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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의 두 번째 타락과 구원 (창 08: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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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떠다니던 방주는 1백5십일 후 7월, 곧 그 달 17일에 아라 랏산에 머물렀고, 노아는 6백1년 정월, 곧 그 달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혔음을 확인했으며, 2월 27일에는 땅이 마름으로써 여호 와는 노아와 그에게 표함된 모두를 방주에서 나오라고 명하였 다. 방주는 사망의 물을 통과하고 부활의 아라랏산에 도착했다.

방주는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물을 통과한 방주는 하나님의 공 정한 심판 아래서 사망의 바다를 통과한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을때 그것은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부 활했음을 예표했다. 영원한 생명은 죽음을 통과해서 산 생명이 다. 아담은 죽음을 통과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나 노아는 물을 통과한 것이다. 아브라함은 물 건너 저 편에서 부름 받았 기 때문에 강을 건넌 자 즉 히브리인의 조상이 되었고 이스라엘 은 홍해를 통과함으로써 구원 받았다.

주 예수님은 그 영원한 생명을 선표하기 위하여 먼저 물을 통과 하시고 나중에 십자가를 통과하셨다. 베드로는 `우리가 어찌할 꼬' 하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 안으로 침례를 받으라고 했다 (행 2:38). 이제 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다(벧전3:21).

맨 처음에도 물은 땅을 덮고 있었고 지금도 물은 땅을 덮고 있 다. 죽음의 물이 덮고 있는 땅에서 주 예수님은 죽음으로 죽음 을 이기고 죽음에 매여 일생을 종노릇하는 자들을 놓아 주셨다 (히 2:15). 노아는 네피림의 홍수에서 작음으로 큼을 이겼고 죽 음으로 위대한 생명(네피림)을 이겼다. 그는 방주로 드러났고 방주는 물 위를 다니다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이것이 죽음을 통과한 생명이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짐승들과 육축 들을 권념(기억)하셨다. 방주가 물 위를 떠다닐 때도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욥이 사탄의 공격을 받고 죽은 자와 방불하게 되었을 때도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으며 주 예 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그의 영혼까지 포기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고 계셨다. 방주는홀로 떠 다녔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방주를 버려두고 계셨던가. 하나임은 물이 1백5십일 동안 온 땅을 덮고 창일하도 록 기다리신 것이다. 이것이 공정한 심판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일을 막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게 하셨다. 아담을 속일 때 막지 않으셨으며 가인 이 아벨을 죽일 때도 막지 않으셨고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 합할 때도 막지 않으셨으며 욥의 모든 것을 강타했을 때도 막지 않으셨다. 에놉인이 이스라엘 사람을 채찍으로 몰아칠 때도 막 지 않으셨다. 심지어 당신의 아들을 버리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때도 막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통과한 영원한 생명을 주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셨다. 이러한 승리가 올 때까지 하나님은 방주 안에 노아 를 넣으시고 기억하고 계셨다. 방주 안은 하나님의 기억의 창고 였다. 하나님은 부활로 이끌 모든 생명을 방주 안에 보관하셨 다. 방주는 죽음으로 짜여진 배다. 잣나무가 베어지고 쪼개져서 연하여진 것이다.그러므로 잣나무의 죽음이 사망의 물을 막고 노아는 그 안에 보관 되었던 것이다. 우리 주 예수님은 잣나무 가 되어 베어지고 (유태교와 모든 인류에게 버림 받은 바 됨)쪼 개져서 완전한 죽음으로 드러나셨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기억하고 계셨으므로, 방주의 문을 열고 노아가 나왔듯이 예수 님도 아버지의 기억 안에서 다시 부활하셨다. 노아는 방주 안에 있다가 물이 걷힌 후에 나왔고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기억 안에 있다가 죽음이 끝나고 장사된 후에 부활하셨다.

하나님의 기억 안에 있는 자는 다시 산다. 하나님은 자기의 기 억 안에서 창조를 발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권념하 사 바람으로 땅 위를 불게 하셨다. 사망은 1백5십일을 넘지 못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억은 영원하다. 사망의 날짜가 채워진 후에 하나님은 자신의 기억으로 바람을 불게 하셨다. 이스라엘 을 억압하던 바로에게 그의 강팍함을 다 내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그런 연후에 사망으로 에급을 심판하시고 양의 피(죽 음)안에 감추어 두었던 자기 백성을 구원하셨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홍해 안에 감추어 두시고 에급의 군대를 유인하셨다. 결 국 바람으로 물을 갈랐고 바람으로 물을 덮었다. 하나님의 공정 한 심판이 홍해 안에서 이루어졌다. 같은물 에서 한편은 죽고 한편은 살았다. 십자가를 통해붤자기 아들을 심판하심으로 우주 안에 크고 작은 모든 것을 심판하셨다. 아들도 심판 받았고 사 탄도 심판 받았다. 그러나 하나는 멸망하고 하나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오르셨다.

물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방주 뿐이었다. 겉에는 죽 음이 있고 안에는 하나님의 기억 이있다. 노아는 하나님의 기억 안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다시 바람을 일으 켜 물이 마르게 하셨다.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몰았듯이(창 1:9) 하나님은 바람으로 물을 말렸다. 바람은 천사들이다 (히 1:7, 계7:1). 이탈한 천사들은 바다가 되었고 순종하는 천사들 은 바람이 되었다. 홍수 후에는 바람이 분다. 넓은 바다에는 바 람이 그치지 않는다. 땅에서는 깊음의 샘들이 터졌고 하늘의 창 이 열려, 하늘에서는 있던 물이 다 쏟아져 나왔다. 이제는 바람 이 불 차례다. 바람이 불면 비는 그친다.

사탄이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나면 천사들이 나온다.주 예수님을 시험하던 사탄은 자기 힘을 다한 후에 물러 났고 천사들은 수종 들었다. 1백5십일 동안 물이 땅에 창일했고 2백2십5일 동안 바 람이 물을 말렸다. 5개월 동안 물이 힘을 썼고 7개월동안 바람 이 힘을 썼다. 노아가 6백세 되던 해 2월 17일에는 홍수가 땅에 일어났고6백1세 되던 해 2월 27일에는 땅이 말랐다. 사탄의 일 은 끝이 난다. 하나님의 지혜는 죽음 안에 생명을 보존하는 것 이다.

그러므로 살고자 원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죽고자 원하는 자는 살 것이다.

방주는 1백5십일 후 7월 17일에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유태인들 에게는 두개의 달력이 있다. 그것은 민력과 성력이다. 그들이 에급에서 나온 후에 7월은 1월로 바뀌었다(출12:2). 그러므로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날은 민력으로는 7월 17일이며 성력으 로는 1월 17일 즉 주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그 달 14일 유 월절 양을잡았고 주 예수님도 그 달 14일 유월절날에 십자가에 못 박히고 17일에 부활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달이 해의 첫번째 달로 계산되어야 한다고 하 셨다. 그 이름은 아빕월로(출13:4)그것은 싹 틈, 생명의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으로 싸여진 방주는 부활의 산에 머문 것 이다.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 덟 명이라. 그러나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하심으로 말미암 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벧전3:20-21)고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방주와 연결 시켰다. 산에 머물렀 던 방주는 사망의물로부터 나온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이었다.

부활은 죽음을 거쳐서 나온다. 그러므로 부활 생명은 옛 생명과 다르다. 비록 옛 생명이 죄로 물들지 않았다고 해도 그 생명은 부활 생명과 다르다. 사탄은 하나님이창조한 생명을 유린하고 사망에 빠뜨렸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망으로 사망을 심판하시고 부활 생명을 창조하셨다. 이제 부활 생명은 다시는 사탄에게 유 린될 필요가 없고 다시는 죄와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을 대리하 여 왕노릇할 생명이다. 하나님은 왜 그의아들이 죽음에 넘겨지 는 것을 허락하셨던가 옛 생명의 씨는 아담이었으나 그 씨는 죽음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탄에게 유전 되고 말았다. 그래 서 하나님은 이제 영원한 생명의 씨를 위하여 그의 아들을 십자 가에 넘기셨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왜 돌보 지 않는가. 그것은 돌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게 하려는 것이다. 옛 생명을 언제까지 돌 볼 것인가. 옛 생명은 죽음을 통하여 부활 생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 생명 안 으로 부르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변명치 않으신다.

새 인류를 위한 계획 안에 노아는 기억 되었고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다. 하나도 남김없 이 다 끝이났다. 제자들이 떠나 갔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저주했 으며 세상의 왕이 버렸고 군병들이 조롱했다. 그의 옷을 나누었 고 속옷까지 제비 뽑아 나누었다. 진액이 한 방울도남지 않도록 신포도주를 머금었으며 마침내는 그의 영을 포기하셨다. 무엇이 남아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잘려지고 쪼개져서 방주가 된 죽 은 나무에서 생명을 볼 수 없는 것같이 예수에게서 생명은 단 1 점도 없었다. 그는 다리를 꺾을 필요가 없도록 완전히 죽었으며 유태인의 장례법대로 깊은 굴에 매장 되었다. 그에게 무엇이 남 아 있었는가 아무것도 없었다. 죽은 나무 조각 밖에 보이지 않았던 방주처럼 예수에게서는 죽음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조금이라도살아 있는 자 가운데서 가 아니라 완전히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 할렐루야! 이것 이 우리의 소망이며 자랑이며 영광이다. 물은 마른다. 죽음의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지말자.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하나님을 믿자. 지으신 자를 믿자. 생선을 달라 하는 아들에게 뱀을 줄 아버지가 있겠는가! 내가 나를 보존해도 끝은 온다. 그 러나 하나님의 기억 안에 보존 되면 영원하다. 하나님이 노아를 닫아 넣으신 방은 얼마나 안전했던가! 사망의 물이 지나갈 때까 지 우리는 그 방에 닫아 넣어져야 한다.

조롱과 멸시와 핍박이 올 때, 나의 모든 것이 무너질 때, 그리 고 세상에 대한 소망이 끊어질때, 조용히 노아의 방에서 모든 것을 상실하자. 거기는 하나님의 기억이 있는 곳이다. 주 예수 안으로 모든 것을 잃자.한 번 잃는 자는 다시 잃지 않으며 한 번 죽은 자는 다시 죽지 않는다. 한 번 심판을 받은 자는 다시 심판을 받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안으로 한 번 통과한 사람은 부활 생명 안으로 살아 난다.주 예수를 피하지 말자. 그는 옛 생명을 부활 생명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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