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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람의 두 번째 타락과 구원 (창 0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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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6백1년 정월 1일에 지면에 물이 걷혔고 2월 2십7일에 땅이 말랐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 하시 매 노아가 그대로 행하였고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중심에 이르기를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땅이 있을 동 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하셨다(창 8:13-22 참조).

노아와 그에게 포함된 가족과 생물들은 오랜 동안 사망의 물 위 에 떠다니다가 부활의 날 드디어 땅으로 나왔다. 부활은 사망에 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다. 바다는 사망의 場이었고 땅은 생명의 場이었다. 부활은 땅을 떠나 공중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부활 은 심판 받아 버렸고 물이 지나가 버린 땅 위의 삶이다.

사람은 원래 흙으로 지어졌으며 땅 위에 두어졌다 (창 2:6-8).

사람은 땅을 떠나서 살 자가 아니다. 땅을 떠나는 것은 죽음이 다. 바다에 가도 죽음이며 공중에 가도 죽음이다. 사람이 살 곳 은 땅이다. 노아는 사망의 물에 떠다니던 방주에서 마른 땅으로 나왔고 아브라함은 갈대아우르에서 하나님이 지시한 땅으로 나 왔으며 이삭과 야곱은 그 땅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약속을 받았 다. 이스라엘은 에급의 노예생활 4백년을 청산하고 그 땅으로 진군하여 결국 그 땅을 점령했다. 땅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흉년을 인하여 그 땅을 떠났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돌아왔으며 야곱은 그 땅을 떠났다가 헛된 삶을 살고 돌 아왔으며 이스라엘은 그 땅을 떠났다가 4백년을 종살이하고 돌 아왔다. 그 땅은 단지 지리적 의미의 가나안 땅이 아니다. 그 땅은 사람이 살아야 할 땅이며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땅이며 하 나님의 목적을 성취해야 할 땅의 예표였던 것이다.

생명은 땅에서 살며 부활 생명은 땅에서 번성하고 땅에서 다스 린다. 땅이 없으면 생명도 없고 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의 목적인 그의 왕국도 성취될 수 없다. 우리는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 공중에서 혼인잔치를 누린다. 그러나 사는 것은 땅이다.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고 지배하는 하나님의 왕국은 실현된다. 우리는 잠시동안 부득이 공중혼인잔치를 즐긴다. 그러나 그의 왕국은 땅에 있다. 우리는 지금 사탄으로 인하여 부득이 주님과의 비밀 한 만남과 잔치를 누리지만 우리는 땅에서 살고 땅에서 번성하 고 땅에서 왕노릇해야 한다.

하나님이 창설하신 동산은 땅에 있었고 성전도 땅에 있었으며 교회도 땅에 있고 천년왕국도 땅에 있으며 새예루살렘도 땅에 건축된다. 천사는 하늘에 있고 사탄은 공중에 있지만 사람은 땅 에 있다. 땅은 사람의 영원한 거주지다. 땅을 떠나려고 하지 말 라.

땅을 떠나는 것은 저주며 죽음이다. 사탄은 땅을 빼앗기 위해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영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라고 꾀는 것이 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것이 계교이며 땅은 우리의 영원한 거주지라는 것을 안다. 우리가 거할 하늘은 땅에 있는 것이다.

주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리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 그러나 그는 생명 주는 영이 되어 다시 우리에게 왔 고 지금은 우리와 함께 사시는 임마누엘이 아닌가! 우리 안에 계시지 않는 예수가 어느 하늘에 있단 말인가. 예수의 하늘은 땅이다. 하늘로부터 그 나라와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셨다. 하늘 은 아버지가 계신 곳이요 땅은 아들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아 들이기 때문에 땅에 있다. 땅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이 거처하 려고 지으신 곳이다.

예수님은 땅에서 부활하셨고 노아는 땅으로 나왔다. 노아는 땅 을 되찾았다. 하나님이 땅을 주셨음을 인하여 정결한 짐승과 정 결한 새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다시 땅을 축복하셨다. 땅은 사망을 이겼으며 노아는 죽음을 통과하 고 정결해졌기 때문에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로 번제를 드렸 다. 사망의 물은 땅을 덮는다(창 1:2, 7:10). 그러나 천하의 물 은 한 곳으로 밀려갔고 (창1:9) 홍수의 물은 바람에 의하여 말 라졌다 (창8:1). 결국 물은 땅을 이기지 못한다. 오히려 땅은 물을 다스리고 생명을 잉태한다. 생명이 자란 후에는 땅은 영원 히 물을 다스린다. 땅은 물을 삼켜 생명을 키운다. 그리고 그 생명에게 사망의 물을 생명의 물로 바꾸어 공급함으로 그 생명 을 키운다. 흙은 물에 젖는다. 그리고 싹을 틔우고 키운다. 사 망을 머금고 생명을 키우는 것이다. 물에 젖었던 흙은 노아와 그에게 포함된 모든 생물이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기 위하여 노아와 생물들을 받았다. 그러므로 물에 젖은 흙이 필요하다.

사탄은 생명을 말살하기 위하여 땅을 덮었지만 땅은 오히려 물 을 삼키고 생명의 밭으로 변화되었다. 할렐루야! 노아는 방주로 죽음을 통과하고 부활하였다. 땅은 물을 삼켜 생 명의 밭이 되었고 노아는 죽음을 내어 놓고 죽음을 이겼다. 그 는 잣나무로 잘려지고 쪼개져서 판자가 되었고 연하여져서 방주 가 되어 물을 이겼다. 죽음을 이긴 노아는 죽음을 삼킨 땅에 나 왔다. 생명은 죽음을 인하여 더욱 생육하고 번성하게 되었다.

죽음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죽음에 매어 일생을 종노 릇할 자들이 아니다. 죽음을 내어놓고 부활에 이르러야 하며 죽 음을 삼키고 생명을 키워야할 자들이다. 생명은 죽음을 통하여 부활이 된다. 부활이 없으면 생명도 무용하다. 부활만이 하나님 의 필요가 되기 때문이다. 흙은 물을 삼켜야 하고 노아는 죽음 을 발표해야 한다. 이것이 부활의 첩경이다. 방주는 죽음의 표 현이다. 그러나 부활의 생명을 싣고 있다.

노아와 노아가 딛은 땅은 모두 부활 안에서 새 것이다. 뚜껑이 열렸으니까 그들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예표적으로 경험한 것이 다. 땅도 하늘도 옛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거쳐서 나온 것은 다 새 것이요 부활이다. 부활은 어디에 있어도 부활이다. 그러 므로 하나님은 땅 위에 부활을 두려고 하신 것이다. 땅은 부활 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지배될 것이다. 땅을 땅으로 정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옛 창조는 땅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땅에서 나 온 것은 부활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땅을 회복하기를 원하신다. 주 예수님은 제자들을 땅에서 데려가시기 위하여 기도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보존하기 위해서 기도하셨다(요18:15참조). 노아는 부활의 땅으로 왔다.

주 예수님도 부활의 땅으로 오신다. 부활의 땅이 아닌 곳에서 주 예수님은 핍박을 받으셨다.

하나님도 부활의 땅을 축복하셨다. 땅이 있는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 라 하셨다(22). 부활의 노아는 부활의 땅에서 살게 되었다. 노 아가 부활되었다 하더라도 땅이 부활되지 않았다면 부활생명은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씨가 있다고 하 더라도 그 씨를 발아시키고 키울 수 있는 땅이 없다면 무슨 일 이 일어나겠는가. 우리 주 예수님은 부활생명으로 세상에 왔지 만 땅이 없었다. 공중의 새도 깃들일 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 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부활의 땅이 없었기 때문 이다. 이제 그의 생명은 죽음을 거쳐서 다시 부활하셨다. 그러 나 거할 땅이 없다면 어디에서 그는 생육하고 번성하겠는가.

그러므로 부활노아가 부활의 땅으로 와서 살았듯이 부활예수는 부활교회로 와서 사시는 것이다. 우리가 흙처럼 죽음을 머금고 있다면 부활의 주님은 우리 안에서 발아되고 자랄 것이다. 우리 가 사망을 통과할 때 주님은 우리를 인하여 생육하고 번성할 것 이다. 노아와 그에게 포함된 모든 생물들에게는 그들이 생육하 고 번성할 땅이 주어졌다. 주 예수님에게도 그 땅이 주어질 것 이다. 그는 지금 부활교회 안에 계시고 장차 그는 왕국을 거쳐 새예루살렘 안에 거하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부활 안에 있다. 옛 창조 안에 있지 않다. 홍수가 지났고 십자가가 지나갔다. 이제는 부활 밖에 없지 않은가. 죽 음은 완전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심판 받았다. 죽음은 예수 우 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 그러나 그는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옛 생명은 죽고 부활생명이 왔다. 몸을 죽였지만 소 용이 없었다. 그는 우리 안에서 살아났기 때문이다. 사탄은 예 수를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다시 살아난 예수 를 죽이는 데 실패했다. 홍수가 몰아침으로 하늘 아래 모든 것 을 죽음으로 휩쓸었다. 그러나 물이 마르자 부활의 세계는 완전 하게 펼쳐졌다.

사탄에게 무엇이 유익했던가. 사탄은 유대교를 통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러나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난 주님 을 다시 죽일 수가 없었다. 사탄에게 무엇이 소득이 되었는가.

오직 멸망이 소득으로 돌아왔을 뿐이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 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그러나)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하노라 (고전 15:55-57).' 사망과 심판은 지나가고 부활과 그 땅이 왔다. 죽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이 있고 죽음을 삼킨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키운다. 우리에게는 생존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활이 필요하 다. 물은 노아의 때에 지나갔고 죽음은 예수의 때에 지나갔다.

이제는 부활의 때다. 방주로 죽음을 표현하고 진흙으로 죽음을 삼키자.이제는 부활 뿐이다. 또다시 사망을 학습하지 말자. 이 제는 부활을 살자. 땅에서 부활을 살자! 땅은 부활생명을 위한 場이다.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고 다스리자!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지 말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주셨다. 92년 10월 28일에 올라가겠다는 사람들이나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올라갈 것이 라고 하는 사람들아, 떠나지 말고 우리 여기서 함께 살자. 부활 생명은 땅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해야 한다. 모두 어 디로 가겠다는 것인가. 하나님의 대역사를 제쳐 놓고 자기만 살 자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하나님의 왕국은 땅에서 시작되었는 데 당신들은 어디로 도망을 가는가. 살기 위해서 미혹된 사람들 아, 우리가 죽어서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나타나야 하지 않겠는가! 부디 떠나지 말고 우리 함께 부활의 나라 건설 을 위해 살다가 땅에서 죽자! 어디 공중으로 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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