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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전도는 은혜인가 (롬 15: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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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의 본론은 15:13절에서 끝이 납니다.

14절부터 16장 끝절까지는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바울이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이것저것 쓰고,인사들을 나눕니다.

그렇다고해서 본론이 끝나서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는 자리니까 말씀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없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사도바울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적이든 공적이든,본론이든 결론이든 상 관이 없습니다. 모두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귀중한 진리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마음 속에 간직하고 오늘 본문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는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로마서라고 하는 편지를 써서 보내기를 원했는가 하는 이야기를 또 한번 간단하게 합니다.

14절을 보면 로마 교인들은 3가지 좋은 점이 있었지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 을 나도 확신하노라.

첫째는 선한 사람들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지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만 아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 위로하면서 사는 아름 다운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무랄데 없는 성도들이었지만, 그가 왜 로마서를 써서 보낼려고 했느냐 15절 에 그러나 내가 너희롤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 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라.

지금까지 로마서를 써왔다는 이야깁니다.

로마사람들을 무식한 사람 취급을 하고, 이래라 저래라 명령하기 위해서 쓴 것이 아니 고, 로마 교인들을 깔보고 <너희는 나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고압적인 자세에서 쓴 것 이 아니라, 바울이 쓰고 싶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바울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은혜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함께 나눔으로 로마 교인들로 하여금 감격을 다시 회복시켜 주고 싶었던 것이 바울이 로마서를 쓰게된 것이었습니다.

1장에서 밝혔습니다만 여기서 또다시 한번 그 것을 회상시켜 줍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 로상에서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예기치 않던 순간에 만나고 나 서 그가 크게 발견한 것이 하나 있는데,은혜라는 것입니다.

예수 알기 전에는 은혜라는 단어 조차도 알지 못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 만나고 나서 그가 가슴 가득히 느끼고 체험하고 알게 되고,더욱더 그 것 때문에 감격할 수 있 었던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은혭니다. 그래서 15절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너희에게 좀 나누어 주면서 함께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바울의 심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은혜가 무엇입니까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엄청난 선물을 주 는 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 첫째로 내가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 고, 둘째로 너무 과분한 것을 공짜로 얻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하나님 앞에서 발견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나같은 죄인이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구원의 은혜였습니다.-바울은 이 사실을 로마서를 통해서 여러번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3:24절이 대 표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 롭다 하심을 얻은자 되었느니라.

기각막힌 은혜를 바울은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5:2절에는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 며...

바울은 구원을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다는 것을 알고 그 은혜를 지금까지 로마서를 통 해서 간증하고,고백하고,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바울이 발견한 놀라운 은혜가 있었습니다.

자기를 불러서 예수그리스도를 이방에게 전하도록 사도의 직분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도로 부름 받은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16절가서 보면 이 은혜는 하고 설명이 나옵니다.

이 은혜는 물론 구원 받은 은혜도 되지만 동시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나님 앞에 특별히 부름 받은 은혜를 이야기 합니다.

바울은 이 은혜를 말하고 싶어했고, 나누고 싶어 했고, 날마다 새롭게 느끼기를 원했 던 것입니다.

물론 바울과 우리를 비교해 보면, 다른 점도 있고 같은 점도 있습니다. 성경을 여러분 들이 바울 서신을 읽을 때에, 바울과 내가 다른 점은 무엇이고, 같은 점은 무엇이냐를 모르고 읽으면 여러분들이 성경을 깨달기가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이 특별히 세운 사도였습니다.사도라는 것이 달라요. 그는 평생 이방 사람 들을 찾아 다니면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해야 될 특별한 직분이 있었는데 그 것이 사 돕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가 아니에요.

그러나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복음을 맡겨 전하라고 한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맡겨서 전하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 전할 사명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복음 전할 사명을 가졌다는 점에 서 두 관계는 전혀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본문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만약에 이 가운데서 <뭐 나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되는 특별한 사명은 없어!>하는 무식 한 말은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전도가 왜 은혜가 되는가를 몇가지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할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나에게 시킨 거에요. 내가 그 일을 할만한 가버치가 전 혀 없는데도 하나님이 나에게 시켯기 때문에 전도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구체적으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첫째로 전도는 예수그리스도의 일군으로 부 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나에게 는 은혜가 됩니다.

16절에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일꾼이라는 말은 주인이 마음에 들어 자기 일을 맡기는 사람을 말합니 다. 이거는 머슴이라든지 몇푼 집어주고 하루 종일 일 시키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영어로 성경을 보면,minister라는 단어로 번역 되어 진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목사를 말하기도 하고,성직자를 말하기도 하고,심지어 세상 정부의 장관을 이야기 하 기도 합니다. 이 말의 본래의 의미는 성직을 맡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말이 본문에 나오는 일꾼이라는 말의 의밉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온 세상에 전하는 것은 하챦은 일 이 아닙니다.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직입니다. 복음을 들고 나 가서 전하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이라는 말입니 다.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신 목적이 있습니다.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 불렀 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권능 을 받아서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렀느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불렀습니다. 왜 예수님 이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느냐 땅끝까지 예수 전하는 일군 되라고 예수의 증인되 라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군되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일만큼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없습니다. 성경을 여러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살펴보세요. 그리고 생각해 보세요.하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이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예배라고 여길지 모릅니다. 아닙니다.

이 지구의 역사가 존재하는 이상,예배가 최우선이 아닙니다. 이 지구 역사가 끝나면 예배가 최곱니다. 예배가 제일 우선의 일입니다. 가장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의 역사가 아직도 남아 있고, 예수 믿지 아니하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세상의 현장에서는 더 앞서는 하남님의 관심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전돕니다. 잃은 양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성부.성자.성령 하나 님께서 합동으로 이 일을 중요하게 다루며 재촉하시는지 모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그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16절에 보면 누구의 일군이라고 했지요 예수그리스도의 일군이라고 했지요.

그 다음에 복음에 대해서는 누구의 복음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이라고 하지 요. 그리고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분이 누굽니까 성령이라고 했습니 다.

그러니 전도에 관한한 성부.성자.성령이 다 동참해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우리가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 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에 만유의 주 성삼위 하나님, 창조자요 구원자요 능력의 주가 되신 하 나님이 가장 중요하게 다루시고, 가장 최우선에 두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이 세상에서 그 것만큼 가치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 두말할 것도 없이 할만한 가치가 있는 일, 생명을 바쳐 볼만한 일, 한번 젊음도 던져볼 만한 의욕이 생기는 일,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 밖에 없습니다.

그 높으신 성삼위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하게 다룬 일이라면 얼마나 가치있는 일입니 까 중요한 일이면 일일수록 그것을 맡은 자의 영광은 큰 것입니다.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하는 일군으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것은 영광이요,은혜가 아닐수 없습니다. 나같은 놈이 어떻게 이 귀한 일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보시고, 나에게 이렇게 영광스러운 일을 맡겨 주셨는지 생각만하면 그저 가슴이 뜨거 워 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이 감격가지고 살았어요.

두들겨 맞을 때도 이 감격 가지고 살았고, 감옥에 갇힐 때도 이 감격을 가지고 눈물을 흘리고 찬송했고, 배가 고파서 움크리고 있을 때도 그는 이 감격 때문에 몸을 떨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나 같은 놈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을 맡 기셨나이까 굶어도 좋습니다. 매맞아도 좋습니다.죽어도 좋습니다.

하겠나이다. 생명 바쳐 하겠나이다.

바울의 감격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 전서 1:12절 이하에 보면 나는 죄인 중에 괴순데-하나님이 이 놈을 불러서 복음 전하라고 하셨구만, 얼마나 기가막힌 은 혜인지-그리고 14절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고전 15:9절 이하는 너무너무도 유명한 말씀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을 받기를 감당치 못할 자로라.

바울은 자기가 복음 전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복 음을 전하도록 하신 것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는 그 말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은혜야, 공짜로 된 은혜야! 자격이 없는 사람이 받은 은혜야! 그럼으로 바울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 은혜가 너무나 감격해서 이 은혜를 조금이라도 헛되게 할까 두려워서 다 른 사도 보다도 더 열심히 생명 바쳐서 복음 전했다고 했습니다.

황송한 느낌! 몸둘바를 모르는 감정을 갖는 것이 나를 그르스도의 일군으로 불러 주신 데 대한 은혜를 놓고 생각하는 사람의 태돕니다.

여러분, 옛날 임금이 말이죠.

아주 극비에 추진하기를 원하고,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앞에 놓 고 이 것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이 사람을 불러서 맡기자!고 생각이 나면 아무도 모르게 그 신하를 부르지 않습니까 술잔을 권하면서 <내가 너에게 시키고 싶은 일이 이러이러하다 부디 잘해 주기 바라 오> 하면 그 신하는 어떻게 합니까 황공 무지 하옵나이다. 분골쇄신 충성하겠나이다.라고 말하면서 감격해서 몸둘 바를 모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알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맡겨서 복음 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자녀을 삼으신 것도 아무나 불러서 삼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가 로마서 를 통해서 우리가 배웠습니다.

만세전 부터 나를 택하시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르시고,부르신 다음에 의롭다하 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다.

에서같은 사람은 미워하고 야곱같은 나를 하나님이 사랑하셨다고 했습니다.

아무나 택했나요 아무나 하나님이 자기 자녀를 삼았나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꼭 원하는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 원하는 사람 중에 내가 낀 것입니다.얼마 나 영광입니까 마찬가집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맡길 때도 아무나 불러서 전하라고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생각하고 생각하셔서,이 사람에게 맡기면 되겠다고 결정한 사람에게 맡기시 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나자신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카셀이라고 하는 찬송가 작가는 270장에서 이런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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