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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삶2 (엡 05: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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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앞에서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삶은 세월을 아끼는 삶이며 주의 뜻을 이해하는 삶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본문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의 지혜로운 삶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바울은 본문 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당시 에베소라는 도시는 번화한 도시로서 방탕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언제나 방탕과 향락에는 술이 빠질 수가 없는데 에베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에베소는 술이 많은 도시였고 술 취한 채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것을 일종의 자랑으로 삼기도 했습니다.특히 그들은 술에 취한 채 신전에 들어가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술 많이 마시기 대회에서 제일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상을 주었고 술 마시기 대회를 하다가 죽은 사람이 3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그 당시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셔댔으며 얼마나 흥청거리고 방탕했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에겐 3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단계는 여우의 단계라고 합니다.술 취하면 여우처럼 눈초리가 올라가고 말이 많아지고 간사해지는가 하면
둘때 단계는 늑대의 단계로 좀더 취하면 늑대처럼 사나와져서 덤비고 폭력을 휘두르고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째 단계는 돼지의 단계라고 합니다.더 취하면 돼지처럼 아무데서나 뒹굴고 배설하고 추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고사에 나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적이라는 사람이 술을 만들어 하우 왕에게 바쳤더니 맛을 본 후 “망국주로다”라고 탄식했다고 합니다.어느 날 헬라의 철인 디오게네스에게 어떤 사람이 술을 주었더니 바로 땅에 쏟아 버리더랍니다.이유를 물었더니 “술과 내 몸을 함께 낭비하고 망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레이트럽은 술 취하는 데 따르는 해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①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고 동물 이하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만든다.
② 몸과 정신을 망그러뜨린다.
③ 인간의 본성을 좀먹는다.
④ 인간의 양심을 황폐하게 만든다.
⑤ 욕망,혈기,속된 언어 등을 유발시킨다.
바울은 본문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은 술 취하다 보면 방탕한 생활로 빠져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여기서 말하는 방탕이라는 말의 뜻은 저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방탕 생활을 하게 되면 돈이 저축될 리 없고 건강이 저축될리 없고 양심이 저축될 리가 없습니다.그래서 방탕은 패가 망신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어떻게 방탕한 생활과 술 취하는 생활로부터 해방되고 탈출하느냐 하는 것입니다.그 방법이 바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인 것입니다.
웰취는 “당신은 당신의 인생을 술과 쾌락으로 채우든지 아니면 성령으로 채우든지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술로 채우면 알콜 중독자가 될 것이고 방탕아가 될 것입니다.그러나 성령으로 채우면 성령의 사람이 되고 은혜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삼손은 들릴라가 부어 주는 독주를 받아 마시고 그녀의 무릎을 베개 삼고 잠들었다가 두 눈이 뽑히고 개처럼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바벨론의 벨사살 왕은 왕족과 귀족 일천 명을 영빈관에 초청하고 예루살렘이 함락할 때 빼앗아온 성전 그릇들에 술을 부어 마시는 난음 난무의 축제를 벌이다가 “네 나라가 망한다”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보낸 상담 편지 가운데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후 주의 종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인데 술을 끊지 못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술을 끊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술 끊는 방법은 어렵고도 쉽습니다.그러나 가장 훌륭한 방법은 결심하고 혀를 깨물면서라도 안 먹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술이 들어가야 할 창자 속에 성령의 능력으로 채우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기도하고 성령받고 난 후 술 냄새만 맡아도 창자가 뒤집히고 구역질이 나고 속에서 불이 나면 된다는 말입니다.
유태인 정신 의학자인 빅톨 프랑클은 자신이 쓴 밤과 안개라는 저서 속에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 큰 충동과 욕구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그것은 식욕과 희망이라는 것입니다.그러나 희망은 식욕보다 더 중요한 것입니다.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마시고 즐기기 위해 술을 마신다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속상하고 울적해서 술로 그 기분과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마신다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그러나 그것으로는 해걸될 수 없습니다.그러한 악순환이 계속되면 결국 빨리 망하든가 빨리 죽든가 하게 될 것입니다.알콜 중독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 “나도 술을 끊을 수 있다.나도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나도 정상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는 정신 요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방탕이라는 원수는 저절로 옮겨간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의 사건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다시 말하면 성령충만은 한 번만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계속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마산에 있는 어떤 기도원은 높은 산에서 솟아오르는 생수를 저장하기 위해 4천 드럼이나 들어가는 저장 탱크를 땅속에 만들고 생수를 저장해 두었다고 합니다.그러니까 계속 생수는 솟고 물은 계속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항상 4천 드럼은 저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2.찬송하며 감사하는 삶입니다.
본문 19-20절은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했습니다.술 취한 사람들에게도 노래가 있고 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에게도 노래가 있습니다.술 취한 사람도 배짱이 생기고 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도 배짱이 생깁니다.그러나 성령 충만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나 배짱은 술 취한 사람의 것과는 비교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본문에서 “신령한 노래”라고 했습니다.성령 충만히 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평안과 기쁨이 찾아옵니다.그리고 찬송과 감사가 찾아오게 됩니다.원망이나 불평스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찬송도 감사도 나올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찬송과 감사가 있는 믿음입니다.그리고 보다더 성숙한 신앙은 어떤 경우와 처지에서라도 찬송하고 감사하는 신앙입니다.바울이 말한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을 뜻합니다.그래서 신령한 노래는 마음으로 주께 노래해야 한다고 19절에서 말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찬송을 부를 때는
① 함께 한 목소리로 불러야 합니다.
② 찬송 부를 때 딴짓을 하면 안 됩니다.
③ 간절히 불러야 합니다.
④ 힘있게 불러야 합니다.
⑤ 정성스럽게 불러야 합니다.
성가대는 교회예배의 찬송 분야를 책임진 사람들입니다.왜 합창단이라고 부르지 않고 성가대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일반적인 세상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찬송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성가대는 찬송 부를 때나 찬송 생활에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노래를 주께 부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도 생활이 선행되어야 합니다.성가대는 연주자이기 전에 찬송자여야 합니다.그리고 신령한 사역자임을 인식하고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주해야 합니다.물론 성가대의 차림과 자세도 매우 중요합니다.
술에 취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처음 술을 마시기 위해 만날 때는 말짱한 정신으로 기분좋게 만나지만 점차 술에 취해갈수록 서로 욕지거리를 하는가 하면 만취되어 헤어질때 쯤이면 싸우고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지혜로운 자녀들은 만날 때나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가 있습니다.그것은 주님을 찬양합시다(Praise Lord), 감사합니다(Thank you)인 것입니다.
크리소스톰은 “우리는 지옥이 있다는 사실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습니다.우리에게는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3.피차 복종하는 삶입니다.
21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이 말씀의 뜻은 너희가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면 너희끼리도 서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 문제화되고 있는 노사 분규의 경우만 해도 서로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해결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기업없이 근로자가 있을 수 없고 근로자의 피와 땀 없이 어떻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두 관계는 긴장과 반목 상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서로를 인정해야 합니다.“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그 뜻은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말고 나 자신이 솔선해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주일에 걸쳐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혜롭게 세상을 살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지혜나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지혜와 그 힘을 힘입을 때 우리가 능력있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은 악하고 어지럽습니다.마치 성난 파도가 뛰노는 바다와 같습니다.어떻게 이 무섭고 어두운 바다를 항해하며 피안에 도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내 인생의 선장되시는 주님께 배의 키를 맡겨드리는 것입니다.그리고 내가 성령을 충만히 받아서 그능력으로 무장하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다시 말하면 내 힘과 내 능력과 내 경험만을 의지하지 말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그것이 지혜로운 인생 삶의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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