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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익명의 찬양시 (시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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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33편은 익명의 찬양시인데,그 저작 년대와 동기가 불확실 합니다.

이 시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찬양의 초대시입니다.

이 내용은 무조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필연적으로 찬양해야 할 이유를 네가지로 나누어 제시 하고 있습니다.

1-3은 서론 부분으로 성도들을 향한 찬양의 권유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먼저 찬양할 자격이 있는자를 규정해 놓고 있습 니다.

의인은 법적으로 하나님께 인정된 자를 가리키고,정직한 자는 그 주관적 자세가 성실한 사람을 가르킵니다.

하나님은 이런자들만의 찬양을 받으십니다.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열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즐거운 소리는 찬양하는 자의 정열적 마음의 자세를 말합니다.

공교히는 가진 바 재주를 다해서 성실히 할 것을 가리킵니다.

찬양은 모든 성도들이 열과 성의를 다해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물론이지만,이차적으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축복과 기쁨의 기회를 줍니다.

4,5절은 첫번째 이유입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성실하심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엄정한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며,또한 자비와 긍휼이 넘치시는 인자하심을 동시에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법없는 편견의 소유자도 아니시며,사랑이 없는 냉랭한 법관도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6,7절은 두번째 이유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의 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의지를 이루시며,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인간에게 제시되는 능력의 실체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시매 피조물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되지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의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해야만 합니다.

8-17절은 세번째 이유입니다.

여호와의 사역의 위대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는 자를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자기가 계획을 세우고 자기가 좋은 때에 자기 좋을 대로 태어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죽음을 연기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은 자기 멋대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최후에는 예산과 결산이 꼭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그리하여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복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승리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패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계산을 합니다.

확실히 계산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사람들의 계산방법과 다른 계산방법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군마가 많고,군대가 많은 것이 승리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것이 승리의 힘도 아닙니다.

왕이나 인간의 힘이나 말을 의지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를 바라며,의지하는 자들을 구하시며, 지키십니다.

우리에게 다른 가치관을 보여주는 하나님,그 분은 생명의 가치가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아니하며,섬김을 받는 것 보다 섬기는 쪽이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지금의 일 보다 천국에서 칭찬받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우리를 살피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서, 기근시에도 살게 하십니다.

기근이란 신자들이 당하는 육적,영적,환란의 때를 말합니다.

종말론적으로는 심판의 때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믿는자에게 고통 중의 위로자 되시며,환란중의 피할 산성 이 되십니다.

유일한 구원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은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18,19절은 네번째 이유입니다.

인간을 위한 여호와의 사랑 때문입니다.

모든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부성적인 사랑과 보살핌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20-22절은 결론적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간구와 찬양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생명이 끝날 때 까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과의 줄다리기,하도리 아끼라,최건호 역,베드로서원 시편,두란노강해 주석시리즈10,앨런 P.로스,전광규 역,두란노서원 톰슨II 주석성경,기독지혜사.

.new psca ──────────────────────────────-y1시편28편:1-9/부르짖음-y0 ────────────────────────────── 선지자 이사야는 숨어계시는 하나님을 노래 했습니다.(사45:15) 불의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불의한 자들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자기 위주로 모든것을 풀어 나갑니다.

그들의 심령은 오직 자신만으로 충만하여,절대자가 들어설 자리 가 없습니다. 썩어질 것과 죽어가는 것으로 곽찬 그들의 눈은 하나님을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불의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는 숨어 계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썩어질 탐욕과 죽음으로 치닫는 죄된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좋으신 하나님은 항상 숨어 계십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의를 저버린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어 있습니다.

이제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습니다.일반적인 방법으로는 그 관계의 통로가 열리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의 시인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1절) 부르짖음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탄원이 있어야만 하나님의 응답이 기대됩니다.

실상 구약에서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인간의 탄원으로 부터 시작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바로에게 당하는 압제로 부터 부르짖고 있었고,포로된 백성들이 바벨론땅에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다 여호와의 응답이 뒤따랐고,구원역사가 이 땅에 펼쳐 졌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부르짖음은 의로운 자가 겪는 고통으로 부터 자유를 의미한 것이지 악인들이 부르짖었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하는 것은 예수 이름으로 의인된 자들의 탄원입니다.

의인들의 탄원을 외면한 적이 없으셨던 여호와께서 오늘도 성도들 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가 되시니>시인은 기쁜 마음을 감출수가 없습니다(6절 이하) <부르짖어> 여호와의 응답을 받은 기쁨을 함께 나누는 감격을 생각하게 합니다.

주님의 응답은 우리의 산업에 복주시고,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놀라운 것입니다.(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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