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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 (요 01:29-34)

첨부 1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이 말씀은 세례요한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언자의 소리가 그친지 400여년이 지났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고갈과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망에 지쳐 있었을때 혜성처럼 나타난 선지자가 세례요한이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을 그들이 수백년 동안 기다려온 메시아라고 생각하기도 했읍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모여든 많은 군중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다만 주의길을 예비하러온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다.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 나는 그분의 신들메 풀기에 감당할수 없다”고 하였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읍니다.
성경전체를 통하여 볼때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쓰신 동물이 있는데 양이라는 짐승입니다. 양은 무죄하고 선하고 유익하며 희생적인 짐승이었기에 예수님을 상징할때에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하였읍니다.
오늘은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에 대해서 생각하여 보겠읍니다.

1. 구약에 나타난 어린양은 인간 구원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양이 희생되였읍니다.
1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위하여 최초로 희생된 어린양이 있었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읍니다.
그들은 불순종하므로 범죄한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입혀주셨던 영광의 옷이 다 벗겨지고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수치가 드러났을때 그들은 숲속에 숨어서 무화가 나뭇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수치를 가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무화가나무잎으로 만든 옷은 몇 시간 가지 못하고 말라 부스러졌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동산의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혔읍니다.
창3:21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혔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이것이 죄지은 인간 아담과 하와의 죄를 가리기위하여 희생된 최초의 어린양이었읍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들은 한마리 양이 죽음으로써 최초의 죽음을 보았고,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희생된 대속의 양을 본 것이었읍니다. 이처럼 한마리 어린양은 최초의 인간의 죄를 인하여 대속물로 에덴동산에서 피를 흘렸읍니다.
2 출애굽당시 유월절에 희생된 어린양이 있었읍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사백여년동안 종살이로 시달려 왔읍니다.
마음이 강팍한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놓아주지 않고 더욱 가혹하게 괴롭혔읍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최후의 방법으로 온 애굽땅과 모든 가정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을 내리기로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재앙을 면하도록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읍니다.
출12장에 “너희는 어린양을 취할지니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이스라엘의 집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 내가 애굽땅을 칠때에 그피가 너희 거하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때 너희를 넘어 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 말씀하였읍니다.
과연 애굽땅 전역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양의 피를 가득 담은 우슬초에 피를 적셔 문설주와 인방에 발랐읍니다.
그후 애굽 전역에 천지를 진동하는 통곡소리가 들려왔읍니다.
이는 심판을 내리는 하나님의 천사가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르지 아니한 애굽땅의 모든집에 들어가 장자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을 죽여 버렸기 때문입니다. 바로왕으로부터 여종에 이르기까지 장자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애굽 천지는 일시에 초상집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재앙을 통하여 바로왕은 모세를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떠날 것을 호소하였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0년동안 종살이하던 애굽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가나안을 향하여 출애굽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이 그토록 긴긴 종살이에서 해방을 얻고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은 것은 어린양의 희생을 통한 피를 발랐기 때문이었읍니다.
3 성막 성전에서 조석으로 드리는 속제물의 어린양이 있엇읍니다.
출애굽후에 모세는 하나님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어린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냈읍니다.
그리고 안식일에는 그 수를 평일의 배로 늘려서 아침 저녁 두마리씩 어린양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읍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였읍니다.
왜 하나님은 양을 잡아서 그피를 흘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의 죄사함받는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을까요 피의 제사가 죄를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레위기16장에 의하면 이스라엘백성들은 1년에 한차례씩 대속죄일이라는게 있읍니다.
이날에는 대 제사장이 염소 두마리를 골라서 1마리는 이스라엘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고,다른 1마리는 대재사장이 손을 얹고 자신과 온 백성의 죄를 자복한 후에 그 염소는 소위 아사셀에 속하는 염소라고해서 멀리 광야로 내 보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지고 먼 광야로 아주 가버리라는 것이었읍니다.
이렇게 하여 광야에 버려진 염소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고 영영 돌아오지 못한채 광야에서 죽었읍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한 법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었읍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의 율법이었읍니다. 그러나 최초의 인간은 그 율법을 어겼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어긴 인간에게 율법대로 심판한 것이 아니라 그 율법에서 용서받는 길을 열어 주셨읍니다. 그것이 바로 양을 죽이고 그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히신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양의 가죽옷을 입고 아담과 하와는 허물을 가리울수 있었고,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수 있었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발랐는데 예수그리스도를 상징 한 것이었읍니다.
피를 문설주에 바름은 오늘우리들의 마음중심에 피를 바르는 것을 의미하며 피를 보고 넘어 감이란 예수의 피가 있는 자마다 심판에서 제외되며
집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은 교회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며`
고기는 불에 구워먹되 버리지 말라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되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들이고 저버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주셨읍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율법을 다 지킬수가 없었읍니다.
율법앞에서 죄를 깨닫기는 했지만 죄는 늘어갔으며 율법앞에서 저주와 진로를 보게 되었읍니다. 죄책으로 눌린 인간들에게 죄사함에서 양심의 평안의 길을 열어 놨으니 이것이 바로 속죄 제사제도 였읍니다.
요한의 말대로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인류구원을 위하여 어린양처럼 희생된 예수그리스도를 가르친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예비하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이 어린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세계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그 생명을 희생하셨읍니다. 대제사장이 속죄로 드린 어린양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희생되었읍니다. 그러나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은 온세상 온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대속의 어린양이 되셨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든 죄를 당신등에 혼자 짊어지시고 죄의 짐을 모두 없이하는 분이십니다.

2. 신약에 나타난 어린양은 인생구원을 위하여 단 한번 희생된 하나님의 어린양이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셨읍니다.
1세례 요한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보라 하십니다.
양은 완전히 희생의 동물입니다.
양의 고기는 사람의 식용으로 사용되고 털은 옷감으로 가죽은 피혁재품으로 심지어 양의 뼈나 내장까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양은 제물로 제일 가는 것이었읍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는 인류를 위한 제일가는 제물이였으며 그리스도의 일생은 온전한 제물의 생애였읍니다.
주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오신 자체가 커다란 희생제물이었읍니다.
그분의 생애는 일정한 거처가 없었고 주리시며 피곤하셨읍니다.
최후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류를 위하여 최대의 희생제물이 되셨던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아야 겠읍니다.
이세상의 죄를 홀로 지시고 희생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아야 겠읍니다.
그리고 우리도 희생의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 겠읍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매맞고 굶주리며 옥고에 시달리면서도 일편담심 신앙을 지켰읍니다.
주기철 목사님 손영원 목사님 박관준 장로님 등 주님의 뒤를 따라 어린양처럼 제물된 분들이 헤아릴수 없이 많았읍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신앙을 사수하기위하여 평양감옥에서 순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는지 모릅니다. 어떤때는 일주일씩 굶기도 하고 이주일씩 잠을 못자는 고통을 당하였고 코에 물을 부어 배를 부르게 했다가 다시 입으로 코로 쏟게 하는 인간으로서 참을수 없는 무서운 고문도 당하였읍니다. 더 무서운 고문은 못을 박은 널판지를 뒤집어 놓고 벌거벗은 몸으로 그 위를 걷게 하는 것이었읍니다. 기절하면 다시 감방으로 던져졌읍니다. 피골이 상접한 주목사님은 깨어날 때마다 찬송을 부르셨읍니다.
“십자가의 언덕길이 제 아무리 고달파도 주님가신 길이오니 내가 어찌 못가랴 주님제자 베드로는 거꾸로도 갔사오니 고생이라 못가오며 죽음이라 못가오리”
흐느끼며 부르는 주목사님의 찬송소리에 감방안에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간수들은 물론 고문을 했던 형사들 까지도 울었다는 것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걸으신 그 길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피눈물로 얼룩진 좁은 길을 걸어갔던 것입니다.
2세례 요한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하심을 보라 하십니다.
양의 특색은 온유와 평화에 있읍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의 온유성을 묘사하여 사53:7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며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깍는자 앞에서 잠잠한 양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더라”말씀하였읍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품에 안으시고 축복하셨으며,죄인과 병든 사람 세리와 소외된 사람을 구원하셨읍니다.
그는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는 온유와 사랑의 사람이었읍니다.
그렇다고 온유는 비굴하거나 나약한 것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것이요”말씀하셨읍니다. 과연 예수님은 전세계 구석구석을 기업으로 받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애를 매고 배우라”고 친히 말씀하셨읍니다. 주님은 온유하신 분이오 그 온유하심에 겸손을 더하셨읍니다.
온유하셨기에 순종하셨고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복종시키셨읍니다.
일신성도여러분! 우리는 온유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평화의 사람들이 됩시다.
저에게 간절한 기도가 있는데 우리 일신교회가 날로 부흥발전되기를 기도하고 있읍니다.
또한 모든 성도가 온유해지도록 기도합니다.
자신을 죽이고 남을 존경하며 사랑하고 화목해야 합니다.
온유한 일신제단이 되기를 더욱 원합니다.
한사람이라도 강팍해지거나 거칠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3세례 요한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하심을 보라 하십니다.
구약에서 제물된 어린양은 흠이 없어야 했읍니다.
눈이 상하지 않고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 몸에 흠이 없는 양이라야 했읍니다.
이처럼 제사에 드리는 어린양은 흠없고 일년된 수컷이었읍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읍니다.
벧전7:18에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된 망령된 행동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말씀하고 있읍니다.
흠없는 하나님의 어린양 보배로운 피로 구속받은 우리들은 흠없는 양으로 살아야 겠읍니다.
그래서 빌립보소2:15에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가운대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 하였읍니다.
우리는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흠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시간 상한심령들이 흠없는 어린양의 피로 깨끗이 씻어 정하게 하고 고침을 받아야 겠읍니다.
우리의 눈이 탐심과 증오와 편견 교만으로 얼룩진 흠이 있읍니까
눈에 비늘이 끼어 있읍니까
우리의 손이 부정한 것을 탐하여 악을 행하며 남을 저주하는 손으로 흠이 있읍니까
우리의 발이,우리의 입이 남을 모략하고 저주 험담하는 흠이 있읍니까
오늘 이시간 흠없는 어린양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으로 변화되어 흠을 제거하고 온전한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오늘 우리는 이 나라 이 민족의 작은 어린양들이 돼야 합니다.
오늘 일신제단에서도 어린양을 찾고 있읍니다.
모리아산을 오르던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이 물었읍니다.
“아버지,불과 나무는 여기 있사온데 제사 드릴 양은 어디에 있읍니까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실것이다“라고 대답했읍니다.
그러나 이삭은 자기 자신이 바로 희생되어야 할 어린양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그는 순순히 순종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나님 앞에 어린양으로 드렸던 모리아산이 그후 예루살렘 성전자리가 되였읍니다.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희생된 갈보리 산상이 되였읍니다.
그리고 영적으로는 우리 일신제단이 된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내가 선 자리에서 이 시대의 하나님의 어린양이 됩시다.
학생은 학교에서 사업 혹은 직장인은 각자의 일터에서 어린양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양의 영광을 보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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