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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죄성과 고통의 관계 (욥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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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주변 일들을 살펴보면 어느 것 하나 신앙상에 있어 탐구 거 리가 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특히 사람마다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 로 고통을 겪고 있는 현실을 보면 그런 점들이 더욱 눈에 띄게 마련입 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의가 근본적인 문제에는 눈을 돌려 버리고 그저 현실상의 이익만 추구하느라고 정신 없이 쏘다니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고통을 겪고 있는 문제에 있어서도 대개가 감각적 인 고통에는 대단히 민감하지만 영적인 고통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습 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본문에 나타난 욥의 물음은 많은 것을 시사하 고 있습니다.

 1.영적 고통을 직시해야 합니다.

 재산을 다 잃었던 것이나 자녀들을 잃었던 것이나 전신에 악창이 들 었던 것이나 따지고 보면 그것들은 다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속한 것입 니다.

그러나 욥은 그런 고통들을 통하여 영적인 고통까지 절실히 체감하 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원통함을 발설하고'(1 절)라는 한마디가 단적으로 그 점을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사실 욥은 그때 육체적 고통보다 영적 고통을 더욱 직시하고있었던 것입니 다. 진실한 신앙인에게 있어 그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든 것이 바로 영 적 상실감과 같은 영적 고통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 이에서 발생하는 문제 혹은 육체적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고통도 그 정도에 따라 참기 어렵겠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듯한 심정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영적 고통을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것은 그만큼 평소 신앙이 독실했음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보 면 육체적 고통만 고통이 아니라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을 사랑하는 육체적 즐거움까지도 다 고통이 되어집니다.(딤후3:1-5).

그러니까 영적 고통에 민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전혀 고통이 아니 라고 여기는 일에서 조차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동양의 성인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고통을 겪 기 전에 깨닫는다. 고통을 겪으면서 깨닫는 자는 그 다음으로 지혜로 운 자다. 하지만 고통을 겪고 나서도 깨닫지 못한 자는 아무런 가망이 없다.' 우리는 고통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고통을 직시하되 영적 고 통을 더욱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구도 자세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2.그 까닭을 알고자 해야 합니다.

 욥은 자신의 영적 고통을 직시하고 나서 하나님을 향하여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무슨 연고로 나로 더불어 쟁변하시는지 나로 알게 하옵 소서'(2절) 라고 탄원했습니다. 인간의 삶 자체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신 앙 생활에 있어서는 더욱 어떤 일에서나 '왜'라는 질문이 지극히 필요 합니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질문이 없이는 근본적인 대답이 주어질 수 가 없고 그런 신앙은 맹신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묻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에 있어 어떤 심각한 문제 가 주어지면 그 까닭을 질문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무슨 연고입니 까', '왜 그렇습니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런 물음은 반드시 이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욥이 우리보다 신앙이 더 못하여 하나님께 이 런 질문을 했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습니다.그러한 질문은 하나님께 대 한 불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보다 체계적이고 성숙된 신앙에 이르기 위한 과정에서 야기되는 것입니다.

<예화> 하늘의 시인이라고 부르는 송명희 자매는 뇌성마비의 몸으 로 태어나 이제 서른을 넘긴 나이인데 그가 예수님을 일고 나서 그분께 드리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 편지의 서두는 "고난의 선생님께 드리는 편지"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그녀가 고통을 안고 얼마나 몸부 림쳤으면 예수님을 향해 고난의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까요 그가 쓴 편지 중에 한 대목을 읽어드립니다.

"선생님을 좇는 후에도 고난은 저를 떠나주지 않았고 오히려 고난이 많아져 고통스러움은 더해만 갔었는데 선생님은 제 옆에 계셔서 육신 은 고달픔이 있으나 마음은 편안했고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잘 밟을 수 있었지요. 의심과 두려움이 있을 때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슬프고 괴로울 때는 '얘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선생님은 그렇게 수없이 잘못을 했을 땐 '그래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선생님은 그 렇게 수없이 말씀하시며 그 부드러운 손으로 안아주셨지요. 제가 선생 님을 만난 후 건강이 없어도 지식이 없어도 많은 재물이 없어도 선생 님이 계시기에 감사할 수 있었지요. 선생님. 감사의 성숙과 이해의 성 숙은 고난이 아니면 얻어지는게 아닌가봅니다."얼마나 진한 감동을 주 는 편지입니까 고난을 이기려면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순종이지만 무작정 '믿습니다'를 외치 는 맹신은 순종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3.하나님의 의도를 물어야 합니다.

 욥은 이어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에게 고통을 주신 의도가 무엇이냐 고 질문했습니다(4-6절) 고통의 까닭을 묻고 고통을 주신 의도를 묻 는 것은 피상적으로 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깊이 성찰해 보면 질문 대 상의 분야에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가 좁은 의미의 질문이라면 후자는 넓은 의미의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주실 때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원대한 의향과 계획이 배려되어 있습니 다. 바꾸어 말하면 사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은 그 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경우는 없고 반드시 하나 님 섭리가 담겨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 부딪혀 눈앞의 문제만 묻지 말고 그 배후에 숨어 있는 하나 님의 원대한 뜻까지도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통 을 주셨던 것은 그의 죄를 사실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의 영성을 더 욱 고양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에서나 신중하게 하나님 의 의도를 물으면 반드시 그런 숭고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일찍이 '구하라 얻을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 드리라 열릴 것이다(마7: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 을 물질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에만 국한시키지 말고 반드시 영적인 데 까지 연결시켜 높은 것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그만한 무게의 해답을 주시기 때 문입니다. 진지한 물음과 추구가 없 는 데서는 얻어질 것도 없습니다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 사람은 얻을 수 없고 받아도 소홀히 여기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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