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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의 문턱에서 (욥 21: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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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연세 많으신 노인들이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허무하다고 말 하는 것을 종종 듣습니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 지는 안개니라'(약4:4)는 야고보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우리의 일생은 불원 간 죽음을 맞아야 하는 실로 짧은 여정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심한 질병으로 온몸에 악창이 나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고통과 고독 속에 빠진 욥으로서 는, 한때 번성했던 자신의 과거가 그야말로 물거품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 사람이 될지를 생각해봅시다.

 1. 죽음 앞에 별수 없는 인생.

 본문에서 욥은 번성하고 징벌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해 분노합니다.(17-20 절) 이는 곧 결백한 자신이 그토록 큰 재난에 내던져진데 대한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탄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욥의 마음 같아서는 악행자에게는 곧장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여 그들의 악행만큼 현세에서 고통을 받도록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곧 인생의 허무에 대한 깊은 자각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악인이 온갖 악행을 저질러 쾌락과 부귀를 누려 보았자 죽음 앞에서 는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이라는 자각입니다.(22-26절). 결국 부하든 가난하든 건강하든 쇠약하든 심지어 의를 행하든 악을 좇던 간에 인생의 차 이는 도토리 키재기이에 불과하고 오직 확실한 것은 죽음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차라리 죽음 속에서 위로를 받고자 하는 욥의 힘든 고난을 보 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확실한 것은 곧 죽음 앞에서는 그 누구 나가 별수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죽음은 인생의 모든 교 만과 자랑을 일시에 제하여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행복하고 평안하게 또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당하면서 불 행하게 살지만 결국에는 흙속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2.죽음을 극복케 하는 신앙.

 족장 시대의 사람이었던 욥이 보여 주는 인내와 믿음은 참으로 놀라운 것 입니다. 그는 오늘날 우리와 비교할 때 받은 바 하나님의 계시의 밝기에 있 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 고 사도들의 업적과 2000년 교회사의 흐름을 통해 죄의 문제나 고난의 문제 그리고 구원과 내세에 관한 것 등에 관한 명쾌한 깨달음과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만 욥의 시대에는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요컨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비 해 욥은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도 극 도의 환난에 직면해서는 헤어나기 힘든 허무의식에 빠져들었습니다.

<예화> 장신대 어느 원로 교수님이 임종하시기 전에 깊은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 분은 옆에서 간호하시던 분이 갑자기 병실에서 뛰어나와서 우리 목사님이 방언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들어보니까 그 무의식주에 서도 계속 히브리어로 시편 23편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우리의 무의 식 속에 시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멋있게 죽고 싶다는 희망이 나 결심만으로는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날마다의 삶으로 경배하는 자만이 죽음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할머니는 새벽기도회를 다녀오셔서 기도하시다가 기도하는 모습 그대 로 임종하셨습니다. 그렇게 임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임종할 때 강단에서 설교하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목사님도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끝까지 강대상을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지 않았습니다. 연세가 팔십이 넘으셔서도 강단에서 순교하기를 원하신다며 설 교를 다른 분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병원에서 돌아가셨고 강대상 에서 돌아가지도 못하시면서 교회만 어지럽게 했던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임종은 우리의 삶의 연장입니다. 믿음으로 그 인생을 살았던 자는 믿음으로 우리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찬송함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은 찬송 의 영광으로 임종을 맞이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가운데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역시 우리는 진정한 믿음을 통해 욥의 심령을 억눌렀던 저 허 무와 장벽을 거뜬히 넘어서야 하겠습니다. 욥은 '부하든 가난하든 죽기는 마 찬가지'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 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 라'(빌4:12)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욥은 '의로우나 악하나 죽기는 매한 가지'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악인의 말로는 영원한 불못인 반면 의인에게는 영원한 새 생명이 허락되어 있다'고 담대히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 앞에 설 때가 옵니다. 짐승들은 미래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 는 존재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 있어서 현실은 어떤 의미가 있으며 또 죽음 은 무엇입니까 죽음은 단지 생의 끝입니까 그래서 현실에 사는 동안 온갖 쾌락을 다 맛보든 것이 현명합니까 아니면 속세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 속 에 잠적하는 것이 현명합니까 우리는 세속적이고 허무주의적인 노선을 따르 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을 세계로부터 의와 영생을 나라를 옮기 움을 받은 거룩한 존재들입니다.(요5:24). 따라서 성도는 '살아도 죽을 위 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 는 자세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존재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롬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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