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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의 두 번째 타락과 구원 (창 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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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 안에 포함된 것들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불게 하셨다. 노아는 다섯 달 후에 아라랏산에 머물렀 으며 다시 두 달이 지나고 또 다시 사십일이 지난 후에 방주의 창문을 열고 지면에 물이 없어졌는지를 알기 위해서 까마귀와 비둘기를 내어놓았다. 까마귀는 시체들을 먹느라고 돌아오지 않 았고 비둘기는 앉을 곳이 없으므로 돌아왔다. 칠일 후에 다시 비둘기를 내어 놓았더니 감람잎을 물고 왔으며 또 칠일 후에 다 시 내어놓았더니 되돌아오지 않았다. 노아 육백일년 정월 일일 에 물이 지면에서 걷힌 것을 확인하고 방주 뚜껑을 열었으며 그 해 이월 이십칠일에야 땅이 말랐다.

부활 생명은 심판이 완전히 끝나고 사망이 걷힌 후에 땅 위에 나타난다. 노아는 사십 주야를 비를 맞았으며 일백오십일 동안 바다 위에 떠다녔고 두 달 동안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다시 사 십일이 지난 후에 방주의 창문을 열었지만 아직 지면에 물이 있 었으므로 세 이레를 더 기다린 후 노아 육백일년 정월 일일에 방주의 뚜껑을 열었다. 땅이 완전히 마르기까지 또 두 달이 걸 렸다.

하나님은 노아를 공정하고 완전한 심판 위에 내어놓았다. 네피 림과 함께 비를 맞았고 네피림과 함께 바다 위에 떠다녔다. 그 러나 네피림은 죽고 노아는 살았다. 하나님은 동일한 조건하에 서 사탄을 심판하신다. 사십일 동안 비가 쏟아졌을 때 네피림과 함께 비를 맞았다. 그러나 노아에게는 방주가 있었다. 네피림에 게는 왜 방주가 없었던가 방주는 잘게 쪼개어진 판자들이 연합하여 건축된 상자가 아닌 가! 네피림은 자기를 쪼개어 판자를 만들 수 없다. 판자가 없기 때문에 상자를 건축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의 어떠함으로 인하여 완전하게 집행되었 다. 네피림이 다 망할 때까지 방주가 물을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부활은 완전한 심판으로 말미암는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사탄이 완전히 패할 때까지 십자가를 거처서 무덤에 묻혔다. 그는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권세 잡은 자 곧 마귀 를 없이 하시고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룻하 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셨다.(히2:14) 노아는 네피림과 똑같이 사망의 물을 통과했다. 그는 완전하게 죽음을 거친 것이다.

노아는 칠월 십칠일에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두 달 후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인 것을 확인했고 다시 사십일이 지난 후에 방주의 창문을 열었다. 또 다시 사망을 확인하기 위하여 까마귀를 내어 놓았다. 아직도 사망은 흉용하고 있었다. 까마귀는 사망(시체) 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망이 흉용하고 있는 세상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았다. 비둘기는 사망 위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다.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내어 놓았더니 감람잎을 물고 왔다. 이것으로 물이 땅에서 감한 줄 알았다.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았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았 다. 비둘기가 앉을 곳이 생겼고 먹을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 아는 그때 즉 육백년 일월 일일에 방주 뚜껑을 제치고 지면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했다. 물이 완전히 마른 것은 이월 이십칠 일이었다. 이 모든 과정은 부활이 오기까지의 긴 밤을 보여 주 는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다. 우리는 사망을 깊이 체 험한 후에 새생명의 부활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까마귀로 사망을 확인하고 비둘기로 생명을 확인함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자 먼저 까마귀를 내어놓았다. 까마귀 는 사망(시체)을 좋아한다. 방주 안에 있으면서 그놈은 얼마나 사망을 찾고 있었을까 그놈은 방주 안에 있기가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방주 안에는 사망이 없기 때문이다. 사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살기가 힘들다. 노아는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까마귀를 내어놓았다. 까마귀는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다녔다. 그는 살 맛이 났을 것이다.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 는 것으로 노아는 사망이 아직도 세상에 충만하고 있음을 알았 다.

부활로 가는 길에는 사망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한다. 조금이라 도 사망이 남아 있으면 부활이 늦어진다. 주 예수님은 완전하게 점검받으면서 무덤까지 갔다. 생명은 그에게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철저하게 심판받았고 완전하게 죽었으며 확실하게 확인 되었다. 그런 후에 다시 죽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망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다.

노아는 사망의 물이 걷혔는가를 알기 위해서 철저하게 확인했 다. 사망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망을 좋아하는 까마귀를 사용했 다. 까마귀는 방주 안에서 굶주리다가 세상에서 포식을 했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것으로 노아는 물이 아직 땅을 덮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방주는 산에 머물렀지만 땅은 아직 물에 덮여 있었다. 노아는 물이 마르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내어놓았다. 처음에는 죽음을 좋아한 자 를 보내었고 다음에는 죽음을 싫어한 자를 보냈다. 죽음을 좋아 한 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죽음을 싫어한 자는 되돌아왔다. 방주 안에는 사망을 좋아한 자와 사망을 싫어한 자가 있었다. 이둘을 인하여 노아는 아직 땅에 물이 덮여 있음을 알았다. 우리도 까 마귀와 비둘기를 통해서 세상의 죽음을 확인해야 한다. 주 예수 님의 죽음도 이렇게 확인되었다. 우리의 죽음도 이렇게 확인되 어야 한다. 죽음이 확인된 후에 부활이 오기 때문이다.

세상은 끝났고 거기에는 사망뿐이었다. 사망이 완전히 점검된 후 또 다시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놓았다. 이 비둘기는 감람잎을 물고 있었다. 감람은 기름을 짜서 여호와 앞에 영원히 밝히는 등유로 썼고(롬27:20) 여러가지 향재료와 함께 관유의 재료로 썼으며(롬30:24) 나무는 무성한 생명을 상징(느8:15, 시 128:3) 하였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로 상징(롬11:17, 24) 되었 다. 순결하고 생명이 넘치는 비둘기는 생명과 축복의 감람잎을 물고 왔다. 이것은 부활의 소망이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싹도 없는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기 전에 부활 생명의 싹을 본 것이다. 노아는 비둘기 입에 있는 감람잎을 보고 물이 감한 줄 알았다. 당신은 비둘기 입에 물린 감람잎을 보았는가 까마귀는 사망을 먹느라 고 돌아오지 않았지만 비둘기는 부활의 감람잎을 물고 돌아왔 다. 나는 교회의 창문을 통해서 까마귀가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과 비둘기가 감람잎을 물고 오는 것을 보고 있다.

노아는 다시 칠일을 기다린 후에 비둘기를 내어놓았다. 그 비둘 기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가 먹을 씨를 찾았기 때문이다.

비둘기는 씨를 먹고 산다. 물이 마른 땅에는 씨와 열매가 있다.

감람잎은 부활 생명의 징조였지만 씨와 열매는 죽음을 통과한 부활 생명이다. 씨는 사망이 없다. 사망이 그를 삼키지 못한다.

땅에서 모든것이 썩는다. 그러나 씨는 썩지 않고 오히려 싹이 난다. 이것이 죽음 속에서 다시 나온 부활 생명이다. 사망 안에 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은 오히려 부활하였 다.

비둘기가 씨앗을 먹을 수 있는 땅을 발견한 것을 알고 노아는 방주의 뚜껑을 열었으며 이날은 노아 육백일년 정월일이었다.

이날이 부활 노아의 원년인 것이다. 노아는 그 이름의 뜻대로 제칠일 안식을 향하여 방주 뚜껑을 제쳤다. 첫번째 창조는 육일 에 완성되고 제칠일에 안식하였다. 노아의 부활 생명은 육백년 에 완성되고 육백일년은 칠백년을 향해 가는 안식의 해였다.

죽음은 가고 생명은 왔다. 까마귀는 사망을 알려 왔고 비둘기는 생명을 알려 왔다. 노아는 길고도 완전한 심판을 네피림과 함께 치렀다. 그는 완전히 죽고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가 방주 안에 있었던 것은 죽음 안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는 쪼개지고 판자 가 되었으며 못박혀 연(連)하여졌고 역청으로 칠해진 방주가 되 었다. 그리고 비를 맞고 물위에 떠다녔으며 산위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날이 왔다. 그는 수없이 죽은 제단의 어 린양이었다. 십자가에 죽은 예수였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였던 것 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고 완전하다. 그러므로 노아의 어떠함이 없었다면 그의 심판은 집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노아의 어떠함 은 하나님의 네피림에 대한 심판을 완전케 했으며 주 예수님의 어떠함은 사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완전케 했다. 그의 긴 죽음의 과정은 하나님의 사탄에 대한 심판을 완성했다.

죽음을 확인하고 또 확인하자.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다. 완 전한 죽음이 확인된 후에 부활의 싹인 감람잎이 보였다. 부활은 우리의 원년이며 영원한 운명이다. 육백일년 정월 일일 그날이 우리의 영원한 시작이다.

안식은 이날로부터 온다. 육백년 동안 우리는 옛창조를 심판받 고 이제 일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안식후 첫날 이른 아침 주 예수님은 무덤문을 열고 나오셨다. 이날이 노아의 육백일년 정월 일일이다. 옛 안식은 끝나고 부활의 새날이 왔다.

노아는 아담 이후 십 대에 이르렀고 그는 옛 창조의 마지막으로 태어났다. 옛창조는 노아로 끝이 났고 이제는 부활의 노아로 새 출발하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부활이신 그리스도의 예표였다.

옛 노아는 죽고 부활의 노아는 다시 살았다. 주님은 우리를 네 피림의 심판에서 구원하시려 하신다. 그의 심판이 공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가 우리를 왜 쪼개고 자르는지를 깊이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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