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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식의 근본 (잠 0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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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는 그 시대마다 역사를 지배하는 지식의 사조와 사상 의 영향을 받으면서 흘러왔고, 그 영향 속에서 기독교의 신앙은 순 간순간 수난과 고통을 당하는 시련이 있었으며, 그 시기마다 올바 른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시련을 극복하여 나온 발자취인 것입 니다.

기독교의 신앙이 그 시대의 사상과 풍조에 휘말릴 때에는 오래가 지 못하고 타락을 했고, 어렵지마는 신앙의 힘으로 슬기롭게 이겨 나간 사람들이 신앙을 이어 오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19세기 이후 로 막시즘의 유물주의사상이 지배하므로 인류는 물질을 최선으로 하는 사상이 지배해왔고 이것이 미국에서는 Jhon Dewey(1859-1952) 의 실용주의 철학(Pragmatistie philosophy)을 교육의 이념으로 삼 게되자 모든 교육은 사람의 실제 생활에 직접 필요한 것을 위한 교 육이어야 한다는 실용주의 교육이 지배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기독 교 신앙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신앙의 세계를 추구하는 일에 큰 타 격을 가하게 되고 반면에 기독교의 신앙 자체도 현실적인 필요성을 충족시키는 현실주의적 신앙으로 변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기독교의 위기를 당한 가장 어려운 점이요, 현 재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신앙의 병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그 시대의 그릇된 지식과 사상과 여기에서 비롯된 기독교 신앙의 세속 화에서 우리의 참 신앙과 지식을 지키어 나갈뿐 아니라 우리의 신 앙적 모순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며, 자체개혁을 단행해야만 할 것입 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신 잘못된 사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어려운 시대에 대처한 신앙의 사람들을 살피고 오늘 우리 는 어떤 신앙의 지식을 가져야 할 것인가를 살펴 보고자 합니다.

 1. 참 지식과 거짓 지식 본문에서 잠언 기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 라고 했으며, 여기에 대해서 잘못된 것을 어떻게 지적하고 있습니 까1) 악한자가 너를 꾈지라도 좇지말라(10절).

즉 불신주의 입니다. 잘못된 지식의 가장 큰 것은 불신인 것입니 다. 죄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은 보이는 것을 위해 살되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온갖 보화를 얻으며 우리집에 채우리니(13절).

즉 물량주의의 사상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와 성도들의 그릇된 판단이 바로 여기에서 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별로 믿으려 하지 않고 우리가 소 유한 물량에 대한 신뢰성은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슨 여리고성의 함락, 기드온 용사 300명, 홍해를 갈라 육 지를 건너게 하신거, 오병이어의 기적등은 오늘 물량주의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로서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사람의 피를 흘리자(11절).

즉 오늘날 극단주의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대화와 관용과 사랑의 용납이 없고, 목적을 위해서는 "예"나 "아 니요"의 극단으로 지달아서 때리고, 죽이고 하는 이 모든 현상들은 세상이 종말에 다가왔다는 심리적 회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단돈 몇 천원을 위해 사람을 죽이고, 단1-2분의 쾌락을 위해 부녀자를 폭행하고 죽이며, 학생들이 자기들의 주장을 앞세워서 분신자살, 투신자살로 치닫고, 상호간에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으로 극단에 흐르는 시대입니다.

4) 인본주의 시대입니다.

10절로 19절까지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6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신본주의가 아니라 "우리"라는 인간을 중심한 인본주의의 대언입니다. 사람을 중심한 지식은 참 지식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인본주의는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 는 신본주의가 참 지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15-16절에서 "내 아들아 그들과 함께 길에 다니지 말라 네 발을 금하여 그 길을 밟지 말라 대저 그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피를 흘리는데 빠름이니라"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불신주의,물량주의,극단주의,인본주의 사상에서 벗어나 여호와를 경회하는 참 지식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2. 참 신앙과 거짓 신앙 성경은 옛날부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상앞에 위대한 신앙의 사 람을 세우신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1) 라멕과 에녹 시대의 비교

1. 라멕의 시대(창4장) 라멕은 두 아내를 취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적 타락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갈비뼈를 뽑아 여자를 만드시고 하와 라 하시며 아담의 아내로 주시되 둘이 한몸이 되는 결혼의 신비를 허락 하셨습니다.

이것이 라멕의 시대에 와서 일부 다처제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 이 아닌 타락된 쾌락주의의 산물인 것입니다. 또한 라멕의 아내 이 름이 아다와 씰라인데 이 아다는 야발을 낳았는데 이 사람은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물질주의의 시조를 이은 유물주의의 할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그 동생은 유발인데 이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이것은 나아가 향락주의의 풍조를 이끌어 오게 되었습니다.

물질이 풍부해지고, 살개에 풍요로우면 일어나는 것이 향락사업 입니다.이 향락 사업에 따르는 것이 성적 질서의 문란과 타락입니 다.

오늘 우리의 현실을 보십시오 보리 고개가 있을 때에는 먹기도 어려웠는데 경제가 성장되고, G.N.P.가 올라가자 제일 먼저 온것이 향락주의인 것입니다. 모두 그런것은 아닙니다만 이발소,목욕탕,술 집,음식점이 모두 이 향락주의 퇴폐업소로 하룻밤에 수십억원이 쏟 아져 나오는 현실이요, 이수요에 공급이 부족하니까 대낮에 부녀자 들을 납치하였다가 사람을 팔아 먹는 망국적인 악습과 죄악이 공공 연히 자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부인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는데 이는 동철로 각양각색의 날카로운 기계,살인무기의 제조자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라멕의 호 소를 들어봅시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 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 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4:23)"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발가인이 무기로 살인하였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현실을 봅시다.

죄악이 난무하는 곳에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 기계가 발전하게 되 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 다. 성도덕의 타락,물질숭배사상,향락주의 퇴폐,인명 경시의 살인 무기 팽배,이것이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우리가 넘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죄악의 시대에 신앙의 사람 에녹은 어떻 게 살아 왔습니까

2. 에녹의 시대(창5장)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히11장5절에서 "...저는 옮기우 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어떤 행동이 있기전에 사람인 나보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슬퍼 하실까 이것을 판단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만 살아가야 합니다. 이토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반드시 계신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에녹의 나이는 삼백육십오세를 향수하였는데 에녹은 육십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을 했으며 삼백육십오세 를 향수했습니다. 그당시 아담의 아들 셋을 비롯해서 노인까지 수 명은 거의가 구백세를 살았고 므두셀라는 구백육십구세를 살았습니 다. 에녹은 그의 1/3의 수명을 살았습니다. 에녹이 삼백 육십 오세 를 산 것은 오늘 1년이 365일 임을 뜻하며, 이 세상에 살고 싶은 소망이 없었고 그가 죽지 않고 하늘나라에 간 것을 보아도 그의 소 망은 하늘 나라에 있었음을 잘 반영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라멕의 시대처럼,타락하고 부패한 시대이나 에녹은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하나님께 서 데러가시는 증거입니다. 우리도 주의 재림에 있어서 들림 받아 올라가길 원하여 신앙으로 살때에 주님께서 오시는 날 휴거(들림받 아) 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2) 바벨탑 사건과 아브라함의 비교 창세기 10,11장은 시날 평지에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으므로 하나 님께서 홍수로 멸하신 말씀으로 바벨탑을 쌓아 하나님을 대항하자 는 불신주의,항신주의의 대표입니다.

 1. 니므롯과 바벨탑 사건 (창10,11장) 니므롯은 은혜를 배반한 자입니다. 그는 전쟁신인 "니누로다"의 이름을 따서 부르므로 성경은 "세상의 처음 영걸"이라고 말하였느 데 특이한 사냥군으로 무기와 무력으로 통치하며 그 통치력으로 바 벨탑을 쌓게 된 것입니다. 니므롯의 잘못은 첫째,"대신하는 것"이었습니다.

창11장3절을 보면 벽돌들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했 다"고 하였습니다. 진실이 없는 대신에 거짓이 그의 기초였습니다.

둘째,"성과 대를 하늘에 닿게 쌓자(창11장4절)"고 했습니다.

이것은 오늘의 하나님을 떠난 문명 세계를 뜻합니다.

여의도 63층 건물을 세우니 이북에서는 평양에 100층짜리 건물을 세우고 대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바벨탑 문명입니다. 높 이 올려서 우리 이름을 내자.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본주의 의 모습인 것입니다.

셋째,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11장46절).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인간의 힘으로 막고 역사의 흥망을 인간 의 힘으로 조절하자는 즉 하나님의 통치권을 면하자는 말인것입니 다. 이것이 오늘날의 바벨문명인 것입니다. 컴퓨터가 그렇고,이것 을 이용한 로보트가 그렇고 인간의 생명공학이 그렇고 인간의 임신 출산의 조절이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인간들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통치권을 넘보는 오 늘의 바벨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명은 하나님께서 남겨두지 않고 그렇게 믿는 컴퓨터에 의해서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의 신앙(창12장) 이러한 시기에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찾으신 것입니다. 오늘 우 리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첫째,믿음입니다.

갈곳을 모르곰 하나님을 따른 것은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의 우 리는 알고 믿으려는 것 때문에 깊은 신앙에 들어 오지 못하는 것입 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고향을 떠나는 창12장에서나 아들 이삭을 바치는 창22장에서도 하나님을 의심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롬4장17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아브라함) 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 르시는 이시니라고"했습니다. 이 믿음이 무엇보다도 오늘 실용주의 신앙,상황윤리신아,현실주의 신앙의 시대에 대항하는 참 믿음이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신본주의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맒씀에는 어떤 명령이라도 순종했습니다. 현실적 으로 불합리해도,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되도,사리에 모순이 있어 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앞에는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믿음이란 것 은 중심속에 갖는 신앙의 상태라고 한다면 순종은 신앙인이 믿는데 로 따르는 행위요,생활이요,삶인 것입니다. 오늘날은 신앙이 다르 고 생활속에 행하는 신앙이 다릅니다. 이것이 신앙의 부패성을 말 해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런것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셋째,천국의 소망자였습니다.

히11장15-16절에서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들어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 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 라"고 합니다.

그는 하늘나라를 소망했기에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갔던 것입 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순종,소망이 오늘 우리 중에서 얼마나 찾아 볼 수가 있겠습니까

3. 디모데후서 3장 1-8절과 바울의 신앙 바울은 말세를 말할 때 3대 사상을 경계하였는데 첫째,물질주의 (Mammomism) 둘째,이기주의(Egoism) 셋째, 쾌락주의(Epicurism)입 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을 지배하는 육체의 사상입니다.

돈을 위하여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을 서슴없이 하며, 돈을 벌기 위해 살인,강도,마약,부정식품등 모두가 돈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 다. 자기를 위해서는 부모도 자식도 남편도 아내도 헌신짝처럼 버 리고 신앙도 하나님도 내동댕이치는 시대입니다. 쾌락을 위해서는 서슴없이 저지르는 시대인 것입니다. 가정이 파괴가 되고,내일 법 에 의해 심판을 받고 영원토록 지옥에서 불가운데 형벌을 받아도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 사는 오늘의 병든 이 사회의 뫄습이요, 부패 된 실상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1) 확신 교육입니다.

보이는 세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보이지 않는 확신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이것으로만 오늘의 병패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확신이 없는 곳에는 무질서,불안,위기감이 있으나 확신이 있는 곳에는 질 서가 있고 평안이 있고 평화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참다운 가치관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물질이 모두가 아니라 참 가치는 진리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 진리는 신앙 안에서만 오는 것입니다. 양심적이어야 하고, 현 실이 인정 받아야 하고, 선량한 사람이 지도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 니다.

3) 사랑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서로가 도와 주고 사는 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지식은 서로가 도와주기 위한 것인데 친구보다 내가 더 알아야 이긴다는 교육방식이 오늘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봉사 정신 을 가지고 살아야 됩니다. 오늘 성도들도 예수 믿고 축복만 받자는 정신이 바로 사회의 병든 정신에서 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주 를 위해 세상을 위해이웃을 위해 봉사한다는 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4) 신본주의로 삽시다.

인본주의의 종국은 서로 죽이고 파괴하는 멸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는 인간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 며 창조질서를 따라 아름다워지고 모든 일이 순리로써 아름다운 시 대가 열릴 것입니다.

결 론 오늘 어려운 난국을 당하여 교육하는 달에 과연 잘못된 병패는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정립할 것인가의 사명을 살리고 우 리 모두가 이 시대를 잘 대처해 나가는 신앙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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