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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결심의 골짜기 (욜 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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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하나님 앞에서 결심을 하는 그런 순간이 있어야 됩니다.
요엘서 전체에 깊이 깔려 있는 메시지의 내용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입니다.
흔히 종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론 속에 포함된 세가지 진리는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내용과 예수님의 재림과 동시에 죽은 자들이 부활한다는 내용과 마지막 심판의 내용입니다.

1.이방인에 대한 심판
“거기서 그들을 국문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을 열국 중에 흩고 나의 땅을 나누었음이며”(3:2하)
하나님이 유다를 회복하실 때에 이스라엘의 대적은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고 하나님의 땅을 분열시킨 죄목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쓰러뜨리려고 비난하고 거짓 증거하고 내 백성에게 갖은 욕을 다하고 드디어는 사탄노릇을 해서 넘어지게 하고 하나님을 배신하게 했으므로 분열의 책음을 그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1-6절의 강조점은 ‘내 백성’ ‘나의 땅’ 입니다.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었는데 구원함을 맏았으니 구속주 하나님을 고백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생명을 대신 주시고 값주고 사신 구원입니다.
값싼 구원이 아닙니다.
우리의 돈으로 살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사도 바울이 디도서 2장 14절에서 말씀한 것처럼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식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즉 하나님 섬기는 선한 일에 열심하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참으로 선한 일은 하나님을 믿는 일입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불신의 죄입니다.
베드로도 그의 서신 베드로전서 1장 18-19절에서 “우리가 금이나 은 같이 없어질 것으로 구속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 고 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금이나 은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다.
누가 그리스도의 피를 사올 수 있으며 누가 감히 나를 대신해서 흘리신 보혈을 내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신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지 아니하고서는 견딜 수사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너와 나와는 상관 없다고 하실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은 참으시고 또 참으시고 오늘 까지도 참고 계신 것입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도끼를 들지 않고 경고장을 계속 보내시고 계시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하는 거룩한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파탄케 하고 교회를 괴룹히는 일은 하나미의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노예가 착고에서 풀려 나듯이 죄악의 굴레에서 풀림을 받고 자유를 얻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구원의 감격, 구원의 진정한 기쁨,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맙시다.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공격하고 그를 넘어뜨리려고 거짓 증거하는 일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그 중에도 주의 종을 비방하고 비난하는 것은 그를 세우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 됩니다.
쓰러지고 배신하고 또 넘어져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으로 불러 주셨으니 당당하게 이 세상을 살아갑시다.

2.열국에 대한 도전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찌어다”(3:9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열국에 도전장을 보내시며 선전포고를 하십니다.
열국들은 연합하여 전대미문의 동맹을 이루어 나와 겨루어 보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몇가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첫째.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3:10)
보습과 낫은 농기구입니다. 추수 때에 필요한 것입니다.
농기구를 다모아 무기를 만들어 그것을 들고 나한테 와서 한 번 대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2장 4절과 미가서 4장 3절을 보면 뒤집은 말이 나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장에서는 평화의 시기가 변하여 전쟁의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라고 말씁하십니다.
무기로 변해 버렸는데 낫이 어디 있습니까. 모순입니다.
곡식이 익었서도 낫이 없으니 그림의 떡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12절에서 내가 열국을 심판하겠다 하신 하나님이 포도주 틀을 밟으라 하셨으니 이 또한 모순입니다.
포도주가 넘쳐도 마실 사람이 없어니 무용지물이라는 뜻입니다.
곡식이 익었으나 낫이 없고 포도 주독이 넘처나도 기뻐할 사람이 전쟁터에 다 나갔기 때문에 없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에 신부된 자들이 뛰어나가 신랑을 맞아야 할텐데 산아 날 가리워라 바위야 날 가려달라고 꿩처럼 목만 숨겨 놓은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도전장의 내용은 전쟁이 아니라 곧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으로 끝을 내십니다.
인내하면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하십다.
도전장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강직성을 기억합시다.
응전을 하든지 항복을 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농기구를 다 동원하여 무기를 만들고 하나님을 능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익은 곡식 포도즙이 그림의 떡이나 무용지물이 되지 않도록, 정작 즐거워해야 할 그 시간에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더 이상 우물쭈물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패배를 자인합시다.
목을 곧게 하지 맙시다.
즐거이 순종하는 자가 즐거움에 동참합니다.

3.심판의 시급성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3:14하)
하나님이 임재하시며 판결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어느 정도로 급하신가를 의사요 음악가요 신학자인 알버트 슈바이처가 표현하기를 작은 바늘과 큰 바늘이 겹쳐서 12시가 되면 추가 가서 공을 때려 소리를 내는데 때리기는 했지만 떨러지지 않은 그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재림하시는 상황의 시급함입니다.
긴인 종말이 급해지고 잇는 떼이므로 결심을 빨리 할 때입니다.
우물쭈물할 때가 아닙니다.
‘내일 봅시다.나중에 천천히’ 그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4.피난처가 되리라
“그러나 나 여호와는 내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신성이 되리로다”(3:16하)
하나님은 열방에 대한 심판 가운데서도 그의 백성에 대한 위로를 잊지 않으십니다.
피난처, 산성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합이 없습니다(롬8:1).
요엘은 짓밟혀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의 말로 끝을 맺습니다.
가장 비생산적인 작은 산들까지도 포도주와 젖을 흘릴 것이며 영원한 샘같이 물도 충분히 공급될 것이라 합니다.
메마른 땅으로 유명한 싯딤 골짜기에도 물이 흘러 옥토가 될 것입니다.
강포를 행한 대적자 애굽과 에돔이 황무지가 되는 가운데 유다와 예루살렘은 영원히 옥토로 거할 것입니다.
박해를 당하면서 흘린 피를 깨끗이 씻시움을 받을 것입니다.
피흘림은 원수에게로 돌아가고 유다에게는 영원한 찬송만 있을 것입니다.
한가하게 지날 때가 아닙니다.
죄를 마음 속에 쌓아 둘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징계의 방망이가 10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위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속히 토해 놓읍시다. 버립시다.
결단을 하되 하나님의 편에 서기로 결단을 합시다.
지금 최선을 다하므로 후일의 화를 멀리 합시다.
ㅘ나님의 약속하신 모든 위로가 나의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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