 우리들의 유일한 소망입니다.우리들은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우리 자신만 구원받을 것이 아니라 전도해야 합니다.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해야 합니다.과거에 받은 것,현재 받고 있는 것,그리고 앞으로 받을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그리고 불평해서는 안됩니다.그리고 하나님께 찬양해야 하며.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영광을 돌리는 일은 하나님을 무섭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영광이라는 말은 칭찬이라는 뜻입니다.곧 우리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을 때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제목을 드립니다.마태를 불러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불러 주셨습니다.우리들이 마태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불러주셨습니다.그 부르심에 대해 감사해야 합니다.앉은뱅이처럼 머뭇거리는 우리 자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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