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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헛된 지식의 폐단 (욥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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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바스는 욥이 자신들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정당화 하자 격양된 목소리로 욥을 책망합니다. 욥의 항변은 헛되며(2) 바람처럼 근거가 없고, 도움이 안되는 무익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2,3). 또한 욥이 악인의 번영에 대해 한 말(12:6)을 불경건하다고 단정하 고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는 것을 그치게 한다(4) 고 까지 비약시켜 말합니다. 결국 욥은 간사한 자로 낙인이 찍혀 버립니 다.(5) "너는 다른 사람들도 네 자신처럼 하나님과 믿음에 대해 가혹한 생 각을 갖도록 가르치는 구나"라는 뜻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이 말은 현대인들에게 있어선 거의 통념이 되어 있습 니다. 아는 것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사람 이면 누구나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타고난 본능이기도 합니다. 물 론 사람마다 요긴한 지식은 가져야 할 필요가 있고 자기가 취향하는 전문적 인 지식도 가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정작 영혼에 필요한 지식은 그리 많 지 않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 생활에 관한 것이더라도 경험해 놓고 보면 헛된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엘리바스가 헛된 지식에 관 하여 언급한 것은 욥을 무모하게 공박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헛된 지 식이 끼치는 폐단을 설명한 것에은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식의 폐 단은 무엇일까

1.유익이 없습니다.

 엘리바스는 욥을 향하여 '헛된 지식만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고 공박하였습니다.(3절) 물론 엘리바스가 욥의 지식이 헛된 것이라고 단정하고 몰아 붙인 것은 지나친 감이 있지만 헛된 지식이 무익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일상 생활이나 신앙 생활에서 반 드시 필요한 지식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대한 지식은 그 중에서도 요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혼의 참된 양식이 되어지지 않고 그냥 지식으로만 머물고 만다면 우리는 그런 지식을 헛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화> 천재와 바보 이야기입니다. 천재가 하루는 너무도 심심하여 곁 에 있던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바보야, 네가 문제를 하나 내놓아라.

그럼 내가 알아맞춰볼테니, 만약 내가 알아맞추지 못한다면 네게 천원을 주 마."그러자 바보도 응수했습니다. "그럼, 너도 나에게 문제를 내라. 이번엔 내가 알아맞추지 못할 경우 난 오백원을 줄께." 천재와 바보는 서로의 제안에 동의를 했습니다. 먼저 바보가 문제를 냈습 니다.

"아침에도 뿔이 세 개이고 저녁에도 뿔이 세 개인 것이 무엇이냐"천재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원을 바보에게 주며"난 모르겠다. 그럼, 그 답은 무엇이냐" 그랬더니 바보는, "그건 나도 몰라"하 면서오백을 되돌려 주는 것이 아닌가! 과연 누가 바보입니까음식의 영양분 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지식 자체가 우리의 살과 피 가 되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 자체와 그 지 식과의 차이를 분명히 분간치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성경에 대한 지식이 신앙일 수는 없습니다. 토마스 A. 켐피스는 그 당시의 교회를 향하여 지식만 탐하는 일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부요한 자들이 되어야 하지만, 그 지 식이 믿음의 생활과 성령의 열매로서 나타나는 살아 움직이는 신앙인이 되어 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바른 지식'을 소유하게되는 것입니다.

 2.정신을 황폐시킵니다.

 헛된 지식은 무익하다는 정도에만 그치지 않고 그 부작용이 다른 사람에 게 커다란 피해를 끼치비다. 엘리바스가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2절)고 한 것이 바로 그 점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이 동 풍을 '熱風'이라고 옮겼는데 이 바람은 시리아와 북아라비아 사막 지대에서 팔레스틴 땅으로 불어와 농작물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습니다. 그러니까 엘리 바스가 헛된 지식을 그런 열풍에다 견준 것은 그것이 다른 사람의 정신에 끼치는 피해가 막심하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참된 지식은 영혼에 있어 정금보다 낫습니다.(잠8:10). 그러나 그릇된 지 식은 그것이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시험의 원인이 되며 게다가 커다란 근 심까지 끼칩니다. 설교자는 누구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지식을 과시 하는 유혹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런 설교는 신자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 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정신을 크게 해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조 심해야 할 것입니다. 헛된 지식은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시킵니다. 바울이 가장 고상한 것이라고 고백했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란,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고 유익하게 하는 지식을 가리킴을 기억합시다(빌3:8)

3.신앙을 망칩니다.

 엘리바스는 이어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4절)하고 규탄하였습니다. 욥의 지식이 헛된 것이라는 단정은 무리한 판단이었지만 헛된 지식이 참된 신앙을 망친다는 지적 자체는 사실이었습니다. 톨스토이는 대학 2학년 때까지 러시아 정교 안 에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 후, 신앙을 중단해 버렸다고 <참회록> 머리말에 고백하였습니다. 한 친구로부터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신은 단지 인간의 조작에 지나지 않다는 것 등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 다. 그야말로 황당 무계한 지식이 그의 신앙을 중단시킨 것이었습니다.

러셀, 니체, 볼테르, 하이데커, 소펜하우어, 사르트르 등으로 이어지는 무 신론 철학은 자기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의 신앙을 망쳤습니다. 그 들은 자기 머리의 지식을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이르는길을 막았 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런 폐단이 오늘의 극단적인 신학자들에게서도 자행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차려 그런 사악한 지식은 막아 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식은 선한 것이지만 모든 지식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알곡 사이에 잡초가 있듯이 지식 사이에도 헛된 것이 있습니다. 이런 지식은 아무런 유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신을 황폐화시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는 신앙을 망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모든 도 구적 지식들을 습득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되 그러한 지식이 최고인 양 내 세우는 어리석음에 빠지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그리고 진실한 신앙을 위협하 는 잘못된 사상을 바로 깨우치고 현혹되지 않기 위하여 힘써 성경을 배우고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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