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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 전파의 책임 (롬 10: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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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 있는데 그는 휴트필드라는 미국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18세기의 미국의 영적대각성 운동은 일어 나지 않았을 것이고, 미국이 영적으로 부흥을 맞지 못했으면,외국에 그처럼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또 우리나라에도 아펜셀러나 언더우드 같은 훌륭한 선교사를 파송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 100년 전에 이런 훌륭한 선교사들이 와서 복음을 전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복음을 모른 지금 우리의 형편은 너무나 뻔한 것이 아닙 니까 이처럼 한 사람이 어떻게 활동을 했느냐가 그 후손을 두고두고 영광스럽게 하 는 것을 봅니다.

휴트필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 너무 좋아서 30여년 동안 자기 몸을 돌 아보지 아니하고 초인적으로 헌신했습니다. 보통 일주일에 40시간-60시간을 설교 를 했습니다. 설교를 해 본 사람 만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중노동인 줄을 압니 다. 인간적으로 판단한다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한 주에 그 정도로 설 교하면 오래 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설교를 한 다음에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 라,계속기도하고 자신을 초청한 집에 가면 함께 찬양하고 중보기도 하는 것을 잊 지를 않았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녹이 슬어서 없어 지느니 닳아서 없 어지는 목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1770년 9월 29일 전도집회를 마치고 보스턴으로 돌아 가던 중 엑스터라는 작은 마을에 잠간 들렸습니다. 그 곳을 그냥 지나치려다가 휴트필드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설교해 달라고 막무가내로 요청을 했습니다.들판에 임시강단이 마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 올라 섰습니다. 이 때 휘트필 드를 지켜보던 한 노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당신은 설교 하는 것보다 침대에 가서 눕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만큼 그는 지쳐 있었고,환자였습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단에서 눈을 감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주님,저는 주님 의 일에 지쳐 있기는 하지만,그 일에 실증을 느끼지는 않습니다.제가 아직 갈 길 을 다가지 못했다면 다시한번 들판에 서서 주님의 복음을 말하게 하시고,주님의 진리로 모든 사람에 마음에 인치에 하옵시고, 그 다음에 죽어 주님이 품으로 돌아 가게 하옵소서그렇게 기도하고 전도를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는지 모른다고 합니다.그가 생전한 설교 중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설교 중의 하나였다고 평가가 됩니다.

그 다음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휘트필드의 방에 찾아가 보니 그는 이미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다음이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그리고 멋있는 인생을 살다가 갔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왜 그렇게 자기 몸을 도보지 않고 쇠붙이처럼 닳아 없어지는 생을 살기를 원했 을까 그 이유를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 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왜 휘트필드와 같은 사람이 복음을 위해서 그렇게 한 생을 불태울수 있었을까 예수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너무나 부요하시다는 것을 그가 깨달았 기 때문입니다.

믿는자는 다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그 은혜가 얼마나 부요합니까 예수님을 주라고 인정을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의는 영원토록 다함이 없는 의니까 얼마나 부요합니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생명은 죽음의 그림자를 완전히 쫓아 버리는 영원한 생명이 니까 얼마나 부요합니까 그가 우리와 함께 장차 저나라에서 누릴 영광은 이 세상의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영광이니 얼마나 부요합니까 이 부요함을 깨달은 사람은 휘트필드만 아니라 이 세계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치도록 복음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했고, 병들도록 일하기를 원했고, 죽을 때까지도 그들은 자기를 돌보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를 원 했습니다. 이 복음이 너무나 부요하기 때문에 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불태우기를 조금도 사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예수님의 복음이 우리 모두를 부요하게 하는 축복을 가졌다고 하 더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듣지 못하면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는 것입 니다.부뚜막의 소금도 집어 넣어야 짜다는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들어야 믿지요.

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바울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만약에 이스라 엘 사람들이 바울에게 와서 '우리는 복음을 들은 일이 없어서 못 믿었소'라고 한 다면 무엇이라고 할까 만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울에게와서 '우리가 듣기는 좀 들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라서 못 믿었소'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것이 변명이 될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오늘 여기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만약에 못들어서 못 믿었다면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하 나님도 인정을 하는 진립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의 예자도 듣지 못하고 간 우리 의 조상들에 대해서 주님이 어떻게 대우 하실지 잘 모르겠어요. 저도 확실히 대답 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못들었으니까-못 믿은 것입니다.그것은 분명합니다.

14절을 봅니다.그런즉 저희가 어찌 믿지 않은 이를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 를 어찌 믿으리요.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꺼꾸로 말하면 누군가 전해 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고, 믿어야 주님!하고 부를수 있다는 말입니 다.

17절에 다시 반복합니다.믿음은 들음에서 나며,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 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겨서 믿는 것입니다.그럴때에 예수의 부요함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못들어 못 믿었다고 변명하는 것이 아무리 타당한 논리라고 하더라도 이 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바울이 지금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통하지 않느냐 그들이 못들었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하 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보내서 얼마나 자주자주 듣도록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사야 52잘7절을 바울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본문 15절을 잠간 봅니다.보내시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하나님이 보냈 다는 말입니다.왜그런가하면 이사야 52장7절에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함과 같으니라 옛날 구약시대부터 이스라엘 백성은 들을수 있도록 하나님이 참 복음을 전하는 종들을 많이 보내 주었습니다.복된 소식을 전하는 종들이기 때문에 그들은 발은 아름다운 발이요,복된 발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18절에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이 말은 듣지 못했느뇨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시 편 19장 4절에 무엇이라고 했느냐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 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보라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종들을 보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는지 온 천지에 가득하지 않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들었다는 것은 도무지 통하지 않는 이야깁 니다.

사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같이 이스라엘 사람처럼 예수에 대해서 듣고 보고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던 백성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33년 동안 활동하셧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10장67절에 차라리 이스라엘의 집에 잃어 버린 양에게로 가라!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1장 8절 주님께서 성령이 오시면 복음은 어디서부터 증거된다 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입니다.

온 유다와 사마리아가 그 다음입니다.

복음 증거의 주 목표가 유대인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는 맨 마지막에 땅 끝까지입니다.

그러니 성령이 오셔도 첫째,둘째,셋째가 전부 이스라엘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하신다고 말씀하신 것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듣지 못해서 믿지 못한다는 이 말 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사도 바울을 보내서 이방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에도 이방 사람들에게 먼저 전하지 않았습니다.유대인들에게 먼저 전했습니다.

바울이 재판을 받는 장소에서 바울을 고소하는 변사-검사-인 더둘로라고 하는 사람이 이렇게 헐뜯고 정죄했습니다.우리가 보니 바울은 염병이라.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하는 자다라고 했습니다. 이민간 유대인까지 다 찾아 다니면 서 복음을 전하는 이놈을 가만히 두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듣지 못했다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2 그리고 만약에 또하나 들고 나올 변명이 있는데,그것은 우리가 예수에 대해 서 듣기는 들어도 알지를 못해서 못 믿었습니다.하면 어떻게 되겠느냐하는 것입 니다.

이것도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유대 민족 만큼 말씀을 잘 깨달을 수 있는 은 혜를 받은 백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많은 선지자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위대한 믿음의 조상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하나님을 섬기는 종교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그런 사람들이 말씀을 깨 닫지 못해서 못 믿었다고 하는 말을 통하지 않는 말입니다.

19절에서 20절까지 설명하고 있어요.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한 말을 인용합니다.신명기32:21절 말씀인데-내가 백성 아닌자로서 너희로 시기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무슨 뜻인지 압 니까 야 이스라엘 사람들아 들어보라,너희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지만 이방 사람 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어, 그 백성들은 미련한 사람들이라,하나님을 찾지 않고 우상숭배만 하던 사람들인데 이제 보라,그 미련한 백성이 예수 믿고 돌아 오 고 있지 않느냐 그렇게 미련한 백성들이 깨닫고 돌아 오고 있는데 너희들이 깨닫 지 못한다는 말이 통하느냐 는 것입니다.

다음에 20절 봅니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않은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 하지 않은자들에게 나타났노라 이방사람들은 하나님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만 하고 살았어요.이방사 람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어요.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도 않고 살았어요.얼마나 어두운 백성입니까 그런데도 복음을 전하니까 그 복음을 듣고 예수 믿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보라.그런데 너희들이 깨닫지 못했다고 그 말은 설득력이 없다 는 것입니다.

지옥의 땔감이라고 멸시하던 이방인들이 이와같이 예수 믿고 돌아 오는데 듣고 도 깨닫지 못했다 그 말은 하지 말라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잘 알지 않습니까 모른다는 것,무지라는 것이-알수 있는 기회가 없어 서 몰랐고,알만한 능력이 없어서 몰랐다면 용납이 될 만합니다. 그렇지만 게을러 서 알지 못하는 그 무지는 용납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험관계를 맺는데 한국사람들의 잘못된 습관이 있는데 보험약관을 읽지 를 않고,모집원이 말하는 몇마디만 믿고 계약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꼼짝을 못합니다.회사에서 자 약관을 보십시요. 여기에 이렇게 씌여져 있 지 않습니까 하면-나는 그것을 몰랐는데요-한다면 말이 됩니까 왜 몰랐습니까 여기에 이렇게 인쇄된 것을 안보고 모른다면 이유가 됩니까 하 면 그만입니다.

게을러서 않읽은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모르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꼭 같은 형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 많이 증거해 주었지만, 그들은 게을러서 예수님에 대해 서 귀담아 들을려고 하지 않았고,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대나라 사람 들에게 문제가 된 것이고,멸망으로 이끌어가는 기가막힌 고통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 받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고 합니다.

21절에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기 백성 에게 내가 종일 내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지금도 손을 벌리고 돌아 오라,돌아오라고 하신다는 이야깁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지 않고 있고,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서도 이스라엘 사람처럼 못들었다,들어도 몰라서 못 믿었다고 변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리고 실제로 복음을 듣지 못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는 사람도 이 지 구상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어떤 통계에 보니까 지금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구 가운데 3/2가 복음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들을 기회가 없어서 믿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쓴 것을 보았습니다. 예 수에 대해서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지만 예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배우고 듣고 할 만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예수를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숫자가 3/2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직 이런 자들을 위해서 문을 닫지 않고 계십니다.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이 구원의 날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무엇을 보아 알 수 있습니까 못들어서 못 믿었다고 하는 자가 없도록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복음 을 전할수 있는 많은 종들을 사방에서 불러 모아서 계속해서 보내고 있는 것을 보 면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계속 보내고 있습니다. 안 보낼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5절을 봅니다.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하나님이 보내십니 다.

그러면 누구를 보내십니까 지상의 교회입니다.

교회 안의 누굽니까 이렇게 말하면 선교사나,신학생들이나,특별한 전도자들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누가 있습니까 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보내느냐고 물으 면 접니다!!!라고 대답을 해야합니다.

요한복음 20:21절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 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그랬습니다.

그 때 너희가 누굽니까 예수님의 사도들입니다.제자들입니다.동시에 누굽니까 그 제자들을 통해서 이 지상에 나타날 하나님의 교회, 그리고 그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들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를 보내노라 할 때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 2장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자들이 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세워 놓은 터 위에 산돌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들이 전해준 성경 말씀 들고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시에 사도들이 예수님으로부터 가라고 하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 사도들이 받은 소명을 우리도 함께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돌교회가 보냄을 받은 것이고, 산돌교회가 보냄을 받은 것은 바로 내가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벧전 2:9절 주님께서 우리를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어두움 에서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떡 복음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 위 해서 불렀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복음을 위해 부름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시간 성령께서 마음마음을 열어서 내가 보냄을 받은 증인이구나, 다른 사람 이 보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내가 보냄을 받았구나 하는 것을 깊이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보냄을 받은자로서 열정이 불꽃처럼 타오를수 있는 시간 되기를 바랍니 다.

성령이 우리의 냉냉한 가슴을 녹여 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보냄을 받았다는 사실을 깜빡 잃어 버리고 세상을 제마음대로 살고 있었던 그 자체가 주님의 명령을 불복종하는 생활이었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 를 바랍니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가야합니다.

마28:19절에 주님께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시고 제자들에게 가라고 명령하 셨습니다.모든 족속에게로 가야 합니다.

세상으로 보냄 받았으니 세상으로 가야합니다.

누구에게 가야합니까 구체적으로 우리의 이웃으로 가야합니다.우리의 직장으로 가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전도의 은사가 없습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안가겠다 는 핑계입니다.

여러분 가라고 하는 명령은 특별한 전도의 은사를 받은 교회 안에서의 5%미만 의 사람들에게 해당 되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동시에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95% 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 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해 주시고, 한국 땅에 4만여 교회를 세운 이유는 이 지구상에 있는 아직도 예수에 대해서 못들어서 못 믿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라고 세운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은사 받고,소명 받았다고 특별히 자각하는 5%만 가야합 니까 그렇다면 세상은 언제 구원받습니까 그러면 세상에 세상에 교회가 있는 이 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립이 안되는 이야깁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명령할 때는 5%가 아닙니다. 95%까지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 는 사람까지 가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만약에 95%가 움직이지 못하면 이 세상을 복음으로 구원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가기 위해서는 불신자들과 좀더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필 요가 있습니다.그리스도인끼리의 교제에 묶이는 것은 안가는 행동입니다.다시말씀 드리면 우리끼리의 틀 속에 묶여서 뱅뱅 도는 것은 안가는 것입니다.아무리 그 교 제가 아름답고 교회와 속회가 깨가 쏟아져도,자기 끼리끼리만 살고 그 끼리에 들 어 오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한가지 면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 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가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하려면 그들 개개인과 성실한 인간관계를 만드 는 노력이 앞서야 합니다.그들과 만나는 기회를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친해 질수 있도록 진실하게 교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주부는 이웃집을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잘 되지를 않아요. 그 래서 그 가족들의 생일을 알게 되어서 달력에다 표시를 해 놓고는 생일 때마다 예 쁜 카드를 보냅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가야 되니까 가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문제는 지나치게 우리 끼리의 틀속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그래 가 지고 어찌 복음을 들을수 있겠습니까 못들은 그들이 어찌 믿을수 있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정보를 보니까 남 아메리카에는 특히 브라질 같은데가 그렇습니다.

원래 카톨릭 국가라는 그 나라에서 개신교로 급격히 돌아 오고 있다고 합니다.카 톨릭은 믿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신자들이 아니지요, 1년에 50만명 이상이 돌아 온 다는 것입니다.작년인가 그 나라에 교황이 방문을 했습니다. 똑 같은 시간에 두개 의 집회가 열렸습니다. 하나는 교황을 영접하는 집회였고,다른 하나는 개신교에서 전도집회를 연 것입니다.교황이 오니까 50만명이상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10명 밖에 나오지 않았고, 전도집회에는 20만명 이상이 모였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이렇게 놀랍게 돌아오는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 교회가 열심히 전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그러면 많은 교파 중에서 어느 교파냐 오순절 계통의 교회가 너무 전도를 열심히 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돌아 오는 것입니다.

오순절 교회가 그러면 어떤 정책을 가지고 전도를 하기 때문에 그러느냐 대답 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이제 갓 교회를 나온 사람이라도 당신 예수 믿었지요 그러면 당신 혼자서 그 예수를 가지고 있지 마세요 아직도 예수 몰라서 멸망하는 사람이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당장 나가서 전하십시요! 그래서 예수 믿으면 사람들을 교회에다가 가두어 놓지 않고, 사무실로 시장 바 닥으로 쫓아 내는 것입니다.가서 자기들의 생활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 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100명 모이는 교회는 100명의 선교사가 자기 생활현 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1000명이 모이는 선교사가 매일 매일 나가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어떻게 합니까 나오면 매일 성당에 붙잡아 놓고 미사만 드리는 사람 으로 만듭니다.그러니 무슨 전도가 되겠어요 가지를 않는데.

우리끼리의 병!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믿지 않는 사람의 숫자가 어느 정도 있습니까 매일 접촉하는 믿 지 않는 사람의 숫자가 몇명인가 생각해 보세요. 놀랍게도 한사람도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안됩니다. 우리는 그들과 사귀어야 합니다.

 둘로스라는 선교선이 필립핀에서 선교를 하다가 폭탄이 터져서 꽃다운 나이의 처녀 둘이 숨졌습니다. 그 중에 다이아나라는 뉴질랜드의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이 집에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언니가 소식을 전하는 기자에게 이런 말 을 했다고 합니다.그래 이제는 내 차례야!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100% 나아갈 차 례야 그리고는 지금 둘로스 선에 와 있어요 이처럼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들은 땅 끝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땅 끝까지 가라고 하면 '나는 소명이 없다고 변명을 할수 있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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